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재 상황에서 북한이 무기급 핵물질을 확보할 수 있는 루트는 크게 두 가지다. 하나는 영변을 포함한 대규모 핵 단지에서 자체 생산한 플루토늄을 재처리하는 방안, 다른 하나는 외국으로부터 원심분리기술을 도입해 자체 생산한 우라늄을 농축하는 방법이다. 이 가운데 우선 플루토늄 부분을 살펴보자.
2002년 말 2차 북핵위기가 시작되면서 북한은 5MW 원자로, 폐연료봉 보관용 수조, 재처리 시설 등에 설치돼 있던 IAEA의 감시장비를 철거하고 사찰관들을 추방했다. 관심이 집중되는 것은 1994년 5MW 원자로에서 꺼낸 8000개의 방사성 폐연료봉(대략 플루토늄 25~30kg을 함유하고 있는 것으로 추정)이다. 재처리시 손실률을 10~30%로 가정하면 이 폐연료봉을 재처리해 얻을 수 있는 플루토늄 양은 17.5~27kg이 되는데, 1세대 내폭형 핵폭탄 한 개에 5~8kg이 필요하다고 볼 때 추출된 플루토늄은 최소 2~5개의 핵 폭탄을 만들 수 있는 분량이다.
재처리시설은 가동이 중단된 8년 동안에도 부분적인 유지관리 작업이 계속 이뤄졌기 때문에 전문가들은 수 개월 정도면 재가동 준비가 끝날 것이라고 분석했다. 이 작업은 2002년 말 사찰관들이 추방된 직후 시작됐을 가능성이 높다. 이론적으로 재처리공장의 한 개 라인이 8000개 폐연료봉(50t)을 재처리하는 데 걸리는 시간은 5개월. 물론 이는 작업이 꾸준히 계속되고 기술적인 어려움이 전혀 없다고 가정할 때의 이야기다.
재처리 시작했지만 끝내지는 않은 듯
북한이 폐연료봉의 일부 혹은 전체를 재처리했는지 여부는 불명확하다. 2003년 초 미국의 정찰위성은 영변 저장소에 와 있는 운반차량을 촬영했는데, 이는 폐연료봉이 다른 장소로 옮겨졌을 수도 있음을 시사하는 것이다. 이론적으로 폐연료봉을 다른 재처리시설이나 군사공격으로부터 안전한 장소로 옮기는 작업은 충분히 가능하다.
같은 해 6월 북한 인근에 있는 미국의 감시장비는 재처리시 발생하는 방사성 기체인 크립톤85(Kr-85)의 농도가 미미하게 상승했음을 반복적으로 감지했다. 그러나 이 배출량을 근거로 얼마나 많은 폐연료봉이 재처리됐는지 추정하는 것은 극히 어렵다. 중국, 일본, 러시아 등 주변국의 재처리 과정에서 나온 Kr-85나 바람의 방향 등에 크게 영향 받기 때문이다. 특히 재처리 양이 상대적으로 적다면 더욱 그렇다. 북한이 영변 재처리시설에 Kr-85 배출량 경감설비를 설치했는지, 북한 어딘가에 제2의 재처리시설이 숨겨져 있는지 여부도 확인되지 않았다.
그러나 2003년 6월을 끝으로 Kr-85 농도 증가는 더 이상 감지되지 않았고 분석가들은 재처리시설이 완전 가동되고 있음을 보여주는 어떠한 증거도 발견하지 못했다. 따라서 정부 분석가들은 북한이 6월에 영변에서 핵무기 한두 개를 만들 수 있을 만한 양의 플루토늄을 제한적으로 재처리했지만 전체 폐연료봉을 모두 처리하지는 않고 중단한 것으로 보고 있다. 이는 재처리시설을 평가하기 위한 시험가동일 수도 있고 미국으로 하여금 협상에 나서도록 하기 위한 정치적 전술일 수도 있다. 혹은 재처리를 시작했다가 기술적인 어려움에 봉착했을 가능성도 있고, 워싱턴으로부터 강력하고도 은밀한 경고를 받아 자제력을 발휘한 것일 수도 있다.
이러한 분석이 사실이라면 “재처리를 완료했다”는 지난해 10월 평양의 공개선언은 유리한 고지를 점령하기 위한 포석이거나 장차 재처리 완료를 결정하게 될 때를 대비한 작업일 것이다. 다른 한편으로는 북한의 공개선언이 사실이며 첩보수단에 의해 감지되지 않은 채 재처리를 완료했다는 견해도 있을 수 있다. 일단 추출이 완료된 후에는 어떤정보자산을 동원한다 해도 북한 내에서 이 플루토늄의 행방을 감시하거나 추적하는 일은 불가능하다.
올 여름 새 플루토늄 추출 가능
북한이 단시간 내에 생산할 수 있는 플루토늄 양은 제한돼 있다. 2002년 말 동결을 해제한 후 영변의 5MW 원자로에는 새 연료봉이 공급되었으며 원자로 냉각탑의 수증기 관찰 결과로 미루어볼 때 2003년 3월 무렵부터 재가동에 들어간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이 원자로는 8년간의 가동중단에 따른 후유증으로 쉽게 극복할 수 없는 몇 가지 문제에 봉착한 것으로 보인다.
최대 출력으로 300일간 가동할 경우 5MW 원자로는 매년 7.5kg의 플루토늄을 생산할 수 있는데 대략 한 개의 핵무기를 만들 수 있는 분량이다. 지난해 10월의 성명에서 북한은 “5MW 원자로에서 사용중인 새 연료봉을 가능한 한 빨리 재처리할 것”이라고 단언했다. 기술적으로 이 연료봉은 2004년 봄부터 원자로에서 꺼낼 수 있으며 냉각에 필요한 시간을 감안하면 2004년 여름이나 가을에는 플루토늄을 추출할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장기적으로 북한이 얼마나 많은 분량의 플루토늄을 생산할 수 있을 지는 1994년 핵 동결 당시 건설중이던 50MW와 200MW 원자로의 완성시점에 달려 있다. 그러나 구체적인 시점을 예측하기란 매우 어렵다. 1994년까지 건설작업이 얼마나 진행되었는지, 동결 기간 동안 유지관리 작업이 어떻게 이루어졌는지, 평양이 이 작업에 얼마나 많은 노력과 자원을 투입할 것인지 알 수 없기 때문이다. 더욱이 동결 기간 중에 북한이 핵심 부품들을 비밀리에 제작했는지 혹은 필요한 자재를 도입해두었는지 여부도 알려지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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