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신동아 로고

통합검색 전체메뉴열기

나의 삶, 나의 아버지

‘인색하면 잃고 베풀면 얻는다’ 귓가에 맴도는 개성상인 정신|김우종

  • 글: 김우종 전 덕성여대 교수·문학평론가

‘인색하면 잃고 베풀면 얻는다’ 귓가에 맴도는 개성상인 정신|김우종

3/4
아버지가 마련해주신 시골 경찰서장의 신원증명서는 이렇게 서울역에서도 잘 써먹었고 복학 심사에서도 효력을 발휘했지만 실제 복학은 불가능했다. 학교 안으로는 들어가볼 수도 없었다. 그후 고향에 가 있던 나는 중공군의 남하 소식이 알려진 날 밤 허둥지둥 짐을 꾸려 형수님과 조카들을 데리고 고향을 탈출했다. 아버지의 지시였다.

그런데 곧 뒤따라 오시겠다던 아버지는 미 공군기의 네이팜탄 폭격으로 온통 불구덩이가 된 속에서 빠져나온 뒤 다음날 어머니와 함께 바닷가로 나가셨지만 배를 구하지 못해 애를 태우다가 우연히 아버지를 알아본 해군 장교가 태워준 군함을 타고 겨우 남하할 수 있었다. 모든 것을 다 버리고 목숨만 겨우 건진 것이다. 당당하게 운명 결정론을 말씀해주시던 아버지는 너무도 지쳐 있었다. 거대한 운명 앞에서 기진맥진해버린 것이다.

그렇지만 나는 아버지가 다시 일어나 시리라고 믿고 있었다. 내가 이렇게 믿는 데는 이유가 있었다. 바로 아버지의 상인 기질 때문이었다. 운명 결정론을 말씀해주시던 날 밤, 아버지는 내게 귀중한 말씀 한두 가지를 더 들려주셨다. 바로 개성상인과 관련한 이야기였다. 그 말씀을 해 주시려면 아버지가 왜 개성을 떠나서 상인이 되었는지부터 이야기하는 것이 순서였을 것이다. 그러나 아버지는 그 부분만큼은 입에 올리지 않았다. 나중에 알게 된 일이었지만 거기에는 자식에게 말하고 싶지 않은 비밀이 있었다.

훗날 형님이 들려준 바에 따르면 아버지와 어머니는 고향인 개성에서 만나 깊이 사랑하는 사이가 되었는데 집안 어른들 사이에 결혼이 허락되지 않았다. 어머니가 아버지보다 여러 해 연상이었던 것이 이유였을 것이다. 그래서인지 어머니는 우리한테 나이를 알려주지 않으셨다.

어쨌든 결혼 승낙이 떨어지지 않자 두 분은 빈손으로 고향인 개성을 떠났다. 형님 말에 의하면 그때 아버지는 ‘영원히 변치 않고 아내를 행복하게 해 주겠다’고 약속하며 혈서를 쓰셨다고 한다. 그후 어머니는 그런 아버지가 가는 곳이면 어디라도 따라가기로 하고 집을 뛰쳐나왔다는 것이다.



사랑의 맹세를 위해 혈서를 쓰신 것이 너무 구식인지 신식인지는 알 수 없지만 자신의 행복을 위한 결혼은 자신이 결정해야 한다고 믿고 부모의 반대를 단호하게 거부하며 고향을 떠나신 것은 내게는 너무나도 놀라운 일이었다. 그러고 보면 전쟁중에 아버지가 말씀해주신 주체적 운명 결정론은 이미 이 무렵부터 아버지가 지녀왔던 신념이었을지도 모른다.

그후 아버지와 어머니는 전라도 군산항으로 가서 형님을 낳았는데 고생이 이만저만이 아니었던 모양이다. 처음부터 빈손으로 탈출했으니 그러실 만도 했을 것이다. 그리고 곧 함경북도 성진으로 옮겨 거기서 작은형과 나를 낳으셨다. 아버지가 내게 해주신 긴 얘기는 이 부분부터 시작되었다.

“그때 나는 아무것도 가진 것이 없었다. 그래서 그냥 개성상인 한 분을 찾아가서 인사를 올리고 부탁을 드렸다. 개성의 누구네 집 몇째아들이라고 밝히고 무슨 장사를 어떻게 해서 은혜를 갚을 것이니 도와달라고.”

재봉틀 돌리고 또 돌리고

난생 처음 본 빈털터리 젊은이의 부탁인 데도 당시에는 그것이 통했다고 한다. 재봉틀이 생겼고 옷감도 외상으로 얼마든지 쓸 수 있게 되어 아버지는 옷을 만들기 시작했다. 대개는 부두 노동자들의 옷이었다.

부두 노동자들은 비가 오면 비를 맞고 눈이 오면 눈을 그대로 맞고 일을 했다. 그래서 아버지는 우선 우비를 만들었다. 지(紙)우산을 보고 착안한 것인데 무슨 기름을 몇 겹씩 발라가며 빗물이 스며들지 않는 비옷을 창안한 것이었다고 한다.

어머니와 아버지는 낮이나 밤이나 쉬지 않고 일에 매달렸다. 두 분이 다 재봉사가 되었는데 어머니는 졸음이 쏟아질 때마다 눈을 하도 비벼서 눈이 게진게진 짓물렀다고 하신다.

그렇게 만든 옷은 모두 외상으로 가난한 노동자들에게 내주었다. 알지도 못하는 사람들과 외상 거래를 하는 것은 개성상인식이다. 알지도 못하는 사람에게 외상으로 재봉틀을 사주고 옷감도 외상으로 마음대로 쓰도록 한 그 사람도 전형적인 개성상인 방식으로 아버지를 대한 것이다. 담보는 오직 마음과 마음의 신뢰뿐이었다. 그렇게 시작한 옷 장사는 일일이 주문에 댈 수 없을 정도로 바빴다.

개성상인식 외상거래

나를 낳고 찍은 기념사진을 보면 그때 부모님이 얼마나 빠르게 성공했는지 알 수가 있다. ‘김재환 상점’이라는 간판이 붙은 제법 큰 상점 안에서 아버지가 한 살짜리 나를 안고 큰형을 옆에 세우고 찍은 사진이다. 그것은 함북 성진에 빈손으로 도착한 지 3년 만에 이룬 성공의 증명사진인 셈인데 아쉽게도 휴전 직후 분실했다.

사랑 때문에 시작된 타향살이건만 그렇게 떠돌기에 바빴으니 거기에 무슨 달콤한 로맨스가 있었으랴. 두 분 모두 부모님 말씀에 따라 시키는 결혼을 했으면 그런 고생 않고 편하게 사셨으리라는 생각도 해본다. 그러면서도 아버지에게 저절로 고개가 숙여진다.

3/4
글: 김우종 전 덕성여대 교수·문학평론가
목록 닫기

‘인색하면 잃고 베풀면 얻는다’ 귓가에 맴도는 개성상인 정신|김우종

댓글 창 닫기

2020/03Opinion Leader Magazine

오피니언 리더 매거진 표지

오피니언 리더를 위한
시사월간지. 분석, 정보,
교양, 재미의 보물창고

목차보기구독신청이번 호 구입하기

지면보기 서비스는 유료 서비스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