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년 6월호

제주 출신 기자의 ‘극히 주관적인’ 솔 푸드(soul food)

‘제주스러움’이 듬뿍 담긴 향토의 맛 8選

  • 고재석 기자 jayko@donga.com

    입력2020-06-07 14:00: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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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얼큰 해장국, 뽀얀 고기국수, 개운한 각재기국

    • 걸쭉한 몸국, 벽돌 두께 돼지고기, 생생 해물탕

    • 자작한 갈치조림에 자연산 물회로 마무리

    제주특별자치도 제주시는 구제주(원도심)와 신제주(신도심)로 나뉜다. 제주시 토박이인 기자는 구제주에서 나고 자랐다. 제주항 인근 산부인과에서 태어나 산지천 근처에서 유년 시절을 보냈다. 주말이면 사라봉과 별도봉에 올라 광활한 제주 바다를 내려다봤다. 이따금 친구들과 ‘제주의 명동’이라는 칠성로·중앙로를 거닐며 영화를 보고 분식집에 가고 계절마다 옷을 샀다. 자연스레 기자에게 새겨진 ‘맛 지도’는 대체로 구제주와 포개진다. 솔 푸드(soul food) 지도 답사도 이곳에서부터 시작된다.

    뽀얀 고기국수 국물에 푸짐한 수육

    제주시 삼도2동에 있는 미풍해장국은 모이세해장국, 은희네해장국과 더불어 제주 3대 해장국 맛집으로 꼽힌다. 중학생 무렵, 부모님 손에 이끌려 처음 발을 디뎠을 때의 기억이 생생하다. 듬뿍 담긴 선지와 소고기, 콩나물을 보는 것만으로도 배가 불렀다. 거기에 빨간 고추기름으로 감칠맛을 더했으니 그 얼큰함은 더 말할 나위가 없다. 며칠 전 마신 술까지 속에서 비워내는 듯 시원한 국물 맛이 일품이다. 해장국에 곁들여 먹는 국물 깍두기는 별미다. 영업시간은 새벽 5시부터 오후 3시까지니 유의하는 게 좋다. 

    제주시 일도2동 삼성혈 근처에는 고기국수 전문식당이 밀집한 국수거리가 있다. (돼지)고기국수는 제주만의 차별화된 국수 요리다. 삶은 건면에 돼지고기 육수로 국물을 내고 그 위에 돼지수육을 얹는다. 제주에서는 잔칫날에 고기국수를 대접한다. 

    국수거리에서 가장 인파가 몰리는 가게는 자매국수다. 이 식당은 유명 음식 TV 프로그램에 등장하면서 이름을 알렸다. 자매국수의 음식도 흠잡을 데 없지만, 기자의 아버지는 자매국수 바로 옆에 있는 국수마당을 선호한다. 뽀얀 고기국수 국물에 푸짐히 담긴 수육이 군침을 돋운다. 김 가루를 뿌려 먹으면 고소한 맛이 첨가된다. 오전 8시부터 이튿날 새벽 2시까지 영업하니 술 한잔 걸치기에도 좋다. 2015년 제주도가 선정한 제주 7대 대표향토음식 업소 21곳 중 한 곳으로 꼽혔다. 

    국수마당에서 걸어서 12~13분 남짓 거리에 있는 돌하르방식당(일도2동)은 각재기국으로 유명하다. 각재기는 전갱이의 제주 방언이다. 돌하르방식당 각재기국의 조리 방식은 간단하다. 맑은 물에 손질한 각재기와 된장을 풀고 배춧잎과 파, 마늘, 양파를 잘라 넣어 끓일 뿐이다. 생선이 통째로 들어가 있는데도 비린내가 없고 국물 맛이 개운하다. 도민 사이에서는 고령의 남성 주인장이 손수 음식을 하는 식당으로 잘 알려져 있다. 영업시간이 오전 10시에서 오후 3시까지니 부지런히 움직이는 게 좋다.



    걸쭉한 육수에 톡톡 씹히는 모자반

    몸국은 돼지고기 삶은 육수에 불린 해조류인 모자반을 넣어 만든 국이다. 몸은 모자반의 제주식 표현이다. 하나의 뚝배기 안에 돼지와 바다가 어우러진 셈이다. 제주에서는 혼례와 상례 등 집안 행사에 몸국을 내놨다. 

    일도2동에 있는 신설오름은 몸국 전문점이다. 기자가 아버지와 이따금씩 찾는 식당이기도 하다. 신설오름의 몸국은 걸쭉한 육수에 톡톡 씹히는 모자반과 부드럽게 익은 돼지고기의 식감이 조화를 이룬다. 해장국으로 먹기에도 적당하다. 처음 몸국을 접한다면 모자반의 향이 비릿하게 느껴질 수 있다. 신설오름에서는 고춧가루를 함께 내주니 취향에 따라 곁들이면 된다. 매월 둘째, 넷째 주 월요일은 휴무다. 

    구제주에서 공항 가는 길목에 있는 돈대가(용담1동)는 ‘신흥 고기 강자’다. 미식가로 유명한 가수 최자(다이내믹 듀오)가 자신의 인스타그램에 소개해 화제를 모은 식당이기도 하다. 두툼하다 못해 벽돌 두께의 선홍빛 고깃살이 단박에 시선을 끌어모은다. 입에 넣자마자 툭 터지는 육즙이 놀라운 식감을 선사한다. 치아가 좋지 않은 기자의 아버지도 쉽게 씹어 드실 만큼 육질도 부드럽다. 고기에 곁들여 먹는 멸치젓갈(멸젓)은 단연 으뜸이다. 멸젓에 고추와 마늘을 잘게 썰어 넣으면 더 칼칼한 향을 즐길 수 있다. 후식인 김치찌개는 ‘공기밥 추가요’를 외치게 만든다. 

    솔 푸드의 걸음을 구제주 바깥으로 옮길 때다. 제주시 연동과 도두1동에 각각 지점이 있는 삼성혈해물탕은 기자가 고향에 갈 때마다 방문하는 식당이다. 본디 삼성혈해물탕도 구제주인 일도2동에 있었다. 그 위치가 국가지정문화재 사적 제134호인 삼성혈 인근이었다. 기자는 2005년 대학에 입학하면서 제주를 떠났는데, 방학을 맞아 고향에 갈 때면 부모님은 원기를 보충하라며 이곳을 데려갔다. 

    삼성혈해물탕의 해물탕에는 살아있는 해물이 통째로 들어 있다. 문어와 전복은 냄비 위에서 꿈틀댄다. 얼큰해 보인다고 해서 처음부터 국물을 떠먹으면 금물이다. 다소 싱거운 국물 맛은 끓일수록 진하게 우러난다. 각종 조개껍데기에서도 국물 맛이 우러나기 때문에 서둘러 손질하려는 욕심도 버려야 한다. 어차피 직원들이 기본적인 손질은 다 해준다. 

    해물을 다 먹고 나면 사리를 시킬 수 있다. 기자는 이곳에 갈 때마다 라면 사리를 주문한다. 시중에 파는 ‘해물라면’과 감히 비견할 수 없는 맛을 느낄 수 있다. 애초 도민들의 맛집이었지만, 지금은 관광객들의 성지로 변모했다. 빈자리가 있는지 미리 전화하고 방문하는 게 좋다.

    제주 하면 갈치…물회도 놓칠 수 없지

    신제주에 해당하는 연동에서는 황금어장이 단연 으뜸 맛집이다. 이곳의 주무기는 갈치요리다. 인근에 제주도청과 제주도교육청, 제주지방경찰청이 있어 오래전부터 ‘공무원 맛집’으로도 유명했다. 이곳의 갈치조림은 갈치를 큼지막하게 토막 내서 감자와 무, 양파, 대파 등을 곁들여 자작하게 끓여낸 게 특징이다. 국물이 당기면 갈치국을 주문하면 된다. 밑반찬으로 돼지고기 산적과 자리돔 조림이 나오는데, 역시 별미다. 2015년 제주도가 선정한 제주 7대 대표향토음식 업소 21곳 중 한곳이다. 

    제주 여행을 마무리하기에는 물회가 제격이다. 공항으로 향하기 전, 인근 도두1동에 있는 도두해녀의집을 찾길 권한다. 이곳에서 파는 해산물 대부분은 인근 바다에서 도두 해녀들이 직접 채취한 자연산이다. 인기 메뉴는 특물회다. 특물회에는 전복과 성게, 한치가 골고루 들어 있다. 된장을 밑바탕 삼아 육수를 내는데, 따로 조미료는 쓰지 않는다. 새콤달콤한 국물에 밥을 말아먹으면 여름 더위가 싹 가신다. 단, 한치 철이 아닐 때 찾은 경우라면 전복물회나 전복성게물회를 시키는 게 좋다. 밑반찬으로 나오는 청란젓갈도 밥도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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