픽션과 논픽션 넘나드는 구성
이 책의 저자는 ‘김춘추의 집권과정 연구’라는 주제로 박사학위를 받은 전문연구자이다. 이 책은 저자의 학문적 성과를 재구성한 것으로, 김춘추 개인은 물론 그가 살던 시대에 대한 우리 학계의 연구 성과가 곳곳에 녹아 있다. 그러면서도 이 책 어느 구석에도 무미건조하기 십상인 학술적 냄새는 나지 않는다. 오히려 마치 한 편의 역사소설처럼 일반 독자를 부담 없이 역사의 현장으로 이끌어가는 뛰어난 필치가 돋보인다.
이 책은 독특한 서술 구성을 갖추고 있다. 즉 적절하게 픽션을 섞어가면서 당시의 역사상을 생동감 넘치게 복원했다. 하지만 이는 이 책의 장점이면서 단점이기도 하다. 어디까지가 사료(史料)에 근거한 복원이며 어디까지가 저자의 상상력에 의존한 픽션인지 그 경계가 불투명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런 단점도 단지 역사 연구자가 느끼는 아쉬움일 뿐, 일반 독자에게는 오히려 기운 자국이 없는 매끈한 서술과 구성이 반가울 수도 있다.
또한 이 책이 단지 김춘추의 평전이 아니라 하나의 역사책으로서 가치를 갖는 것은 책의 곳곳에서 7세기 신라의 사회상을 종횡으로 엮어내고 있기 때문이다. 사실 김춘추가 살던 시대가 격변의 시기인 만큼, 당시 많은 인물의 자취가 풍부하게 전해지고 있음은 그나마 다행스럽다. ‘삼국사기’ 열전과 ‘삼국유사’에 실린 설화의 주인공 중 상당수가 이 시기의 인물이다. 저자는 설씨녀 설화를 통해 전쟁으로 인한 민중의 고난에도 살가운 눈길을 주고, 귀산과 추항·죽지랑 같은 화랑과 낭도를 등장시켜 신라사회의 구석구석을 보여주고, 원광과 자장 같은 승려를 통해 당시 불교계의 속내도 짚어낸다.
이런 설화적인 사료들에서 건조한 역사상을 추출하기란 쉽지 않다. 하지만 저자가 부담 없이 설화를 재단하며 득의의 독법을 자유롭게 구사하는 데에는 픽션적 성격을 갖고 있는 책의 구성도 한몫을 하고 있다. 그리고 책의 중간 중간에 제시된 관련 원사료는 독자로 하여금 저자의 사료 해석 방식을 가늠하게 한다는 점에서도 유용하다.
김춘추에 대한 지나친 애정
저자는 김춘추를 자신의 운명과 치열하게 맞서 불굴의 의지를 불태운 한 인간으로 애써 그려내고 있다. 나아가 김춘추와 그의 가족들이 보여준 값진 희생을 부조하고 있다. 신라의 삼국통일을 곧 김춘추 가문의 정신적 승리로 보는 평가는 아마도 오늘 우리에게 주는 저자의 최종 메시지가 아닌가 싶다.
하지만 한편으로는 저자가 김춘추에게 지나치게 매료됐다는 인상이 짙게 묻어나기도 한다. 한 인간에 대한 애정이 지나치다보니, 오직 그만이 두드러질 뿐 나머지 신라인들은 반대로 왜소해졌다. 진평왕에서 선덕왕·진덕왕으로 이어지는 신라왕에 대한 성격 묘사는 납득하기 어렵다. 심지어 김유신마저 김춘추가 없으면 한낱 졸장부에 불과했으리라고 보는 듯하다. 탐욕과 무능과 나약함으로 가득한 이들은 김춘추를 돋보이게 하기 위한 조연에 지나지 않는다. ‘과연 그럴까?’ 하는 의문을 지울 수 없다. 한 인물에 대해 인간적 성격을 부여하는 작업이 얼마나 위험한지 다시 생각하게 한다.
간혹 저자의 부주의도 눈에 띈다. 주로 픽션으로 구성한 문장에서 자주 나타나는데, 예컨대 김춘추가 어릴 적 읽었다는 ‘통전’이란 책은 801년에 출간된 책이니 시대가 맞지 않다. 신라 유학생이 ‘당태종’ 운운하는 대목도 태종이 묘호(廟號)임을 생각하면 상식적으로 옳지 않은 표현이며, 또 고구려는 당시 ‘고려’로 불렸음을 염두에 둬야 했다. 픽션적 구성을 위해서는 현실성을 높여줄 이러한 장치들에 좀더 심혈을 기울였어야 했다.
요즘 고구려가 뜨고 있다. 고구려의 시조 주몽은 물론 연개소문이나 고구려의 계승자 대조영이 사극의 주인공으로 등장했다. 잊힌 과거의 영광에 대한 향수 때문일까. 그러나 멸망한 왕조를 동경하면서도 정작 삼국통합을 이룬 신라에 대한 홀대는 역사에서 교훈을 찾는 올바른 자세가 아니다. 이 책은 역사의 승리자였던 김춘추가 역사 서술에서도 제자리를 잡을 수 있도록 하는 데 좋은 자극이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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