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해 직후 5분이 분기점, 신고 순서가 회수 가능성 좌우
로맨스스캠 협박엔 주변인에게 ‘선제 고지’로 상대 무력화
유튜브 광고-밴드-리딩방, 집단심리가 만드는 사기 루트
전문가일수록 ‘나는 안 당해’ 착각, 지식인 노리는 심리 조작
피해자 탓하기보다 초기 신고 지원과 심리 회복 체계 먼저

이승환 서울경찰청 경감은 “사기범은 심리적 약점을 활용해 경찰보다 더 신뢰받는 존재가 된다”고 설명했다. 박해윤 기자
이승환 서울경찰청 경감(치안정보부 치안정보상황과 광역정보1팀장)의 말이다. 지능범죄 수사 28년 차 수사관의 말처럼 사기는 더는 부주의한 이들만의 이야기가 아니다. 피해자 상당수는 평범하고 성실하게 살아온 시민이다. 오히려 남을 잘 믿고 책임감이 강하며 가족을 위해 헌신한 이들이 표적이 된다. 평생 모아온 노후 자금, 안정된 전문직 종사자, 한 가정의 가장까지 잇달아 돈을 잃는다. 피해 뒤에는 “내가 이렇게까지 당하다니”라는 수치심과 자책이 따라붙는다. 가족에게조차 털어놓지 못하고 수년간 혼자 고통을 견디는 이들도 있다.
“사기 수법 알면 덜 당할 수 있다”
이 경감이 “사기는 모두의 문제”라고 강조하는 이유다. 그는 서울 영등포경찰서에서 지능범죄 수사를 시작해 강서서, 서울청 정보2과, 국무조정실 부패예방추진단 등에서 유사수신, 기업 자금 유용, 공직 비리, 보이스피싱 등 지능범죄를 폭넓게 다뤄왔다. 지금은 서울청에서 경제·자산 범죄 동향을 정보 차원에서 분석하고, 피해자들을 직접 만나 현장 상황을 듣는다. 이러한 경험을 바탕으로 2025년 10월 사기범의 심리와 설계를 분석한 ‘사기 프로파일링’(도서출판 밀알)이라는 책을 출간했다. 서울 종로구 서울경찰청 청사에서 만난 이 경감은 “보통 사람이 사기범의 정교한 설계를 간파하기는 쉽지 않기에 경보를 울리듯 사기 수법을 알려 미리 대비하라고 쓴 책”이라고 밝혔다. 그에게 사기의 진화 역사와 유형별 대응 전략을 물었다.지난 20년 동안 보이스피싱과 지능범죄는 어떻게 진화했나.
“2006년 무렵만 해도 어휘도 서툰, 어설픈 전화 사기 수준이었다. 이제는 기술·조직·심리가 결합한 산업형 범죄로 발전했다. 발신 번호 조작, 악성 애플리케이션(앱), 원격 제어, 가상자산까지 동원되고, 콜센터·스크립트팀·자금세탁팀 등으로 분업화됐다. 무엇보다 심리전이 고도화됐다. ‘체포된다’는 협박보다 ‘도와주겠다’며 안심시키는 방식이 많다. 불안·욕망·책임감 같은 감정을 시나리오별로 자극한다. 자금 흐름도 복잡하다. 대포 통장→ 분 산 이체→ 선불카드·상품권→ 가상자산→ 해외 지갑으로 이어져 추적 난도가 크게 높아졌다.”
지식인·전문직 종사자가 사기에 취약한 이유
피해자의 심리적 취약점을 어떻게 파고드나.“전문가 행세(권위), 긴급 상황 조성, 작은 ‘예스’(Yes)에서 큰 순응으로 확대하는 기술을 쓴다. 처음엔 소액 이체나 앱 설치 같은, 부담 없어 보이는 요구로 접근한다. 한번 수락하면 의심이 줄고, 이후 요구도 받아들이게 된다.”
지식인과 전문직 종사자가 사기에 취약하다고 책에 썼다. 왜 그런가.
“전문성의 범위를 착각하기 때문이다. 자기 분야 이외 금융, 심리, 디지털 기술 영역까지 잘 안다고 믿는 경우가 있다. 그래서 ‘나는 이런 사기에 안 당한다’는 과신에 빠진다. 인지 자원이 이미 다른 곳에 소진돼 있다는 점도 영향을 미친다. 복잡한 업무와 연구에 몰두하는 사람일수록 일상적 금융거래나 전화 검증에 신경 쓸 정신적 여유가 없다. 그 틈을 ‘급하다’ ‘지금 바로’라는 말로 파고들면 평소 같지 않은 판단을 하게 된다. 심리 기제를 머리로만 알고 있는 점도 사기를 잘 당하게 되는 이유다. 확증편향, 손실회피 같은 개념을 이론으로는 잘 이해하지만 자기 돈과 자존심, 가족이 걸린 상황에서 이론이 감정을 이기지 못하는 순간이 온다.”
역베팅(확률이 낮은 쪽에 건 도박) 사기처럼 경찰의 조언조차 무시하는 경우가 있다고 들었다. 현장에서 확증편향·진실 편향·낙관 편향은 얼마나 자주 나타나나.
“얼마 전 화제가 된 대전서부경찰서 보이스피싱 검거 사례가 있다. 대학생으로 보이는 인출책이 50대 남성과 만나는 장면을 적발했는데, 문제는 그 남성이었다. 건네준 돈이 대출 상환금이라며 끝까지 경찰 말을 믿지 않으려 했다. 15분 넘게 설득한 뒤에야 보이스피싱임을 인정했다. 이미 많은 돈을 넣은 상태라면 ‘내가 틀렸다’는 사실을 인정하는 것이 심리적으로 너무 고통스럽다. 그렇다 보니 사기범이 제공하는 위로나 희망에 매달리게 된다. 여기에 ‘나에게는 나쁜 일이 생기지 않을 것’이라는 낙관 편향이 겹친다. 사람은 기본적으로 타인의 말을 진실이라고 가정하고 듣는 경향이 있다. 일상에서 모든 말을 의심하고 살 수는 없기에 생긴 일종의 기본값이다. 사기범은 이 점을 노린다. 초반에는 비교적 정직하게 행동하고 소액 수익을 실제로 보여준다. ‘내가 말한 것은 진짜’라는 경험을 심어 안심시키면 어느 순간부터 피해자는 경찰이나 가족보다 사기범을 더 신뢰하게 된다.”
광고·리딩방 검증 강화하고 모니터링 고도화해야
주식 리딩방 사기도 횡행하고 있다. 유튜브 광고→ 네이버 밴드→ 폐쇄형 리딩방으로 이어지는 구조의 핵심 위험은 뭔가.
불법 투자 리딩방에서 사용된 홍보 화면엔 ‘원금 보장’ 문구가 반복 노출된다. 페이스북 캡처
플랫폼 사업자가 최소한 해야 할 조치는 무엇인가.
“광고와 리딩방 운영자 검증 강화다. 금융·투자 관련 광고라면 플랫폼이 기본적으로 사업자 등록, 관련 자격증, 과거 제재 이력 등을 확인해야 한다. 허위이거나 의심이 크면 플랫폼 차원에서 과감하게 차단해야 한다. 그다음이 신고·모니터링 시스템 고도화다. ‘고수익 보장’ ‘원금 보장’ 같은 키워드를 자동 탐지하고 반복적으로 쓰는 계정은 선제적으로 모니터링해야 한다. 방을 없앤 뒤에도 일정 기간 채팅과 공지 데이터를 보관해, 수사기관 요청 시 바로 제공할 수 있어야 한다. 경찰도 협조만 이뤄지면 계정 추적과 증거를 일정 부분 확보할 수 있다. 문제는 절차와 시간이 필요하다는 점이다. 범죄 조직은 그 틈을 노린다. 방을 수차례 폭파하고 계정을 바꾸며 해외 서버와 가상자산을 통해 자금을 빼돌린다. 기술, 플랫폼, 수사가 함께 업그레이드되지 않으면 범죄자의 속도를 따라가기 어려운 게 현실이다.”
대포 통장은 사기 생태계의 혈관
캄보디아 사례처럼 해외에 스캠 센터를 둔 사기 조직의 구조도 궁금하다.“멀티형 스캠 조직은 보통 여섯 갈래로 나뉜다. 총책이 전체 자금과 조직을 관리하며 해외 거점을 움직이고, 기획·스크립트팀이 사기 시나리오와 대본을 만든다. 콜·채팅팀이 피해자에게 직접 전화하거나 메신저로 접근하고, 기술팀은 악성 앱·서버·발신 번호 조작·가상자산 지갑 등을 담당한다. 자금 세탁팀은 대포 통장, 인출책, 환치기, 가상자산 전환을 맡는다. 마지막으로 모집·관리팀이 현지 인력을 끌어모으고 여권 압수나 감금 같은 통제를 한다.”
사기 범죄 현장에서는 어떤 방식으로 가담자를 판별하나.
“해외 스캠 센터에 끌려간 한국 청년들은 피해자이면서 공범인 이중적 지위가 문제다. 수사에서는 몇 가지 기준을 본다. 먼저 처음부터 사기 조직임을 알고 갔는지 여부다. 채용 공고, 면접 방식, 약속된 급여 등을 종합해 고의성을 판단한다. 여권 압수나 폭력·협박·감금 여부, 탈출 시도 등 자유의사의 유무도 확인한다. 역할과 기간, 이익 분배 정도 역시 책임을 가르는 기준이다. 실제로 피해자를 속이는 통화나 채팅을 했는지, 단순 심부름에 그쳤는지도 구분된다. 명백히 강요와 인신매매 피해자인 경우 구제와 보호가 우선된다. 그러나 충분히 탈퇴하거나 신고할 기회가 있었는데도 적극 가담했다면 공범으로서 형사 책임을 피할 수 없다.”
보이스피싱 조직에서 대포 통장은 어떻게 만들어지고 누가 어떤 역할을 맡나.

2023년 1월 17일 서울동부지방검찰청이 보이스피싱 사기범죄에 사용된 대포통장과 출금카드, 대포폰을 압수해 보여주고 있다. 뉴시스
“가벼운 사기 수사는 없다”
한국 경찰 수사가 따라가지 못하는 지점과 사기 수사 인력·전문성의 병목은 어디에 있다고 보나.“구조적 한계가 있다. 지능·사기 전담 수사관을 오래 키우기도 전에 인사이동으로 다른 부서로 보내 전문성이 이어지지 않는다. 디지털 증거 분석 수요는 폭발적으로 늘었지만 인력과 장비가 부족해 분석 대기 시간이 길어지고 신속 수사가 어렵다. 해외 서버와 계좌, 스캠 센터가 얽힌 사건은 사법 공조 절차 때문에 지연되며 그사이 증거가 사라지거나 조직이 이동한다. 가장 큰 병목은 ‘사기 수사는 쉬운 수사’라는 인식이다. 강력사건은 위험한 수사로 인정받지만 사기 수사는 가볍게 취급되는 경향이 있다. 그러나 실제로는 IT 기술, 금융시스템, 국제 거래, 심리학을 모두 이해해야 하는 복합 분야다. 그에 걸맞은 전문화와 장기 근무, 지속 교육이 없으면 범죄자 변화 속도를 따라가기 어렵다. 또 하나는 사회 인식 문제다. ‘속은 사람이 바보’라는 말이 남아 있어 피해자 보호 필요성이 제대로 공감받지 못한다. 결국 예산과 인력도 후순위로 밀리는 악순환이 반복된다.”
경찰청에 따르면 2024년 3월부터 2025년 7월까지 보이스피싱과 투자 리딩방 사기 등 다중 피해 사기 척결 대책을 추진한 결과, 일당 6만3274명을 검거하고 4993명을 구속했다. 검거율은 전년 대비 3.3%포인트 오른 60.3%에 달한다. 2024년 사이버 사기 검거율이 53.8%였던 것에 비해 2025년 상반기는 50%로 다소 낮다. 이 경감은 “직접 돈을 인출하거나 계좌를 제공한 말단 가담자의 검거율은 비교적 높은 편”이라고 설명했다. “현장 폐쇄회로(CCTV), 계좌 추적, 통신 기록으로 어느 정도 따라갈 수 있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그러나 실제 총책이나 해외 조직 상선까지 도달하는 비율은 여전히 낮다. 이어지는 그의 말이다.
“상선과 말단 사이에 대포폰, 대포 통장, 환치기상, 가상자산 지갑이 층층이 끼어 있다. 법 집행이 미치지 않는 지역에서 지휘하는 경우도 많다 보니 일부 사건은 말단에서 그칠 수밖에 없다. 결국 초기 단계에서 피해를 막는 예방이 더욱 중요하다.”
피해자의 심리 단계와 공적 지원은 어디에 초점을 맞춰야 한다고 보나.
“현장에서 가장 자주 보는 단계는 부정과 수치, 자책, 우울의 단계다. 수치심 때문에 신고를 포기하지 않도록 비난 없는 대응과 심리 상담 연계가 중요하다. 수사가 끝나고 손해가 확정되는 시점에도 지원이 필요하다. ‘돈은 거의 못 돌려받는다’는 현실을 마주하는 순간이다. 이때 경제, 법률, 심리 지원이 함께 제공되지 않으면 고리 대출이나 또 다른 사기 피해로 이어지기 쉽다.”
향후 3~5년 안에 특히 경계해야 할 사기 유형을 꼽는다면.
“세 가지 정도를 우려한다. AI 딥보이스와 영상 합성을 이용한 가족·지인 사칭 사기다. 자녀, 부모, 배우자 목소리와 얼굴을 합성해 영상통화를 걸고 ‘사고가 났다, 지금 당장 돈이 필요하다’는 식으로 요구하는 방식이다. 개인 맞춤형 초정밀 피싱도 경계해야 할 사기 수법이다. 유출된 개인정보, SNS 활동, 검색 기록 등을 바탕으로 취미, 관심사, 연애 상황, 건강, 부채 상태까지 분석해 그 사람에게 딱 맞는 시나리오를 짜는 방식이다. 상대가 나를 너무 잘 안다고 느낄수록 의심은 줄어든다. 가상자산과 게임, 이른바 코인·토큰 생태계를 악용한 신종 투자 사기도 활개를 칠 것으로 보인다. 특히 젊은 층을 대상으로 ‘초기 투자자에게만 주어지는 기회’라고 강조하는 유형이 이미 진행되고 있다.”
사기 피해 구조 어렵다? 초기 대응 속도 빠르면 구제 가능성↑

Gettyimage
1. 즉시 신고·지급정지 요청
사기가 의심되면 바로 은행과 경찰(112)에 동시에 연락해야 한다. 은행의 자동응답시스템(ARS) 대표번호 1번은 보이스피싱 신고로 연결된다. 주저하면 그사이 자금 이동이 끝난다.
2. 로맨스 스캠 협박은 ‘선제 고지’가 무기
나체 사진·동영상을 빌미로 “주변에 퍼뜨리겠다”고 협박하는 경우가 급증했다. 이때 절대 추가 송금을 하지 말고 지인과 가족에게 먼저 연락해 “개인정보가 탈취돼 합성 영상이 유포될 수 있다”고 알려야 한다. 미리 알리면 상대 협박의 힘이 크게 떨어진다.
3. 흐름 추적 절차 착수
지급정지 실패 시 대포 통장·선불카드·환치기·가상자산 등 자금 흐름을 뒤쫓아야 한다. 어느 구간까지 회수가 가능한지 수사기관·전문가와 단계별 확인이 필요하다.
4. 2차 피해 차단
전액 회수가 어렵다면 더 잃지 않는 것에 초점을 둬야 한다. 빚을 내 만회하려 하면 추가 사기의 표적이 된다. 금융·법률·심리상담을 동시에 연계해 진행해야 한다.
5. 형사와 민사 절차 병행
형사처벌과 피해금 회수는 별개다. 가해자에게 재산이 없다면 배상이 어렵다. 사기 계좌 명의인을 상대로 부당이득이나 손해배상을 청구할 수 있고, 필요시 회생·파산 제도를 이용하는 것도 가능하다.





















![[지상중계] 제12회 나지포럼, “북미 정상회담 성과내기 어려워”](https://dimg.donga.com/a/380/211/95/1/ugc/CDB/SHINDONGA/Article/69/43/48/32/69434832107aa0a0a0a.jpg)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