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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는 음기로 다스려라

코는 음기로 다스려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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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런 코를 많이 흘리면 공냥이 넓어서 부자 된다는 이야기를 들은 적이 있다. 공냥이 무슨 뜻인지는 몰라도 코 흘리는 일이 일상이었던 우리의 유년에는 나름 듣기 좋은 말이었다. 그런데 이상하다. 왜 그 많던 누런 코는 사라지고 맑은 코의 알레르기가 우리를 괴롭힐까.

이뿐만 아니라 아이들 대부분이 싯누런 콧물을 줄곧 인중에 매달고 다녔다. 인중을 타고 흘러내린 두 줄기의 콧물이 입술 언저리에 닿을락 말락 하면, 그것을 본능적으로 알아차린 아이들은 훌쩍 숨을 들이마셨다. 그러면 두 줄기의 콧물은 잽싸게 콧구멍 속으로 퇴각해서 삽시간에 모습을 감추고 인중에는 두 줄기의 콧물이 쉴 새 없이 들락거린 하얀 흔적이 선명하게 남았다.

그러나 콧속으로 들어간 콧물은 어느새 다시 모습을 드러내어 인중을 타고 내린다. 시달리다 못한 아이가 이번에는 방법을 달리하여 옷소매로 인중을 쓱 문지른다. 그래서 대다수 아이들의 윗도리 양쪽 소매는 말라붙은 콧물로 반질반질 윤이 났다.

소설가 김주영은 어릴 적 콧물 얘기를 이처럼 실감나게 묘사했다. 그런데 지금은 누런 코를 거의 보기 힘들다. 초등학교 입학식 때 명찰 밑에 손수건을 매달던 광경도 사라졌다. 지난 세월 동안 거리 풍경뿐 아니라 코에도 많은 변화가 있었던 것이다. 한의원을 열고 코를 치료한 지도 20년이 넘었다. 유행이 지나가고 사람이 달라졌지만, 오래전 치료해준 어린이 환자가 어른이 되어 다시 찾아오기도 한다.

과거 코 치료의 대세는 바로 누런 코, 즉 축농증을 없애는 것이었다. ‘동의보감’에도 누런 코를 치료하는 처방이 많이 나온다. 특히 부비동(副鼻洞)에 있는 코를 빨아내 배설시키는 외용약으로 유명한 것이 과체산인데 ‘과체(瓜?)’는 참외꼭지를 가리키는 약재 용어다. 이 약엔 참외꼭지를 비롯해 4가지의 약물이 더 들어가는데, 코에 불어넣으면 강력한 배농작용을 해 누런 코가 줄줄 흐르면서 증상이 깨끗해지곤 했다.



이 약물을 넣으면 코가 얼마나 많이 나오는지 국물을 떠먹기 힘들 정도였다. 어느 환자가 겪은 얘기다. 과체산으로 코를 치료한 후 딸네 집에 들렀다. 딸은 엄마가 오랜만에 오셨다며 쇠고깃국에 파를 듬뿍 넣어 맵게 끓였다. 그런데 사위와 마주하고 국을 먹다가 코에 끼워넣어둔 과체산 솜뭉치가 흘러내려 국에 빠지고 말았다. 환자는 아까운 생각에 쇠고깃국 속의 솜뭉치를 숟가락으로 떠내고는 다시 코 안으로 밀어넣었다. 그런데 이 광경을 본 사위가 “아니, 장모님 쇠고기를 왜 코에 넣어요?”라고 물어 얼굴을 붉혔다고 한다.

두 얼굴의 알레르기

코는 음기로 다스려라
요즘도 가끔 누런 코를 흘리는 환자들이 병원을 찾는다. 그래서 참외꼭지를 사다가 가루약을 만들어 써봤는데, 콧물이 별로 나오지 않아서 왠지 약효가 예전만 못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참외꼭지가 중국산이라 그런가 싶어서 집에서 먹던 국내산 참외꼭지를 말려 가루약을 만들어보기도 했다. 그래도 약효는 그저 그랬다. 왜 그럴까. 하우스에서 재배하는 참외이다보니 외꼭지가 제대로 쓴맛을 내지 못하는 것이다. 외꼭지는 햇빛을 많이 봐야 쓴맛이 강해지고 쓴맛이 코 안의 농을 배설시킨다.

알레르기 비염의 존재를 알게 된 것도 역설적으로 과체산 덕분이었다. 환자의 코에 과체산을 넣자 콧물이 폭발적으로 쏟아진 것이다. 그냥 빠져나오는 게 아니라 수도꼭지를 틀어놓은 듯 줄줄 흘러내렸다. 자극이 강해선지 눈도 충혈돼 쳐다보기가 민망할 정도였다. 약간의 자극에도 심하게 반응하는 질환이 있다는 것을 두 눈으로 직접 보니 이 질환이 얼마나 무서운 것인지 감이 왔다.

하지만 그 뒤부터 알레르기성 비염이 ‘대세’가 될 줄은 몰랐다. 그 무렵 알레르기성 비염의 치료법이 나름대로 구체화됐다. 의외로 소청룡탕이라는 처방이 효과를 봤다. ‘동의보감’에도 맑은 콧물과 재채기에 대한 언급은 있었지만, 구체적인 치료법은 없었다. 기껏해야 몇 쪽에 불과한 처방이 전부였다. 소청룡탕은 그 뛰어난 효과에 힘입어 알레르기 비염의 명방(名方)으로 퍼져나갔고, 많은 한의원이 ‘비염 전문’으로 간판을 내건 것도 이러한 처방의 연장선에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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