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품명가 손성구씨에게 차는 참선이나 명상 같은 수행법이라고 한다.
차의 출신성분, 족보 꿰뚫어야
국내의 품명가를 수소문해보았다. 도대체 그 수많은 차 중 어떤 차가 좋은 차이고 차 맛은 각기 어떻게 다른지 알고 싶었다. 그 과정에서 알게 된 품명가가 바로 손성구(42)씨였다. 소문에 의하면 그는 국내에 몇 안 되는 품명가 중 한 사람이다.
차 전문가라는 말을 듣고 지리산의 그윽한 골짜기에 살 것으로 예상했지만 실제 그의 거처는 서울 강남 서초동의 12평 짜리 조그만 오피스텔이었다. 사바 세계의 한가운데서 차 맛을 즐기고 사는 한량이랄까. 한량은 인생의 맛을 아는 사람이다. 보통 사람은 매연 맛만 보고 사는데 그는 차 맛을 보고 산다. 차 맛을 안다는 사실 하나로도 그 삶의 질이 어떠한가를 추론해낼 수 있다.
손씨의 체격은 보통이었지만 눈이 인상적이었다. 야간 등대에서 나오는 탐조등 같다는 느낌을 받았다. 그에게 첫 질문을 던졌다.
-품명가 소리를 들으려면 차에 대해 어느 정도 감식력을 가져야 됩니까.
“가장 기본이 되는 것은 차에 비료와 농약이 들어갔는지 구별해내는 일입니다. 비료와 농약이 안 들어간 차는 일단 좋은 차입니다. 하지만 요즘 차를 대량으로 생산하면서 비료와 농약이 들어가는 경우가 많아요. 비료나 농약이 들어가면 차의 색깔이 투명합니다. 비료가 들어가면 차 맛이 미끄덩거린다고 할까, 맛이 텁텁합니다. 음식점에서 조미료 많이 들어간 음식을 먹고 난 후의 느낌과 비슷한 거죠. 농약이 들어가면 목이 따끔거리거나 아리아리합니다. 비료나 농약이 들어간 차를 마시면 몸의 순환이 막혀요. 예민한 사람이라면 머리가 꽉 막히거나 척추와 등이 굳어지는 느낌을 갖기도 합니다. 반대로 화학첨가물이 없는 차를 먹으면 몸의 순환이 잘 되는 게 느껴집니다.
다음으로 차의 맛만 보고도 어느 지역에서 생산됐는지, 해발 몇 미터 높이에서 자랐는지, 차를 수확하던 해에 비가 얼마나 왔는지, 어느 정도 온도에서 자란 잎인지, 차를 익힐 때 적당하게 덖었는지(볶듯이 익히는 것), 전문가가 덖었는지 아마추어가 덖었는지 등등을 간파할 수 있어야 합니다. 한 마디로 차 한잔에 그 차의 출신성분과 족보를 꿰뚫어야 합니다.”
중국 차 맛보기 위해 박람회 참석
-감별에 관한 에피소드가 있으면 소개해주시죠.
“한번은 지방에서 감정을 해달라고 두 종류의 녹차를 보내왔습니다. 맛을 보니 하나는 ‘세작(細雀)’으로 비료와 농약을 사용한 차였고 다른 하나는 ‘우전(雨前)’으로 농약은 사용하지 않고 비료만 들어간 것이었습니다. 그런데 우전에 사용된 비료가 매우 섬세할 뿐 아니라 다른 것과는 맛이 달랐습니다. 비료를 쓴 것 같기는 한데 맛이 좀 색다르다고 했더니, 차를 보낸 측에서 우전을 따기 전에 영양제를 투입했다고 하더군요. 영양제 맛이라서 다른 비료하고는 약간 달랐던 거죠.
중국에 갔을 땐 이런 일도 있었습니다. 저는 중국 차를 맛보기 위해 차 박람회에 꼭 참여합니다. 차 박람회에는 중국 각지의 차가 모이기 때문에 한 자리에서 수십 종류의 차를 맛볼 수 있는 좋은 기회죠. 중국의 내로라하는 차 전문가들과도 조우하게 됩니다. 제가 한국에서 왔다니까 어떤 사람이 저를 테스트하더군요. 각기 다른 방식으로 만든 15가지의 보이차(普햔茶)를 우려 놓고 생산지와 제조방식을 말해보라는 겁니다. 내키지는 않았지만 물러서자니 체면이 상할 것 같아 감별에 응했습니다. 맛과 차기(茶氣)만 가지고 15가지 보이차의 생산지가 어디인지를 말했습니다. 세 곳은 틀리고 열두 곳은 맞췄어요. 80%는 맞춘 셈이죠. 보이차는 포장지를 뜯는 순간부터 어떤 감이 전해져 옵니다. 저는 그 감을 차기(茶氣)라고 표현해요. 차기를 접하는 순간 이 보이차가 좋은 것인지, 안 좋은 것인지 간파할 수 있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