- 부산항 개발 수립 두 달 前 대지·논 346평 매입
- 개발제한구역 묶이기 전 팔아…매수자는 울상
- “1980년대 후반에 장기투자처로 인식”
- 주민들 “文, 농사짓는 것 한 번도 본 적 없다”
- 몇 해 전 공시지가로 재산 ‘다운 신고’ 의혹도
문재인 민주통합당 대선 후보가 1989년 5월에 산 농가(작은 사진)와 논. 현재는 조립식 공장이 들어섰다. 공장 터 주변으로 펜스가 설치된 곳이 논이 있었던 곳이다.
10월 5일 국회 국토해양위원회 국정감사에서 새누리당 의원들은 문재인 민주통합당 대선 후보의 경남 양산시 매곡동 자택 문제를 집중 추궁했다.
1998년 지어진 양산 자택은 2008년 1월 문 후보가 사들인 것으로, 대지 2635㎡(798평)에 본채(243.1㎡), 작업실(86.3㎡), 사랑채(38㎡) 등 3개 건물로 이뤄졌다. 이 중 한옥인 사랑채 처마 일부(5㎡)가 하천 위를 지나가 미등기 불법 건축물로 확인됐다. 양산시청이 철거를 권고했지만, 문 후보는 이에 불복해 행정소송 중이다. 일부에선 집을 좀 고치면 될 텐데 굳이 소송까지 하는지 모르겠다는 소리도 나온다.
소유권 이전 등기 일자를 놓고 ‘양도세 회피용’이라는 의혹도 제기됐다. 이 집의 등기부등본상에는 매매 계약은 2008년 1월로 돼 있으나 소유권 이전 등기는 2009년 2월로 돼 있다. 새누리당 의원들은 “2008년 초 부산과 서울에 본인과 배우자 명의로 두 채의 주택을 소유하고 있었던 문 후보가 3주택자 양도세 중과세(60%)를 피하려 한 것”이라며 의혹을 제기했다. 2008년 4월 퇴직 공직자 재산공개 때도 이 집은 문 후보의 재산으로 신고 되지 않았다.
문 후보 측은 “2008년 1월 매도자가 보유하고 있던 양산 주택과 문 후보가 갖고 있던 부산 집을 맞바꾸고 차액을 지급하기로 계약한 뒤 2월 말 양산 집에 입주했다”며 “하지만 10년째 미등기 주택이었던 데다 매도자가 문 후보의 집을 인수하지 못하게 되면서 당초 계약이 어그러졌다”고 했다. 부산 집을 팔아 양산 집값을 치러야 하는 상황이 됐는데 집이 잘 팔리지 않아 2009년 1월에야 대금을 치르고 등기했다는 해명이었다.
문 후보는 자신의 책 ‘문재인의 운명’ 380쪽에서 다음과 같이 회고한다.
“세상과 거리를 두면서 조용하게 살고 싶었다. 스스로를 유배 보내는 심정이기도 했다. 그래서 시골에 살 곳을 찾았다. 경제적 사정도 있었다. 원래 저축해놓은 게 많지도 않았지만 청와대 있는 동안 다 까먹었다…그래서 고른 곳이 지금 살고 있는 양산 매곡이다. 헌집을 하나 샀다. 마당이 널찍해서 좋고 주변의 환경도 더할 나위 없이 좋다….”
퇴비창고 있는 ‘진짜 헌집’
이 ‘헌집’의 구입가격은 총 9억 원이었다. 평소 소탈하고 서민적이라는 문 후보 이미지와 ‘9억 헌집’은 맞지 않다는 얘기가 나왔다.
그런데 문 후보는 양산 매곡동 헌집을 사기 전인 1989년 5월에 346평(1141㎡)짜리 ‘진짜 헌집’과 논을 산 적이 있다. 부산 강서구 강동동 4716-6번지의 이 집은 대지 654㎡에 목조 슬레이트로 지은 주택(63.5㎡)과 블록 슬레이트로 지은 창고(70.8㎡), 퇴비사(25.9㎡) 3개 건물이 들어서 있다. 퇴비사는 가축 분뇨와 짚, 톱밥 등을 쌓아 썩혀서 거름으로 이용하기 위해 마련해둔 창고다. 그는 이 집을 사면서 집을 둘러싼 논 487㎡도 함께 샀다. 퇴비사까지 있는 집과 논. 문 후보는 고된 변호사 일을 그만두고 농부가 되려 했을까.
10월 8, 9일 부산 강서구청에서 차로 30분을 달려 도착한 이곳은 아스팔트 도로를 벗어나 차 한 대 다닐까 말까 한 흙길을 따라 200m는 들어가야 도착할 수 있었다. 문 후보의 책 내용처럼, 탁 트인 김해평야 한가운데서 세상과 거리를 두면서 조용하게 살기에는 안성맞춤이었다. 넓은 황금벌판 위로 김해공항에서 날아오르는 비행기가 오후의 감미로움을 더했다. 집과 논은 통합창원시, 김해시와 가까운, 낙동강 삼각주 서쪽 끝에 자리한다. 집을 중심으로 논이 ‘L’자 모양으로 둘러싸고 있다. 현재는 주택과 퇴비사가 있던 자리에 조립식 공장 건물이 들어섰고, 논이 있던 자리는 텃밭으로 바뀌었다. 대략 20m 간격으로 집과 조립식 공장 건물이 듬성듬성 눈에 띄었다.
문 후보는 자신의 책에서 “1988년 4월 노무현 전 대통령의 국회 입성으로 ‘일은 바빠졌지만 삶에서 가장 안정된 시기’”라고 회고한다. 그는 ‘안정된 시기’에 이 집과 논을 샀다. 1988년 6월에는 제주 북제주군 한경면 청수리 1844번지 임야도 샀다. 4485㎡의 임야를 자신을 포함해 4명이 샀는데, 지금도 1121.25㎡의 지분을 보유하고 있다.
부산의 인기 변호사가 김해와 가까운 강서구에서 논농사를 짓고, 가끔 제주도에 가서 조림을 했을 수는 있다. 상식적으로 보면 농사를 짓지 않는다면야 퇴비사까지 있는 집과 논을 살 리 만무하다. 그러나 기자의 이런 생각은 취재를 하면서 차츰 바뀌어갔다.
동의대 사건 변호 때 땅 매입
집과 논을 산 때는 문 후보가 ‘변호사하는 동안 맡은 형사사건 중 규모가 제일 큰 사건’이라고 한 부산 동의대 방화사건 변호에 진력하고 있을 때였다. 동의대 방화사건은 1989년 5월 3일 동의대생들이 도서관으로 진입하는 경찰을 저지하기 위해 던진 화염병이 대형화재로 번져 경찰관 7명이 숨지고 학생과 경찰 11명이 중상을 입은 사건이다.
“민변 변호사들에게 부탁해 공동 변호인단을 꾸렸고 사건을 분담했다. 그래도 사건 전체, 피고인 전체를 총괄하는 사람이 필요했다. 내가 그 역할을 맡지 않을 수 없었다. 동의대 사건은 8건으로 나눠 재판했지만 나는 전 재판에 다 참여했다. 매 건마다 하루 종일 재판을 하다시피 했다. 재판 준비가 힘들기도 했지만 재판하는 날이면 맡고 있는 다른 사건을 재판할 시간 여유가 없었다. 정말 고생 많이 했다.”(‘문재인의 운명’ 85쪽)
문 후보는 1989년 5월 22일 이 집과 논을 샀다. 부산 동의대 사건으로 바쁜 와중에 집과 논을 보러 다녔다는 얘기다. 대리인이 했을 수도 있다. 그러나 농사를 지으며 조용히 살기 위해 마련한 집은 아니었다.
주민들 사이에서는 이 집과 논은 ‘문재인 땅’으로 알려져 있었다. 문 후보가 산 땅과 가장 가까운 이웃집 할머니의 말이다.
“그 집과 논은 원래 손모 씨 것이었는데, 집을 팔고 김해로 갔어. 처음엔 외지 변호사가 (그 집과 논을) 샀다 하기에 그런가보다 했는데, 아 그 사람이 문재인이라고 하대. 동네 사람들도 ‘문재인 집, 논’이라고 불렀어. 한 노인이 그 집에서 농사를 지었는데 불이 나서 건물도 다 타버리고 그 노인도 화재로 죽었을 거야. 논을 돌보는 사람이 없어졌어. 그래서 이웃(사람들이)이 ‘문재인 땅’에서 배추나 파를 심고 부쳐 먹었다니까. 논이 제대로 관리가 되겠나? 나도 문재인 땅 옆에서 농사짓는데, 내가 못 봤는데 누가 봤겠노? 본 사람은 한 명도 없는 기라.”
2007년 7월 문 후보로부터 땅을 산 신모 씨의 말도 비슷했다. 그는 당시 경남 창원에서 볼트 너트를 만드는 공장을 운영했는데, 부지가 협소해 이곳으로 옮겨왔다고 말했다.
“처음 왔을 때 논은 관리가 안 돼 흙더미였고, 주민들이 채소를 키우고 있었다. 황량했다. 그나마 측량을 해서 논과 대지를 구분해냈다. 지금은 논이 있던 자리에 흙을 올려 텃밭으로 쓰고 있는데, 그것도 강서구청에서 몇 차례 나와 빨리 (토지대장의 지목과 맞게) 논으로 만들라고 해서 만들어놓은 거다.”
주민의 말을 종합해보면, 문 후보는 1989년 5월 이 논과 건물을 샀지만 재촌자경(在村自耕)하지 않고 대리경작이나 임대, 혹은 일정 보수를 주고 위탁경영을 한 것으로 보인다. 문 후보는 2003년 2월 대통령비서실장에 취임하면서 서울 종로구 평창동으로 주소지를 옮겼다. 관리할 수도 없었다.
현행 농지법은 농지 임대차는 땅 주인이 보호감호시설에 수용되거나 질병, 징집, 취학, 선거로 공직에 진출하는 등의 경우로 엄격히 규제하고 있다. 농지 소유 역시 농지를 상속받거나 이농(離農) 등으로 사유를 제한하고 있다. 정당한 사유 없이 농지를 농업경영에 이용하지 않았다고 구청장이 인정한 경우 1년 이내에 농지를 처분해야 한다. 주말·체험영농을 위해 1000㎡ 이하 농지를 도시인들의 ‘텃밭’으로 사용하도록 허가한 것도 2003년 이후다. ‘국가는 농지에 관하여 경자유전(耕者有田)의 원칙이 달성될 수 있도록 노력하여야 하며, 농지의 소작제도는 금지된다’는 헌법 121조 정신을 훼손하지 않기 위함이다.
그렇다면 문 후보는 어떻게 이 땅을 살 수 있었을까.
경자유전 원칙, 성실경작 위반
당시 농지개혁법 시행규칙에 따르면 직접 농지를 매매하고자 할 때는 농지매매증명원을 이·동장에게 확인한 뒤 읍면장에게 제출해야 하며, 농민이 아닌 자가 농지매매증명원을 제출하려면 가족 전부가 농지 소재지에 주민등록을 이전하고 실제 거주기간이 6개월 경과해야 했다. 문 후보는 당시 강서구와 인접한 사상구 당리동에 주민등록을 뒀다. 강서구청 관계자는 다음과 같이 설명한다.
“매매허가가 난 것을 보면 주민등록지가 인접한 사하구여서 ‘거주기간 규정’을 적용하지 않은 것 같다. 농지매매증명원을 보면 땅을 산 목적을 알 수 있는데 오래 전 일이라 확인할 방법이 없다. 경자유전의 헌법정신과 성실경작 의무에는 위반되지만, 1996년 시행된 농지법 이전에 산 농지여서 법을 소급적용해 제재할 수도 없다. 푯말을 세워놓지 않은 이상 대리경작자를 적발하기도 어렵다. 땅 주인이 스스로 농사를 잘 지어주길 바랄 뿐이다.”
주민은 문 후보가 땅을 산 1980년대 후반과 90년대 초는 부산시의 팽창과 개발붐, 농지임대차관리법 시행 등이 맞물리면서 많은 외지인이 강서구 일대 땅을 사던 시기라고 회고했다. 실제 1980년대 후반은 부산항을 대체할 항만이 본격 대두된 때였다. 컨테이너 차량의 도심 운행으로 교통난이 심화됐고, 도시 성장을 위한 광역개발 필요성이 날로 커질 때였다. 서부산권의 강서지역, 동부산권의 기장지역, 오늘날 ‘센텀지구’로 불리는 옛 수영비행장 주변이 광역 개발의 핵으로 떠오른 시절이었다. 동시에 1987년 대통령 직선제와 1988년 국회의원 총선 등을 거쳐 전국에서 지역개발을 요구하는 목소리가 터져 나오던 해였다. 그 결과 정부는 1989년 7월 부산항 광역개발 기본계획을 수립하면서 새로운 항만 건설 후보지로 가덕도를 선정한다. 신항이 생기면 배후부지가 조성되고 주변지역은 개발압력이 높아지기 마련. 공교롭게도 문 후보는 광역개발 계획 수립 2개월 전에 이 땅을 샀다.
이후 1994년 부산 강서지역에 자동차 공장을 세우기로 한 삼성이 강서구 가덕도 신항만 건설에 적극 나섰고, 1996년 7월 20일 항만기본계획이 고시되면서 가덕도 신항만 개발이 본 궤도에 오른다. 이 사업은 1995년 공사 시작 후 15년 만에 1단계 사업을 마무리하고 연간 600만TEU를 처리하는 현재의 부산 신항으로 자리 잡았다.
강동동우체국 앞에서 만난 한 주민은 다음과 같이 설명했다.
“개발 바람으로 당시에는 투기꾼 등 땅을 보러 오는 사람이 꽤 많았다. 주로 있는 사람들은 강서구를 ‘묻어두고 기다리는’ 장기투자처로 인식했다. (문 후보의 땅이 있던) 강동동은 신항 배후단지로 물류단지와 인근 뉴타운 개발, 그린벨트 해제 등 부동산 호재도 많았다. 신항 사업은 때에 따라 지지부진했어도 강동동 땅값은 꾸준히 올랐다. 김해평야 일대 농지 중에는 그때 들어온 외지 사람들이 임대하는 경우가 많다. 임대도 불법인 경우가 많은데, 확인도 안 된다. 구청은 신고가 접수되면 확인하는 정도지 찾아서 일일이 확인하지도, 할 수도 없다.”
땅 판 2007년 54.7% 급등
부산 신항 개발로 문 후보의 땅이 있던 강서구 강동동은 1188만5000㎡(360만평) 규모의 국제산업물류도시(에코델타시티)로 개발된다. 2008년 12월에 국제산업물류도시 2단계 지역으로 고시됐다. 동시에 개발행위 허가 제한 지역으로 고시돼 2013년 12월까지 개발행위가 제한된다.
문 후보는 개발행위가 제한되기 전인 2007년 7월에 2억1700만 원을 받고 땅을 판다. 대지 654㎡는 1억8000만 원에, 논(487㎡)은 3700만 원에 팔았다. 대지는 평당 91만 원(㎡당 27만5230원), 논은 평당 22만8000원(㎡당 7만6000원)이었다.
이 지역 공인중개사의 말이다.
“2007년 7월 팔았으면 (땅 값이) 제일 좋을 때 판 거다. 강동동 일대는 2008년 초까지가 ‘피크’였다. 그때는 평당 30만~35만 원까지 올랐지만 2008년 말 개발행위제한지역이 되면서 뚝 떨어졌다. 매매 자체가 없으니 값도 없다. 땅을 수용할 때 공시지가의 1.4~1.5배로 보상한다고 하지만, 한창 시세 좋았을 때인 2006, 2007년에 땅을 산 사람들은 산 값도 제대로 못 받을 거다. (개발행위가) 묶인 곳이 됐으니 어쩔 수 있나.”
또 다른 공인중개사의 설명도 비슷했다. 그는 기자의 질문이 순진하다는 듯 걸쭉한 부산 사투리로 혀를 찼다.
“보소, 기자 양반. ‘문변’이 퇴비사 있는 집과 논을 왜 샀겠능교? 변호사 하는 사람이 여기 농지를 일터로 보고 샀겠능교? 농사지을라고? 뻔하지, 투기지. 좋게 말해 투자, 재테크고. 2007년, 2008년 초에 팔고 나간 꾼이 얼마나 많았는데.”
그의 말처럼 2007년은 강서구 토지 가격이 가파르게 오를 때였다. 2008년 9월 22일자 ‘부산일보’를 보자.
“2007년 강서지역 토지거래 규모와 가격은 1444필지 246만5000㎡(약 74만6000평), 5849억 원으로 전년 대비 거래가격은 36.1% 급등한 것으로 나타났다. 3.3㎡(1평)당 평균 거래가격은 2006년 50만6000원에서 2007년 78만3000원으로 무려 54.7% 급등했다.”
2008년 1월 1일 공시지가는 대지 19만 원, 논 4만6500원. 1990년 1월 1일 개별공시지가는 대지 9만5000원, 논 1만5000원. 공시지가로는 대지는 2배, 논은 3.1배 올랐다
문 후보의 땅을 산 신 씨는 ‘억울하다’는 반응이다.
“이 땅은 김해공항과도 꽤 떨어져 있어 개발행위제한구역이 될지는 생각도 못했다. 땅을 사고 다음해에 개발제한구역이 돼 건물 하나 못 짓게 하더라. 근 10년 간 재산권도 행사할 수 없게 됐다. 이렇게 묶일 줄 알았다면 사지도 않았다. (개발제한구역 지정을) 몰랐던 사람들만 당한 거 같다.”
2007년 문 후보 땅을 사들일 때 문 후보 변호사 사무실 관계자가 대리인으로 와 매매계약을 체결했고, 문 후보 지인이라는 공인중개사가 매매를 도왔다고 설명했다.
결국 문 후보는 신항 개발 계획 수립 직전에 땅을 산 뒤 임대하거나 방치하다가 개발행위제한구역으로 묶이기 전, 땅 값이 좋을 때 판 것이다.
또 하나. 문 후보는 공직자 재산공개를 하면서 강동동 땅의 면적을 줄이거나 수년 전 기준시가를 적용해 현재가액을 신고하는, 일종의 ‘다운 신고서’를 작성했다. 공직자윤리법에는 등록의무자는 매년 1월 1일부터 12월 31일까지의 재산 변동사항을 다음해 2월 말까지 등록기관에 신고(전년 12월 31일 기준)해야 한다. 퇴직 공직자는 퇴직 1개월 이내에 그해 1월 1일부터 퇴직일까지 재산 변동사항을 신고해야 한다. 이때 토지는 공시지가를 기준으로 산정한 금액이나 실거래금액을 기재해야 한다. 2006년 개정 공직자윤리법에 따른 것이다.
문 후보는 2003년 민정수석비서관이 되면서 공직자 재산등록의무자가 됐다. 2003년 그는 부산 강동동 대지(654㎡)를 8959만8000원이라고 최초 신고했다. 공직자 재산등록일 기준 공시지가(2003년 1월 1일 기준시가 ㎡당 13만7000원)로 신고한 것. 그러나 이 신고액은 2006년 5월 청와대 민정수석을 사퇴한 뒤 신고에서도, 2007년 3월 대통령비서실장으로 복귀한 직후 신고에서도 같았다. 그동안 공시지가가 변동이 없어 종전가와 같다는 얘기다.
공직자 재산 ‘다운 신고’
문 후보 대지의 공시지가는 13만7000원(2003년)→16만1000원(2005년)→17만1000원(2006년)→19만 원(2008년)으로 꾸준히 올랐다. 이에 따라 2006년 신고에서는 대지만 1억529만4000원(16만1000원×654), 2007년에는 1억1183만4000원(17만1000×654)을 신고해야 했다. 문 후보는 2006년도 재산신고에서 1569만6000원, 2007년도 재산신고에서 2223만6000원 낮게 신고했다. 논도 마찬가지. 2007년 3월 비서실장 복귀 후 문 후보는 자신의 논 중 4716-9번지 479㎡를 1437만 원(㎡당 3만 원)으로 신고했지만, 복귀일 기준으로 하면 2007년 1월 1일 기준 개별공시지가(4만3000원)를 적용해야 한다. 이 경우 2431만여 원이 된다. 994만 원 적게 신고한 것이다.
제주 한경면 청수리 1884번지 임야(4485㎡ 중 1121.25㎡)도 2006년 정기 재산 변동 신고 때는 291만5000원(㎡당 2600원, 2002년 공시지가)으로 신고했다. 문 후보가 2003년 청와대 입성 직후 신고한 금액과 같다. 그러나 실제 2005년 공시지가는 당시보다 ㎡당 1900원 오른 4500원이었다. 이를 기준으로 하면 이 임야는 약 504만 원이 된다. 2007년도, 2008년도 공개 내역에는 1121.25㎡ 중 280㎡(151만2000원)가 자신의 소유라고 축소 신고했다. 공직자윤리법을 위반한 것이다. 그러나 2012년 4·11 총선에서 당선된 뒤 한 신고에서는 627만9000원(공시지가 5600원 적용)으로 정확히 신고했다.
흥미로운 점은 문 후보는 2003년 공직자 재산공개를 하면서 대지는 강동동 4716-6,7,16번지 654㎡로, 논은 4716-8,9,18, 4717-18번지 487㎡라고 신고했다. 그러나 2006년 신고에서는 대지는 4716-6번지(654㎡), 논은 4716-8번지(487㎡)라고 신고했다가 2007년에는 대지를 ‘창고’라고 신고했다. 대지(4716-7번지 161㎡)와 창고(493㎡)로 나눠 신고했지만, 건축물대장에는 창고가 없다. 논 역시 4716-9번지(479㎡)와 4716-8번지(8㎡)로 나눠 신고했지만, 실제 지번은 4716-9번지는 234㎡, 4716-8번지 7㎡, 4717-18번지 1㎡로 나뉘어 있다. 지번이 바뀐 적은 없는데 신고 지번과 면적은 제각각이다. 문 후보로부터 땅을 산 매수자가 3필지의 논을 4716-8번지로 합병했다.
대지 지번은 4716-6번지(493㎡)와 4716-7번지(152㎡)로 구분돼 있었다. 이 경우 문 후보가 신고한 대지보다 9㎡ 줄어든다. 이 9㎡의 대지(옛 4716-16번지)는 이미 1982년 11월 23일 구획정리로 폐쇄된 상태였다. 이 땅은 문 후보에게서 땅을 산 매수자가 측량 후 구청에 신고하면서 등기폐쇄됐다.
강서구청 지적과 관계자는 “이미 경지 정리로 구획정리되면서 폐쇄되었는데 등기부에 남아 있으니 전 주인(문 후보)은 몰랐던 거 같다. 등기가 돼 있으니 재산세가 부과돼 존재하는 것으로 알 수도 있다. 새 구매자가 확인해 신고한 것 같다”고 설명했다.
이에 대해 강서구의 공인중개사들은 “주인이 같으면 자투리땅은 합병하는 게 편한데 그대로 둔 걸 보면 신경 쓰지 않았기 때문”이라고 입을 모았다.
정부공직자윤리위원회는 부동산을 신고할 때 토지대장, 건물대장 및 토지등기부등본, 건물등기부등본 등을 확인해 신고하도록 하고 있다. 결국 문 후보의 공직자 재산신고 내역은 허위 기재, 불성실 신고가 된다.
공직자윤리위원회 관계자는 “재산을 거짓·잘못 기재하는 등의 사실이 인정되면 과태료 부과부터 해임 징계 의결요청까지 할 수 있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