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흙, 옥수수전분으로 만든 친환경 연습용 수류탄 개발
- 실제 수류탄 같은 훈련효과…손 위에서 터져도 안전
- 해외에서 더 인정받는 스타크머신, 40mm 연습용 유탄
- “최첨단 고성능 다연발발사기, 새 쫓는 데 사용…서글퍼”
지호영 기자
자식을 군대에 보낸 부모들의 불안감은 커질 수밖에 없다. 그렇다고 군에서 수류탄 투척훈련을 안 할 수도 없는 노릇이다. 훈련 없이 강군(强軍)을 키울 수는 없다.
그런데 인터넷에서 눈길을 끄는 동영상을 봤다. 한 병사가 수류탄의 안전핀을 제거한 채 던지지 않고 손에 쥐고 있었다. 몇 초 후 수류탄이 ‘펑’ 하고 터졌다. 파편이 흩어지고 화약 먼지가 가득했지만, 병사는 손은 물론 어디 한 곳 다친 데 없이 멀쩡했다. 군에서 사용하는 연습용 수류탄이라고 했다. 저런 제품으로 훈련하면 병사들이 소중한 생명을 잃거나 부상하는 안타까운 일은 없겠다 싶었다.
연습용 수류탄에 대한 궁금증이 일었다. 수소문 끝에 이 연습용 수류탄을 개발한 오세홍(58) 한국씨앤오테크 대표를 만났다. 경북 문경에 본사를 둔 한국씨앤오테크는 군과 경찰의 전력 향상에 필요한 연습용 기자재와 각종 필요장비를 만들어 납품하는 회사다. 최근 제2공장을 완공하고 새로운 도약을 준비하고 있다.
“먹어도 되는 친환경 제품”
▼ 동영상에 나오는 연습용 수류탄이 신기하다.
“우리 군에서 사용하는 실제 수류탄과 모양과 무게가 똑같다. 안전핀을 제거하고 던지면 폭음과 섬광, 파편이 튀는 것까지 똑같다. 하지만 손에 쥔 채 터뜨려도 다치지 않는 안전한 수류탄이다.”
▼ 무슨 재질로 만들었나.
“수류탄 몸통은 흙과 석분(돌가루)으로, 사람이 먹어도 안전하다. 석분은 병원에서 위 조영검사를 할 때 먹는 하얀 액체와 같은 성분이다. 뇌관은 옥수수 성분으로 만든 플라스틱이다. 폭발 후 3개월 안에 모두 생분해돼 자연으로 돌아가니 환경오염 우려도 전혀 없다. 성능도 자신 있다. 우천시는 물론 영하 30℃, 영상 50℃에서 24시간 노출해도 정상 작동한다.”
▼ 어떻게 개발하게 됐나.
“군납을 하면서 친분을 쌓은 작전장교들이 종종 연습용 수류탄에 대한 고민을 토로했다. 당시 연습용 수류탄은 쇠로 만든 제품으로 사용하기 불편했다. 한번 던지고 나면 몸통을 회수해야 하기에 훈련이 제대로 안 됐다. 연습 도중 손가락 골절이나 절단 같은 사고도 나곤 했다. 군 훈련 규정에도 연습용 수류탄으로 충분히 연습해 자신감을 가진 후 실제 수류탄을 던지게 돼 있지만, 사정이 이렇다 보니 곧장 실제 수류탄으로 훈련하는 경우가 많았다. 그러니 늘 사고에 대한 불안감이 컸다. 그 얘기를 듣고 2001년부터 개발을 시작했다.”
세계 곳곳 수출
한국형 수류탄의 모양과 무게에 맞춰 흙, 나무, 종이, 시멘트, 고무 등 갖가지 재료를 동원해가며 만들어봤다. 쉽지 않았지만 전문가들을 찾아다니며 하나하나 문제점을 해결해나갔다. 그렇게 해서 2003년 세계 최초의 친환경 연습용 수류탄이 나왔다.
“개발한 뒤에도 군에서 채택할 때까지 3년이 걸렸다. 회사가 망하려다 겨우 살아났다. 아무리 좋은 제품을 개발해도 기존 납품 회사가 버티고 있으면 뚫고 들어가기가 정말 힘들다. 사람들이 내게 1000만분의 1의 확률을 뚫었다고 했을 정도다.”
2005년 시험 보급을 시작으로 연간 200만~250만 발씩 지금까지 2000만 발 정도를 군에 납품했다. 9월의 수류탄 사고 영향으로 내년엔 납품 물량이 더 늘어날 예정이다. 그는 “우리 제품이 병사들의 안전한 훈련에 도움이 되면 좋겠다”고 했다.
▼ 외국에도 이런 제품이 있나.
“아직까지 없다. 2005년 프랑스 무기 전시회에서 처음 공개했는데, 당시 프랑스 군사 전문잡지에 소개될 정도였다. 계속해서 세계 무기 전시회에 참가하며 홍보하고 있다.”
다연발 발사기 스타크머신. 좌우상하 회전각이 클 뿐 아니라 적외선카메라를 장착해 야간에도 사물 식별이 가능하다. 지호영 기자
“말레이시아, 사우디아라비아, 에스토니아에서는 이미 연간 10만 발씩 구매하고 있다. 에스토니아의 경우 나토(NATO, 북대서양조약기구)군 파견병사도 우리 제품을 사용하고 있어 앞으로 나토군에서도 구매할 가능성이 높다. 아프리카 탄자니아에도 수출을 시작했다.”
탄자니아 이야기가 나오자 그의 입가에 미소가 그려졌다.
“탄자니아에서 시연회를 할 때다. 그 나라 군 장성이 모두 모인 자리에서 시범을 하는데, 교관이 우리 제품을 투척하던 중 연습용 수류탄이 손에서 미끄러지면서 뒤로 떨어졌다. 모두 혼비백산하며 엎드렸다. 수류탄이 굉음을 내며 폭발했지만 누구도 다치지 않고 안전한 것을 본 육군대장이 감탄하며 ‘바로 이런 게 필요하다’며 그 자리에서 구매를 결정했다.”
▼ 미국이나 유럽에도 수출하나.
“상담을 하거나 샘플을 보내달라는 요청은 계속 오는데, 자국 내 사업을 보호한다는 원칙 때문에 아직 구매하지는 않고 있다. 하지만 머지않아 우리 제품을 사용할 수밖에 없다고 본다. 특히 미국은 이미 훈련탄 때문에 플로리다 주 면적만 한 땅이 오염돼 사회문제가 되고 있다. 우리 제품은 환경오염이 전혀 발생하지 않는다.”
▼ 가격은 어느 정도인가.
“실제 수류탄 가격의 7분의 1 수준이다. 제조하는 데 많은 어려움이 있지만, 과거 구형 연습용 수류탄 납품가보다 저렴하다.”
“아들, 손자가 던지는 건데…”
한국씨앤오테크 직원이 손 위에서 연습용 수류탄을 터뜨렸지만 아무 부상도 입지 않았다. 지호영 기자
“처음 개발하고 군에 제안할 때 우리 제품의 우수성을 확인시키는 게 중요하다고 생각해서 가격에 대해서는 크게 신경 쓰지 못했다.”
▼ 수출 가격은.
“국내 납품가보다 훨씬 높다. 각 국가의 특성에 따라 조금씩 차이가 있지만 보통 1발당 12~13달러에 수출한다. 수출을 못했으면 우리 회사는 벌써 망했다(웃음).”
▼ 우리 군에는 되도록 납품을 덜 하는 게 이익이겠다.
“그럴 수는 없다. 돈이야 수출해서 벌면 된다. 국가에 봉사한다는 마음도 있고, 무엇보다 우리의 아들, 손자들이 우리 제품으로 안전하게 훈련받으면 좋은 일 아닌가. 군수사업은 사명감 없이는 못한다. 돈 벌려고 이 일을 하면 군인 목숨이 위태로워진다. 군인은 국민의 생명을 지키고, 우리는 군인의 생명을 지킨다는 사명감으로 일해야 한다.”
수류탄 사고가 화제에 올랐다. 일각에서 수류탄의 내구성에 문제가 있는 것 아니냐는 지적이 일었다.
“절대 그렇지 않다. 생산한 지 오래돼 내구성에 문제가 생긴다면 벌써 군 무기고에서 대형 폭발사고가 여러 번 났어야 한다. 한국형 수류탄은 세계에서도 가장 안전한 제품으로 정평이 나 있다. 작으면서 효과는 두 배로 높아 미국에서도 탐낼 정도다. 사고 직후 군에서 수류탄 안전검사를 했는데 전혀 문제가 없는 것으로 확인됐다.”
▼ 그럼 왜 사고가 났나.
“내 생각엔 수류탄 파지(把持)를 잘못한 것 같다. 수류탄은 공이(격철)가 넘어가 뇌관을 때리면 3, 4초 후에 터지게 돼 있다. 공이가 넘어가지 않도록 안전손잡이를 꽉 잡은 상태에서 안전핀을 뽑고 던져야 하는데, 긴장한 탓에 안전손잡이를 잡고 있던 악력이 순간적으로 풀리면서 공이가 넘어간 것을 못 느낀 것 같다.”
▼ 그렇더라도 수류탄을 더 안전하게 만들 수는 없나.
“군에서 수류탄에 센서를 내장해 던진 후 어딘가에 닿아야만 터지도록 만드는 걸 연구하겠다고 하던데, 불가능한 이야기다. 센서가 들어가려면 전원이 공급돼야 한다. 수류탄 안에 화약과 전기를 같이 넣는다는 얘긴데, 매우 위험하다. 설령 가능하다 해도 그렇게 만들려면 제조 단가가 10만~20만 원은 될 것이다. 세계 어디에도 그런 수류탄은 없다.”
탄피받이 개발해 전군 보급
▼ 해결할 방법이 없나.
“우리 회사에서 개발한 수류탄이 있다. 공이가 넘어가 뇌관을 때렸다는 걸 수류탄을 쥔 병사가 모르기 때문에 터지는 것이다. 공이가 넘어간 상황을 병사가 느끼게 하면 바로 수류탄을 투척할 수 있어 사고를 막을 수 있다.”
오세홍 대표는 성균관대를 졸업한 후 해군2사관학교를 거쳐 해군 장교로 복무했다. 제대 후 직장생활을 하다 군납하던 회사에 잠시 몸담았던 게 인연이 돼 1997년 창업, 군납을 시작했다.
“처음엔 빗자루, 볼펜, 종이 같은 잡화류를 납품하다 사격 기자재도 납품하게 됐다. 어느 날 군 사격장을 지나는데 병사들이 철모로 탄피를 받는 게 보였다. 이건 아니다 싶어 탄피받이를 개발한 게 시작이었다.”
군에 갔다 온 사람이라면 누구나 사격 후 탄피를 줍는 고달픈 경험을 갖고 있다. 총기에서 튀어나오는 탄피를 철모로 받아내는 게 쉬운 일이 아니다. 게다가 회수한 탄피 숫자가 맞지 않으면 다 찾을 때까지 몇 시간이고 사격장을 헤매고 다녀야 했다.
1년 넘는 시행착오 끝에 총의 형태대로 프레임을 만든 탄피받이를 개발했다. 그 무렵 그가 납품하던 군부대에서 총기 자살사건이 발생했다. 사격 연습 후 탄피가 하나 부족해 전체 병사들이 사격장을 두 시간 동안 찾다 결국 포기하고 돌아왔는데, 병사 한 명이 총알 하나를 쏘지 않고 숨겨뒀던 것. 그 총알로 병사가 자살한 것이다.
“총에 쉽게 걸 수 있고, 탄피 배출구를 완전히 감싸 탄피가 유출될 일이 없는 탄피받이를 만들어 보여줬더니 다들 좋아했다. 이걸로 2001년 육군교육사령관으로부터 제1호 감사장도 받았다. 이후 전군에 보급돼 5년간 25만 개 정도 생산했다. 그 후 계속 업그레이드하고, 기관총용 탄피받이도 개발했다. 미군용도 개발해 미국과 태국에도 수출한다.”
▼ 아이디어가 남다른 것 같다.
“어려서부터 무엇이든 보면 여기에 부족한 게 뭘까, 그 부족한 부분을 어떻게 하면 해결할 수 있을까를 생각했다. 버스를 타고 가면서 골똘히 생각하다 종점까지 간 적도 많다. 다연발 발사기 스타크(STARK) 머신도 무기 전시회에서 비슷한 제품을 보고 아이디어를 떠올린 거다. 이 제품에서 이런 게 부족하니까 이렇게 하면 성능도 더 좋고 사용하기도 편한 제품이 되겠구나 싶었다. 박근혜 대통령이 강조하는 게 창조경제인데, 창조경제란 멀리 있는 것, 전혀 새로운 것이 아니다. 부족한 걸 느끼고 해결책을 찾는 노력에서 나오는 것이다.”
고성능 다연발 발사기
요즘 한국씨앤오테크의 주력 제품은 스타크 머신이다. 모델에 따라 탄을 15발 또는 30발 연속해서 발사할 수 있는 다연발 발사기다.
“사수가 노출되지 않고 차량 안과 같은 안전한 공간에서 리모컨으로 조종, 발사할 수 있다. 외국 경쟁사 제품은 자기네 회사에서 만든 포탄 제품만 사용할 수 있지만 우리 제품은 40mm는 물론 38mm 포탄, 최루탄 등을 다양하게 사용할 수 있다. 사정거리도 400m나 된다. 무엇보다 외국 경쟁사 제품은 고정식인 반면, 우리 제품은 좌우 350도, 상하 -5~70도까지 움직인다. 적외선 카메라가 달려 있어 야간에도 사물을 정확하게 식별할 수 있다.”
▼ 많이 팔렸겠다.
“지난해 100억 원어치를 수출했고, 올해는 130억 원 수출을 예상하고 있다. 내년엔 더 늘어날 것이다. 아프리카, 아제르바이젠 등 동유럽, 오만 등 중동에 수출하고 있다. 오만과는 최근 연 1000대씩 3년간 총 3000대 수출 계약을 했다.”
▼ 가격은 어느 정도인가.
“외국 경쟁사 제품보다 훨씬 저렴하다. 경쟁사 제품은 우리 것보다 질이 떨어지는데도 3, 4배 비싸지만 더 비싸게 팔 생각은 없다. 적정 이윤만 남기면 된다고 생각한다. 내가 만든 제품으로 평화가 유지된다면 그게 더 좋은 일 아닌가.”
▼ 우리 군에서도 사용하나.
“이번에 공군에 소량 납품했다. 그런데 용도가 조류 퇴치다(웃음). 원래는 최전방이나 해안선 보초용으로 개발한 것이다. 연평도는 북한군이 고무보트 타고 5분이면 상륙한다. 휴전선도 5분이면 북한군이 넘어올 수 있다. 그만큼 경계가 중요하고 힘들다. 한 사람이 모니터를 통해 250대까지 관리할 수 있으니 이게 있으면 순간적으로 적을 제압할 수 있다. 경계병들의 고충도 훨씬 줄어들 것이다. 그런데 이걸 새를 쫓는 데나 사용한다는 게 속상하다.”
▼ 군에서는 왜 안 쓰나.
“이런 것에 대한 품목 규정이 없다고 하더라. 군에선 전투기 같은 첨단 무기나 대형 무기에만 신경을 쓴다. 이렇게 병력 자원을 절감하면서 국방력을 키울 수 있는 제품에 더 신경 써야 하는데 안타깝다.”
軍 주도 개발정책의 허점
오세홍 대표는 “군인의 생명을 지킨다는 마음으로 제품을 개발하고 있다”고 말했다. 지호영 기자
“그게 아이러니다. 과거엔 업체가 주도하는 개발이 가능했다. 이 경우 5년간 수의계약을 보장했다. 지금은 무조건 군 주도 개발이다. 군에 제안하면 바로 수의계약을 하는 게 아니라 관련 기술 자료를 제출해야 한다. 그러면 군은 그 자료를 공개하고 공개입찰을 한다. 아이디어가 공개된 데다 개발비까지 정부에서 대주니 고도의 기술력이 필요한 제품이 아니면 다른 회사들도 비슷한 제품을 만들 수 있어 처음 아이디어를 제안한 회사가 낙찰받는다는 보장이 없다. 그러니 아이디어가 있어도 군에 제안할 이유가 없다. 심각한 문제다.”
오 대표에 따르면, 국내에서 더 좋은 제품을 만들 수 있는데도 이런 사정 때문에 군과 경찰에서 질이 떨어지는 비슷한 제품을 외국에서 더 비싼 값에 수입하는 경우까지 생겼다고 한다.
“다연발 발사기만 해도 경찰에서 우리 것보다 못한 외국 제품을 4배나 비싼 값에 수입하는 것을 우리가 알고 역제안을 해서 우리 제품을 납품한 일이 있다.”
▼ 그 외에 어떤 제품을 만들고 있나.
“40mm 연습탄이 있다. 건조한 계절에 사격훈련을 하면 화재가 많이 나고, 불발탄을 회수할 때도 번거롭다. 불발탄 사고도 많다. 그래서 연습탄을 개발했다. 우리가 개발한 40mm 연습탄은 유엔 평화유지군에서 사용하고 있고, 해외로 수출도 한다. 다른 회사 연습탄은 불발사고나 화재 위험이 있고, 표적도 바위나 자갈밭에만 쏴야 하지만 우리 제품은 어디에 쏴도 다 터진다. 화재 위험도 없고, 불발탄도 위험성이 없다.”
10년 내 5000억 매출 목표
한국씨앤오테크는 현재 41건의 산업재산권을 보유하고 있다. 그중에서도 친환경 연습용 수류탄과 40㎜ 연습용 유탄은 미국 특허, 소총용 탄피받이는 미국 디자인 등록도 해놓았다. 2009년 경영혁신형 중소기업으로 선정된 데 이어 지난해엔 중소기업청 글로벌 강소기업으로 선정됐다. 2010년엔 산업포장 대통령상도 수상했다.
앞으로의 비전을 묻자 오 대표는 “올해 예상 매출액이 300억 원이다. 하지만 향후 10년 내에 매출 5000억 원을 달성할 것”이라고 자신했다.
“이렇게 말하면 다들 웃는다. 불가능할 것 같지만, 우보천리(牛步千里)라 하지 않나. 묵묵히 내 길을 가면 반드시 도달할 수 있다. 무엇보다 우리 회사엔 아이디어와 기술이 있다. 군과 정부에서 수출길만 활짝 열어주면 된다.”
그의 아이디어와 도전정신은 끝이 없어 보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