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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 핵 관계자, 베이징서 충격발언 “對조선 적대정책 폐기하면 평화적 핵 활동도 포기 가능”

북한 핵 관계자, 베이징서 충격발언 “對조선 적대정책 폐기하면 평화적 핵 활동도 포기 가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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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지난 4월 중순 중국 베이징에서 열린 한 국제단체 세미나에 참석한 북한의 핵 문제 관계자들이 놀랄 만큼 강도 높은 ‘양보 발언’을 한 것으로 확인됐다. 참석자에 따라 해석을 두고 이견이 있기는 하지만, 일단 발언내용은 청와대와 미 국무부에 전달된 상태. 평양에서 잇따라 흘러나오는 신호는 과연 진심어린 메시지인가, 단순한 분위기 파악용 애드벌룬인가.
북한 핵 관계자, 베이징서 충격발언 “對조선 적대정책 폐기하면 평화적 핵 활동도 포기 가능”

북한의 외교행보가 숨가쁘다. 지난 4월 중국을 방문해 후진타오 국가주석과 회담을 가진 김정일 국방위원장.

1962년 쿠바 미사일 위기에 관한 로버트 F. 케네디 당시 미 법무장관의 회고록 ‘13일(Thirteen Days)’에는 매우 흥미로운 대목이 나온다. 군부 강경파에 의해 ‘언로가 막힌’ 흐루시초프 소련 서기장이 ABC 방송국 기자를 통해 백악관에 메시지를 전달하는 장면이 그것이다. 서기장이 워싱턴에 머물고 있는 자신의 옛 동료에게 타협안을 전하라고 지시하자 이 동료는 ABC 기자를 만나고, ABC 기자는 이를 국무장관에게, 국무장관은 케네디 대통령에게 보고한다. 백악관 참모들은 이 메시지가 과연 신뢰할 만한 것인지, 혹시 또다른 함정은 아닌지를 두고 갑론을박을 벌인다.

위기가 심화될 때, 공식 채널로는 한계를 느낀 한쪽이 제3의 경로를 통해 메시지를 전달하는 일은 외교무대에서는 비일비재하다. 정식 발표와는 달리 무위로 돌아가도 뒷감당을 할 필요가 없이 새 타협안에 대한 상대의 생각을 미리 알아볼 수 있기 때문이다.

북핵 문제와 6자회담을 둘러싸고 팽팽한 긴장이 감돌고 있는 2004년의 한반도 주변은 그런 일이 일어나기에 매우 적합한 배경이다. 평양이 지난 4월 이후 다양한 신호를 보내고 있음은 여러 경로를 통해 감지된다. 4월 하순 김정일 위원장의 방중(訪中) 기간에 흘러나온 발언 내용들, 비슷한 시기 북한을 방문한 한반도 전문가 셀리그 해리슨에게 김영남 최고인민회의 상임위원장과 백남순 외무상 등이 했다는 이야기, 4월 말 뉴욕에서 용천(龍川) 참사 지원문제 협의를 위해 비밀리에 열린 북미 당국자 접촉 등이 그것이다.

이 시기 베이징에서는 핵 문제를 다루는 일군의 북한 관계자들이 국제적인 군축·평화회의기구인 ‘퍼그워시회의(Pugwash Conference)’가 개최한 세미나에 참석했다. 4월13일부터 16일까지 댜오위타이(釣魚臺)에서 열린 워크숍의 주제는 ‘새로운 동북아 안보틀의 전망’. 중국 현지 기자들에게도 일절 내용이 공개되지 않을 만큼 철저하게 비공개로 진행된 이 워크숍에는 한국, 미국, 중국 관계자들도 참석했다. 한국 참석자 가운데 일부는 청와대 자문역에 해당하는 인물이었고, 북한전문가로 구성된 미국측 참석자들 또한 전직 국무부 고위관리와 한반도에너지개발기구(KEDO) 관계자 등 미 행정부와 연결고리를 갖고 있는 인물들이었다.

퍼그워시 사무국의 공식 설명에 따르면 북한측 참석자는 김일봉 조선반핵평화위원회 서기장과 김진범 부위원장, 유경일 비서, 김삼종 군축및평화연구소 선임연구원 등이다. 이 가운데 눈여겨볼 사람은 김일봉 서기장과 김삼종 연구원. 김 서기장은 2001년 워싱턴에서 윌리엄 페리 전 미 국방장관과 만나 북미대화의 가능성을 타진한 것으로 알려진 인물이며, 주유엔 대표부 참사관을 지낸 김 연구원은 국제회의에서 자주 볼 수 있는 외교관료다.



조선반핵평화위원회는 핵 관련 사안이 발생할 때마다 공식논평을 발표하는 조직으로, 대외적으로는 조선노동당 외곽의 사회단체지만 실질적으로는 미국을 제네바합의 위반혐의로 국제원자력기구(IAEA)에 고발하는 등 정부기구 역할을 하고 있다. 북한 외무성 산하의 싱크탱크로 우리의 외교안보연구원에 해당하는 군축및평화연구소는 2003년 커트 웰던 미 하원의원 등이 참석한 ‘미국-조선 포럼’을 주도하는 등 북핵 문제에 있어 비공식 대화채널의 하나로 활용되고 있다.

관심이 집중된 것은 세미나 둘째 날인 4월14일 오후에 열린 북핵 위기 관련 세션이었다. 당초 김삼종 연구원이 서면으로 제출한 발제문은 ‘북핵 문제에 대한 부시 행정부의 접근방식은 해결방식이 될 수 없으며, 미국이 북한의 정권 교체(Regime Change)를 추구하는 한 평화는 요원하다’는 내용을 담고 있었다. 북한의 기존 입장과 별로 다를 바 없는 내용이었다.

그러나 ‘신동아’가 확인한 바에 따르면 발제가 끝나고 자유토론에 들어가자 북한 관계자들은 발제문과는 사뭇 다른 매우 의미심장한 발언을 남겼다. 참석자들을 통해 교차 확인한 구체적인 내용은 다음과 같다.

“중대 메시지” vs “우발적인 발언”

“평양은 결코 파국을 원치 않는다. 이제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경제협력이다. 남조선과의 관계는 지금도 잘되고 있지 않은가. 부시 행정부가 대(對)조선 적대정책을 포기한다면 미국과의 관계도 잘 풀릴 수 있다. 그 경우 우리는 CVID(Complete, Verifiable and Irrever- sible Dismantling·‘완전하고 검증가능하며 되돌릴 수 없는 방식의 핵 폐기’. 부시 행정부의 공식적인 북핵 문제 해결원칙)도 수용할 수 있다.”

한 참석자는 북한측 참석자들이 사석에서 다음과 같이 덧붙였다고 전했다. “CVID를 수용할 수 있다는 것은 평화적 핵 활동도 포기할 수 있다는 뜻이다. 꼭 불가침조약이 아니라 적대정책 포기를 선언하는 것만으로도 시작할 수 있지 않겠는가. 이 같은 개념은 당연히 김정일 위원장의 잠정적 승인을 거친 내용이다.”

언뜻 당연해 보이는 이 발언은 그 맥락을 따지고 들어가면 매우 놀랄 만한 것이다. 글자 그대로 해석하자면, 북한이 그동안 핵 문제 해결의 원칙으로 견지해온 ‘동결 대 보상’을 폐기할 수도 있다는 뜻이기 때문이다. 오히려 한국과 미국측이 제시해온 해결방식에 훨씬 근접한 뉘앙스를 풍긴다. 공식, 비공식을 통틀어 평양측에서 이런 수위의 발언이 나온 적은 아직까지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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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황일도 동아일보 신동아 기자 shamora@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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