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970년 평화봉사단으로 한국과 인연을 맺은 뒤 30년 넘게 한국의 무속을 연구하고 있는 로렐 켄덜 교수.
과거의 시점을 음력으로 기억하고, 자연스럽게 ‘삼신할머니’를 운운하는 로렐 켄덜(Laurel Kendall·58) 미국 컬럼비아대 교수는 1970년대부터 한국 여성의 삶과 무속에 대해 연구하고 있는 인류학자다. 5월 말 한국학중앙연구원 초청으로 방한한 그는 ‘한국 무당과 자본주의의 신(神)들’ ‘배고픈 귀신과 현대 한국의 소비문화’ ‘이사 다니는 신과 변화하는 서울의 경관’ ‘무당, 영매, 그리고 소품의 힘: 한국과 베트남 비교’ 등 흥미로운 주제로 네 차례에 걸쳐 특강을 했다.
특강 주제들에서 짐작되듯 그의 무속 연구는 민속학자들의 그것과 다르다. 한국인에 의한 무속 연구가 주로 사라져가는 전통을 기록하거나 보존하려는 작업의 일환이라면 그의 연구는 무속과 현재 한국인 삶의 관계에 초점을 맞춘다. 굿과 같은 무속의례와 한국의 젠더 문제, 소비문화의 연관성을 연구했다.
켄덜 교수가 3주간의 방한 일정을 마치고 한국을 떠나기 전날인 6월9일, 한국학중앙연구원 내 그의 숙소를 찾았다.
여자가 주도하는 굿판
-무속을 설명하는 용어는 한국인에게도 낯선데, 공부하기 어렵지 않았나요.
“매일 읽고 쓰는 것들이니까 그건 괜찮아요. 문제는 한국말을 하는 거죠. 한국말을 어떻게 배웠냐고 물으면 ‘눈물 흘리면서 배웠다’고 말해요. 제 아들이-한국 아이를 입양했는데-고등학교에 입학하면서 한국말을 배우고 싶다고 하기에 한국인 유학생을 가정교사로 뒀어요. 어느 날, 너무 어렵다고 울더라고요. 그래서 엄마도 울면서 배웠다고 했지요(웃음).”
켄덜 교수는 캘리포니아 주립대(버클리) 인류학과를 졸업했다. 대학 3학년 때 홍콩에서 1년 유학하며 동아시아를 인류학적으로 연구해야겠다고 마음먹은 그는 대학 졸업 후 아시아 지역 파견을 희망하며 평화봉사단에 입단했다. 그리고 한국과 인연이 닿았다. 잘 모르지만 흥미로울 것 같았다. 1970년 평화봉사단원으로 한국에 와서는 연세대 외국어학당에서 영어를 가르쳤다.
한국은 그의 기대를 저버리지 않았다. 그가 거처하던 하숙집이 있는 신촌의 골목골목에선 종종 호기심을 자극하는 일들이 벌어졌다. 당시엔 이름조차 알 수 없던 징과 꽹과리 같은 악기 소리가 이끄는 곳으로 가보면 대문 밖까지 사람이 모여든 집 안에서 낯선 광경이 펼쳐졌다. 화려한 차림을 한 여성이 역동적으로 움직이고, 그 주위에서 또 다른 여성들이 간절하게 빌고 있었다.
“참 이상했어요. 한국의 남존여비 사상 때문에 속상한 일이 많았는데, 우연히 굿하는 걸 보니 대감이나 장군 차림을 한 사람이 다 여자인 거예요. 남자들은 그 광경을 몰래 훔쳐보고 있고, 신기했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