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년 1월호

가상 세계 서울 땅, 평당 300만 원 넘었다

메타버스 속 가상 부동산, 자산이라기엔 위험성 높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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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박세준 기자

    sejoonkr@donga.com

    입력2022-01-10 10:00: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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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메타버스 게임 속 가상 세계 부동산 인기

    • 온라인 가상 지구의 가상 부동산도 등장

    • 게임 속 부동산, 개당 500만 원에 거래

    • 서울 종로구 가상 부동산 3평에 1400만 원

    • 국내 투자자 대거 가상 부동산에 몰려

    • 일부 가상 부동산 환금성 떨어져 투자 유의

    • 게임 속 부동산도 게임 망하면 휴지 조각

    더 샌드박스의 블록체인 기반 메타버스 게임 ‘샌드박스’ 속 부동산 ‘랜드’. [샌드박스 홈페이지]

    더 샌드박스의 블록체인 기반 메타버스 게임 ‘샌드박스’ 속 부동산 ‘랜드’. [샌드박스 홈페이지]

    데니스 호프라는 미국인은 현대판 ‘봉이 김선달’로 불린다. 공짜였던 대동강 물을 판 봉이 김선달처럼, 호프는 누구도 소유권을 주장하지 않던 달을 비롯한 태양계 행성과 위성의 부동산을 팔아 돈을 벌었다. 유엔의 우주조약에 따르면 인류의 공동 재산인 우주 천체는 특정 국가나 기관이 소유권을 주장할 수 없다. 호프는 이 조약의 허점을 파고들었다. “특정 국가나 기관이 아닌 개인의 천체 소유를 제한하는 조항은 없다”는 것이 그의 주장이었다.

    호프는 1980년 샌프란시스코 지방법원에 태양계의 모든 행성과 위성의 소유권을 인정해 달라는 소송을 제기했고, 법원은 그의 손을 들어줬다. 이후 호프는 ‘루나 앰버시(Lunar Embassy)’라는 회사를 설립, 태양계 부동산을 1에이커(4000㎡)당 24.99달러(한화 약 3만 원)에 팔았다. 지금까지 태양계 천체 부동산을 산 사람만 600만여 명, 호프가 벌어들인 수익은 1000만 달러(120억 원) 이상으로 추정된다.

    최근 메타버스(Metaverse) 열풍으로 이와 비슷한 현상이 벌어지고 있다. 살아생전에 갈 수 있을지 모르는 우주 행성의 땅을 사는 것처럼, 실존하지 않는 메타버스 속 가상 세계의 부동산(이하 가상 부동산)이 팔리고 있다. 가격변동이 없는 천체 부동산과 달리 가상 부동산은 현실 세계의 부동산처럼 수요에 따라 가격이 변한다. 이에 일각에서는 가상 부동산이 암호화폐처럼 새로운 투자 수단이라는 이야기까지 나오고 있다. 진짜도 아닌 부동산에 돈이 몰리는 이유는 무엇일까.

    게임 속 부동산과 거울 세계 속 부동산

    가상 부동산은 가상 세계의 환경에 따라 ‘게임 속 부동산’과 ‘거울 세계 속 부동산’ 크게 두 가지로 나눌 수 있다. 먼저 게임 속 부동산은 블록체인 기반 메타버스 게임의 부동산을 말한다. 게임 속 공간을 꾸미거나, 게임 내 자원을 확보하는 용도로 사용한다. 블록체인 기반 메타버스 게임 회사인 ‘더 샌드박스’의 게임 ‘샌드박스’가 대표적 예다. 샌드박스는 게임인 동시에 콘텐츠 개발 도구다. 게임 내 도구를 활용해 3차원 이미지를 만들 수 있고, 이를 이용해 다른 게임을 만들 수도 있다. 이 콘텐츠를 전시하는 가상공간이 샌드박스 세계 속 부동산 ‘랜드’다.

    현실 세계에 토지소유대장 등 땅문서가 있다면 샌드박스 등의 메타버스 게임 속 세계에는 NFT(Non-Fungible Token·대체불가능토큰)가 이를 대신한다. NFT는 위조가 불가능해 일종의 소유권 증명서 역할을 한다. 블록체인 기반 게임인 만큼 부동산의 소유권이 각 블록체인에 저장되니 ‘샌드박스’라는 게임이 사라지지 않는 한 이를 인정받을 수 있다.



    게임 속 부동산은 게임 내에서 통용되는 가상화폐나 현금으로 자유롭게 사고팔 수도 있다. 2021년 11월 30일에는 게임 회사 아타리가 가지고 있던 샌드박스 내 부동산이 메타버스 부동산 개발업체 리퍼블릭 렐름에 430만 달러(51억 원)에 팔리기도 했다.

    게임 속 부동산이 가상 세계의 땅을 사고판다면, 거울 세계 속 부동산은 현실 세계의 땅이나 건물을 그대로 본뜬 가상 부동산을 사고파는 방식이다. 물론 이 땅을 산다고 해서 현실 세계 부동산의 소유권을 갖게 되는 것은 아니다. 거울 세계 속 부동산은 가상의 부동산을 사고파는 일종의 모의 투자 게임이라고 볼 수 있다.

    메타버스 모의 부동산 투자 플랫폼도 등장

    가상의 돈을 사용해 가상의 부동산을 거래하는 게 기존 투자 게임이라면, 거울 세계 속 부동산 게임은 현금을 이용해 가상 부동산을 사고판다. 대표적 예가 ‘제 2의 지구’를 표방한 ‘어스2(Earth2)’다. 어스2에 접속하면 구글맵을 이용해 만든 세계 전역의 1:1 축척의 지도가 보인다. 이용자는 이 지도를 보며 세계 각국의 땅을 사고 팔 수 있다. 땅의 최소 구매 단위는 10㎡로 가로 세로 10m의 정사각형 땅을 판매하는데, 어스2에서는 이를 ‘타일’이라 한다.

    국내에도 ‘메타버스2’ ‘메타렉스’ 등의 어스2와 유사한 방식의 가상부동산 거래 플랫폼이 있다. 게임 속 부동산과 달리 거울 세계 속 부동산은 대부분 가상화폐가 아닌 현금으로 거래된다. 어스2도 페이팔 등 현금결제 서비스를 이용해 부동산을 판매한다.

    직접 밟을 수 없는 땅을 산다는 측면에서 태양계 천체의 부동산을 사고파는 일과 가상 부동산 거래의 양상은 비슷하다. 하지만 몰리는 돈의 규모는 사뭇 다르다. 출시된 지 3년도 채 되지 않은 가상 부동산의 거래액은 1980년부터 40여 년간 이어져 온 태양계 천체 부동산의 총 판매액인 약 120억 원을 훌쩍 넘어섰다.

    2021년 11월 30일 세계 최대 NFT 거래소 ‘오픈시(Opensea)’의 집계에 따르면 더 샌드박스가 11월 23일 발행한 가상 부동산 NFT 판매액은 일주일 만에 1만5701이더리움(ETH·약 780억 원)을 기록했다. NFT 기반의 P2E(Play to Earn·돈을 벌 수 있는 게임)으로 알려진 ‘엑시인피니티’에서도 최근 22개 가상 부동산이 550ETH(30억 원)에 팔렸다.

    법인도 가상 부동산에 거액 투자

    거울 세계 속 부동산에도 투자금이 모이고 있다. 2021년 12월 기준 어스2의 집계에 따르면 미국 투자자들이 어스2에 투자한 가상 부동산의 자산가치는 총 810만 달러. 900억 원이 넘는 금액이다.

    법인이 가상 부동산에 거액을 투자하는 일도 있다. 캐나다 가상 자산 투자회사 토큰스닷컴의 자회사인 메타버스그룹은 최근 블록체인 기반 메타버스 게임 ‘디센트럴랜드’ 내의 디지털 상가를 약 28억 원에 사들였다. 앤드루 키구엘 토큰스닷컴 CEO는 ‘월스트리트저널’ 인터뷰에서 “메타버스 부동산투자는 250년 전 맨해튼 개발 초기에 땅이나 건물을 사들였던 것과 같은 이치”라고 설명했다.

    실존하지 않는 땅에 투자금이 모이는 이유는 가상 부동산의 가치가 빠르게 오르고 있기 때문이다. 샌드박스의 가상 부동산 랜드의 가격은 2019년 말 기준 1개에 5만 원가량이었다. 현재는 랜드 1개당 최소 3ETH선에서 거래된다. 1ETH 가격이 약 500만 원임을 감안하면 1개당 1500만 원. 가격이 300배 올랐다. 샌드박스에는 총 16만 개 랜드가 있는데, 이 중 70%가 팔린 것으로 알려졌다.

    어스2에서 거래되는 가상 부동산의 상승세도 만만치 않다. 어스2의 타일 1개 가격은 서비스 초반인 2020년 11월 0.1달러(100원) 남짓이었다. 1년이 조금 넘게 지난 2021년 12월, 서울 종로구 타일 1개의 가격은 1만2207달러(1427만 원)에 달한다. 가격이 12만 배 넘게 오른 셈이다. 어스2 한국 가상 부동산 중 가장 저렴한 타일도 개당 2.75달러(3250원)로 27배 이상 가격이 올랐다.

    지구를 그대로 옮긴 가상 세계 속 부동산을 사고파는 거래 플랫폼 ‘어스2(Earth2)’(왼쪽). 2021년 12월 13일 어스2 가상세계의 부동산 시세 통계. 서울 종로구의 땅 10㎡가 1만2207 달러(한화 약 1427만 원)에 거래되고 있다.

    지구를 그대로 옮긴 가상 세계 속 부동산을 사고파는 거래 플랫폼 ‘어스2(Earth2)’(왼쪽). 2021년 12월 13일 어스2 가상세계의 부동산 시세 통계. 서울 종로구의 땅 10㎡가 1만2207 달러(한화 약 1427만 원)에 거래되고 있다.

    서울 종로구 가상 부동산 10㎡ 1400만 원?

    2021년 12월 경제실천연대가 조사한 서울 아파트 평당 가격은 4309만 원. 샌드박스 랜드 3개나 어스2 서울 종로구 타일 4개가 4500만 원을 넘는 것을 생각하면 가상 부동산의 가격이 실물 부동산의 가격을 따라잡고 있다고 볼 수 있다.

    가파른 가격 상승을 보며 국내 투자자들도 대거 가상부동산 투자에 뛰어들고 있다. 2021년 12월 기준 어스2의 투자자 국가별 집계를 보면 한국 투자자들의 가상부동산 자산가치 총액은 1178만 달러(139억 원)로, 이용 국가 중 2위를 차지했다. 1위인 국적 불명 투자자들의 자산가치 총액(1193만 달러·141억 원)와는 불과 15만 달러(2억 원) 차이다. 디센트럴랜드가 2020년 9월 한 달간 확보한 한국인 사용자는 7067명으로 미국에 이어 두 번째로 많았다.

    가격과 투자자의 관심은 높아지고 있지만, 일각에서는 가상 부동산 투자에 우려의 눈길을 보내기도 한다. 임종인 고려대 정보보호대학원 교수는 “현재 형성된 가상 부동산의 가격은 호기심과 기대에 의한 것일 가능성이 높다“며 ”일부 투기 세력 유입 가능성도 존재하는 등 위험성이 큰 시장”이라고 경고했다.

    국내 투자자들이 대거 합류한 어스2의 경우 현금화까지 절차가 까다롭고 소액의 경우 현금화가 불가하다는 점도 우려를 키우고 있다. 가상 부동산 거래 후 이를 현금화하기 위해서는 어스2 운영자에게 메일을 보내야 하는 등 비교적 복잡한 절차를 거쳐야 한다. 또 50달러 미만의 금액은 현금화할 수 없다.

    게임 속 부동산과 달리 NFT 등 거래 내역을 증명할 수단이 없다는 것도 문제다. 송인규 고려대학교 기술경영전문대학원 겸임교수는 “어스2는 가상화폐 기반의 가상부동산과 달리 유동성 리스크가 크고, 플랫폼이 사라지면 개별 부동산의 소유권도 사라져 보장받지 못한다”고 지적했다.

    “가상 부동산, 위험성이 큰 시장”

    거울 세계 속 가상 부동산계의 후발 주자들은 NFT와 블록체인 생태계를 도입하며 이 같은 약점을 해결하려 하고 있다. 대표적인 예가 ‘업랜드’다. ‘메타버스 부동산 거래 게임’을 표방하는 업랜드는 부동산 거래 내역을 전부 블록체인에 저장한다. 게임 속 가상 부동산처럼 NFT를 땅문서로 사용해 부동산 소유권이 사라질 가능성을 줄였다. 부동산 거래도 암호화폐로 이뤄져, 어스2에 비해 환금성이 좋다.

    그러나 가상 부동산에 대한 우려가 완전히 불식된 것은 아니다. 게임이 사라지거나 게임사가 망하게 되면 가상 부동산의 가격이 폭락할 위험이 있기 때문이다. 박상현 하이투자증권 전문위원은 “각종 산업이 디지털 중심으로 가는 상황에서 메타버스를 통한 투자는 자연스러운 측면이 있다”면서도 “가치를 매길 수 있고 일반 대중에 자산으로 통용될 수 있어야 실질적 자산이라고 볼 수 있다. (게임 속) 가상 부동산의 경우 게임 이용자가 아니더라도 그 가치를 쉽게 측정할 수 있어야 비로소 자산으로 인정받을 수 있을 것”이라 진단했다.

    #메타버스 #NFT #가상부동산 #샌드박스 #신동아



    박세준 기자

    박세준 기자

    1989년 서울 출생. 2016년부터 동아일보 출판국에 입사. 4년 간 주간동아팀에서 세대 갈등, 젠더 갈등, 노동, 환경, IT, 스타트업, 블록체인 등 다양한 분야를 취재했습니다. 2020년 7월부터는 신동아팀 기자로 일하고 있습니다. 90년대 생은 아니지만, 그들에 가장 가까운 80년대 생으로 청년 문제에 깊은 관심을 갖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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