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9년 3월호

슈트의 멋을 살리는 Dress shirts

  • 남훈│‘란스미어’ 브랜드매니저 alann@naver.com│

    입력2009-03-09 11:0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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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큰맘 먹고 장만한 슈트를 입고도 뭔가 어색하다면, 셔츠를 구입할 때 브랜드네임이나 점잖은 디자인만으로는 확신이 안 섰다면, 이유는 간단하다. 셔츠를 재킷이나 구두 같은 별도 품목으로 간주하고 다양한 색상과 패턴을 확보하는 데만 신경 썼기 때문이다. 품격 있는 복식의 기본이자 완성이랄 수 있는 셔츠의 위력을 인정하는 순간 당신의 차림도 인정받을 것이다.
    슈트의 멋을 살리는 Dress shirts
    자신만의 패션이나 스타일링에 신경 쓰는 사람들이 관심 갖는 품목에는 순서라는 게 있다. 옷차림은 한 가지 품목의 독보적인 강조가 아니라 여러 아이템의 자연스러운 결합이라고 앞서 밝혔으나, 그렇다고 모든 품목에 동등한 애정으로 접근하기에는 경제적으로 무리가 따른다. 여성은 옷과 핸드백에 신경을 많이 쓰고, 어느 정도 필요한 것을 갖추면 구두와 보석류에 눈을 돌리는 게 일반적이다.

    반면 남성은 전체적인 인상에 가장 크게 기여하는(동시에 투자 금액도 확실히 큰) 슈트나 재킷과 같은 기본 품목에 먼저 신경을 쓴다. 전 지구적인 불경기의 흐름은 대한민국 남성에게 자신만의 개성을 담은 셔츠나 슈트에 어울리는 구두, 혹은 셔츠 소매 끝으로 존재감을 발산하는 시계, 품질 좋은 가죽으로 만든 서류 가방에 대한 관심을 쉬 허락하지 않는다. 그래서 자신만의 스타일에 관심이 좀 있다는 사람들조차 아직 어떤 셔츠가 좋은 셔츠인지에 대해선 묻지 않는다. 슈트나 재킷 속에서 든든한 원군처럼 몸을 감싸는 것이 셔츠임에도 말이다. 비록 성장을 한 남자의, 브이존(V-zone)이라 일컫는 얼굴 아래 가슴 부분과 소매 끝 정도를 통해 드러날 뿐이지만, 제대로 입은 셔츠는 그가 겉으로 드러나는 모습뿐 아니라 보이지 않는 부분까지 마음을 쓰는 젠틀맨임을 보여주는 강력한 증거다. 반대로 말하면 목둘레가 커서 빙빙 돌아가는 셔츠를 입고 멋들어진 정장 차림을 꿈꾸는 건, 더하기 빼기도 제대로 못하면서 미적분을 잘하고 싶어하는 것처럼 허황된 일이 다.

    와이셔츠, 화이트셔츠, 드레스셔츠

    일본 남성의 복식 수준은 어느 면에서는 유럽보다 뛰어나다고 인정받는다. 일본이 남성 패션 발전을 위해 기여한 바가 크지만, 우리나라로만 보면 부정적인 영향을 받은 것도 사실이다. 이를테면 패션 아이템의 명칭이나 의류 제작 관련 용어 중 와이셔츠나 와기, 카브라 등 일본식 용어가 오용되는 경우가 흔하다. 와이셔츠는 영어의 ‘화이트셔츠(white shirts)’를 일본 사람들이 잘못 발음한 데서 비롯됐는데, 정확하게는 드레스셔츠(dress shirts)이며, 짧게 ‘셔츠’라고 해도 상관없다.

    셔츠의 역사는 로마시대로 거슬러 올라가지만, 현대적인 남성복의 근간이라고 할 클래식 슈트나 재킷을 입는 경우라면 셔츠는 겉옷 안에 입는 속옷으로 보는 게 적당하다. 인체와 겉옷을 연결하는 속옷으로 사람의 몸에 직접 닿기 때문에, 셔츠는 천연 소재, 즉 100% 순면으로 만든다. 유럽의 품격 있는 레스토랑에서는 함부로 상의를 벗지 않는 게 에티켓이다. 이는 슈트와 셔츠는 반드시 함께한다는 복식사와 연관이 깊고, 셔츠만 입는 건 속옷을 타인에게 드러내 보이는 것과 마찬가지라는 인식 때문이다.



    정장의 역사를 잘 배워온 유럽 남성들은 드레스셔츠 안에 러닝셔츠 같은 별도의 속옷을 입지 않았다. 반면 실용적 경향이 강한 미국 남성들은 지금도 드레스셔츠 안에 러닝셔츠를 고집하고, 대다수의 한국 남성도 그 영향을 받아 러닝셔츠 없이는 맨몸을 노출하는 것처럼 어색해한다. 그동안 셔츠 안에 러닝셔츠를 입어온 남성이 어느 날 갑자기 셔츠만 입기는 쉽지 않을 것이다. 그럴 때는 일주일에 나흘은 기존에 입던 대로 입고, 하루 정도는 러닝셔츠 없이 드레스셔츠만 입어보기를 권한다. 그러다 익숙해지면 러닝셔츠와 이별하기가 수월할 것이다. 드레스셔츠 안에 러닝셔츠를 입는 건 속옷을 두 벌 겹쳐 있는 것과 같다. 더욱이 러닝셔츠란 말 그대로 스포츠용이기에 정장 차림과는 어울리지 않는다.

    좋은 셔츠를 고르는 안목

    좋은 셔츠를 찾는 남자라면 분명 고급스러운 슈트와 재킷을 옷장 안에 확보하고 있을 것이다. 슈트 안에서 속옷 기능을 하는 좋은 셔츠는 겉으로 드러나는 전체적인 실루엣을 다듬어주기에, 클래식 슈트를 입는 사람은 반드시 최고의 셔츠를 찾게 마련이다. 그러나 인상적인 패턴의 비싼 셔츠를 다양한 색상으로 사 모은다고 옷장의 구색이 제대로 갖춰지는 것은 아니다. 셔츠 선택에도 지식이 필요하다.

    좋은 셔츠를 구하려면 먼저 셔츠만 전문적으로 만들어내는 브랜드인지를 따져봐야 한다. 세계적으로 널리 알려진 브랜드이거나 슈트와 셔츠, 구두까지 통합적으로 취급하는 브랜드라고 해서 모두 최고의 셔츠를 제공하는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이탈리아가 아무리 패션 선진국이라고 하더라도 유명 브랜드조차 셔츠를 자체 제작하지 않고 셔츠 공장이나 셔츠 전문 브랜드에서 OEM 방식으로 공급받은 다음, 자신들의 높은 브랜드네임을 붙여 고가(高價)에 파는 경우가 많다.

    슈트의 멋을 살리는 Dress shirts

    셔츠를 고를 땐 얼굴형에 맞는 모양과 각도의 칼라를 선택하는 게 중요하다. 또한 슈트나 재킷의 소매 끝에 셔츠가 어느 정도 보여야 한다.

    그 다음으로는 셔츠를 구성하는 핵심 요소인 소재와 칼라(collar, 깃), 사이즈 이 세 가지를 꼼꼼하게 살펴야 한다. 우선 인체와 직접 맞닿는 드레스셔츠의 품질은 소재의 부드러움이 결정하는데, 고급 셔츠일수록 반드시 조직이 치밀하고 광택이 은은한 100% 순면을 사용한다. 순면으로 제작된 드레스셔츠의 칼라는 사람의 얼굴을 받쳐주는 기능을 하기 때문에 칼라의 너비나 크기가 전체적인 인상을 좌우한다. 목에서 느껴지는 착용감 또한 중요한 고려 대상이다. 특히 유럽에서 탄생한 최초의 드레스셔츠는 양쪽 깃의 각도가 120~160° 벌어진 와이드스프레드(Wide Spread) 스타일이었기 때문에, 지금도 오리지널을 존중하는 유럽인이나 일본 남성은 각도가 큰 셔츠를 편애한다. 칼라 포인트의 각도가 클수록 남자의 전체적인 룩은 품위 있고 클래식하게 보일 것이다. 물론 어떤 종류의 옷이라도 입는 사람에게 편한 게 최선이다. 특히 셔츠에 관해서라면 자신에게 맞는 깃의 각도를 고민해보는 게 필요하다. 미국과 한국 남성은 극단적으로 좁은 각도의 셔츠를 선호하는데, 점진적으로 그 각도를 넓혀가기를 권한다.

    셔츠의 칼라는 각도뿐 아니라 깃 모양도 중요한 디테일이 된다. 얼굴형의 약점을 보완하는 칼라를 선택해야 좋은 셔츠를 구했다고 할 수 있다. 이를테면 긴 얼굴에는 깃의 길이가 짧은 와이드 스프레드 칼라가 보완적이고, 목이 좀 길면 칼라 스탠드가 높은 셔츠를 입는 게 좋다. 그러므로 셔츠의 칼라는 입는 사람의 얼굴을 얼마나 균형 있게 받쳐주는지를 기준으로 선택해야 한다. 클래식 복식의 철학 ‘밸런스’가 셔츠에서도 빛을 발하도록.

    빈틈없이 정확하게 맞춰 입어라

    마지막으로 드레스셔츠는 빈틈없이 정확하게 사이즈를 맞춰 입어야 한다. 당연히 자신의 목둘레 사이즈는 반드시 기억해둬야 한다. 다만 기성 셔츠를 구입할 때는 세탁 후 5~7% 수축되는 면의 특성을 감안해 목둘레와 소매 길이를 정하는 게 좋다. 극상의 맞춤셔츠 브랜드라면 원단을 미리 세탁한 다음에 제작하기 때문에 수축에 대해 걱정하지 않아도 될 것이다. 럭셔리란 그 정도의 배려 없이는 존재할 수 없으므로.

    슈트의 멋을 살리는 Dress shirts

    클래식 슈트에 어울리는 드레스셔츠 색상은 화이트와 블루다.

    이처럼 세심하게 선택된 좋은 셔츠는 몸과 재킷 사이에서 유연하게 움직일 것이다. 슈트와 인체 사이에 여분이 없으므로 피부를 부드럽게 감싸 슈트 재킷이 몸에 더 잘 맞도록 도와줄 것이다. 품질 좋은 슈트가 형편없는 소재로 만들어진, 사이즈조차 맞지 않는 셔츠를 가려줄 수는 있을지언정, 셔츠 자체를 훌륭한 것으로 탈바꿈시키진 못한다. 그러나 훌륭한 셔츠는 보이는 곳에서, 그리고 보이지 않는 곳에서도 싸구려 슈트를 멋들어진 슈트로 탈바꿈시킬 수 있다. 그게 바로 훌륭한 셔츠의 위력이다.

    위대한 개츠비의 옷장에는 많은 셔츠가 있었을 것이다. 소설 속에서 그는 셔츠 더미를 끄집어내 사랑하는 데이지에게 보여주었다. 얇은 리넨 셔츠, 두꺼운 실크 셔츠, 고급 플란넬 셔츠가 가지각색으로 테이블 위를 덮었으며, 산호 빛, 능금 빛 그린, 보라색과 옅은 오렌지색의 스트라이프 셔츠, 소용돌이무늬와 체크무늬의 셔츠들에는 그의 이니셜이 새겨져 있었다. 옷장 속에 아무리 많은 셔츠가 있어도 개츠비에게는 결코 충분하지 않았을 듯하다. 클래식 슈트를 입는 애호가에게 그것과 어울리는 셔츠의 수가 가늠되지 않는 것도 마찬가지다. 특히 자신의 몸에 잘 맞는 슈트나 구두가 평생을 동반할 수 있는 친구와 같은 존재인 데 비해, 셔츠는 아무리 품질이 좋아도 면 소재 속옷이므로 소모품의 숙명을 거부할 수 없다.

    여러 셔츠 중에서도 가장 수준 높은 것은 한 사람 한 사람에게 맞추어진 맞춤 셔츠일 수밖에 없다. 물론 맞춤 셔츠도 품질과 가격 면에서 수준의 편차가 있지만, 주문자의 체형을 반영해 한정품으로 제작되는 최고급 맞춤 셔츠는 재킷에 방해가 되지 않고 재킷과 함께 움직이기 때문이다. 훌륭한 맞춤 셔츠는 제작에 충분한 시간이 드는 게 당연하다. 세계적으로 인정받는 최고의 맞춤 셔츠 브랜드는 프랑스의 샤베(Charvet)와 영국 새빌로의 헌츠먼(Huntsman)이다. 기성 셔츠 중에도, 이탈리아의 보렐리(Borelli)와 프라이(Fray)는 최고의 품질을 자랑해 셔츠의 예술품으로 간주된다.

    클래식 셔츠를 입을 때 알아야 할 것

    이제 어떤 슈트를 입을지를 고민할 때, 어떤 셔츠를 함께 입을 것인지도 고민하시라. 철학이 있는 슈트를 마련한 다음에는 최고급 셔츠를 장만하는 데도 아낌없이 투자하시라. 셔츠를 올바르게 입는 몇 가지 지침을 압축해 소개한다.

    ▲ 클래식 슈트에 어울리는 드레스셔츠 색상은 기본적으로 화이트와 블루다. 비즈니스 캐주얼에 적합한 재킷 차림이라면, 셔츠도 컬러풀하게 매치하는 것이 좋다.

    ▲ 슈트나 재킷의 소매 끝에는 항상 셔츠가 어느 정도 보이게 한다. 바꾸어 말하면, 슈트나 재킷의 소매가 너무 길지 않아야 한다는 의미이고, 늘 상의와 셔츠를 함께 고려해야 한다는 얘기다.

    ▲ 깃 끝에 버튼이 달린 버튼다운칼라 셔츠는 재킷과 잘 어울리지만, 슈트에는 입지 않는다. 또한 정장에는 반팔 셔츠를 입지 않는다.

    ▲ 용기를 내어 최고의 맞춤 셔츠를 입었다면 그 셔츠에 자신의 이름 이니셜을 새기는 것도 고려해볼 만하다. 다만 이니셜의 위치는 소매가 아니라 왼쪽 갈비뼈가 시작되는 지점이 알맞다.

    ▲ 애초에는 드레스셔츠에 주머니가 없었다. 펜이 있어야 할 곳은 책상과 재킷의 안주머니지 드레스셔츠의 주머니가 아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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