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걱! 감옥까지 갔다 오셨다고?
얼마 안 가 우리는 선생님이 감옥에도 갔다 오셨다는 사실을 알게 됐다. 대성고등학교로 오기 전에 장훈고등학교에 국어 교사로 있으셨는데, 그때 1년간 옥살이를 했다는 것이다. 처음에는 동료 교사들조차 그 사실을 모르고 있었는데, 차츰 친해지면서 술자리에서 과거를 털어놓게 됐다고 한다. 6·3한일회담반대운동을 주동하면서 대학에서 제적당했고, 1971년 민주수호청년협의회 회장을 맡으면서 10월유신 반대 데모에 참여했다가 투옥됐다는 것이다.
우리들은 그 말을 듣고 처음에는 선생님을 상당히 경계했다. 감옥에 갔다 왔다는 선생님을 좋아할 학생은 없었다. 선생님께서 수업 시간에 무슨 말을 하셔도 색안경을 끼고 보게 됐다. 서슬 퍼런 군사정권 시절이라 TV에서도 민주화운동 하는 사람을 나쁘게만 비추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우리는 존경심을 갖고 선생님을 바라보게 됐다. 어린 나이였지만 차츰 선생님이 하신 일이 옳다는 생각을 갖게 된 것이다. 학교에서는 대한민국이 민주국가라고 가르쳤는데 그것이 현실과 동떨어진 말이라는 것을 알게 됐다.
당시 우리는 이제 막 세상에 대한 생각을 가지기 시작할 무렵이라 머릿속이 무척 복잡했다. 세상을 무작정 비판해야 하는지에 대한 확신도 서지 않았다. 그런데 선생님은 이렇게 말씀하셨다.
“마음이 따뜻하지 않은 사람은 절대 생각을 행동으로 옮기지 못해.”
선생님은 가끔씩 정치현실에 대해 개탄하셨지만, 그때는 그 의미를 잘 몰랐다. “우리 국민 대부분은 거듭된 민주화운동으로 정치의식은 앞서 있을지 몰라도 참여의식은 없다”고 하셨다. 우리의 정치의식이 ‘비판을 위한 비판’으로 굳어져 ‘비판을 통한 참여’에 냉담하다는 것이다.
“학생들이 데모를 한다고 하고, 부정한 정치인이 뇌물 거래를 한다는 소식이 들리면 사람이 많이 모이는 장소에 가서 그들이 무슨 말을 하는지 한번 들어봐. 입 달린 사람치고 분노하고 흥분하지 않는 사람이 없지. 그런데 같이 참여하자고 하면 다들 어디 가고 없어. 거리에 몽둥이와 최루탄이 난무할 때 그 많던 비판의 목소리는 도대체 어디 간 거야?”
잘 모르지만 정권이 뭔가 잘못하고 있는데 아무 말도 못하고 뒤에서 수군거리기만 하는 어른들이 부끄럽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중에 MBC 기자로 일하면서 노조위원장 제의를 받았을 때 내가 선뜻 응한 것도 “제대로 비판하려면 참여하라”는 선생님의 말씀이 뇌리에 또렷이 남아 있었기 때문이다.
선생님과 함께 우리는 ‘극단체험’이라는 것을 했다. 우리들이 진정한 참여정신을 갖기에는 물러터졌다고 판단하셨는지 다른 선생님들과 함께 그런 기획을 하셨다. 극단체험이란 모든 학교생활을 극기와 수련의 과정으로 간주해 평소보다 배 이상의 노력을 들이도록 환경을 조성하는 것이었다.
가령 우리들은 등교할 때마다 20。 넘는 경사에 150m쯤 되는 학교 앞길을 전력질주해야 했고, 며칠 동안 학교에서, 그것도 차디찬 맨바닥에서 자야 했다. 그중에서도 가장 힘든 시간은 교련 시간이었다. 낮은 포복을 하도 많이 해서 당시 전교생이 교련복의 팔꿈치와 무릎 부분에 헝겊을 덧대어 깁고 다녔다.
그렇다고 해서 무조건적으로 극단상황을 강요하지는 않았다. 선생님은 항상 우리들과 함께 뛰셨고, 어린 우리들이 힘들어하면 때때로 간식도 사주시며 자상하게 위로도 해주셨다.
선생님은 우리들과 함께 연극도 만들어 무대에 올렸다. 그 과정에서 우리는 부지불식간에 사회 참여의 중요성을 느끼게 되었다. 선생님께서 우리를 지도하시던 모습이 아직도 기억에 생생하다.
“장관, 최근에 영화 본 거 있어요?”
선생님의 어투는 그때나 지금이나 재밌다. 느릿느릿 조용히 말씀하시는데 뒤끝을 약간 길게 끄는 경상도 사투리에 친근감이 넘친다. 야당 국회의원 후보로서 탄핵정국이라는 어려움을 헤치고 서울에서 당선된 데도 그 말투가 큰 도움이 됐을 것 같다.
17대 국회 첫 임시국회가 열리던 2004년 6월로 기억한다. 선생님과 나는 공교롭게도 국회 상임위 문화관광위원회에서 함께 의정생활을 하게 됐는데, 선생님은 한나라당이고 나는 열린우리당이라 서로 반대편 좌석에 앉게 됐다. 문화관광부 장관에게 문화정책에 대한 여러 의원의 질의가 이어졌고, 이윽고 선생님의 질의 순서가 됐다. 그런데 선생님 말 한마디에 엄숙하고 딱딱하던 분위기가 확 바뀌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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