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가파른 선돌바위 이마빼기 쯤, 노란 야생화가 비죽 고개를 내밀었다
연안부두에 나가 배 시간표를 보니 연평도 백령도 대청도 자월도 등 이름으로만 낯익은 섬들이 어서 오라고 손짓을 한다. 어디를 갈꼬 고민하는 참에 화백이 “‘솔 향기 그윽한 환상의 섬’이라네, 덕적도는 어때요?”라고 거들었던 것이다.
1970년대 초만 해도 덕적도는 배를 타고 한나절은 가야 닿는 해수욕장이었다. 경인선 밤기차를 타고 하인천에 내려 초라한 여인숙에서 밤을 새우고 캄캄한 새벽 부두에 나가 두어 시간 줄을 선 후에야 배에 올랐다.
짐짝처럼 3등 객실에 포개 앉으면 땀냄새 기름냄새에 멀미하는 냄새까지 요동을 쳤다. 아, 그런데 왜 그런 것이 지금은 아름다운 추억으로 남아 있을까.
물 위를 날다시피 달리는 쾌속선은 언제 떠났냐 싶게 덕적도 진리 선착장에 닿았다. 내도객 환영 플래카드 옆으로 옹진군 기(旗)와 새마을 기가 펄럭이고 섬 아낙 대여섯 명이 쪼그리고 앉아 주꾸미 우럭 놀래미 등 갓 낚아올린 싱싱한 생물을 팔고 있다. 육지의 반값도 안 되는데 그나마 잠시 지켜보는 사이 호가가 절반 아래로 떨어진다. 추억의 곳간에서 하얗게 먼지를 뒤집어쓰고 있는 시골 간이역의 풍경처럼 모든 게 정답고 흐뭇하다.

서포리 해변을 가로지르는 상여 행렬
해수욕장 뒤로는 송림이 병풍처럼 쳐졌다. 수령 300년 가까이 되는 적송이 바다에도, 마을에도 눈길 한번 주지 않고 오로지 하늘만을 우러러 쭉 뻗었다. 이따금 부는 바람에도 그들은 흔들리지 않는다. 잎 큰 나무들이 떠는 모습이 우습다는 듯 장대한 기품을 뽐낸다.
그래서인가. ‘솔 향기 그윽한 덕적도’를 자랑하는 주민들은 “그리움이 있다면 솔에 담아 해변에 세워놓는다”고 말한다. 정말 깊은 그리움은 안으로 삭일 뿐 촐싹이지 않는다는 뜻이다.
서포리 만(灣)의 바다 한가운데에 선 붉은 등대가 금방이라도 떠내려갈 듯 외롭다. 그 등대와 대각으로 난 선착장 부두에 낚시꾼 한명이 걸터앉아 하염없이 바다를 내려다본다. 천천히 자맥질할 채비를 하는 해가 등대와 낚시꾼의 머리 위에 걸렸다. 끼룩거리는 갈매기 소리만 없다면 이 한가로움은 그대로 정물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