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신동아 로고

통합검색 전체메뉴열기

원칙 속에 스스로를 유배한 ‘고독한 남자’

‘이상한’ 정치인, 섬 같은 국회의원 조순형

원칙 속에 스스로를 유배한 ‘고독한 남자’

3/10
다시 얘기를 학창시절로 돌려본다. 조의원은 1954년 서울대 법학과에 입학했다.

―법대를 선택한 특별한 이유라도 있나요.

“국어, 영어 같은 문과 계열 과목을 좋아해 의사의 꿈은 차츰 잊혀져갔죠. 대신 변호사가 되고 싶었어요. 아버님이 평소 ‘변호사가 되면 뭐든 할 수 있다’는 말씀을 자주 하셨거든요.”

하지만 정작 대학생이 된 다음에는 공부와 한참 멀어졌다.

“서울대 법대다 하고 들어가 보니 별 것도 없고 무슨 걱정이 있는 것도 아니고. 다들 고등고시 준비한다고 난린데 저는 뭐 관심도 없고 자신도 없었고요.”



한마디로 고시에 뜻이 없었다는 뜻일 게다. 사람이 사람을 심판하는 일이 싫었던 것은 아닐까.

“그랬지요. 그리고 또 경쟁이 싫었어요. 대학 가서 해방감을 확 느낀 데다 고시 공부가 너무 부담스럽게 느껴지더라구요. 방황도 좀 했겠지요.”

―대학교 3학년 초에 미국 유학을 떠났군요.

“네, 군대 갔다 와서요. 그때 작은형이 거기서 공부하고 있었거든요. 왜 갔냐…, 뭐 학교에 재미를 못 붙였나보지요.”

“후원회, 미안해서 못 열겠어요.”

워싱턴 조지타운대에서 외교학을 전공하던 그가 귀국한 것은 도미 2년째인 1958년. 아버지 유석의 대통령선거 준비를 돕기 위해서였다.

“그냥 따라다니고 심부름 하고 그랬어요. (선친의) 신변 안전이 가장 큰 걱정거리였어요. 항상 테러 위험에 노출돼 있었으니까요. 집안에서도 곁에 꼭 붙어 있으려 노력했지요. “

당시 유석의 인기는 대단했다. 이승만 정권에 대한 불만도 터지기 일보직전이어서 이제야말로 희망을 걸어볼 만 하다는 분위기가 형성돼 있었다. 그런데 유석의 건강에 문제가 생겼다. 1960년 1월 지병 치료차 미국을 방문한 유석은 같은 해 2월15일 갑작스레 운명하고 만다.

유석의 죽음은 그 가족은 물론 정권 교체를 열망한 국민들에게도 큰 충격이었다. 이어 3·15 부정선거가 자행되자 민심은 걷잡을 수 없는 지경에 이르렀다. 4·19 혁명이 터졌고, 다시 1년이 더 지나 5·16 군사 쿠데타가 일어났다. 격변의 시기였다. 그 사이 의정부 보궐선거에 나선 유석의 차남 조윤형(당시 27세)이 국회의원에 당선됐다. 부친의 막강한 후광 덕분이었다. 조의원은 서울대 법대에 복학했다. 여전히 고시에는 뜻이 없었다.

―정치에도 관심이 없었나요.

“네. 형 하나 나갔으면 됐지 동생까지 그럴 필요 있나요. 또 뭐 후광 업고 나간다는 게 내키지 않기도 하고.”

―정치 자체가 싫었던 건 아닌가요.

“그렇지는 않았어요. 전 정치가 무슨 특별한 사람, 선택된 사람이 하는 거라고는 생각지 않아요. 건전한 사회인으로 각 분야에서 열심히 활동하다 기회가 오면 하고 또 그러는 거지. 어려서부터 (부친이 정치하는 걸) 봤으니 관심도 좀 있는 편이었구요. 그런데 영 자신이 없었어요. 걱정이 돼서 말예요.”

―뭐가 그리 걱정됐나요.

“돈 마련해 쓰는 거요. 사실 지금도 그렇지 뭐, 더하면 더했지…. 그 돈을 마련하려면 자기 신념도 굽히고 원칙 안 맞는 타협도 하고, 그래야 할 것 같거든요. 그런 데 잘 적응할 수 있을까 회의가 들었어요. 또 한 가지가, 부탁을 잘 해야 되겠더라구. 아쉬운 소리도 재주껏 잘 해야 하고. 전 근데 뭘 부탁하고 그러는 게 참 불편하고 잘 안 돼요. 사실 그런 것도 좀 할 줄 알아야 되는데. 그걸 잘 못해 주변에 인기가 없는 것 같아요. 이제와서야 뭐 친구고 친척이고 지역구고 많이들 이해해주는 것 같지만. 나이 든 지금도 이러니 그때야 뭐….”

그는 지금도 ‘돈 안 드는 선거’로 유명한 ‘돈 없는 국회의원’이다. 그동안 치른 여섯 차례의 총선은 물론 각종 선출직 경선에서도 법정 선거비 이상을 지출해본 적이 없다. 후원회도 두 번밖에 열지 않았다. 1996년 15대 총선 직전, 그리고 1999년 16대 총선 직전이다. 각각 1억2000만원, 1억5758만원이 모였다. 여야가 뒤바뀌었는데도 동료 의원들과는 달리 모금액에 큰 차이가 없었다.

―줘봤자 소용없다는 생각들을 하나봐요.

“뭐 그런 것보다…. 사실 미안해요. 미안해서 후원회도 못 열겠어요.”

3/10
글 : 이나리동아일보 신동아 기자 byeme@donga.com
연재

이나리기자의 사람속으로

더보기
목록 닫기

원칙 속에 스스로를 유배한 ‘고독한 남자’

댓글 창 닫기

2023/10Opinion Leader Magazine

오피니언 리더 매거진 표지

오피니언 리더를 위한
시사월간지. 분석, 정보,
교양, 재미의 보물창고

목차보기구독신청이번 호 구입하기

지면보기 서비스는 유료 서비스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