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5년 7월호

‘밥상 건강’이 위협받고 있다!

뼈 약하게 하는 우유, 성인병 일으키는 꽃등심

  • 글: 우석훈 초록정치연대 정책실장 wasang2@naver.com

    입력2005-06-28 11:41: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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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발육촉진제가 든 우유는 신체불균형을 초래하고, 여러 음식에 다량 함유된 화학조미료는 아토피성 피부염 같은 장애를 일으킨다. 특히 1970년대 출생자들이 본격적으로 출산하기 시작한 이후 아토피를 앓는 아이가 급증, 음식물 오염이 대를 이어 영향을 끼치는 것으로 드러났다. 국산 친환경농산물이 전체 농산물의 2%밖에 되지 않는 현실에서 어떻게 하면 안심하고 음식을 먹을 수 있을까.
    ‘밥상 건강’이 위협받고 있다!
    미국에는 ‘정크 푸드(junk food)’라 부르는 음식물이 있다. 직역하면 ‘쓰레기 음식’이다. 농약을 잔뜩 친 오렌지나 바나나, 유전자 조작 사료를 먹여 키운 저가의 쇠고기, 중남미에서 단작(單作)이라고 부르는 플랜테이션에서 대량 생산된 말린 과일 같은 것을 위주로 한 음식물도 대부분 정크 푸드로 분류된다.

    화학조미료에 ‘전’ 음식

    이런 기준을 적용하면 우리나라 식당(일부 고급식당도 포함된다)에서 파는 대다수 음식도 정크 푸드, 즉 쓰레기 음식으로 분류할 수밖에 없다. 글루탐산나트륨이 주성분인 화학조미료가 많이 들어 있어 이른바 ‘중국음식증후군’이라고 하는 화학조미료 쇼크를 일으킬 수 있는 음식들인 데다가, 음식 재료에 대한 유통 관리에도 미심쩍은 부분이 많기 때문이다.

    홍콩, 싱가포르, 미국, 호주에서는 세 살 미만의 유아가 먹는 음식에 화학조미료를 첨가하지 못하게 법으로 금지하고 있다. 이 시기에 화학조미료를 먹으면 아토피성 피부염을 앓는 특이체질이 되어 평생 고통스럽게 살아가야 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우리나라에서 생산되는 라면 한 봉지에 든 화학조미료는 유엔 기준으로 아이의 하루 최대섭취량을 훌쩍 넘어선다. 여기에 스낵 같은 것을 조금 더 먹으면, 아이는 이미 음식만으로도 ‘쇼크’를 일으킬 만한 조건이 아이에게 주어지는 것이다.



    우리나라 소비자들은 휴대전화를 고를 때는 무척이나 까다롭지만 음식 앞에선 대단히 관대하다. 사과를 칼로 깎아 먹어야 하면서도 아무렇지 않게 생각한다. 사실 사과를 깎아 먹는 것은 한국 사람뿐이다. 물론 우리도 처음부터 그랬던 건 아니다. 제상(祭床)에 사과나 배를 올릴 때에도 꼭지 부분만 잘랐다.

    하지만 1960년대 중화학공업 입국(立國)을 외치면서 맨 처음 투자한 것이 비교적 쉽게 접근할 수 있었던 요소비료와 살충제 산업이다. 이렇게 농약이 투입된 이후 우리는 과일을 깎아 먹여야 했다. 선진국에선 사과나 포도 같은 과일을 경작하면서 농약을 쓰지 않은 지 20년이 넘었지만 우리는 ‘당연하게’ 사과를 깎아 먹으며 농약을 피하려 조심한다. 하지만 음식 오염은 아무리 조심해도 개인적인 노력과 회피로는 해결되지 않는 문제다.

    사과는 일부 친환경 농가를 제외하면 유통단계로 넘어가기 직전에 농약 통에 담갔다 뺀다. 그렇게 하지 않으면 벌레가 생기기 때문이다. 사람 입에 좋은 것은 벌레 입에도 좋다. 소비자가 벌레먹 먹은 사과가 좋은 사과임을 깨닫기 전에는 사과를 농약 통에 담그는 일이 사라지기는 어렵다. 사실 사과나 포도 같은 과일은 영양분의 대부분이 껍질에 있기 때문에 깎아 먹으면 그야말로 쭉정이만 먹는 셈이다. 지금처럼 대처해서는 앞으로 10년이 지나도 이 문제가 해결될 것 같지 않다.

    신체 불균형 초래하는 발육촉진제

    ‘완전식품’이라고 하는 우유도 안전하지 않다. 조선시대에는 우유가 왕이나 먹는 귀한 음식이었다. 우유가 문제를 일으키기 시작한 것은 1990년대 이후다. 이 시기에 정부가 농가의 소득보전을 위해 농업보다 축산업을 장려하면서 현대식 대량축산이 시작됐다. 그런데 축산 장려가 너무 잘되다 보니 1990년대부터는 우유가 남아돌았다. 이때 우유 소비를 촉진하기 위해 생겨난 것이 이른바 ‘칼슘 신화’다. 하지만 이는 말 그대로 ‘신화’일 뿐이다.

    ‘밥상 건강’이 위협받고 있다!
    우유는 전형적인 산성 음식이기 때문에 우유를 먹으면 뼛속의 칼슘이나 몸 안의 칼륨이 우유를 중화하는 데 사용된다. 우유를 꾸준히 집중적으로 마시면 몸 안의 칼슘이 끊임없이 소모되는 것. 그래서 칼슘이 오히려 부족해지고 이 때문에 뼈 자체가 부실해질 수도 있다. 물론 우유에 들어 있는 칼슘의 성분은 우수하지만 그렇다고 하루에 1ℓ나 1.5ℓ씩 먹어서는 안 된다. 지나치면 모자람만 못하다.

    우유 신화의 결정판은 ‘우유를 많이 먹으면 키가 큰다’는 것이다. 물론 키가 크기는 한다. 제2차 세계대전 이후 우유 생산방식이 대형화하면서 우유에 발육촉진제를 넣었기 때문이다. 우유를 먹으면 키가 크는 것은 바로 이 촉진제 때문이다. 그런데 문제는 인체에 좋지 않다는 점이다. 크다는 것과 튼튼하다는 것은 전혀 다른 얘기다. 이렇게 인위적으로 키를 키울 경우 뼈를 비롯한 인체의 자연적 균형이 무너지면서 불균형이 초래된다.

    또한 우유를 생산하는 과정에 다량으로 사용되는 항생제와 같은 인위적인 물질들도 문제를 일으킬 수 있다. 우유 자체가 자연 상태의 사료가 아닌 옥수수 위주의 인공 합성 사료를 먹인 소에서 나온다는 점도 문제가 될 소지가 충분하다.

    몇몇 대안학교 아이들은 대체로 키가 작다. 이 아이들은 우유와 성분이 비슷한 산양유를 먹는다. 산양유에는 발육촉진제가 들어 있지 않다. 하지만 이 아이들은 대단히 건강하고 병에도 잘 안 걸린다. 체질마다 다르지만, 대개 아토피 증세를 앓는 아이들은 우유를 먹으면 민감한 반응을 보이지만 산양유를 먹으면 괜찮다. 사료의 차이 때문이다. 이런 소문이 나면서 산양유는 백화점에나 납품되는 ‘귀한’ 몸이 됐다. 그래서 정작 아토피를 심하게 앓는 아이들은 산양유를 먹기가 힘들게 됐다.

    한우에 대한 신화도 따져봐야 한다. ‘우리나라 소’라는 뜻의 한우는 품종보다 서식지에 따라 분류된다. 어떤 소라도 우리나라에서 자라면 한우가 된다. 반대로 우리나라 품종의 소도 미국에서 키워 도축하면 미국산 쇠고기가 되는 것이다. 국제적으로 쇠고기의 품질을 정하는 기준은 신선도와 지방 함유량인데, 지방 함유량을 ‘마블링(marbling)’이라고 한다. 이런 기준에서 볼 때 호주산 쇠고기를 최고로, 그 다음 등급으로 아르헨티나산 쇠고기를 친다. 우리나라에서 유통되는 한우는 마블링 기준으로 중저급 쇠고기에 해당한다. 하지만 우리는 무조건 한우가 최상이라고 생각한다.

    ‘밥상 건강’이 위협받고 있다!
    1990년대 중반부터 집중 보급되기 시작한 ‘꽃등심’에도 문제가 많다. 꽃등심 판정을 받기 위해서는 마블링이 좋아야, 즉 지방이 골고루 퍼져 있어야 한다. 그런데 지방을 만드는 과정에 문제가 발생한다. 소를 운동하지 못하게 가둬놓고 사료도 옥수수로 바꾸는 것이다. 옥수수가 초식동물의 소화기관을 거쳐 육질로 변한 것이 지방의 원성분이기 때문이다. 그러면 소에게 일종의 동맥경화 증세가 나타나면서 살에까지 지방분이 퍼진다. 이런 꽃등심은 성인병을 초래하는 침묵의 살인자다. 이미 미국에서는 스테이크가 성인병의 원인이라면서 자제하는 경향이 확산되고 있으나 우리나라엔 그런 의식조차 없다.

    꽃등심 같은 쇠고기나 우유가 식탁을 위협하는 요소가 된 것은 1990년대 국책사업으로 진행된 대량생산과 고수익 정책 때문이다. 국민은 정부 정책만 믿고 막연히 ‘몸에 좋겠지’라고 맹신하며 이런 식품들을 소비하고 있다.

    외국산 유기농 식품의 비밀

    우리나라 농산물 중에서 그나마 안심하고 먹을 수 있는 것 하나를 고르라면 ‘콩’을 꼽을 수 있다. 콩밭에는 잡초가 잘 자라기 때문에 파종하기 전에 제초제를 한 번 뿌린다. 이 문제만 풀면 우리나라 콩은 그 자체로 친환경 농업이라 할 만하다. 그렇지만 두부를 만들거나 콩나물을 기를 때 우리나라 콩을 사용하는 곳은 거의 없다. 유전자 조작 콩이라는 의심을 받는 것들이 유통되고 저가에 들어온 중국산 콩이 넘쳐난다. 무엇보다 우리나라 농가들이 콩 생산을 포기하기 때문이다. 적당한 수요처를 찾지 못해서다.

    슈퍼마켓에서 파는 이른바 ‘우리나라 두부’에 100% 우리나라 콩을 사용한 경우는 거의 없다. 수입산 콩을 섞는다. 수입산이 싸기도 하지만 우리나라 콩으론 수급을 맞추기 어렵기 때문이다. 그래서 가공업자들은 수입산을 쓴다. 이런 악순환이 계속되면서 소비자는 제대로 된 콩을 먹을 수 없다.

    최근 수요가 급증하고 있는 유기농 식품도 전혀 안전하지 않다. 고급 샌드위치 식당에서 파는 ‘유기농 샌드위치’라는 게 있다. 물론 터무니없이 비싸다. 이 샌드위치에는 호주에서 수입한 호밀 60%와 영국에서 수입한 호밀 40%를 넣어 만든 빵을 쓴다. 안전할까? 안전할 리가 없다. 인증을 해준 영국에서는 안전하겠지만, 이 호밀이 배에 실려 수에즈 운하를 거쳐 태평양을 돌아 부산 혹은 인천에 하역되어 강남의 유기농 샌드위치 식당까지 오는 석 달여 동안에 무슨 일이 벌어졌는지 아무도 모른다.

    ‘유기농’의 정의에는 그 지역에서 생산되고 유통기한을 엄격하게 관리해야 한다는 의미가 포함된다. 오래된 외국산 유기농은 말 그대로 어불성설이다. 슈퍼마켓에서 유기농이라고 표시된 식품들을 살펴보면 원산지가 미국, 캐나다, 독일, 스위스, 영국, 일본 등 정말 다양하다. 국제적인 ‘유기농’의 정의에 따르면 하다못해 생산지역을 벗어나도 유기농이 아니거늘 국가를 넘나드는 유기농이라? 유기농의 중요한 기준 중 하나가 유통기한이다. 석 달여 배를 타고 온 것을 과연 유기농 식품이라고 할 수 있을까.

    이런 밥상 위 음식물의 오염 결과는 아토피성 피부염 환자의 급증으로 나타난다. 아토피는 말 그대로 ‘이유를 알 수 없는 피부질환’이다. ‘태열’이라고도 하는데, 보통 한 살 전후에 사라지는 태열이 20세에도 사라지지 않는 것을 아토피라 한다. 알레르기 또는 유전이 원인이라는 의견이 있지만 아직 원인이 명확하게 밝혀지지 않았다. 몇 년 전부터는 성인에게도 아토피가 발생하기 시작했으니 태열이라는 말도 맞지 않는다.

    아토피는 단순한 피부병이라기보다 ‘아토피 정신질환’이라는 말이 나올 만큼 당사자들에겐 충격적인 현상이다. 아토피 증세를 앓는 자녀를 둔 어머니 100여 명을 만나보니 대다수가 스트레스성 비만 아니면 우울증 중 하나의 신경증을 가지고 있었다. 일부는 정신병으로 발전하기도 했다. 시부모나 남편에게 구박을 받는 경우가 많아 아이보다 어머니가 더 심한 정신적 스트레스에 시달리고 있었다.

    아이들 역시 저성장과 온갖 질환에 시달리며 사회생활을 정상적으로 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았다. 잠을 제대로 자지 못해 성장이 원활하지 않고, 아토피로 얼굴이 엉망이 되어 학교 가기를 싫어했다. 또 아토피는 ‘내부 면역체계 결핍’이 밖으로 드러난 현상이기 때문에 아토피 아이들은 감기에 잘 걸리고 사소한 독감이 폐렴으로 악화돼 천식을 앓기도 한다.

    게다가 치료약이 없어 스테로이드 계열의 연고를 바르는데, 오래 사용하면 부작용이 심하게 나타난다. 병원에서도 달리 처방을 내릴 수 없어 당장 아픈 것만 가라앉히는 형편이다.

    1970년대생 출산 후 아토피 급증

    ‘밥상 건강’이 위협받고 있다!

    <2003년 지역별 0~4세 유아 100명당 아토피 환자수>



    2004년 국민건강보험공단이 국회 국정감사에 제출한 자료(좌측 그래프 참고)를 살펴보자. 이는 자가치료나 한방치료는 제외하고 병원에서 아토피 증세로 진료받은 아이들에 대한 통계이므로 실제보다 적게 추산됐을 가능성이 높다.

    0~4세 유아를 기준, 전국적으로 100명당 17.8명의 아토피 환자가 있다. 지역별로 보면 대구 중구가 64.2%로 전국에서 가장 높다. 그야말로 세 아이 중 두 명이 아토피를 앓고 있으니 아토피 최고 지역이라 할 만하다. 서울은 중구 49.8%, 강남구 38.2%, 동작구 35%로 나타났다. 부산 중구와 동구도 40% 이상이다. 광주 동구도 46.3%로 서울 강남구보다 아토피 발병률이 높게 나타났다. 아토피에 관한 한 지역도, 빈부의 격차도 없이 그야말로 공평하게 전국적으로 분포해 있다.

    그런데 발병률이 높은 지역은 교통량이 많고 교통체증이 심한 곳 혹은 최근에 재개발이 많이 이루어진 곳이라는 공통점이 있다. 즉 지역별로 미세먼지 발생도 혹은 재건축 건수, 건설면적 등과 아토피 환자 발생건수 사이에 90% 이상의 상관관계가 있다는 것. 미세먼지 발생이 많거나 잠정적으로 공사를 많이 한 곳에서 아토피 발생률이 높다는 결론을 내릴 수 있다.

    특기할 것은 전국 광역시도 중 제주도가 아토피 발생률 23.2%로 가장 높다는 점이다. 일부에서는 ‘관광 제주’를 목표로 지난 몇 년 동안 신제주나 서귀포를 중심으로 진행된 공사와 도로건설을 의심하고, 일부에서는 37개나 되는 골프장에 의혹의 눈길을 보낸다. 골프장에서 사용한 제초제가 화산 특수지형의 제주도 주 식수원인 지하수를 오염시켰고 이로 인해 민감한 아이들에게 아토피가 발생한 게 아니냐는 것. 그래서 지난해부터 제주도에서는 지하수가 공급되는 수돗물 대신 생수를 마시는 사람이 늘어나고 있다.

    음식과 아토피 사이의 인과 관계는 명확하지 않다. 하지만 우리네 먹을거리가 비교적 안전하던 1960년대에 태어난 여성들이 자녀를 낳을 때는 아토피 환자가 부분적으로 나타났지만, 1970년대에 태어난 여성들이 자녀를 낳기 시작하면서부터 아토피가 일반적인 현상이 됐다.

    1970년대는 ‘미원’ ‘미풍’ 같은 화학조미료가 집중적으로 보급됐고 ‘새우깡’으로 대표되는 스낵류가 획기적으로 늘어났으며 라면이 대중화됐다. 1960년대 중화학공업 육성정책에 의해 집중 투자된 화학비료가 새마을운동과 함께 본격적으로 사용된 시기다. 즉 국민의 간접적인 농약 섭취량이 늘어난 때다. 이 때 태어난 여성들이 어머니가 된 후 아토피가 급증했으니 대를 이어 고통을 받는다는 점이 통계적으로 입증된 셈이다.

    1980년대는 햄버거를 비롯한 패스트푸드가 보급된 시기다. 이 시기 햄버거와 산패(酸敗)한 기름으로 튀긴 감자튀김을 먹고 자란 아이들이 지금 20대 초반이다. 5~6년 후 이들이 자녀를 낳을 무렵엔 아토피 혹은 유아 천식 통계가 어떻게 나타날까. 또 지금의 아토피 세대가 나중에 아이를 낳을 때는 어떤 일이 벌어질까. 이렇게 상황이 심각한데도 열량과 비타민 중심으로 구성된 ‘현대 식품영양학’을 기준으로 내세우는 정부의 음식물 정책은 그야말로 무책임하기 짝이 없다.

    중남미형 시장으로 가나?

    아토피에 걸린 아이들은 음식물 선택에 제한을 받을 수밖에 없다. 그들이 실제로 안심하고 먹을 수 있는 국산 친환경농산물은 전체 농산물의 2%밖에 되지 않는다. 상황이 이 정도면 국내 유기농 생산을 늘리는 데 정부 정책이 집중돼야 하건만 정부는 대농, 기계농 중심으로 농업체계를 전환하려고 한다. 농약을 친 국내 농산물과 수입한 유기농. 도대체 우리는 무엇을 선택해야 하는가.

    이렇다 보니 우리의 음식 시장은 고가의 하이엔드(high end) 시장과 저가·저품질 시장으로 나뉜다. 하이엔드 시장에선 얼리지 않은 참치가 대표적이다. 워낙 생선을 좋아하는 일본의 부자들을 위해 태평양에서 잡은 참치 중 가장 좋은 부위를 얼리지 않고 바로 배 위에서 헬기에 실어 도쿄로 나른다. 가끔 별난 음식을 특별히 즐기기 위한 것이 바로 하이엔드 시장인데, 우리나라 부유층의 경우 일상적으로 먹는 세 끼도 하이엔드 시장에서 해결한다. 반면 가난한 사람들은 농약에 오염된 음식을 먹을 수밖에 없다. 전형적인 중남미형으로 가고 있는 셈이다.

    해결책은 없을까. 우리가 주로 수입하는 영국제 유기농 제품에서 찾아보자. 10년 전 영국은 우리나라보다 더 심각한 농업 위기를 맞은 적이 있다. 광우병의 진원지로, 조류독감 등 온갖 음식 관련 질병의 고향으로 영국이 지목되면서 영국인을 비롯해 그 누구도 영국의 농산물을 먹지 않았다. 하지만 지금 영국은 유기농의 고향이 됐다. 영국은 환경부와 농림부를 통합해 ‘DEFRA (Department of Environment, Food and Rural Affairs)’라는 기관을 설립하고 음식물에 관해 매우 엄격한 기준을 세워 관리를 시작했다. 그 결과 10년 만에 영국 농산물이 세계에서 가장 믿을 수 있는 식품으로 부상했다.

    소비자가 음식 재료에 대해 까다롭게 요구하면 할수록 농업은 죽지 않는다. 영국이 10년 만에 세계에서 가장 안전한 음식을 만드는 나라로 변모한 것처럼 우리도 식품에 대한 기준을 엄격하게 적용하면 더 좋은 음식을 값싸게 공급할 수 있다.

    우리나라와 자연 조건이 매우 비슷한 스위스에서도 답을 찾을 수 있다. 스위스는 부존자원도 없고 국토의 70%가 산지다. 스위스에서도 음식 안전 문제가 대두하면서 ‘어떻게 안전한 음식을 국민에게 공급할 것인가’가 초미의 관심사가 됐다. 광우병 같은 대형 사고가 생기면 정책을 전환할 텐데, 큰 사고가 터지지는 않은 상태에서 조금씩 위기감만 팽배하고 있었다.

    그때 스위스는 국민투표를 선택했다. 1996년 ‘친환경농업’을 국민투표에 부친 후 3년간 정책을 재정비하고 법률을 고쳐 2000년 친환경농업 정책을 전면 실시했다. 이윽고 4년 만에 농업의 10%를 친환경농업으로 전환하는 데 성공했다. 이젠 곡물과 고기만큼은 스위스 국내에 안전하게 생산된 것들을 공급하게 됐다. 스위스 소비자는 슈퍼마켓에서 아무거나 집어들어도 별로 비싸지 않은 가격에 안전한 음식을 먹을 수 있다. 생존에 기본인 곡물과 고기만큼은 인체에 안전한 것을 공급할 수 있는 체계를 국가가 마련한 것이다.

    스위스의 음식물이 안전해진 것은 불과 5년 만의 일이다. 그 전환에는 국민투표라는 국민적 합의가 있었다. 지난 5년간 선진국들은 ‘안전한 음식’을 만들기 위해 노력했다. 현재 음식물의 안전성에 관한 한 최강국으로 꼽히는 덴마크뿐 아니라 안전하지 않은 음식을 만들던 영국이나 스위스, 프랑스와 독일마저 농업정책에 대전환을 꾀하고 있다.

    친환경농업, 국민투표 부치자

    필자는 ‘경제학자가 왜 음식 문제에 대한 이야기를 하냐’는 질문을 많이 받는다. 경제학이란 무엇인가? 경세제민(經世濟民), 즉 세상을 편하게 하고 사람을 구하는 것이 경제학이다. 지금 아무것도 믿을 수 없는 음식 상황이야말로 경제학이 필요한 곳이다.

    아토피로 고생하는 자녀를 둔 어머니들의 모임에 가면 ‘아토피의 적은 할아버지’라는 말을 듣는다. 어머니는 평소 자녀가 설탕과 화학조미료 같은 것에 입맛을 들이지 않도록 노력하지만, 가끔씩 시골에서 올라온 할아버지가 과자랑 아이스크림, 초콜릿을 잔뜩 사주고 가면 다음부터 아이가 안전한 음식을 먹지 않으려 한다는 것. 오죽하면 ‘할아버지가 적’이라는 표현이 나왔겠는가.



    음식물 오염 문제는 개인이 조심해서 풀릴 문제가 아니다. 사회가 그리고 국가가 집단적으로 해결해야 할 일이다. 제도와 사람이 같이 변해서 위험한 음식물을 밥상에서 추방해야 한다. 하지만 불행히도 위험한 음식이 오히려 ‘우점종’이 되고 안전한 음식과의 경쟁에서 이기고 있는 실정이다.

    이런 상황을 반전시키려면 우리나라도 스위스처럼 국민투표를 치러야 한다. 지금까지 우리나라에서 정책을 놓고 국민투표를 해본 적은 없다. 유럽 국가들은 EU 가입, 나토 가입, 유럽 화폐통합 등 온 국민에 해당하는 일이라면 국민투표를 통해서 합의를 도출하고 이에 따라 법률을 제정한다.

    친환경농산물을 공급하기 위한 음식물 안전 문제는 모든 국민에게 해당되는 공공적인 사안이다. 국민투표에 부치기에 충분하다. 친환경농산물을 2%밖에 공급할 수 없는 터에, 무슨 수로 안전한 재료를 구해서 안전한 음식을 국민에게 공급할 수 있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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