합병 초기다 보니 인사에서 두 은행 출신을 50대 50으로 안배했지만 앞으로는 성과와 능력주의로 가야 합니다. 여러 해가 걸릴 거 같아요. 조흥은행, 신한은행 출신들이 끼리끼리 밥 먹으러 가는 것도 막고 있습니다. 발각되면 가만 안 두겠다고 했지요. 합병을 계기로 향우회, 동창회도 못하게 했어요. 인포멀한 모임이 조직 발전에 긍정적인 측면도 있지만 우리는 특수한 상황이기 때문에 못하게 막고 있지요. 내가 ‘안방에서 모이는 것까지 조사하겠다’고 했어요.”
그동안 사례를 보면 노동조합이 통합에 암초가 되기도 한다. 그러나 4월1일 신한·조흥은행 통합식장에서는 두 은행 노조의 위원장들이 단상에 올라와 노사 화합선언을 했다. 신 행장이 조흥은행 본점 건물에 있던 노조사무실을 홀로 찾아가 설득함으로써 화합선언을 이끌어냈다고 한다.
신한금융지주회사 라응찬(羅應燦·68) 회장은 신한은행의 정신적 지주다. 경북 상주 출신으로 선린상고를 나와 농협은행, 대구은행을 거쳐 신한은행의 전신인 제일투자금융 이사로 신한은행 설립에 참여했다.
신 행장은 전북 군산 출신으로 군산상고를 나왔다. 그는 산업은행에 근무하다 신한은행 설립 때 옮겨왔다. 은행가에서 신 행장은 라 회장이 키운 인물로 알려져 있다. 그만큼 신한은행에는 지연, 학연을 따지지 않고 능력 위주로 사람을 키우는 문화가 설립 당시부터 뿌리를 내렸다.
라응찬 회장의 ‘깔끔’ 리더십
“라 회장님은 지연, 학연 또는 학력의 차이를 안 따지시는 분이죠. 그분이 사람을 선택하는 관점은 영업 성적, 근무 자세 같은 것이죠. 인재를 편파적으로 쓰지 않아요. 저는 신한은행 오기 전에 그분하고 생면부지(生面不知)였죠. 내가 대표적인 사례가 될지 어떨지 모르지만 저말고도 그런 사례가 허다하죠. 어떻게 보면 신한은행에서 실적과 능력 위주로 사람을 쓰는 문화를 그 양반이 만들었어요. 그리고 인사 청탁을 절대로 받지 않습니다. 그와 관련한 재미있는 에피소드가 많아요.”
-김대중 정부 출범하고 나서 인사 청탁을 거부해 라 회장이 한때 어려움을 겪었다는 이야기가 있더군요.
“그전에도 있었어요. 전두환 대통령 때도 군의 실력자가 부탁을 했는데, 오히려 해당자에게 불이익을 줘 검사역 발령을 내버렸어요. 중심 점포장 하던 사람이 검사역으로 발령나자 결국 그만두었죠. 당시 상황으로 그렇게 하기가 쉽지 않았습니다. 그 일이 있기 전에 외부에 인사청탁을 하고 다니면 불이익을 주겠다고 여러 번 공언했거든요.”
신한금융지주회사는 신한은행 제주은행 굿모닝신한증권 신한생명 신한카드 신한캐피탈 등 11개 자회사를 두고 있다. 신한금융그룹은 은행 증권 보험 카드 자산운용 등 금융의 전 부문을 아우른다. LG카드 인수 경쟁에도 뛰어들었다.
-라 회장이 내년에 임기 3년이 되는데요. 지주회사 경영진은 그대로 갑니까.
“제가 어떻게 윗분의 인사에 관한 얘기를 할 수 있겠어요. 그러나 후배로서 주주총회 때도 이야기했지만 지금 상황에서 그분이 할 일이 대내외적으로 많이 남아 있습니다. 개인적인 생각이지만 그분이 한참 더 계셔야 된다고 생각해요.
제가 ‘은행에 이런 모임이 있으니까 오셔서 한말씀 해주세요’라고 요청하면 ‘그건 은행장이 할 일인데 왜 내가 가느냐’며 간섭을 안 합니다. 웬만한 사람 같으면 보고받고 할 터인데, 일절 노터치예요. 대외적으로 큰일을 할 때는 도와주죠. 그런 인격을 갖추신 분이 드뭅니다.”
신한은행은 창립의 모태인 재일교포들이 약 20% 지분을 보유하고 있다. 지금은 외국인 지분이 늘어나 63%에 달한다.
1980년대 초만 해도 일본 정부의 외환 관리가 엄격했다. 재일교포들은 정식 송금절차를 거치지 못하고 가방이나 라면상자에 돈을 담아 한국으로 들여왔다. 재일교포들은 일본에서 은행 설립이 불가능했고, 일본 은행들로부터 여신 차별을 받았다. 한이 맺힌 재일교포 상공인들은 조국에서라도 은행을 만들어 한을 풀어보고자 했다.
일본 전역에서 재일교포 상공인 1000여 명이 설립에 참여했다. 창립 주주는 재일교포 중에서도 오사카를 중심으로 한 간사이(關西) 지방 상공인이 절반 이상을 차지한다. 이희건(李熙健·89) 명예회장도 오사카 출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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