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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섭 시각으로 밝혀낸 한국인의 뿌리

통섭 시각으로 밝혀낸 한국인의 뿌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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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섭 시각으로 밝혀낸 한국인의 뿌리

‘한국인의 기원’<br>이홍규 지음, 우리역사연구재단, 271쪽, 1만8000원

걸프전쟁을 취재하러 갔을 때다. 요르단-이라크 국경 부근의 황량한 들판에서 유목민 무리를 만난 적이 있다. 그들은 ‘베두인’이라 불린다. 양떼를 몰고 풀이 자라는 곳을 찾아 평생 떠돌이 삶을 살아가는 이들이다. 그들과 잠시 대화를 나누었다. 요르단인 택시기사가 통역을 맡았다. 30명가량의 유목민 가운데 족장 격인 40대 남자가 주로 대답했다.

-어느 나라 사람인가?

“우리는 국적이 없다. 어느 나라든 가고 싶은 대로 간다.”

-국경을 넘을 때 제재를 받지 않나?

“이 넓은 사막에 국경 따위가 무슨 소용인가?”



-이웃 국가끼리 전쟁을 하는데….

“인간이 땅에 금을 긋고 이 나라, 저 나라 구분하니 분쟁이 생긴다. 어리석은 짓이다.”

현자(賢者)의 잠언(箴言) 같아서 묘한 여운을 남겼다. 이란-이라크 전쟁, 이라크-쿠웨이트 전쟁, 이스라엘-이집트 전쟁 등이 그들의 눈에는 부질없는 욕망의 충돌로 비칠 것이다. 베두인은 신분증이니 여권이니 하는 증명서도 갖지 않았다.

21세기의 여러 특징 가운데 하나로 해외여행에 필요한 ‘여권’이 꼽힐 것이다. 국민 대다수가 이 증서를 갖고 있으니 말이다. 국제공항에서 강대국 여권을 가진 이들은 우쭐한다. 미국 국적을 얻으려 사생결단 발버둥치는 사람들이 세계 각국에 수두룩하다. 똑같은 제품이라도 제조국가에 따라 값 차이가 엄청나다. ‘국가 브랜드’라는 말이 나올 정도다. 한국에서는 국가 브랜드위원회까지 만들었다.

한국인…. 한반도에 옹기종기 모여 살다가 100여 년 전부터 지구촌 곳곳에 퍼져나가기 시작했다. 코리안 디아스포라(Diaspora)라는 말까지 생겼다. 아프리카 짐바브웨 대학에 유학을 가는 한국인 청년도 보았으니 한국인의 진취성이 얼마나 드높은가.

한국인의 핏속에는 혹시 강렬한 유목민족 기질이 흐르지 않을까. 한국인 조상은 어디에서 와서 한반도에 정착했을까. 이런 의문을 풀어주는 역저(力著) ‘한국인의 기원’이 나왔다. 의학자인 이홍규(66) 서울대 명예교수가 유전학, 고고학, 언어학, 신화학 등 여러 학문을 통섭(統攝)하는 시각으로 정리했다.

당뇨병 연구하다 한국인 뿌리 탐구

저자의 프로필을 살펴보자. 서울대 의대를 나와 서울대 대학원에서 내과학 전공으로 박사학위를 받았다. 서울대 의대 교수로 오래 봉직하며 당뇨병 연구에 혁혁한 성과를 이루었다. 저자는 한국인에게 당뇨병을 유발하는 유전자를 탐구하다 다른 나라의 민족과 다른 양상임을 발견했다. 이를 계기로 유전학에 발을 디디면서 한국인의 뿌리를 캐는 작업에 몰입했다. 저자는 미토콘드리아 DNA가 당뇨병의 ‘원인 유전자’이며 이 DNA가 인류의 이동을 알려준다는 사실을 알게 됐다.

저자는 서문에서 “인류의 이동과정에서 생긴 여러 인종의 서로 다른 체질이 당뇨병과 어떤 관련이 있을 것이란 의문이 생겨 주위의 여러분께 여쭈어보았으나 시원한 답을 얻지 못해 스스로 알아낼 수밖에 없었다”면서 “이것이 필자가 당뇨병을 연구하며 한국인의 형성과 기원을 추적하고 그 과정을 재구성하는 작업을 병행해온 연유”라고 밝혔다.

저자는 2001년 여러 전문가와 함께 ‘한국 바이칼 포럼’이란 학술 모임을 만들어 만주, 연해주, 시베리아, 중앙아시아 등을 답사했다. 이 포럼에 동참하는 전문가들의 면면을 보면 여러 학문이 융합해 새로운 지성이 탄생함을 짐작할 수 있겠다. 고고사학자인 최몽룡 서울대 교수, 주채혁 전 강원대 사학과 교수, 배재대 한국-시베리아센터의 이길주 교수, 봉우사상연구소의 정재승 소장, 단국대 유전학과 김욱 교수, 순천향대학의 언어학자 시미즈 기요시 교수, 언어학자인 이현복 서울대 명예교수 등이다.

유전자학이 발전함에 따라 인류 이동과 관련한 역사적 사실이 오늘날 구체적으로 입증되고 있다. 아메리카 인디언이 유라시아 대륙에서 베링해를 건너갔음이 유전자 분석으로 규명됐다. 분석 대상이 되는 것은 주로 Y염색체인데 몽골, 중국, 한국, 일본에서는 이 가운데 O형이 흔하다. 유럽인들은 주로 R형이다.

저자는 약 3만 년 전에 Y염색체 O형을 가진 동아시아 주류 세력이 북방에서 형성됐다고 본다. 구체적인 장소는 바이칼 호수 주변이라는 것. 바이칼 호수 부근의 말타 마을에는 2만3000년 전의 사람 주거지 유적이 남아 있다. 이곳은 소나무, 자작나무, 전나무 등 땔감이 많아 빙하기에 인류가 추위를 견디며 살아남기에 적합했다. 빙하기에 이들은 강풍과 추위에 적응하면서 체열 손실을 줄이기 위해 다부지고 뭉툭한 체형을 발달시켰다. 찬바람에 대처하려 눈은 작고 가늘게 찢어지고, 추위로부터 안구를 보호하기 위해 눈꺼풀에 지방이 두툼한 눈으로 진화했다. 한국인과 바이칼 호 주변에 사는 부리야트인이 혈연적으로 매우 가깝다는 사실은 모스크바유전학연구소의 자카로브 박사에 의해 규명되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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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승철│저널리스트 koyou33@empa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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