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드라마 ‘주몽’은 고구려와 백제의 건국 역사를 다룬다. 여기서 눈길을 끄는 인물이 주몽과 결혼해 고구려를, 아들 온조와 백제를 세운 국모(國母) 소서노다. 작가 최완규씨가 당초 제목을 ‘주몽’이 아닌 ‘소서노’로 붙이려 했을 만큼 드라마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절대적이다.
소서노로 열연하고 있는 탤런트 한혜진(25)의 연기를 보며 지난해 시청자들의 사랑을 한몸에 받았던 MBC 일일드라마 ‘굳세어라 금순아’의 주인공 금순이를 떠올리기란 쉽지 않다. 맹한 듯하면서도 아득바득 살아가는 금순이와 두둑한 배짱으로 현란한 무예 실력을 자랑하는 여장부 소서노는 한참 거리가 있어 보인다.
하지만 한혜진은 금순이로 시청자들을 웃고 울린 것처럼, 소서노를 통해 역사를 개척한 당찬 여성상을 제대로 보여주고 있다. 신세대 탤런트 특유의 생기와 섹시함을 드러내면서도 깊이 있는 연기로 화제를 모으고 있는 그를 만나기 위해 경기도 용인의 산속에 있는 드라마 촬영장을 찾았다.
소서노는 상단을 이끌고 원행(遠行)을 떠나기 앞서 짐을 꾸리고 있었다. 가져갈 물건을 살펴보는 그에게 책사(策士) 사용이 “할 말이 있다”고 하자 사용을 쳐다보는 신(scene)이었다. 단순한 장면 같아 보이는데도 몇 번이나 NG가 났다. 사용의 대사가 꼬이기도 하고, 뒤에 서 있던 엑스트라가 실수하기도 하고, 소서노가 사용을 쳐다보는 속도가 너무 빠르다며 같은 장면을 찍고 또 찍었다.
드라마 촬영 현장은 분주하면서도 지루했다. 10여 초 정도 되는 신 하나를 찍기 위해 한 시간 넘게 세트를 만들고, ‘OK’ 사인이 날 때까지 수십명이 열 번이고 스무 번이고 같은 연기를 반복했다. 촬영이 늘어지자 자신의 신을 기다리다 구석에서 잠든 배우도 있었다.
겨우 한 장면 촬영을 마친 한혜진이 옷을 갈아입으러 차 안으로 들어갔다. 거듭된 NG와 감독의 꾸지람 때문인지 표정이 밝아 보이지 않았다. 촬영 틈틈이 이야기를 나눠볼 요량이었는데 그것도 쉽지 않을 듯했다.
군기 바짝 든 톱스타
“많이 예민해져 있어요. 욕심처럼 연기가 안 되니까 마음이 무거운 모양이에요. 하긴, 촬영을 시작한 지 석 달이 넘었으니 몸도 마음도 지쳤죠. 촬영장을 매일 옮겨다녀야 하는데다, 사극이라 한여름에도 긴 옷을 여러 벌 겹쳐 입고 땡볕 아래 있어야 하니 더 힘든 것 같네요.”
매니저 박가을씨가 걱정스러운 표정을 지었다. 일주일 내내 촬영의 연속이라고 한다.
“일요일과 월요일엔 여의도 스튜디오에서 세트 촬영을 하고, 화요일 새벽부터 토요일 밤까지 쭉 야외촬영이 이어져요. 하루는 전남 나주, 하루는 용인, 하루는 충북 제천, 하루는 경남 산청에서 찍는 식이죠. 강원도 영월에 갈 때도 있어요. 새벽까지 촬영한 후 곧장 다음 촬영지로 갈 때도 있고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