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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록 차밭, 고즈넉한 포구, 그윽한 風磬소리… 봄날은 무르익고

세상사에 지친 마음 다독이는 생명력의 발원지, 전남 보성·강진

  • 글: 김진수 기자 사진: 김성남 기자

초록 차밭, 고즈넉한 포구, 그윽한 風磬소리… 봄날은 무르익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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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원 입구 옆에 사열대의 장병처럼 늘어선 삼나무들도 볼거리. 20m를 훌쩍 넘는 큰 키를 자랑하는 이 삼나무숲은 여름이면 독특한 향을 뿜어내며 그늘을 이뤄 사람들로 북새통을 이룬다는 게 현지인의 귀띔이다.

보성의 석양을 만끽하려면 ‘봇재다원’ 꼭대기에 있는 팔각정 ‘다향각(茶鄕閣)’(녹차시음장도 갖췄다)에 올라도 좋지만, 보성군 남단의 율포항을 찾으면 더 좋다. 나지막한 단층 반양옥들이 촘촘히 들어선 골목길을 200m쯤 걸으면 이내 바닷가. “찢어진 방충망 고친다”는 트럭 확성기 소음과 파도소리만 빼면 포구는 조용하기 그지없다. 아담한 갯벌에 닻을 박은 10여 척의 소형 어선과 바지락 캐는 아낙네가 풍광의 전부지만, 이곳 해수녹차탕엔 손님이 끊이지 않는다.

이곳저곳 헤집고 다녀선지 허기가 몰려온다. 보성의 대표적인 먹을거리는 녹돈(綠豚). 아무리 다향이라지만 돼지까지 녹차를 장복할 줄이야…. 보성읍내 ‘녹차골식당.’ 한우를 취급하는데도 손님의 70∼80%가 녹돈을 찾는다. 주인 안두섭(46)씨는 “진짜 고기 좋소이∼”하며 ‘모듬’을 권한다. 안심에서 추려낸 가브리살과 목살, 삼겹살, 항정살 등 4가지 부위를 고루 맛보는 세트 메뉴다. 몇 점 씹어보니 일반 돼지고기보다 느끼한 맛이 훨씬 덜하고 더 쫄깃하다. 누린내도 없다. 녹차 찌꺼기를 사료에 섞어 먹이면 지방을 분해하는 녹차성분 때문에 비계가 줄어든다고 한다.



‘서편제의 성지’인 보성에서 판소리 한 가락 아니 들을 수 없다. 이튿날, 서편제 보성소리전수관에서 만난 (사)한국판소리보존협회 보성군지회 장장수(67) 회장은 “국내 국창급 대다수가 보성을 거쳐갔다”며 “현재 회원 60여 명이 서편제의 맥을 잇고 있지만, 평균 연령이 70세 이상”이라고 전한다. 곁에 앉은 기자에게 전종근(76) 옹이 “내 소리 좀 들어보라”며 연신 실력을 뽐내는 것도 젊은층에 외면당하는 판소리의 안쓰러운 운명과 무관치 않은 듯했다.

‘미력옹기’도 지나칠 수 없는 곳. 보성에 대규모 옹기도요지가 없는 데도 300년간 9대를 이어온 가업 덕에 전국적으로 알려졌다. 그릇 자체가 숨쉬고 정화·방부기능을 갖는, 옹기의 3대 기능을 모두 갖춘 게 이곳 옹기의 자랑. 인간문화재로서 작고한 부친과 숙부를 이어 수작업을 고집하며 묵묵히 ‘민중의 그릇’을 빚는 대표 이학수(48)씨가 미덥다.

모처럼의 봄나들이인 만큼 보성만으론 미진하다. 불감증 환자마냥 강진으로 차를 몬다. 2번 국도를 타고 장흥을 거쳐 40분간 내달리면 바로 강진. 영랑(永郞) 때문일까. 왠지 질박한 산문조로 와닿는 보성과 달리 강진의 첫인상은 시심이 절로 우러날 만큼 시적(詩的)이다.

강진군청에서 150m 떨어진 영랑 생가는 ‘모란의 시인’으로 불리는 영랑 김윤식 선생(1903∼50)의 예술혼이 한껏 깃든 곳. 장독 열던 누이가 단풍 든 감나무잎이 떨어져내리는 걸 보고 “오매 단풍 들겄네”라 속삭였다던 1930년의 어느 날을 상상만 해도 정겹다.

23번 국도를 타고 마량항으로 향한다. 강진군 최남단의 마량항은 7∼8월이면 낚시꾼들로 성황을 이루는 곳. 가는 길 중간쯤의 갯벌에서 6명의 할머니가 꼬막을 캐고 있다. “많이 잡았냐구? 별로 없소이∼, 오염 때문에. 한 20∼30년씩 겁나게 (조개잡이) 했소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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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김진수 기자 사진: 김성남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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