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앞선 기술 가지고도 디지털 시장 거부

코닥의 몰락

  • 김선우│동아비즈니스리뷰 기자 sublime@donga.com

앞선 기술 가지고도 디지털 시장 거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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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닥은 2001년에 ofoto라는 사진 공유 사이트를 인수했다. 온라인에 기반을 둔 사업을 위해서였다. 하지만 이를 사진 공유 사이트로 키우기보다는 단순히 소비자가 사진 인화를 주문하는 사이트로 활용하는 데 그쳤다. 만약에 코닥이 미래를 내다보고 이 사이트를 플리커(Flickr)와 같은 사진 공유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로 키웠다면 얘기가 달라졌을 것이다.

코닥이 사진 공유가 지금처럼 최고의 유행이 될 것을 예견하지 않은 것은 아니다. 2005년에 코닥은 세계 최초의 Wi-Fi 기능이 있는 디지털카메라를 출시했다. 당시로는 혁신적인 제품이었다. 소비자들이 찍은 사진을 e메일로 전송하거나 인터넷에 올려 공유하려는 성향을 파악한 것이다. 그러나 이 카메라가 잘 팔리지 않자 사업을 재빨리 접어버렸다.

계속되는 전략의 실패

2000년대 들어 현 CEO인 안토니오 페레즈를 HP에서 영입한 코닥은 2007년에 잉크젯 프린터 사업을 주력으로 키우겠다고 선언했다. 그러나 일반적인 잉크젯 프린터 사업과는 다른 사업 모델을 들고 나왔다. HP 등 대부분의 프린터 업체들은 프린터를 싸게 파는 대신 잉크를 비싸게 팔아 이윤을 남기는 데 반해 코닥은 소비자의 높은 잉크 가격에 대한 불만을 포착해 프린터의 가격을 올리는 대신 잉크를 절반 가격에 팔겠다고 발표했다. 예전 코닥의 사업 모델이었던 카메라를 싸게 팔고 대신 필름을 비싸게 파는 것과도 상반된 이 전략도 결국은 실패로 돌아갔다. 소비자는 초기에 프린터를 살 때의 가격에 집착하지 프린터를 소유하는 동안 들어가는 총비용인 총소유비용(Total Cost of Ownership)은 잘 따지지 않았다. 시장조사업체 IDC에 따르면 코닥의 프린터 세계 시장점유율은 2011년 1∼9월 2.6%에 지나지 않는다. 코닥은 중국 등 신흥시장에서 필름의 수요가 계속 있을 것이라고 예상했지만 신흥시장도 급속도로 디지털로 바뀌는 바람에 예상은 빗나갔다. 또 거의 모든 휴대전화에 카메라 기능이 부가되면서 어렵게 디지털카메라 시장에 안착한 코닥은 다시 한 번 고배를 마셔야 했다.

코닥의 지난해 매출은 약 62억 달러로 예상된다. 지난해 3분기에는 2억2200만 달러 적자를 냈다. 1988년 전 세계적으로 14만5000명을 고용했던 코닥의 종업원 수는 1만4000여 명 수준으로 줄었다. 전 세계를 호령했던 20여 년 전의 10분의 1 수준이다. 코닥의 창업자인 이스트먼의 75세 생일을 맞아 ‘뉴욕타임스’는 사설에서 “사진이나 영화 필름을 통해 즐거움을 얻은 사람이 필름을 처음 만든 사람에게 감사의 뜻을 표한다면 그 인사를 가장 많이 받게 될 사람은 75번째 생일을 맞은 조지 이스트먼일 것이다”고 썼다. 그만큼 코닥은 이미 1930년대에 최고의 기업이었던 것이다. 척추협착증으로 고통스럽게 투병 중이던 이스트먼은 이로부터 2년 뒤인 1932년 77세의 나이로 자살했다. 그는 다음과 같은 유서를 남겼다. “친구들에게. 내가 할 일은 모두 끝났다. 무엇을 더 기다리겠는가(To my friends. My work is done. Why wait?).” 어쩌면 코닥의 할 일은 아날로그 시대에 다 끝났는지도 모른다. 코닥은 오랜 자구 노력 뒤 더 기다리지 않고 결국 파산보호신청을 했다.



경쟁사 후지필름은 달랐다

앙숙이었던 코닥과 후지는 코닥이 파산보호를 신청한 후 더욱 비교되곤 한다.

● 각각 미국과 일본이라는 거대한 시장을 독점하고 있던 코닥과 후지는 1984년 LA올림픽 때부터 악연이 시작됐다. 코닥이 머뭇거리는 동안 후지가 LA올림픽의 스폰서십을 따냈다. 코닥은 홈구장에서 열리는 올림픽의 스폰서십을 후지에 내줬으니 이는 ‘진주만 공습’에 비견되는 일이었다.

● LA올림픽 때 미국 내 인지도를 쌓은 후지는 값싼 필름으로 미국 시장 공략에 나선다. 후지의 공세에 코닥도 ‘펀타임’이라는 저가의 필름을 내놓지만 이는 고가였던 코닥의 기존 필름 라인 판매를 줄이는 결과를 가져왔다. 후지를 겨냥한 제품이 자사의 고가 제품 시장을 갉아먹은 것이다.

● 반면 일본 시장에서 고전한 코닥은 비관세장벽 탓이라며 1995년 후지를 미국 정부에 통상법 위반으로 제소했다. 미일 간에 ‘필름무역 마찰’까지 촉발됐다.

● 디지털 시대를 대비한 행보에서는 후지가 한발 빨랐다. 후지는 1980년대에 이미 필름 산업에서 최대한 수익을 내면서 디지털 시대에 대비하고 신사업에 진출한다는 전략을 세웠다.

● 후지는 디지털뿐만 아니라 의료, 화장품, 검사장비, 복사기, LCD 패널 소재 등으로 사업을 다각화했다. 매출 규모가 크지 않은 디지털 이미지 사업만으로는 큰 기업을 살릴 수 없다는 판단에 따른 것이었다. 필름이 후지의 매출에서 차지하는 비율은 1%도 되지 않는다.

● 2000년 취임한 고모리 시게타카(古森重隆) 사장은 2004년 ‘제2의 창업’을 선언하며 사진 부문을 중심으로 5000여 명의 감원을 단행하고 90억 달러를 투자해 40개 사를 인수합병했다.

● 후지의 시가총액은 126억 달러에 달한다.


신동아 2012년 3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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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선우│동아비즈니스리뷰 기자 sublime@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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