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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진우의 세상읽기

국격(國格)을 높이고 싶으시다면

국격(國格)을 높이고 싶으시다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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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국민이 무력감을 가질 수밖에 없는가? 이것이 비단 우리나라만의 문제라고 할 수는 없을지라도 피할 수 있는 의제는 아닐 것이다. 우리의 경우 그 중심에 소통의 부족과 형평성의 결핍, 상식에 맞지 않는 권력의 행태 등이 자리 잡고 있는 것도 부정할 수 없을 것이다. 다수 국민이 마땅히 순리에 맞게 처리될 것으로 기대하는 사안들, 국민의 의견을 수렴해야 할 정책과 우선순위 등이 상식에 반할 때 국민은 무력감을 가질 수밖에 없다. 그렇게 무력감이 쌓여간다면 제아무리 G20의 의장국이 된다 한들 국민의 자랑스러움과 자부심이 높아질 수 없을 것이다. “많은 한국인은 한국이 세계경제의 주역으로 떠오른 사실을 잘 모르는 것 같다”는 외신 보도가 국민의 무력감과 맞닿아 있는 것은 아닐까?

국민에게 무력감을 안겨주는 예를 들어보자. 검찰은 국무총리실 공직윤리지원관실의 민간인 불법사찰사건 수사 결과 청와대는 무관하다고 밝혔었다. 그러나 청와대 행정관이 공직윤리지원관실 사찰팀에 감청을 방지할 수 있는 ‘대포폰’까지 만들어준 사실이 드러났다. 불법사찰의 결정적 증거인 공직윤리지원관실 컴퓨터 하드디스크를 파괴하기 위해 컴퓨터 전문 업체와 접촉하면서 이 대포폰을 사용했다는 것이다. 검찰도 그런 사실을 알고 있었다고 한다. 하지만 수사결과 발표 때는 이 사실을 숨겼다. 사찰 관련자 수첩에서 ‘BH(청와대) 지시’라는 메모가 여러 개 발견됐는데도 검찰은 ‘대포폰’을 만들어준 청와대 행정관의 직속상관을 제대로 조사하지 않았다. 그러면서도 재수사는 한사코 할 생각이 없다고 한다. 야당은 물론 여당의 최고위원들도 재수사를 요구하지만 모르쇠로 일관하는 모양새다.

그런 검찰이 전국청원경찰친목협의회(청목회)의 국회 로비 사건에는 여야 의원 11명의 후원회사무실을 압수수색하는 등 전격 수사에 나섰다. 정치권의 반발이 일자 김준규 검찰총장은 “국민은 검찰이 흔들리는 것을 바라지 않는다”고 일갈했다. 물론 후원금을 빙자한 불법 로비자금이라면 여야 가릴 것 없이 엄정하게 수사해 의법처리하면 될 일이다. 그러나 국민은 검찰이 국회의원 수사에서뿐 아니라 청와대 관련 수사에서도 흔들리는 것을 바라지 않는다. 청와대 행정관이 대포폰까지 건네준 불법사찰 건은 어물어물하면서 여야 의원의 정치자금법 위반 혐의에만 엄정 수사를 외쳐서야 설득력이 있겠는가. 민주당 박지원 원내대표는 “(검찰 수사는) 야당에 대해, 국회의원에 대해 국민이 혐오감을 갖게 만들고 정치인은 나쁜 사람들이란 것을 각인시키려는 청와대의 고도의 공작이라고 본다”고 주장했다. 자유선진당 이회창 대표도 “검찰은 스폰서 검사 사건, 그랜저 검사 사건, 민간인 사찰과 관련한 대포폰 부실 수사 등으로 국회의 질책을 받아왔다. 이번 강제 수사는 이에 대한 보복수사 또는 물타기 수사라는 의혹이 나올 수밖에 없다”고 비난했다.

대통령의 오랜 친구라는 천신일 세중나모여행 회장은 은행대출 청탁 명목으로 한 기업으로부터 수십억원의 뇌물을 받은 혐의를 받고 있다. 천 회장은 검찰이 본격 수사에 착수했던 8월 일본으로 출국한 뒤 귀국하지 않고 있다. 천 회장이 검찰 수사를 피해 도피한 것은 여러 정황상 분명하다. 검찰은 천 회장에게 “피의자 신분으로 소환통보를 했다”고 밝혔다. 그러나 체류 중인 나라에 범죄인 인도를 요청하는 등의 적극적인 수사 의지는 보이지 않고 있다. 이러니 검찰이 대통령 친구인 천 회장의 도피를 사실상 방조한 게 아니냐는 의혹까지 생기는 것이다. 검찰에 대한 야당의 비난 및 의혹의 진위 여부를 떠나 검찰이 ‘살아 있는 권력’에는 한없이 약하다는 인상을 불식하지 못하는 한 대한민국 검찰에 대한 국민의 신뢰는 떨어질 수밖에 없다. 수사의 형평성 이전에 상식에 반하기 때문이다. 대통령이 제창한 ‘공정 사회’와는 멀어도 한참 멀기 때문이다.

4대강 살리기 사업은 녹색성장을 위한 미래 투자라는 찬성론과 국토를 망치는 반(反)환경적 토목공사라는 반론이 첨예하게 대립하고 있다. 중앙정부와 지방정부(경남도) 간 알력도 심각하다. 야 5당은 내년도 예산심의에서 4대강 사업예산을 삭감할 것을 공언하고 있다. 그러나 정부는 서둘러 공정을 앞당기면 반대한들 어쩔 수 없지 않겠느냐는 자세다.



국격(國格)을 높이고 싶으시다면
全津雨

1949년 서울출생

동아방송 기자

월간 신동아 편집장

동아일보 논설실장·대기자

現 경원대 초빙교수

저서: 작품집 ‘하얀 행렬’ ‘서울의 땀’, 칼럼집 ‘역사에 대한 예의’


이런 모습은 많은 국민에게 무력감을 안겨줄 수 있다. 대통령이 신념을 갖고 추진하는 사업이라면 왜 대통령이 직접 나서 그 필요성을 설명하고 반대론자들을 설득하지 않는가? 한 번에 안 되면 두 번 세 번 하면 되지 않는가? 어느 쪽이 옳고 그르든 우리는 왜 논의과정에서 무력하게 소외되어야 하는가? 왜 우리의 뜻은 무시되어야 하는가?

이 대통령은 이런 물음에 답할 수 있어야 한다. 국민이 무력감을 가지면 진정한 민주주의가 아니라는 통찰을 곰곰 생각해보아야 한다. 국민이 주인으로서 활력을 찾을 때라야 국격도 높아지지 않겠는가.

신동아 2010년 12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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