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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팔이 파이터’ 무에타이 복서 김선기

“신체장애가 별 건가요? 도전정신만이 살 길이에요”

‘외팔이 파이터’ 무에타이 복서 김선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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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무에타이 복서 김선기는 오른팔이 없다. 그러나 실력은 정상급이다.
  • 1993년 데뷔해 도중에 팔이 잘려나가는 사고를 당했지만 ‘도전정신 하나면 못할 것이 없다’는 생각으로 다시 링 위에 올랐다. “팔이 없지만 정신적 장애를 가진 사람들보다 행복하다”는 외팔이 파이터의 강인하고 억척스런 라이프 스토리.
‘외팔이 파이터’ 무에타이 복서 김선기
두주먹으로 싸워도 힘들 판에 왼쪽 주먹 하나로 거친 챔피언의 세계를 열어가는 사람이 있다. 그것도 일반 복싱이 아니라 주먹, 팔꿈치, 무릎, 발 등으로 상대방을 공격하는 무에타이(일명 킥복싱) 선수로 뛰고 있다. 세계 챔프를 꿈꾸며 강훈련을 하는 동시에 후학을 양성하는 사람, 그는 경기도 이천시에서 설봉체육관을 운영하고 있는 김선기씨다.

올해 나이 만 29세. 외모만 보면 고교생이나 새내기 대학생 티를 못 벗은 미소년 같은 그가 왜 외팔이 되었을까. ‘외팔이 복싱선수가 세계 어느 하늘 아래 또 있을까’ 되새기면서 그를 만나러 갔다.

설봉 무에타이 체육관은 이천시 버스터미널 근처 한 골목에 있었다. 체육관으로 들어서니 비릿한 땀 냄새가 풍긴다. 어디선가 TV 소리가 들려 그쪽으로 다가가 살그머니 문을 열었다. 낡은 침대에 앉아 있던 반팔 차림의 외팔이 청년이 문 쪽을 바라보았다. 말하지 않아도 그가 김선기씨라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일어서니 김씨의 뭉툭 잘려나간 오른쪽 팔이 덩달아 움직였다. 쓸모 없는 환영의 손짓으로 보였다. 팔이 잘려나간 끄트머리 부분을 지져 살점을 감아놓았는데, 상당히 그로테스크해 바라보기 민망하다. 하지만 그는 아무렇지도 않게 팔을 움직이며 “왜 일찍 왔느냐”고 퉁명스런 반응이다. 약속시간보다 먼저 방문한 것에 다소 마땅치 않다는 표정. 그런 그의 눈매가 예사롭지 않게 날카로웠다.

-눈매가 상당히 날카롭군요.



“그런 말을 자주 듣습니다.”

쉽게 동의한다. 콧등이 튀어나와 상당히 고집스럽게도 보이지만 미남형의 얼굴. 피부도 깨끗하다. 얼굴 전면에 불구자라는 그늘은 찾아볼 수 없고, 오히려 오만해 보일 정도로 자신감이 넘친다. 그래서 마음 한켠으로는 실망스러웠다. 신체 불구자 특유의 애처로움이 느껴지지 않아서일까.

프레스기에 가루가 되어버린 팔

-오른팔이 없다면 왼팔을 잃은 것보다 더 불편할 텐데 어떻습니까.

“지금은 아무렇지 않아요. 왼팔로 힘이 모아지고 있으니까요. 육체란 참 신묘해요. 한쪽이 없으면 다른 쪽에서 커버해주고, 한쪽이 부족하면 다른 쪽에서 힘을 더 불어넣어줘요. 제 전적은 30전 23승7패인데, KO승이 19개나 됩니다. 그중 왼쪽 주먹으로 상대방을 녹다운시킨 것이 절반 이상이에요. 한쪽이 없으면 다른 한쪽이 그 힘을 대신해줍니다.”

자연스럽게 오른쪽 팔이 없어진 연유로 화제가 옮겨졌다.

“1996년 4월 경기도 안산의 베어링 공장에서 프레스기(압축기)가 오작동되면서 제 팔 위로 떨어졌어요. 너무나 순식간에 벌어진 일이라 가만히 앉아서 당했죠.”

-정신을 잃었습니까.

“아니요. 어디를 맞았다는 느낌만 들지 정신은 멀쩡하더라고요. 그보다는 순간적으로 제 팔을 찾아야겠다는 생각에 주위를 두리번거렸어요. 그런데 그 무거운 압축기에 눌려 살점 하나 없이 가루가 되어버렸더군요. 동료들이 더 놀라 부랴부랴 저를 병원으로 데려갔습니다. 병원에서는 저를 받아주지 않았어요. 너무 큰 사고여서 작은 병원에선 감당하지 못한다는 거였죠. 광명시 성애병원까지 가서야 겨우 수술을 받았습니다.”

-출혈이 심했겠는데요.

“아니요. 프레스기가 떨어지면서 전기를 일으켜 제 팔을 지져버렸대요. 그래서 출혈은 심하지 않았죠. 만약 출혈이 심했다면 병원을 찾아다닐 때 죽었을 거예요. 그나마 프레스기에 감사해야 했죠.”

-어떻게 정신을 잃지 않았을까요.

“정신력 때문이었을 거예요. 저는 운동선수잖아요.”

이후 그는 6개월 동안 병상생활을 했다. 병원에 있으면서 비로소 아찔한 생각이 들었다. 만약 프레스기가 머리 위로 떨어졌다면 그는 이 세상 사람이 아니었을 것이다. 머리통이 으깨지는 상상을 하다 악몽을 꾸기도 했다. ‘이대로 인생이 망가지는가’ 하는 두려움도 생겼다.

그는 이천실고 기계과를 졸업하고 수도 배관 견습공으로 일을 배운 후 안산 베어링 공장에서 방위산업체 근무를 하다 이렇게 변을 당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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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이계홍 언론인·용인대 겸임교수 khlee1947@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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