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날 녹화가 급박하게 진행된 건 당초 6월2일 녹화하기로 한 오세훈 서울시장 당선자가 녹화 하루 전날 불참 통보를 해왔기 때문이다. 오 당선자측에 그럴 만한 사정이 있었겠지만 제작진으로선 적잖이 당황스러웠을 터. 6월2일 녹화를 끝내고 ‘신동아’와 인터뷰하기로 한 진행자 이금희(李琴姬·40) 아나운서가 난감해졌음은 물론이다.
이 팀을 위기에서 구한 사람은 지난 5월29일 퇴임사를 통해 ‘겉포장 정치의 재앙’을 경고한 김원기 전 국회의장. 2년 임기를 마친 김 전 의장은 그 사이 사고를 당해 목발을 짚고 스튜디오에 나타났다. 세트장 정중앙, 김 전 의장과 패널들 사이에 선 이금희 아나운서는 때로는 침통한 표정으로, 때로는 애틋한 눈길로 김 전 의장을 응시했다. 틈틈이 질문지를 살피고, 패널들과 출연자 사이에 오가는 대화의 수위를 적절히 조율하는 와중에 PD와 수신호도 주고받았다.
질문 한두 개 놓치더라도…
이날 녹화는 평소보다 빠른, 1시간 반 만에 끝이 났다. 이금희 아나운서는 출연자와 제작진, 방청객들에게까지 허리 굽혀 인사를 한 다음에야 기자에게 눈길을 주었다.
방송국에서 나와 여의도공원으로 발길을 옮겼다. 단순히 이동 시간을 줄여보자고 택한 장소인데, 그가 무척 좋아한다.
“오랜만에 와보니 모든 게 새로워 보여요. 어느새 녹음이 이렇게 짙어졌네요.”
해맑게 웃는 모습이 소녀 같다. 녹화 중엔 볼 수 없었던 표정이다.
-녹화 내내 서 있으려면 다리 아프지 않아요?
“괜찮아요. 앉아서 진행하면 안정감은 주지만 역동성이 떨어져요. 다양한 시도를 하고 나서 지금의 구도가 가장 적합하다는 결론을 내렸어요.”
-출연자가 갑작스럽게 바뀌어서 난감했겠어요.
“처음엔 당황스러웠죠. 그런데 학교 다닐 때도 ‘초치기’ 공부할 때 집중이 더 잘 되잖아요. 시간이 없는 만큼 집중력이 발휘됐어요. 다행이죠.”
방송가에서 이금희 아나운서는 준비를 철저히 하기로 정평이 나 있다. ‘파워인터뷰’만 하더라도 이번 같은 돌발상황이 아니면 인터뷰 자료를 찾는 데만 꼬박 한나절을 투자한다. 다른 프로그램에 임할 때도 “광고 카피라이터가 촌철살인의 카피를 얻기 위해 끊임없이 생각에 몰두하는 것과 마찬가지”로 정성을 다한다. 5월 초, 기자가 인터뷰 섭외를 위해 처음 전화를 걸었을 때도 그는 다음날 자신이 진행하는 라디오 프로그램에 게스트로 출연하는 영화배우 박용우의 영화를 보기 위해 극장에 있었다.
-녹화 때 김원기 전 국회의장에게서 눈을 떼지 않는 모습이 인상적이었어요.
“예전에 토크쇼에 게스트로 출연한 적이 있는데 진행자가 저한테 시선을 안 주더라고요. 저는 그분한테 얘기하고 싶은데 다른 데 시선을 두고 있으니 민망했죠. 그때 명심한 게 ‘진행자는 무슨 일이 있어도 게스트를 쳐다봐야 한다’예요. 출연자는 믿을 사람이 진행자밖에 없어요. 진행자는 질문을 한두 개 놓치더라도 출연자를 계속 쳐다보는 게 낫다고 생각해요. 심리적으로 안정돼야 속 얘기가 나오잖아요.”
지난해 11월5일 첫 방송을 시작한 ‘파워인터뷰’는 사회적으로 이슈가 될 만한 인물을 초대해 진행자가 4명의 패널과 함께 궁금증을 풀어가는 시사교양 토크쇼다. 이 프로그램의 단독 MC로 이금희 아나운서가 발탁됐을 때 화제를 불러일으킨 것은 당연했다. 사람들의 관심은 지금껏 온화하고 친근한 이미지로 일관해온 그가 시사 인터뷰어로 어떤 변신을 꾀할지에 쏠렸다.
그러나 이 아나운서는 ‘시사 인터뷰어는 날카롭고 공격적이어야 한다’는 고정관념을 깸으로써 일반의 예상을 깼다. 공격적인 질문은 대체로 패널들 몫으로 돌리고, 그는 “한 사람을 온전히 들여다볼 수 있도록 분위기를 이끄는” 가장 그다운 모습을 보여줬다.
“방송에서 제가 서 있는 위치가 바로 제 역할을 상징해요. 게스트에게도, 패널에게도 치우치지 않고 상호 대화가 잘 진행되도록 연결하는 다리 역할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