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년 8월호

지식커뮤니티 Book치고 ; ‘도시의 승리’

이것이 정말 ‘도시의 승리’인가

‘서울 일극주의’에 관한 논리 전면전

  • 박은미 연세대 글로벌행정학과 4학년·Book치고 1기

    입력2019-07-22 14:00: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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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책은 찰(察)이다. 남을 관찰(觀察)하고, 나를 성찰(省察)하며, 세상을 통찰(洞察)하는 도구여서다. 찰과 찰이 모여 지식과 교양을 잉태한다. 덕분에 찰나의 ‘책 수다’가 묘한 지적 쾌감을 제공한다. 정작 살다보면 이 쾌감을 충족하기가 녹록지 않다. 검증된 지식커뮤니티가 우리사회에 드물어서다. 이에 창간 88주년을 맞는 국내 최고 권위의 시사 종합지 ‘신동아’가 ‘지식커뮤니티 Book치고’를 만들었다. 회원들은 한 시즌(4개월) 간 월 1회씩 책 한권을 고재석 ‘신동아’ 기자와 함께 읽는다. [편집자 주]
    강원도 태백에 놀러갈 때마다 아버지는 이렇게 말씀하시곤 했다. “예전에는 개도 만 원짜리를 물고 다닌다던 곳이야.” 실제 이 말은 석탄산업이 활황이던 시절, 태백의 상징이 됐다. 

    지금 태백은 인구 4만 명의 작은 도시로 쪼그라들었다. 인근 정선, 영월을 비롯해 강원도의 옛 탄광지역 공히 엇비슷한 사정에 처해 있다. 젊은이는 떠났고 주민에게 새 돈벌이 수단은 생기지 않았다. 정부 지원이나 강원랜드에서 나오는 지역발전기금에 의존하고 있다. 

    낙후된 고향을 떠난 이들은 다시 돌아가지 않는다. 대개 떠나는 이들은 새 터전에서 새로운 걸 시도해볼 만한 유·무형의 자산(재산은 물론 체력과 지식 등)을 갖고 있다. 그들이 떠난 마을에는 미래를 꿈꿀 낙관이 자리 잡을 공간이 없다. 떠날 수 있는 여건도 못 갖춘 이들에게는 되레 더 열악한 장소가 되고 만다. 

    저자는 쇠락한 도시에 돈을 퍼붓기보다, 꼭 필요한 ‘개인’을 대상으로 지원이 이뤄져야 한다고 주장한다. 하지만 문제는 그리 간단치 않다. 사람은 대개 어딘가에 자리를 잡고 산다. 터전을 옮긴다는 것은 개인에게 결코 쉬운 문제가 아니다. 설사 쇠락한 도시더라도 고향을 등지고 떠나는 건 큰 결심이 필요한 일이다. 

    이즈음 한국사회에 관념처럼 자리매김한 서울과 지방이라는 구분법을 떠올려본다. 서울 중심으로 짜인 사회에서 지방은 주변, 낙후, 촌스러움 등 온갖 부정적 이미지를 안고 있다. 



    책에 따르면 미국에서는 주요 도시마다 대학이 인재를 끌어모으고 경쟁하며 도시를 승리로 이끈다. 한국에서는 오로지 서울로 인재가 빨려들어 간다. 오직 서울만이 승리한다. 입시 후 서울은 ‘입성’하는 곳이다. 안 가는 곳이 아닌 ‘못 가는 곳’이다. 지방은 사는 곳이 아니라 ‘남는 곳’이다. 서울에서 벗어나면 잉여가 되는 것이다. 이런 상황에서 서울이 아닌 지역에 거주하는 청소년들이 집에서 대학을 다니지 않기로 결심하는 건 당연하다. 

    지방에 남아 커뮤니티에 기여하고 뿌리내리며 살 수 있었을 수많은 청년은 스무 살부터 서울을 강요받는다. ‘공부 좀 한다는 아이들’이 온갖 축하 받으며 서울로 떠나는 풍경이 유독 기이해 보이는 것은, 인재를 다른 곳에 보내면서 그것이 ‘손해’라고 생각지도 않는 이상한 풍토 때문이다. 

    지방은 인재를 서울로 기쁘게 올려 보낸다. ‘사람’이 서울로 간 자리는 아프게 남지만, ‘사람’을 서울로 보냈다며 자화자찬하고 애써 불편한 진실을 모른 척해온 것은 아닐까. 이게 정말 ‘도시의 승리’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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