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기솔리 석불입상
이발소에 걸려 있는 풍경화에 삽입된 시로 기억되는, 알렉산드르 푸슈킨의 ‘인생’이라는 시다. 삶도 지나간 것은 그리움이 되긴 하지만, 솔직하게 말하자면 시는 삶의 고달픔을 노래한 것이나 다름 없다. 푸슈킨도 지독히 불행하고 힘든 인생을 살아온 비운의 시인이 아니던가.
고달픈 현실이 극에 달하면 반드시 나타나는 현상이 미래에 대한 신기루 같은 기대감이다. 그래서 통일신라가 부패해지자 미래를 책임지겠다는 자칭 미륵불 궁예가 등장해 후삼국시대를 열었다. 탐관오리가 득세하는 조선 중기에는 메시아 같은 인물인 홍길동이나 임꺽정 같은 의적이 등장한다.
꼬리에 꼬리를 무는 야산
시집살이가 얼마나 모진지 ‘나도야 죽어 후생가면 시집살이 안 하겠다’는 민요(상주 모심기)까지 있는 것을 보면 남녀노소를 막론하고 이 땅의 사람들은 현세의 삶이 녹록지 않았나 보다. 이런 사람들은 대개 내세를 꿈꾸거나 변혁을 기대한다. 그래서 홍길동, 임꺽정, 또 시간을 좀더 거슬러 올라가면 미륵불을 자처했던 궁예도 나온 것이리라.
기실 민초들의 삶은 수천 년 동안 미륵을 기다리며 산 삶이나 마찬가지다. 그 미륵이 아들딸의 성공일 수도 있고, 자신이 지지하는 정치가의 등장일 수도 있겠다. 어쩌면 인권과 복지가 잘 구현되는 민주주의가 곧 현대에 는 미륵일 수도 있을 것이다.

용화사 스님.
경기평야가 끝나는 죽산면은 기호지방답지 않게 비록 높이는 백두대간에 못 미치지만 야산이 꼬리에 꼬리를 물고 늘어서 있다. 그 가운데 곳곳에 등장하는 것이 미륵불이다. 여기도 미륵불, 저기도 미륵불, 조금 과장해서 말하면 온통 미륵불 천지다. 도대체 무슨 까닭일까. 이 지역에 미륵이 무더기로 등장하는 원인에 대해 논란이 분분하지만 대개는 궁예가 한동안 이곳에서 똬리를 튼 것을 그 원인으로 보고 있다.
죽산면 죽산 2리 죽주산성 둥치에 가면 거대한 미륵불이 등장한다. 이름하여 매산리 석불입상(경기도 유형문화재 37호)이다. 한반도에 흩어져 있는 대개의 미륵불이 그렇듯이 매산리 미륵불도 조형미는 완전히 ‘꽝’이다. 이름 없는 평범한 석수장이들의 망치와 정이 다듬은 이 미륵불은 그래서 국보는커녕 보물 축에도 끼지 못한다. 이 미륵불은 비바람에 나 홀로 서서 사바 세계를 내려다보고 있다.
매산리 미륵불의 탄생 시기는 고려 초로 추정된다. 후삼국의 피비린내에 진저리를 친 민초들이 평화와 행복이 가득한 유토피아와 같은 내세를 꿈꾸게 된 시기와 일치한다. 이 같은 염원이 미륵으로 등장하게 되었다고 표지판은 전한다. 민초들의 소박한 염원을 담다보니 유명한 석수장이가 아닌 이웃집 석수장수가 나서게 되고 그런 탓에 미륵불의 얼굴 또한 못생기고 코믹하다.
이곳의 여러 미륵불은 이목구비가 비례에 맞지 않아 마주하면 웃음부터 나온다. 마치 머슴을 연상시킨다. 석가모니 다음으로 부처가 될 것으로 알려진 미륵은 보살과 부처의 두 가지 특징을 함께 지니고 있다. 모습 또한 보살상과 불상의 두 가지 형태를 띠는 부조화스러운 것이 많다.

두미리 미륵불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