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54년 만에 금강산에서 상봉한 김용진·김후웅 부부.
“까짓거 둘이 있으면 머하노? 할말이 머 있노?… 남들은 울고불고 하지마는 나는 울지 말자고 작정을 하고 갔디라…눈물도 안나드라…울믄 머하노?…세월을 누가 돌레주나?…옷이 추워서 벌벌 떨어쌓는데…내복도 안입고 외투도 얄팍하고…빼빼 말라서는…본데 식성도 안좋았는데…기침도 해쌓고…말씨는 똑같드라…맹(역시) 안동말 하드라….”
이산가족 상봉 몇 달 후 일본을 경유한 편지 한통이 그에게 배달되었다. 서두가 ‘사랑하는 나의 안해 김후웅에게’라고 쓰인 편지였다. 소문을 듣고 그 편지 내용을 궁금해하는 내게 김후웅씨는 간지럼 타는 소녀들이나 낼 듯한 웃음 소리를 냈다. 전에 한번도 들어본 적 없던 웃음이었다.
“세상에 남사시러워라…이 영감 하는 수작 좀 봐라. 남사시러워라…” “한 귀절만 읽어 주세요.” “…보자…에 또…여보, 아이고 여보란다…여보는 무슨….” “계속 읽어보세요.” “꿈같이 헤어져 집에 무사히 도착하였는지, 귀한 몸 건강히 지나는지…귀한 몸이란다. 세상에, 아이고, 날더러 귀한 몸이란다…귀한 몸은 내가 무슨….”
그날 금강산 상봉현장에서 절대로 눈물을 보이지 않던 김후웅씨는 55년 만에 받은 남편의 편지, 그 첫머리에 쓰인 ‘귀한 몸’이라는 말에 억누른 울음이 터졌다. 그러나 곧 그 울음을 부끄럽게 생각했다. 체통에 어긋나는 일로 여겼다.
보이진 않아도 그의 볼은 새색시처럼 붉어졌을 것이다. 그렇게 탄력있는 김후웅씨의 목소리를 듣는 것은 난생 처음이었다. 평양에서 온 편지는 애절했다. 그는 그 편지를 읽고 또 읽었다. 남들만 쓰는 단어인 줄 알았던 안해, 남편, 여보, 당신 같은 감미롭고 간지러운 말들, 자신을 향해 발음되는 그 말들의 경이로움, 그걸 매번 새롭고 낯설게 음미하면서 후웅씨는 점점 웃음이 많아졌다. 별일 아닌 일에도 전에 없이 까르륵 웃는다.
“나는 당신과 작별하고 집에 도라와 밤이나 낮이나 항상 당신이 그리워 이마음 것잡을 수 없어- 세월은 흘러 흘러 어언 54년 만에 맛나니 반갑고 기쁨보다 젊은 당신이 백발의 할머니가 되어 내 앞에 나타났으니- 너무나 억장이 막혀 속눈물 얼마나 흘렀는지. 내가 말주변이 없다보니 당신이 만족할 수 있는 위로의 말도 시원히 하지 못했소…당신이 걸어온 인생행로를 생각하면 그저 불쌍한 생각뿐. 붕건이 지배하는 가문이라 재가라도 했다면 내 이다지 마음이 쓰리고 아프지 않았을 것을. 생각하면 눈물이 하염없이 흐르고 또 흘러 이 순간에도 마음을 진정할 수가 없어요. 종가집 맞며느리로서 시부모 모시고 궂은 일 마른 일 풍산고초 다 겪으며 살려니 내라도 옆에 함께 있으면 속푸리라도 하고 부부생활 땃뜻하고 다정한 위로의 말이라도 해주련만. 지금도 그 넓은 집에 혼자서 고독하게 지내는 당신이 식사나 제대로 하시는지. 알치나 앉는지…자기 몸은 자기가 돌보아야 하오. 우리 7천만 겨레가 통일을 바라고 우리 장군님께서 통일의 잎길을 여러 나가시기에 조국통일은 먼 날이 아니라 가까운 앞날에 반드시 이룩될 것입니다. 우리는 락관을 갖이고 통일을 앞당기는 투쟁을 힘있게 펼쳐나갑시다….”
장군님, 투쟁, 락관 같은 말이 낯설긴 했지만 아무리 읽고 또 읽어도 편지는 신기했다. 이게 자신을 향한 말이라는 것이 도무지 믿기지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