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신중화주의’ 윤휘탁 지음/푸른역사/ 475쪽/2만5000원
그런데 아편전쟁 이후 강압에 의해 식민지보다 못한 ‘차식민지(次植民地)’로 전락하는 굴욕의 시대를 맞아 중국 중심의 천하에 대한 중국인의 자부심은 여지없이 깨졌다. 근현대 중국인이 경험한 굴욕의 저류에는 서구에 비해 경제적으로 낙후하고, 군사적으로 열등하다는 현상적인 문제뿐 아니라 ‘유일한 보편’으로 자부해 오던 자신들의 문화가 낙후와 열등을 초래했다는 문명사적 위기의식이 깔려 있었다.
굴욕의 근대사를 막 통과한 현 시점에 중국에서는 개혁·개방의 과실(果實)을 바탕으로 ‘중화’에 대한 자신감을 점차 회복하고 있는 듯한 양상이 곳곳에서 감지된다. ‘굴기(푞起)’하는 중국은 이제 상식이 되었으며, 개혁·개방 이래 ‘현대화 건설은 놀라운 성취’를 일구어 “중국을 세계 강국의 대열에 우뚝 솟아오르게 하였다”는 자부심을 공공연히 드러낸다.
이것은 지난 세기 천하의 중심에서 밀려나 동아시아의 병자(‘東亞의 病夫’)라는 멸시를 받으면서 지난하게 탐색했던 강한 중국의 회복이 상당 정도 성취되었음을 의미한다. 또한 굴욕의 지난 세기와 전혀 다른, 어쩌면 세계의 중심이었던 과거의 영화를 떠올리게 하는 국격(國格)으로 세계와 소통하기 시작했음을 의미하기도 한다. 논자에 따라서는 이러한 변화를 전통시대 중국 중심의 천하가 현대적인 양상으로 재현되는 조짐으로 해석할 수 있을 것이다. ‘신중화주의’도 그러한 논지를 기저에 깔고 있다.
‘중화민족 대가정 만들기’
오랫동안 동북공정(東北工程) 문제에 천착해 온 중국사 연구자인 저자 윤휘탁(고구려연구재단 연구위원)은 그동안 긴 역사적 호흡으로, 자신감을 회복한 중국의 거시적 국가 발전 전략이라는 차원에서 중국의 대(對)한반도 인식 및 전략 그리고 최근 쟁점이 된 동북공정 문제를 조망하는 연구를 진행해왔다. 이 책은 그동안의 연구 성과를 ‘신중화주의’라는 키워드를 통해 종합하는 한편 자신의 기존 연구를 수정 보완해 출판한 것이다.
이 책의 대전제는 한반도 역사에 대한 중국의 인식에는 중국 나름의 중화주의적 논리가 일관되게 작용한다는 것이다. 동북공정을 비롯한 한반도 관련 역사 서술과 한반도(혹은 동북아) 전략 또한 이러한 논리가 기저에 깔려 있다고 판단한다. 그러므로 필자는 우리 사회에서 수많은 논란을 불러일으킨 동북공정 그리고 중국의 한반도 전략을 근원적으로 이해하기 위해서는 ‘신중화주의’에 주목하지 않으면 안 된다고 강조한다.
필자는 중국의 통일적 다민족 국가론(多元一體格局論)인 ‘중화민족 대가정 만들기’를 신중화주의로 이해하고, 그 실체를 국가이념, 역사이론, 민족통합정책의 측면에서 밀도 있게 분석하였다.
국가이념과 관련해서는 사회주의 정신문명 건설론과 애국주의(교육론)에서 모색되고 있는 중화민족 대가정 만들기의 실태를 분석하였다. 개인 보다는 국가와 인민의 이익을 우선하는 사회주의 정신문명 건설론은 개별적인 소수민족의 이익을 중화민족 전체의 이익에 종속시키는 논리로 작용한다는 점에서 ‘대가정 만들기’의 대내적 통합 이념이라고 설명한다. 애국주의(교육론)는 국민국가적 민족주의 외에 집단주의적 사회주의에 대한 애정까지 포괄한다는 점에서 또한 인민통합 이념의 기능을 가진다고 해석한다.
중국의 역사 왜곡은 정치 문제
역사이론과 관련해서는 이른바 통일적 다민족 국가론 분석을 통해 중화민족 대가정 만들기의 역사적 당위성을 분석하였다. 역사학에서 진행되는 대가정 만들기는 통일적 다민족국가론인 바, 이것은 현재 중국의 영토 안에 존재하는 모든 민족과 그 역사는 중국의 역사이며, 그 영역은 중국의 영역이라는 주장이다. 필자는 이 이론이 현재적 필요에 의해 가공되고 부풀려진 결과론적 역사인식이며, 국가주의적 역사관(觀)이라 비판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