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09층 높이의 스트라토스피어타워 전망대에서 내려다본 라스베이거스 중심대로(Strip)의 야경.
슬슬 지루함을 견디기 어려워질 무렵, 이제 막 조성공사가 끝난 듯한 택지들이 눈에 들어온다. 멀리 형형색색의 입간판도 보이기 시작한다. 곧 이어 나타나는 호텔과 카지노, 고층건물들. 사막 한가운데서 마치 신기루처럼 초대형 도시가 솟아오른다. 라스베이거스다.
사실 라스베이거스 진입로는 밤에 달리는 게 제격이란다. 불빛도 없는 사막길을 달리다가 갑자기 나타나는 형형색색의 네온사인과 화려한 조명을 만나는 놀라움이 일품이기 때문이다. 한국에서 온 관광객 중 상당수가 로스앤젤레스에서 비행기를 내려 자동차로 사막을 건너 이곳에 이르곤 했다. 9월22일 인천-라스베이거스를 직항으로 연결하는 대한항공이 취항하면 사라지게 될 풍경 가운데 하나다.
밤이 낮보다 아름다운 것은 진입로만이 아니다. 라스베이거스의 모든 거리는 밤이 되어야 비로소 피어난다. 저녁 10시를 넘으면 인적조차 찾기 어려운 미국의 다른 도시들과는 달리, 호텔이 줄지어 선 이 도시의 중심대로에서는 새벽 2시까지 택시를 잡기가 어렵다. 거리를 달리는 버스도 만원이긴 마찬가지다. 거리를 대낮처럼 밝힌 네온사인 아래에서 이국의 관광객은 숨이 막힐 정도로 흥분에 빠진다.
말이 난 김에 험프리 보가트나 워런 비티에게 어울릴 법한 질문을 하나 던져보자. 거리에도 주인이 있다면, 이 ‘밤의 거리’의 주인은 과연 누구일까. 독자에게는 다소 실망스럽겠지만, 굳이 꼽자면 정답은 초대형 호텔체인 MGM미라지사(社)다. 라스베이거스를 상징하던 마피아는 공식적으로는 이 도시의 장악력을 상실한 지 오래. 마피아가 치안을 담당해 경찰이 안 보인다는 것도 옛말일 뿐이다.
라스베이거스에 존재하는 총 13만3000여 객실 가운데 4분의 1을 소유한 MGM미라지사는, 중심대로(Strip)에만 10개의 호텔을 갖고 있다. MGM미라지사는 1990년대까지의 라스베이거스를 한마디로 정의할 수 있는 ‘초대형 호텔과 초대형 카지노 전략’의 대표주자다. 회사의 모태가 된 MGM그랜드 호텔은 총 5005개의 엄청난 객실수로 기네스북에 올라있다. 화려한 치장 없이 세 방향 직각으로 뻗은 이 덩치 큰 초록색 건물이, 주말마다 만원을 기록하며 하룻밤에 2000만달러 이상을 벌어들였다.
객실이 많은 만큼 버는 돈도 많았던 호텔은 곧 도시의 또 다른 대형 호텔 미라지와 합병했고, 계속해서 인근에 서 있던 경쟁사들의 호텔을 수십억 달러의 현금을 주고 차례차례 인수한다. 중심대로의 남쪽 끝은 오로지 이 회사가 소유한 호텔로만 이뤄져 있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계열 호텔들을 연결하는 무료전차를 공공 대중교통수단과는 별도로 운영할 정도다.
MGM미라지 계열 호텔들은 하나로 뭉치기 이전부터 콘셉트 건축 전략을 성공적으로 구사해왔다는 공통점을 갖고 있다. 호텔마다 옛이야기든 역사의 한 페이지든 상상으로만 접할 수 있던 공간을 고스란히 재현해놓는 식이다. 중세를 배경으로 하는 엑스칼리버 호텔은 아서왕과 원탁의 기사, 로빈훗과 셔우드 숲을 테마로 실내를 꾸미고 이름을 붙여놓았다. 매일밤 열리는 공연도 마상(馬上)창술시합이 테마다. 호텔 룩소르는 아예 23층 건물 자체가 피라미드다. 초대형 스핑크스 모양의 입구로 들어서면 피라미드 벽에 객실이 배치되어 있고 피라미드 속은 텅 비어 있는 놀라운 광경을 보여준다. 카지노 종업원들도 이집트풍 옷차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