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평범한 무역회사 여사원에서 4개의 레저·스포츠 벤처기업을 거느린 CEO로 거듭난 여장부.
- 그녀가 위기에 빠진 경기지역 벤처업체 2000여 개의 미래를 책임지고 나섰다. 회원사들이 그녀에게 거는 기대는 남다르다. 그녀만의 특별한 능력이 있기 때문이다. 그녀의 회사 홈페이지 주소는 ‘OK Race(자 달리자)’.
2003년 3월 경기벤처협회 회장에 선출된 전순득 회장은 “협회의 위상을 높이는 게 선결과제”라고 말했다.
“그동안 일궈놓은 사업이 어느 정도 궤도에 올랐고, 이제 사회를 위해 뭔가 해야 할 시기라고 생각하던 차에 마침 협회장 선출이 있었습니다. 그래서 제가 협회장을 맡겠다고 했습니다.”
경기벤처협회는 경기지역 중소·벤처기업들이 경영·기술·마케팅 등 상호 정보교류를 통해 공통의 애로사항을 해소하고, 회원 기업의 경영활성화를 도모해 지역경제 발전에 공헌하는 것을 목적으로 1999년 10월 설립됐다. 현재 회원 수는 정회원·준회원을 통틀어 2190개 업체. 이 가운데 여성CEO가 이끄는 곳은 5% 남짓하다. 조직 구성은 물론이고 네트워크 역시 남성 중심이던 협회 분위기를 감안하면 전회장의 도전과 열정 외에 뭔가 ‘그녀만의 특별한 능력’이 있음직하다.
“최근 우리나라 기업환경은 산업구조조정기에 들어섰고 여기에 심리적 경기침체, 중국의 도약에 따른 상대적 위축 등 삼각파고에 휩싸여 있습니다. 특히 중소기업은 인력채용, 수출단가, 금융대출에 있어 매우 어려운 실정입니다. 경기도는 국내 벤처기업의 25% 이상이 소재하고 있고 국가 전체 경제규모에서 약 30%를 차지하는 경제 중추지만 지방이라는 한계 때문에 정부나 중앙기구의 경제정책에서 소외돼 더욱 형편이 어렵습니다. 이런 시기에 두 손을 놓고 가만히 있을 수 없었습니다.”
경기도가 우리나라 경제에서 차지하는 비중과 위상에 비해 정책수립과 관련한 발언권이 턱없이 부족하다는 것이 전회장의 지적이다.
“이런 실정을 타개하기 위해 협회 위상을 높이는 게 선결과제라고 생각합니다. 정부와 경기도는 정책과 미디어에서 소외돼 어려움을 겪고 있는 지방벤처 현실을 직시하고 하루빨리 공식 채널을 만들어 활로를 열어줘야 합니다. 경기도내 벤처기업들이 제대로 된 정책지원을 받아 성장할 수 있는 연결고리를 찾고 싶고, 이를 위해 협회 차원에서 적극 나설 계획입니다.”
자본금 500만원으로 사업을 시작해 연 수십 억 매출을 올리는 기업을 일구면서 업계 부동의 1위를 고수하고 있는 전회장에게 협회측이 거는 기대는 남다르다. 하루가 다르게 변화하는 기업환경과 사회환경에 발빠르게 대처해 사업기반을 탄탄하게 다져온 능력은 물론이고, 무슨 일에든 적극적으로 매달려 끝내 결실을 보는 그의 수완과 열정을 인정하기 때문이다. 지난 3월 협회장에 취임한 전회장은 기대에 부응하듯 중요한 일을 해냈다. 협회 차원에서 도지사를 만나 중소벤처기업 지원시책을 건의한 결과 최근 도정에 반영되는 성과를 거둔 것이다.
“건의사항은 크게 두 가지였습니다. 우선 경기가 호황일 때는 지원기준을 강화하고 불황일 때는 지원기준을 완화해 경기 침체시 벤처기업을 보다 적극적으로 지원할 수 있도록 지원시책을 탄력적으로 운용할 것을 건의했습니다. 또 벤처기업은 재무제표에 의한 현재가치보다 향후 미래가치가 큰 특성을 가진 만큼 시장성과 성장성을 고려해 미래가치가 충분히 반영될 수 있도록 신용에 의한 보증혜택을 줄 것과 이에 따른 경기도의 보증기금액 증액을 건의했습니다.”
전남 순천에서 철도공무원의 3남2녀 중 둘째로 태어난 전회장은 초등학교 시절 세계위인전집, 한국문학전집, 세계명작시리즈, 세계명탐정시리즈 등 분야를 가리지 않고 독서에 탐닉하면서도 항상 전교 1등을 놓치지 않아 여러 선생으로부터 똘똘한 아이로 총애를 받았다. 그때 선생들은 “너는 커서 여판사가 돼라” “너는 나중에 틀림없이 여자 중에서 뛰어난 인물이 될 거다”라고 말했다고 한다.
“아마 그때부터 ‘나는 나중에 뭔가 큰일을 할 것’이라는 생각을 품었던 것 같습니다. 또 어른들이 면서기를 하려고 해도 논두렁 기(氣)를 받고 태어나야 한다는 얘기를 종종 하셨는데, 이 말의 의미를 곰곰이 되새기기도 했습니다.”
뭔가 큰일을 해내고 싶은 불 같은 열정, 노력하면 남들에게 결코 뒤지지 않는 실력에 자신감과 자만심으로 충만했던 그녀는 인생에서 두 번 쓴맛을 보게 된다.
“고등학교에 진학하니까 초등학교 때와는 영 딴판이었습니다. 판사는커녕 여자는 그저 현모양처가 되는 게 최고의 미덕인 것처럼 가르쳤어요. 그런 게 영 마음에 들지 않고 반항심도 생겨 공부를 소홀히 했습니다. 어린 시절은 특히 몸담고 있는 환경이 중요하다는 것을 절감했습니다.”
덕성여대 경영학과를 우등으로 졸업한 그녀는 무역회사에 잠깐 근무한 적이 있는데 이때 두 번째 쓴맛을 봤다. ROTC 출신 입사동기가 남자라는 이유로 ‘대리’ 직함을 달고 함께 입사한 여직원들을 지도하는 위치에 오르자 참을 수 없었던 것.
“학창시절에는 남자에 뒤지지 않았고 오히려 남자를 이끄는 입장이었는데, 사회에 나와보니 실력과 상관없이 남자는 일류, 여자는 이류라는 낙인이 찍혀 있더군요. 여직원은 단순히 보조 취급밖에 받지 못하는 회사 분위기라 비전이 전혀 보이지 않았습니다. 또 다람쥐 쳇바퀴 돌듯 하는 직장생활이 싫어 한 달 만에 사표를 썼습니다.”
뾰족한 수도 없이 직장을 그만두고 교회에 다니면서 절치부심의 나날을 보내고 있던 어느 날, 목사의 설교 한마디가 뼈아프게 다가왔다.
“사람마다 자기 그릇이 있는데 그 그릇을 갈고 닦아서 써야 한다는 얘기였습니다. 내 그릇은 한없이 크다고 생각하는데 그걸 못 닦고 있으니 답답할 수밖에 없었죠. 내 마음속엔 불이 있는데 현실은 전혀 내 편이 아니었습니다.”
전회장이 사업에 뛰어들기로 결심한 것은 이 시기였다. 당시 교회에서 주도한 사회운동을 가까이서 지켜보던 그녀는 주변 지식인들에게 몹시 실망했다. 처자식 때문에 제 목소리를 못 내고 현실과 타협하는 모습이 비굴하게 비쳤기 때문.
“사회운동이든 여성운동이든 내가 하고 싶은 일을 하며 내 원칙대로 삶을 살기 위해서는 돈이 필요하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무슨 사업을 할까 구상하던 중에 잘 아는 분을 만났는데, 앞으로 레저·스포츠 관련 사업이 유망할 거라고 충고해 승마·경마 관련 출판사업에 뛰어들게 됐습니다.”
최초 경마잡지 ‘마사춘추’
1980년 신군부의 등장과 함께 언론통폐합정책이 시작되면서 그 여파가 1980년대 중반까지 계속됐다. 따라서 출판사업을 하려면 반드시 허가를 받아야 했다. “출판업 허가 문제로 문공부 담당자를 찾아갔는데 업무와 상관없이 하는 말이, 수억 원씩 쌓아놓고 시작해도 될까말까 하는 게 출판사업이라면서 포기하라는 겁니다. 사업은 내가 하는 거니까 쓸데없는 걱정 말고 허가나 내놓으라며 입씨름을 벌였습니다.”
그녀는 수억 원은커녕 단돈 500만원, 그것도 은행대출로 마련한 자본금을 밑천으로 지금의 기업을 일구었다. 1987년 경마전문 잡지 ‘마사춘추’ 발간을 시작으로, 그녀는 현재 국내에서 손꼽히는 벤처경영인으로 네 개 사업체를 이끌고 있다. 경마·경정·경륜 등 레이싱 스포츠의 콘텐츠를 제공하며 종합 레저엔터테인먼트 기업을 지향하는 (주)21세기정보통신, 매월 판매부수 10만부가 넘는 경마예상 주간지 ‘명승부’ 등 경마 관련 출판을 주로 하는 21세기문화사, IT 기술을 접목한 최첨단 출판·인쇄시스템을 갖춘 21세기프로세스, 멀티미디어를 활용해 향후 국제적 사업을 펼칠 목적으로 설립된 21세기레저텍 등이 그것. 이들 회사 전체 직원 수는 60명, 연매출은 70억원에 육박하고 있다.
오프라인에서 쌓은 노하우를 바탕으로 1995년부터 부가통신서비스에 눈을 돌렸다. 유선통신 ARS시스템에 이어 호출기 문자를 이용한 오락·레저·스포츠 정보 제공에 나선 것. 이후 PC통신 서비스로 사업영역을 확장하면서 기반을 다졌다. 온라인 사업에 적극 뛰어든 건 2000년 1월 (주)21세기정보통신을 설립하면서다. 급속히 발전하는 IT 기술에 대응하기 위한 독자적 소프트웨어 개발, 온라인 게임, 멀티미디어 서비스 등을 주 업종으로 하는 (주)21세기정보통신은 국내 최대 종합 레이싱 포털 사이트(www.okrace.com)를 구축해 현재 2만5000여 명의 유료회원을 확보하고 있다.
“국내 최고 전문위원들의 분석결과를 토대로 경주예상과 결과를 실시간으로 제공하고 있습니다. 최근 경마장이나 장외 발매소에 가지 않고도 인터넷으로 마권을 구매할 수 있는 시스템을 갖추었습니다. 또 고객이 PC나 인터넷상에서 경주예상을 할 때 도움을 주는 툴인 시뮬레이터도 개발해 서비스 중이고, 무선인터넷을 통한 경마정보도 제공하고 있습니다.”
현재 국내 경마 관련 사이트는 20여 개에 달하는데 이 가운데 규모가 큰 사이트는 서너 개에 불과하다. 연말까지 월매출 10억원을 목표로 한 (주)21세기정보통신 포털 사이트는 현재 업계 1위를 달리고 있다. 발빠른 사업 전환에 따른 성과는 갖가지 상으로 돌아왔다.
과학적인 분석으로 경마를 건전한 레저·오락으로 성장시킨 공로를 인정받아 2000년 11월 문화관광부 장관 표창을 받은 한편, 이듬해 경기지방 중소기업청장 표창을 받았다. 2002년에는 산업자원부 장관 표창을 비롯해 한국여성경제인협회가 선정한 ‘이 달의 여성CEO’상을 수상하고 중소기업 신지식인으로 선정됐다. 또 한국인터넷기업협회와 한국기자협회가 선정한 ‘올해의 인터넷기업 대상’에서 여성CEO 부문 특별공로상을 수상하기도 했다. 국내 최초로 경마정보를 온라인과 무선인터넷으로 서비스하고 건전한 경마문화 육성에 기여한 점을 인정받은 것이다.
“앞으로 주 5일 근무시대가 정착되면 레저스포츠에 대한 관심이 증대되리라고 봅니다. 따라서 경마·경륜·경정 인구도 더욱 늘어날 것으로 예상하고 있습니다. IT 기술의 발달로 다양한 기기와 미디어를 이용한 콘텐츠 전달 같은 시대적 요청이 늘고 있어 사업 전망은 밝은 편입니다.”
그럼에도 전회장은 올 초 일부 핵심 인력만 남기는 구조조정을 단행했다. 뿐만 아니라 아웃소싱으로 회사 몸집을 줄이는 등 숨고르기에 나섰다. 지난해부터 의욕적으로 추진해오던 몇 가지 사업구상이 늦어지거나 벽에 부딪쳤고, 사회전반의 경기전망도 불투명하기 때문이다.
“KT 사업부에서 PDA를 통한 정보제공 서비스를 추진해 우리 회사도 여기에 발맞춰 PDA용 경마정보 솔루션 개발에 들어갔습니다. 그런데 KT 쪽에서 진척이 느려지는 바람에 우리도 보조를 맞추느라 PDA 경마정보 서비스가 답보 상태에 빠졌습니다. 또 한 가지는, 지난해 초 3D 경마네트워크게임과 관련해 미국 업체와 제휴를 맺고 미국 시장진출에 협력키로 했는데 몇 가지 애로점이 있어 현재 사업 추진을 보류중입니다. 프로그램 현지화, 지속적인 프로그램 업그레이드와 관리, 그에 따른 비용이 적지 않게 들 것으로 예상합니다. 투자자금을 확보하는 방법으로 외국 펀딩을 받는 방안이 있지만 법률적 제약이 많습니다. 앞으로 풀어야 할 숙제인 셈이죠.”
사회·여성운동 등 원하는 삶을 살기 위한 ‘기금’ 마련을 목적으로 시작한 사업이 이제 그와는 떼려야 뗄 수 없는 관계가 됐다. 사업이 생각처럼 녹록한 일이 아닐 뿐더러 언제든 그만둘 수 있는 것도 아니기 때문이다. 또 전력투구하는 데서 얻어지는 성과나 보람도 쉽게 그녀를 놓아주지 않고 있다.
전회장은 사업하는 짬짬이 국내외적으로 다양한 활동을 펼쳐왔다. 아시아·태평양지역 NGO 활동가로 제4차 유엔세계여성대회에 참석했는가 하면, 유엔 산하 사회개발 정상회담에 참석하는 등 정치·여성·인권·복지에 대한 관심을 늦추지 않고 있다. 뿐만 아니라 현재 그녀가 활동중인 협회만 해도 11개에 이른다. 경기벤처협회를 비롯해 한국인터넷기업협회 부회장, 여성경제인협회 이사, 민주평화통일자문회의 위원, 경기도발전위원회 위원 등 활동영역이 다양하다.
어느새 낼모레면 오십을 바라보는 나이지만 불 같은 열정으로 똘똘 뭉친 전회장은 ‘미혼의 싱글’.
“대학을 졸업한 지 7년이 지나 대학원에 가겠다고 했을 때 어머니 반대가 심했습니다. 남자 잘 만나 시집가서 편하게 살지 왜 일을 벌이느냐는 거였죠. 하지만 그때 제게 결혼은 우스꽝스러워 보였습니다. 주변 친구들이 언제, 어떤 남자를 만나서, 어떻게 결혼할 거라는 둥 계획을 세우는데 마치 무슨 전투를 치르는 것처럼 보였어요.”
어머니가 그렇게도 소망한 결혼 대신 이화여대 대학원 기독교학과에서 사회윤리를 전공한 그의 공부에 대한 편력은 여기서 그치지 않았다. 또다시 미국 유학을 택해 보스턴대학과 예일대학에서 2년간 사회윤리와 여성학을 전공했다.
“필요하다면 미국 대통령이라도 만나러 갈 것이다. 지금까지 작정한 것 중 실패한 일은 없다. 한번 마음먹은 건 목숨 걸고 하는 성격”이라고 스스로 밝히는 전회장. 그런 열정은 오늘날 그녀를 있게 한 원동력이다.
사업과 사회활동을 하는 데 있어 성공비결은 몇 가지로 요약된다. 처음 만난 사람과도 편하게 얘기할 수 있는 친화성, 모르는 것이 있거나 도움이 필요하면 안면을 가리지 않고 접촉하는 적극성, 한번 목표한 일은 끝까지 밀고 나가는 의지력, 인생에 있어서든 사업에 있어서든 충고나 가르침은 가슴에 새기고 실천하는 것, 입이 아닌 몸으로 보여주는 실천력 등이 그것이다.
“어릴 때 우리 집에서 일을 도와주던 동네 언니, 오빠들이 많았는데 그들로부터 귀여움을 많이 받았습니다. 그래서 처음 만나는 사람도 스스럼없이 편하게 대할 수 있는 성격이 형성된 것 같습니다. 사업하는 데는 큰 장점이죠. 지금까지 사업하면서 필요하면 국내외를 막론하고 누구라도 찾아가서 도움을 청했습니다. 안면이 전혀 없는 상태에서 손을 내밀었지만 날 실망시킨 경우는 없었어요. 처음부터 만나줄까 안 만나줄까 하는 걱정을 전혀 하지 않는 것도 인간에 대한 신뢰 때문이라고 생각합니다.”
유학을 준비할 때 영어를 가르쳐주던 선생은 그에게 “의지력이 대단해서 꼭 성공할 거다”라고 했다. 처음 사업을 시작할 때 한 지인이 “아무리 어려운 일이 있어도 물러서지 않고 자신의 이름을 걸고 끝까지 밀고 나가면 성공할 수 있다”고 충고했다. 지금도 전회장은 이 충고를 금과옥조처럼 가슴에 품고 산다. “사람마다 그릇이 있고 그 그릇을 갈고 닦아 써야 한다”는 목사님 설교도 잊지 않았다.
매사 분명하고 직설적인 성격이라 ‘좋은 게 좋은 거’라는 식으로 적당히 못 넘어가는 그녀는 자신의 불 같은 성격이 좀 가신 다음에 사회활동을 해야겠다고 마음먹었다. “사업을 한다거나 스스로를 다그칠 때는 원칙 있고 치열한 게 도움이 됐는데, 막상 사회활동을 하려면 타인을 이해해야 하고 아량도 갖춰야 해 혈기왕성한 게 도움이 안 될 때가 많습니다.”
그래도 못 참는 게 있는데, 그건 해보지도 않고 앉아서 지레 안 된다고 포기하는 것이다. 그에게는 발로 뛰어 해결책을 찾는 적극성이 고비마다 새로운 돌파구를 마련해주는 힘이 됐다. 요즘 그녀는 넘치는 열정과 힘을 어디에 어떻게 쏟을지 고민중이다.
“최근 중국은 각 성마다 외국 기업을 유치하려고 열을 올리는데 성마다 내거는 투자조건이나 정책이 다 다릅니다. 다양한 정보를 한눈에 알아볼 수 있게 해서 회원사에 도움을 주고 싶은데 자료 축적이 전혀 안 돼 있습니다. 기업이 목적에 따라 마음껏 쓸 수 있는 정보의 데이터베이스 구축이 무엇보다 시급합니다. 이러한 데이터베이스는 비단 경기도나 우리 협회뿐만 아니라 중앙정부에도 필요한 자료라고 봅니다. 협회 자체 힘으로 데이터베이스를 구축하는 건 쉬운 일도 아니고 자금도 많이 들어 역부족입니다. 업체마다 사업방향을 수립하는 데 근간이 되는 데이터베이스가 부족한것은 큰 문제입니다. 앞으로 데이터베이스 구축 지원을 위해 중앙정부를 비롯한 각 부처와 유기적인 채널을 만들어갈 생각입니다.”
국민소득 2만불 비법은 ‘10만 양병설’
최근 들어 협회 사람들을 만나면 맥빠지는 일이 많아졌다. 웬만하면 공장 팔고 땅값 챙겨서 놀고 먹는 게 차라리 수지에 맞는다는 푸념이 늘었기 때문이다. 전회장에 따르면 실제 경기도에 매물로 나오는 공장이 많고, 이미 작업을 중단한 빈 공장도 늘고 있는 실정이다. 또 국제 경쟁력을 갖춘 업체들이 정부의 금융지원이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아 어렵게 연구개발에 성공하고도 생산단계에서 주저앉는 것도 그녀를 안타깝게 한다.
“정부정책에 기업가의 목소리가 제대로 반영되지 못하고 있는데, 특히 서울뿐만 아니라 지방 기업 사정을 듣는 자리가 마련됐으면 합니다. 현재 국내 벤처기업들은 조정기에 들어간 상태입니다. 벤처창업 붐이 꺼지면서 R&D(연구 개발)도 함께 주저앉은 실정입니다. 정책적으로 지속적인 벤처지원이 이루어져 어느 한 기업이라도 세계적인 기업이 나왔으면 하는 바람입니다. 그렇게 되면 21세기 국가 성장동력을 IT 첨단 벤처업계가 주도해나갈 수 있을 것입니다. 현재 청년실업문제가 심각한 실정인데 우수한 청년인력을 산업인력으로 끌어들이기 위해서라도 벤처지원을 정책적으로, 그리고 적극적으로 해야 한다고 봅니다.”
벤처기업인으로 국민소득 2만달러 시대를 달성할 방법에 대해 그동안 나름대로 고심해온 전회장은 ‘10만 양병설’을 예로 들었다. “우선 10만개의 소규모 벤처기업이 자랄 수 있는 환경을 조성하고, 그 중 1만개의 유망 벤처를 집중 육성한다면, 그 1%인 100개 업체가 세계 1등 상품을 하나씩만, 즉 100개만 만들어도 국민소득 2만달러 달성은 무난히 이룰 수 있을 것이라 생각합니다.”
돈은 아무리 많이 벌어도 무덤까지 가져갈 것은 아니니 어차피 내 것이 아니라 직원들과 사회의 몫이라는 전회장. 대신 그녀는 자신의 방식대로 사회에 기여하는 것에 인생의 목표를 두고 있다. 어릴 때부터 ‘뭔가 큰 일을 할 것’이라는 생각을 품고 살아온 그에게 경기벤처협회 회장은 시작에 불과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