때를 기다릴 줄 알아야 기회를 잡는다
‘가만두면 돌아올 것’이란 어머니의 믿음
[+영상] 꽃중년 트로트아이돌 김용필 “쉼 그리고 한 발 한 발 때를 기다려라”
지천명을 바라보는 나이에 직업을 바꾼 꽃중년 신사가 있다. ‘낭만가객’이라는 애칭으로 유명한 트로트 가수 김용필(48)이다. 그의 전직은 프리랜서 아나운서로 여러 방송국에서 능력을 인정받아 일이 끊이지 않았다. 그러던 그가 경연 프로그램 ‘미스터트롯2’에 출연하리라고는 누구도 예상치 못했다. 심지어 그 자신도 가수를 꿈꾼 적이 없었다.
아나운서를 천직으로 여기고 30년 동안 외길을 가던 그를 ‘한눈’ 팔 게 한 것은 전 세계를 강타한 코로나19 팬데믹이다.
‘낭만가객’으로 불리는 아나운서 출신 트로트 가수 김용필 씨가 유튜브 채널 매거진동아의 ‘김지영의 트롯토피아’에 게스트로 출연해 인생 경험을 진솔하게 풀어냈다. [박해윤 기자]
코로나 사태가 전업의 계기
“코로나 사태가 길어지면서 이 일을 계속할 수 있을까 하는 위기감을 느꼈어요. 이전에는 일을 쉴 때를 휴가로 여기며 느긋하게 그 시간을 즐겼죠.”김용필은 조급해진 마음을 차마 가족에게 내보일 수 없어 보컬학원에서 노래를 배우기 시작했다. 처음엔 취미로만 여겼는데 나날이 발전하는 자신을 확인하며 ‘미스터트롯2’를 새로운 도전의 발판으로 삼았다. 심사를 거쳐 방송 출연이 확정된 후 가족에게 사실을 알렸다. 반응은 시큰둥했다.
“부모님도, 아내도 너무 갑작스러워 황당했을 거예요.”
첫 테스트 무대에서부터 그의 등장은 예사롭지 않았다. 서글서글한 인상에 키 186cm에 이르는 훤칠한 그가 슈트 차림으로 최백호의 ‘낭만에 대하여’를 부르는 모습은 짧지만 강렬한 여운을 남겼다.
이때부터 그는 ‘낭만싱어’ ‘낭만가객’ ‘48년산 위스키 보이스’ ‘트롯잰틀맨’ 같은 애칭으로 불렸다. 한때 우승 후보로 거론될 만큼 폭발적 인기를 누렸다. 중년의 나이에 과감한 도전에 나선 그의 용기에 힘을 얻었다는 이들이 피켓을 들고 그를 따라다니며 응원했다. 그의 팬카페 ‘용feel하모니’ 회원도 날로 늘어났다.
“힘들 때 노래를 부르며 큰 위안을 얻었어요. 그 에너지가 팬들에게도 전해진 것일까요. 제 노래를 듣고 살아갈 희망과 용기가 생겼다는 분들이 많아졌죠. ‘내가 정말 잘해야겠구나. 잘 살아야겠구나’ 하는 책임감을 느낍니다.”
끊임없는 도전의 연속
그의 인생은 끊임없는 도전의 연속이었다. 어릴 때부터 자동차를 좋아해 높은 경쟁률을 뚫고 국민대 자동차공학과에 진학했지만 졸업 후 그는 아나운서 시험에 도전한다. 대학 시절 동아리 활동과 아르바이트를 하며 방송에 자연스럽게 관심이 생겨 새로운 꿈을 꾸게 된 것이다. 1학년 때부터 아나운서 시험을 준비한 이들과 출발이 같을 순 없었다. 몇 번의 낙방 끝에 꿈을 이룬 그는 일찌감치 프리랜스 아나운서로 활동하며 입지를 다졌다.“방송 작가는 비정규직이어서 프로그램이 끝나면 다른 데로 가요. PD도 그런 경우가 많고요. 그러다 보니 아나운서로 일하면서 작가와 피디를 수천 명은 만난 것 같아요. 그들이 다른 프로그램을 하면서 저를 추천해 일거리가 줄지 않고 계속 늘었죠. 한때는 5개 프로그램을 진행했을 정도로요.”
많은 프로그램에서 러브콜을 받은 것은 단순히 인맥의 힘만은 아니다. 평소 그가 보여준 근면성실함과 두터운 책임감, 아나운서로서의 뛰어난 역량에 인간적 매력까지 더해졌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요즘은 무한 경쟁시대라서 평생직장 개념이 희미해졌어요. 저 같은 프리랜서는 열심히 해서 능력을 인정받으면 오히려 직장인보다 더 안정적으로 일반적 정년을 넘어서까지 일할 수 있어요. 한번 인연을 맺은 작가나 PD가 다시 찾을 때마다 이런 다짐을 했어요. ‘어디서든 찾는 사람이 되도록 늘 준비하고 있어야 한다. 그리고 인연을 소중히 여기자’고요.”
최근 싱글 앨범 ‘낭만연가’를 내고 활발한 방송 활동을 펼치는 그에게 넌지시 물었다. 본인의 재능을 살려 KBS 장수프로그램 ‘전국노래자랑’ MC에 도전해볼 생각은 없느냐고. 그는 질문이 끝나기가 무섭게 손사래를 쳤다.
“그런 국민 프로그램을 맡기엔 제가 아직 많이 부족해요. 하고 싶다고 할 수 있는 것도 아니고요. 기회가 온다면 심사숙고해보겠지만 욕심난다고 성큼 받진 않을 것 같아요. 지금은 제 실력과 경험을 좀 더 탄탄하게 키우며 때를 기다려야 하는 시기죠. 한 발 한 발 나아가며 때를 기다릴 줄 알아야 기회가 와도 놓치지 않는다는 것을 인생을 통해 배웠습니다.”
마음을 다잡아준 어머니의 한 마디
그는 외모에서 풍기는 이미지도, 말투나 행동거지도 ‘일탈’과 거리가 멀어 보인다. 살면서 일탈을 해본 적이 있는지 묻자 “고등학교 3학년 때 대입 시험을 100일 앞두고 친구들과 100일주를 마신 것이 나름의 일탈이었다”고 고백했다. 심적으로 힘들 때 마음을 다잡아주는 인생의 나침반 같은 좌우명이 있는지 묻자 어머니의 한마디를 떠올렸다.“어머니가 어디 가서 제 사주를 봤는데 ‘가만히 두면 다시 제자리로 올 것이니 하고 싶은 대로 하도록 가만 놔두라’고 했대요. 정말 사주가 그런 건지, 제가 옆길로 새지 않게 하려고 어머니가 지어낸 말인지 모르겠어요. 확실한 것은 어릴 때 그 얘기를 듣고 나서는 어떤 상황이 닥치든 ‘제자리로 돌아와야 한다’는 생각이 들어 궤도를 벗어나는 그릇된 언행을 하지 않았어요. 그래서 저도 제 아이들에게 어떤 한 마디를 해줄지 고민하고 있습니다(웃음).”
그는 남보다 출발이 늦었지만 조급해하지 않고 현재 주어진 일에 최선을 다한다. ‘미스터트롯2’ 에서 최종 14위를 차지한 것이 아쉬울 법도 한데 “많은 이들에게 사랑받으며 즐겁게 노래할 수 있는 것만으로도 감사하다”고 말한다.
“항상 노력하는 가수, 잘하는 가수, 깊이를 더해가는 가수가 되고자 합니다. 그래서 10집 앨범을 내고 매년 콘서트를 하는 것이 목표입니다.”
[+영상] 트로트 젠틀맨 김용필의 인생 강좌 “어디서든 찾는 사람이 되라”
김지영 기자
kjy@donga.com
방송, 영화, 연극, 뮤지컬 등 대중문화를 좋아하며 인물 인터뷰(INTER+VIEW)를 즐깁니다. 요즘은 팬덤 문화와 부동산, 유통 분야에도 특별한 관심을 갖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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