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년 6월호

밥 한 공기 뚝딱 비울 간편하되 멋스런 홈메이드 요리

  • 김민경 푸드칼럼니스트 mingaemi@gmail.com

    입력2020-06-11 10:00: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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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냉장고에 김치만 그득하면 끼니 걱정일랑 남 이야기였다. 쪽쪽 찢어 뜨거운 밥에 얹어 먹고, 베이컨이나 돼지고기 조금 넣고 달달 볶아 들기름 둘러서 찬으로 먹고, 꽁치나 참치 통조림 털어 넣고 부글부글 끓여내면 그것으로 충분했으니까. 하지만 이 계절, 이제 그만 김치 틈바구니에서 숟가락을 걷어 올리고 싶다.
    [GettyImage, 동아DB]

    [GettyImage, 동아DB]

    집에서 즐길 수 있는 ‘미식’에 눈을 돌린 건 이런 이유에서다. 먼저 ‘천 번 달걀프라이’로 불리는 수플레를 보자. 달걀 네댓 개를 준비해 흰자와 노른자로 분리한다. 노른자는 살살 풀어둔다. 달걀흰자는 커다란 그릇에 모아 설탕을 한 숟가락 넣고 거품기로 15~20분 동안 휘젓는다. 중간에 쉬지 않는 게 중요하다. 요령이 있다면 흰자를 담아둔 큰 그릇을 기울여 잡고, 거품기로 내려치듯 섞는다. 큰 원을 그리며 젓는 것보다 한결 수월하다. 이러나저러나 팔이 떨어져 나갈 때쯤 되면, 이름처럼 1000번을 휘저으면 엉긴 물 같던 달걀흰자가 마술처럼 순백의 크림 덩어리로 변한다. 흰자 크림의 3분의 1을 노른자와 골고루 섞는다. 애써 쌓아 올린 달걀 크림이 쉽게 무너지지는 않지만 살살 섞어 가벼운 덩어리감을 유지하는 게 중요하다.

    천 번 달걀프라이

    이제 달군 프라이팬에 버터나 기름을 두르고 노른자 크림 반죽을 도톰하고 넓게 펼쳐 올린다. 불은 약하게 해야 타지 않는다. 반죽 바닥이 익었다고 생각되면 흰자 크림을 그 위에 소복하게 얹는다. 반죽을 반으로 살살 접는다. 이때 흰자 크림이 불룩불룩 삐져나오지만 그냥 둔다. 뚜껑을 덮고 흰자 크림이 흐르지 않을 정도가 되도록 익힌다. 흰자 크림이 익어가면 쫀쫀하게 힘이 생기는 걸 눈으로 봐도 알 수 있다. 가능하다면 앞뒤로 뒤집어 익힌다. 조심스럽게 꺼내 그릇에 담고 설탕, 슈거파우더, 메이플 시럽, 꿀, 휘핑크림, 초콜릿 시럽 등 달콤한 재료를 입맛대로 곁들여 먹는다. 딸기, 바나나, 파인애플 같은 과일까지 썰어 얹으면 한껏 먹음직스러운 모양이 된다.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에 게시할 때 좀 더 뿌듯하겠지. 

    포크로 살짝 눌러 한입 크기로 잘라 먹자. 녹아 없어지는 것 같은 생경한 식감에 한 번 놀라고, 공들인 만큼 꿀맛은 아니라는 것에 두 번 놀란다. 이 수플레는 이어달리기처럼 가족이 합심해 만들기도 하고, 친구끼리 영상통화를 하며 누가 먼저 단단하게 크림을 완성하느냐 시합을 벌이기도 한다. 

    이와 비슷한 것으로 ‘달고나 커피’도 있다. 블랙커피 알갱이, 설탕, 물을 같은 양으로 섞은 다음 팔뚝 근육이 욱신거릴 때까지 저어 황갈색 달고나 크림을 만든다. 차가운 우유 위에 크림을 얹어 달달하게 즐긴다. 수플레와 달고나 커피 모두 결과보다 진땀나는 과정이 시간의 여백을 즐겁게 메워준다. 

    집과 사무실만 쥐죽은 듯 오가는 나 같은 사람은 시간의 여백보다 밥상의 단조로움에 괴롭다. 강원도 현지에서는 10㎏에 5000원만 받고 보내준다는 감자가 동네 슈퍼마켓에서는 한두 알에 3000~4000원이 훌쩍 넘는다. 동해에서는 냉동 창고에 오징어가 쌓여간다는데 시장 어물전에서는 귀하고 비싸기만 하다. 새 음식을 만들어 먹자니 재료값만 수만 원이 필요하다. 조금씩 쓰고 남은 재료는 또 어쩌나. 솜씨가 좋으면 다양한 요리를 척척 완성하겠지만 키보드나 빨리 두드릴 줄 알지 맛내기는 영 엉망이다. 



    이럴 때는 자연의 힘을 빌리자. 기분을 사뿐하게 만들어줄 미식 아이템을 집으로 초대하는 것이다. 내가 선택한 건 한창 제철을 맞은 남해의 생멸치다.

    제철 맞은 남해 생멸치

    2018년 4월 19일 부산 기장군 대변항에서 어민들이 잡은 멸치를 털어내고 있다. [박경모 동아일보 기자]

    2018년 4월 19일 부산 기장군 대변항에서 어민들이 잡은 멸치를 털어내고 있다. [박경모 동아일보 기자]

    멸치 살이 통통히 올라 맛이 좋고, 어획량도 풍성한 이때, 내 발이 묶였다고 생멸치 맛까지 놓칠 수는 없다. 지금 남해 부근 멸치 식당에 가면 무침회, 튀김, 구이, 매운탕, 전, 멸치밥까지 다채로운 방법으로 봄 멸치를 맛볼 수 있다. 은빛으로 반짝이는 몸통 윤기처럼 고소한 맛이 기름지다. 살코기는 아삭거릴 정도로 탄력 있고 생생하다. 이런 맛을 보는 시기는 1년 중 딱 지금뿐이다. 

    그나마 다행스러운 것은 서울에 앉아서도 싱싱한 봄 멸치를 맛볼 수 있다는 점이다. 요즘에는 어부들이 온라인 숍을 통해 제철 생멸치를 한철 판매한다. 게다가 통멸치부터 머리와 내장만 제거한 것, 뼈까지 깔끔하게 제거한 것 등 여러 유형으로 손질돼 있어 입맛대로 고르면 된다. 다양하게 요리를 해 먹고 싶다면 머리와 내장만 제거한 것을 고르는 게 좋다. 통째로 옷을 입혀 튀기거나, 자작한 국물에 조림을 하고, 얼큰하게 매운탕으로 끓여 먹기 좋다. 나는 조리해 맛을 낼 자신은 없기에 멸치 오일 절임만 조금 만들 요량으로 머리와 내장이 제거된 것을 골랐다.

    향으로 즐기는 못난이 버섯 트러플

    뛰어난 풍미를 자랑하는 
트러플 버섯. [GettyImage]

    뛰어난 풍미를 자랑하는 트러플 버섯. [GettyImage]

    봄철 기분을 사뿐하게 만들어줄 미식 아이템으로는 송로버섯 즉, 트러플도 있다. 트러플은 넓고 축축하며 어둑한 숲속에서 오로지 향을 통해 채취하는 버섯이다. 이름만 들어도 자동으로 콧구멍이 씰룩거린다. 단 신선한 트러플이나, 신선한 트러플을 통째로 절인 것은 내가 무심코 사기에는 가격이 너무 비싸다. 트러플 향을 은근히 느끼는 데 만족하기로 하고 나는 온라인 쇼핑몰 장바구니에 트러플 오일, 트러플 케첩을 담았다. 

    나는 못 먹는 향신료가 거의 없다. 우리나라에서만 즐겨 먹는 깻잎은 물론이며, 깻잎과 닮았지만 훨씬 독특한 향이 나는 시소도 좋아한다. 누군가는 화장품 냄새가 난다고 말하는 방아와 미나리, 고수는 물론 코가 찡해지는 산초와 제피도 즐긴다. 달콤한 맛과 향이 나는 바질, 풋풋한 파슬리, 향긋한 기름 냄새가 나는 펜넬을 염소처럼 아작아작 씹어 먹는다. 이뿐만 아니라 팔각, 갈랑갈, 레몬그라스, 큐민, 육두구 등 국적을 가리지 않고 향이 나는 재료가 들어간 음식을 대체로 좋아한다. 향신료는 향의 농도와 신선함, 개성 등으로 그 값이 매겨진다. 그러나 대체로 요리의 주인공이 되기보다는 무게 있는 조연이나 강렬하게 등장하는 카메오 구실을 할 뿐이다. 향으로 주인공이 되는 신선한 식료는 아마도 트러플이 유일하지 싶다. 

    트러플은 버섯인데 여느 버섯과 영 다르게 생겼다. 작은 돌기로 가득한 화산석 같기도 하고, 자라다 만 못생긴 감자도 좀 닮았다. 꽤 단단한 겉면과 달리 속은 매끈하고 부드럽고 차지다. 작은 몸에서 이글이글 향을 내뿜는데, 저미는 순간 말랑한 속으로부터 훨씬 진하고 개성 있는 향이 훅 뿜어져 나온다. 그나저나 흙속에 파묻힌 조그만 돌멩이 같은 이것은 도대체 언제부터 먹기 시작했을까. 

    로마 군인이며 과학자이자 철학자였던 대(大) 플리니우스가 쓴 고대판 백과사전 ‘박물지(Naturalis Historia)’에 고대 로마인이 트러플을 먹었다는 기록이 남아 있다고 한다. 심지어 그때도 트러플은 신이 먹을 법한, 오묘한 향을 가진 중독성 강한 식재료로 귀하게 여겨졌다. 

    이상하게도 로마 붕괴 후 트러플에 대한 기록은 거의 찾아볼 수 없다. 트러플이 다시 각광받은 것은 ‘부자의 마늘’이라는 애칭으로 불린 1500년대 후반부터다. 1600년대에는 트러플을 먹는 이가 부쩍 늘었고, 1700년대에는 트러플 종류와 품질을 구분하며 먹을 만큼 상품화됐으며, 이즈음부터 이탈리아 피에몬테 지역에서 채취되는 화이트 트러플이 트러플 중 맨 꼭대기 자리를 차지하며 귀하게 여겨지기 시작했다. 또한 트러플 ‘헌팅’ 즉, 채취가 왕실과 귀족 등 상류층의 재미나고 진귀한 놀이로 여겨졌다. 

    트러플은 채집 계절에 따라 조금씩 다른 특질을 띠며, 당연히 값 차이도 생긴다. 같은 블랙 트러플이라도 자세히 보면 미묘하게 색 차이가 난다. 흐릿한 검정, 붉은빛 나는 검정, 빈틈없이 새까만 것 등으로 각기 다르다. 겉이 다르면 당연히 속 색깔도 달라진다. 대체로 더운 날 채취하면 색이 밝고, 겨울로 갈수록 짙은 색을 띤다. 향의 농도도 색을 따라간다고 생각하면 된다. 블랙은 까말수록, 화이트는 뽀얄수록 향이 좋고 값도 비싸다. 

    가장 귀하게 대우받는 화이트 트러플은 이탈리아를 기준으로 9~1월 중 채취한 것이다. 이름처럼 색이 하얗지는 않고 미숫가루처럼 노르스름하다. 숙성이 잘 되면 연한 갈색에 가까워진다. 화이트 트러플 범주에 속하지만 조금 더 저렴한 가격에 유통되는 베이지 트러플은 1~4월 채취돼 봄 트러플로 불린다.

    트러플 초심자를 위한 오일과 소금

    트러플 향으로 음식 풍미를 더해주는 소금. [GettyImage]

    트러플 향으로 음식 풍미를 더해주는 소금. [GettyImage]

    우리나라에 들어오는 트러플 대부분은 이탈리아산(産)이다. 세계 트러플 유통량의 70%를 차지하는 기업 역시 1852년부터 트러플 사업을 시작한 얼바니 타르투피(Urbani Tartufi)라는 이탈리아 회사다. 

    요 몇 년 사이 우리나라에는 얼바니 타르투피를 비롯한 여러 회사의 트러플 관련 제품이 다양하게 수입되고 있다. 요리에 신선한 트러플을 토핑으로 올려주는 레스토랑도 꽤 많아졌다. 하지만 신선한 트러플은 구하기 쉽지 않고 매우 비싸다. 제대로 요리할 자신 없는 사람이 굳이 욕심낼 필요가 없다. 

    트러플 초심자라면 트러플 오일과 소금부터 맛보자. 트러플 오일은 요리 마지막에 살짝 곁들여 향을 즐기는 용도로 쓰기에 적합하다. 가장 쉬운 방법은 달걀 요리에 곁들이는 것이다. 달걀프라이, 스크램블드에그를 만들고, 먹기 전 트러플 오일을 몇 방울 뿌린다. 소금과 후추로만 간을 해 구운 고기나 생선요리에도 몇 방을 떨어뜨리면 잘 어울린다. 마늘과 오일로 만드는 간단한 파스타에 버섯 조금과 트러플 오일을 한두 큰술 넣어 볶으면 구수한 맛이 배가된다. 조금 과감하게 트러플 오일을 사용하고 싶다면 튀김 기름에 트러플 오일을 섞어본다. 튀김 요리 전체에 트러플 향이 깊이 밴다. 

    트러플 향에 좀 익숙해졌다면 바닐라 아이스크림을 듬뿍 떠서 트러플 오일을 몇 방울 뿌려 먹어본다. 솔티드 캐러멜의 ‘단짠’ 조화만큼 기막힌 맛의 궁합을 만날 수 있다. 최근 롯데월드몰과 롯데백화점 명동점에 트러플 아이스크림을 맛볼 수 있는 트러플 숍이 생겼다. 참고로 이 숍에서 아이스크림을 사 먹을 때 토핑을 추가하면 신선한 트러플을 슬라이스해 얹어준다.

    캐주얼한 트러플 아이템

    트러플을 올린 스테이크.

    트러플을 올린 스테이크.

    트러플 소금은 오일처럼 달걀 요리와 각종 구이, 파스타, 샐러드 등 어디에나 쓸 수 있다. 제일 맛좋은 건 역시 감자칩에 곁들이는 것이다. 튀긴 감자에 트러플 소금을 솔솔 뿌려 짭짤하게 먹는다. 튀김이 번거롭다면 채소를 얇게 썰어 기름에 지지듯 바싹 구워 트러플 소금을 뿌려 먹어도 맛있다. 

    좀 더 재미를 주는 트러플 가공품으로는 케첩이 있다. 새콤달콤한 토마토 케첩에서 트러플 향이 듬뿍 난다. 앞서 말한 감자칩을 찍어 먹고, 오므라이스를 만들어 뿌려 먹고, 햄버거나 샌드위치에도 곁들인다. 트러플 향이 나는 꿀도 있는데 치즈 플레이트나 마른 과일과 함께 먹거나, 요거트 등에 섞어 먹으면 된다.
     
    신선한 트러플 대신 즐길 만한 트러플 가공품은 이외에도 꽤 많다. 트러플을 통째로 절인 것, 트러플 카르파초(얇게 썬 트러플 절임), 소스나 페이스트처럼 트러플을 갈아 양념한 트러플 소스, 트러플 버터, 트러플 식초 등을 통해 집에서도 트러플 향을 누리고 맛볼 수 있다. 

    품질 좋은 트러플은 1파운드(약 450그램)에 3600달러(약 440만 원) 선이다. 2010년 마카오에서 열린 트러플 경매에는 2파운드(약 900그램)에 33만 달러(약 4억400만 원)짜리 트러플이 나온 적도 있다. 트러플 값은 향기 값인데 트러플 오일이나 소금 등에 그 향이 고스란히 녹아 있으니 이 얼마나 가격 대비 성능 좋은 미식인가. 

    집에서 즐기는 미식 여행의 마지막 주자는 올리브다. 올리브는 올리브나무 열매로 과일치고는 굉장히 기름지기에 남다른 풍미를 지닌다.

    복잡하고 다양한 올리브의 풍미

    [GettyImag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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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나는 꼬마였을 때 초록색 고추와 빨간색 고추가 서로 다른 나무에서 열리는 줄 알았다. 올리브를 처음 먹었을 때도 “나무마다 색이 다른 올리브가 열리나”라는 질문이 휙 하고 머릿속을 지났다. 올리브라는 이름만 같지 확연히 다른 생김새에 색깔까지 다양하니 올리브마다 정해진 색이 있는 줄 알았다. 

    사실 올리브 나무는 종류가 엄청나게 많다. 하지만 거기서 열리는 올리브는 대개 초록색으로 열매가 영근 다음 불그스름하게 익어 자줏빛을 띠며 갈색을 거쳐 까맣게 익는다. 익어감에 따라 풍미와 식감이 달라져 수확하는 때도 제각각이다. 어떤 종자는 초록색일 때 먹어야 맛있고, 어떤 것은 색이 진해지도록 푹 익혀서 따야 좋다. 이러니 우리가 만나는 올리브 중 어떤 것은 늘 초록색인 채로 머물고, 또 어떤 것은 늘 까맣게 익은 모습만 보인다. 

    올리브는 과일이 분명하지만 생과는 잘 먹지 않는다. 쓴맛과 떫은맛이 강해 숨겨진 다른 맛은 알아채기 힘들다. 즉 맛이 없다. 올리브는 맛 대신 좋은 기름 즉, 불포화지방산을 가득 머금은 과일이다. 철새가 먼 길을 떠날 때 올리브로 배를 채운다는 이야기를 들은 적이 있다. 기름기 많은 올리브는 적은 양만 먹어도 많은 에너지를 낼 수 있기 때문이다. 올리브가 가진 독특한 맛의 원천도 결국 기름이다. 

    한국에 살면 올리브를 과일로 만나기보다 기름으로 먼저 접한다. 조리하지 않고 그대로 먹는 기름으로 치면 참기름, 들기름 다음으로 두루 쓰이는 게 올리브기름 같다. 특유의 산뜻한 향, 부드러우며 쌉싸래한 맛, 묵직하지 않으면서도 풍부한 윤기를 가진 올리브기름은 빵 반죽에 넣고, 샐러드나 피자에 뿌리고, 드레싱을 만들고, 파스타와 쌀 요리에 쓰고, 소스나 수프, 스튜를 끓일 때도 쓴다. 채소, 고기, 생선을 구울 때 다양한 허브와 함께 사용하면 재료의 풍미를 한층 돋보이게 하며 버터와 적절하게 섞으면 요리 맛이 더욱 풍성해진다. 


    올리브를 얹은 피자.

    올리브를 얹은 피자.

    조금 특별한 올리브기름을 맛보고 싶다면 향으로 골라보자. 로즈메리 같은 허브나 마늘, 고추 같은 향신채소를 넣어 맛과 향을 우린 것, 트러플처럼 값비싼 재료의 향이 깃든 것 등이 있다. 가향(加香) 올리브기름은 가열하기보다는 요리 마지막에 살짝 뿌리거나 빵 등을 찍어 먹을 때 또는 드레싱을 만들 때 써야 제 향을 고스란히 즐길 수 있다. 필자는 삶은 감자를 으깨 마요네즈나 우유를 넣고 부드럽게 할 때 트러플 향이 밴 올리브기름을 넣는다. 감자의 구수한 맛과 찰떡궁합이다. 그대로 푹푹 떠먹어도 맛있고, 잎채소나 햄과 함께 샌드위치를 만들어도 되며, 스테이크 같은 고기 요리 옆에 동그랗게 떠서 얹어 내도 좋다. 이때는 스테이크 위에도 트러플 올리브기름을 살짝 끼얹는 걸 잊지 말아야 한다. 

    기름을 짜는 올리브와 과육을 먹는 올리브는 서로 다른 종류다. 마트에서 판매하는 올리브는 초록색, 갈색, 자주색, 검은색 등으로 색이 다르다. 씨를 그대로 둔 것과 뺀 것, 그리고 씨를 뺀 자리에 다른 것을 채워 넣은 것 등 종류도 다양하다.

    과일답지 않은 과일

    맨 위부터 시계 방향으로 
씨를 빼지 않은 블랙 올리브, 
속을 채운 스페인산 그린 
올리브, 그리스산 칼라마타, 
이탈리아 시칠리아의 카스텔
베트라노, 씨 뺀 스페인산 
블랙 올리브, 씨 뺀 
캘리포니아 블랙 올리브. 
가운데는 속을 채운 
그린 올리브다.

    맨 위부터 시계 방향으로 씨를 빼지 않은 블랙 올리브, 속을 채운 스페인산 그린 올리브, 그리스산 칼라마타, 이탈리아 시칠리아의 카스텔 베트라노, 씨 뺀 스페인산 블랙 올리브, 씨 뺀 캘리포니아 블랙 올리브. 가운데는 속을 채운 그린 올리브다.

    올리브도 여느 과일과 마찬가지로 초록색일 때 과육이 단단하고 풋풋한 풍미를 지니며, 색이 진해질수록 말랑해지고 풍미도 부드럽게 무르익는다. 올리브 제맛을 보려면 씨가 든 것을 고른다. 씨를 뺀 것은 잘게 썰거나 갈아서 요리할 때 사용하는 게 좋다. 

    올리브는 저장액에 담겨 캔이나 병에 든 채로 유통된다. 올리브 알맹이를 그대로 건져 먹고, 샐러드에 섞고, 소스나 스튜처럼 푹 끓일 수 있다. 또 빵이나 피자를 구울 때 넣고, 다지거나 갈아서 소스를 만들거나 반죽처럼 만들어 튀겨 먹을 수도 있다. 

    올리브는 쓴맛, 짠맛, 신맛, 단맛, 떫은맛 때로는 매운맛까지 품고 있는데, 한 마디로 표현하기 힘든 복잡하고 다양한 풍미가 이 기름진 과일의 매력이다. 하지만 전혀 과일답지 않은 이 맛 때문에 올리브를 영원히 즐기지 않는 이도 있다. 

    특히 쓴맛이 강해서 가공할 때 그 맛을 제거하는 작업을 거친다. 쓴맛을 빼는 방법은 물에 담금질하기, 소금물이나 소금에 절이기, 건조하기, 가열해 익히기, 알칼리 용액에 절이기 등으로 다양하다. 우리가 흔히 접하는 올리브는 대부분 물에 헹궈 소금물에 절이고, 알칼리 용액에 다시 담근 것이다. 올리브 첫 맛이 대체로 짠 것은 이러한 공정 때문이다. 구입한 올리브를 먹기 전 물에 살짝 헹구고 물기를 완전히 빼서 맛보면 한결 부드러운 첫맛을 만날 수 있다. 

    혹시 방문한 식품 매장에 표면이 건자두, 즉 프룬처럼 조글조글한 올리브가 있다면 구입해 보자. 소금에 절였거나, 구웠거나 아니면 나무에서 과하게 익힌 다음 수확해 보존 처리한 것이다. 수분이 빠지면서 농익은 맛이 훨씬 좋다. 값도 그만큼 비쌀 것이다. 

    올리브 종류가 달라지면 맛도 확연히 달라진다. 올리브 초심자라면 다음에 소개하는 몇 종류를 구분해 먹어보자. 

    칼라마타(kalamata)는 갈색에 가까운 짙은 자주색 올리브로 크기가 작고 갸름하다. 그리스가 고향이다. 지중해 쪽에서는 ‘올리브의 왕’으로 불릴 정도로 맛이 풍부하다. 그대로 먹어도 맛있고 토스터나 오븐에 넣고 살짝 구우면 개성 있는 맛이 진해진다. 올리브기름을 넉넉히 두른 팬에 칼라마타를 살짝 볶아 기름에는 빵이나 과자를 찍어 먹고, 칼라마타도 한 개씩 건져 먹는다. 

    카스텔베트라노(castelvetrano)는 비교적 구하기 쉬운 종류다. 풋풋한 맛이 정말 좋은 올리브로 이탈리아 시칠리아가 원산지다. 맛이 상상될 만큼 신선한 초록색이며 둥근 모양이 과일답다. 올리브 중에서는 그나마 단맛을 가지고 있고 다른 올리브보다 지방 함유량이 높아 부드러운 감칠맛이 나며 식감도 차지다. 올리브 초보라도 쉽게 호응할 만한 맛이다. 물에 가볍게 헹궈 물기를 완전히 뺀 다음 화이트 와인, 맥주, 막걸리 안주로 먹으면 된다. 마티니 술잔에 담그는 올리브는 주로 피콜리네지만 카스텔베트라노도 잘 어울린다. 카스텔베트라노는 까맣게 익은 뒤 수확하기도 한다. 까만 것은 과육이 무를 수 있어 살짝 구워 유통한다. 풋풋한 맛은 덜하지만 부드럽고 고소한 맛은 훨씬 좋다. 샐러드나 파스타에 곁들이면 고기나 해산물의 빈자리를 충분히 메울 수 있다. 

    체리뇰라(cerignola)는 가장 구분하기 쉬운 올리브다. 다른 올리브에 비해 두 배 이상 크고 모양은 뚱뚱한 럭비공 같다. 이탈리아 풀리아 지역에서 많이 생산된다. 보존 처리를 했음에도 아삭거릴 정도로 씹는 맛이 좋고, 크기만큼 먹을 것도 많다. 기름진 맛은 오히려 가볍고, 신기하게도 아몬드 같은 견과류 맛이 난다. 우리가 흔히 접하는 올리브 중에 가장 과일다운 맛이랄까. 발효한 생햄, 구운 소시지나 마늘, 향이 강한 치즈, 케이퍼나 앤초비 등이 들어간 요리와 곁들이면 잘 어울린다. 체리뇰라 자체는 조리하지 않고, 잘 조리된 향이 좋은 요리와 함께 먹는다. 스테이크 옆에 곁들이는 구운 채소처럼 생각하면 된다. 


    봄 소풍 대신 미식 놀이

    피콜리네(picholine)는 조그만 체리뇰라처럼 생겼는데 색은 더 누르스름하다. 개성 있는 향이 나며 과육도 부드러운 편이다. 파스타처럼 볶아 먹는 요리에 넣거나, 수프나 소스를 끓일 때 넣으면 허브처럼 향을 낸다. 리구리아(liguria)는 작고 단단해 먹을 수 있는 과육이 적지만 맛이 아주 진하다. 리구리아 올리브를 구했다면 조리나 가공 없이 꼭 그대로 맛을 보자. 리구리아는 이탈리아 지역 이름이기도 하다. 

    가에타(gaeta)는 이탈리아 풀리아에서 많이 나는 자주색 올리브로 크기가 작은, 잘 익은 대추처럼 생겼다. 쓴맛이 적은 편이고, 고소하며 향이 진하다. 이외에 고달(gordal), 알폰소(alfonso), 미션(mission), 벨디(beldi), 암피사(amfissa), 만자닐라(manzanilla) 등도 있지만 구해 먹기는 쉽지 않다. 

    올리브는 구입한 통에서 필요한 만큼씩 건져 먹고 그대로 두고 보관하는 게 좋다. 통조림에 든 것이라면 보존액까지 병에 옮겨 보관한다. 깜빡하고 보존액을 모두 따라 버렸다면 물 한 컵에 소금 한 숟가락 정도를 넣고 짠 물을 만들어 올리브를 담가둔다. 이렇게 두면 짠맛이 강해지므로 먹기 전에 물에 다시 우리거나, 조리용으로 사용하면 된다. 

    요즘 우리는 수년 만에 미세먼지와 황사 없는 봄 하늘 아래 서 있다. 빛이 밝게 들어오면 그림자도 그만큼 진하게 드리운다. 사회적 거리두기라는 그림자 속에 서서 파란 하늘을 본다. 삶에 생기는 일은 온전히 나쁘기만 하거나, 좋기만 한 것이 아니라는 것을 배운다. 봄 소풍은 못 가지만 봄바람 들어오는 창가에 앉아 남편과 오순도순 미식 놀이할 생각이 앞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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