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4년 3월호

강삼재, ‘신동아’에 ‘安風’ 전모 밝히다

“YS에게 받은돈은 안기부 계좌에 섞여있던 정치자금”

  • 글: 조성식 동아일보 신동아 기자 mairso2@donga.com

    입력2004-02-27 10:04:00

  • 글자크기 설정 닫기
    • ■조폭도 아니고 왜 나랏일에 의리를 논하나
    • ■DJ정권 출범 직후부터 표적사정 당했다
    • ■‘어른’께 누 되더라도 국민과 역사 속일 수 없어
    • ■3년 동안 식물인간, 자살까지 생각했다
    • ■안기부 계좌 잔고 총액 조사해야 진실 밝혀질 것
    • ■검찰 안 간다, 조사할 게 있으면 법정에서 물어보라
    • ■YS에 대한 마음 지금도 변치 않아
    • ■깨끗이 은퇴, 평범한 소시민으로 살겠다
    강삼재, ‘신동아’에 ‘安風’ 전모 밝히다
    경남 마산에 칩거하는 강삼재(51) 의원을 인터뷰하고 서울로 돌아오는 하늘길에서 창밖으로 구름바다를 내다보며 진실이란 무엇인지 고민하는 것은 여간 피곤한 일이 아니었다.

    “뭘 모르고 내려오신 모양인데 기자들 일절 안 만납니다. 그냥 돌아가십시오.”

    “서울서 비행기 타고 내려왔는데, 너무 야박하지 않습니까. 사람과 사람이 만나는 건데 꼭 이렇게까지 해야 합니까. 어젯밤엔 문도 안 열어주시고….”

    “할 얘기는 법정에서 충분히 했습니다. 언론을 상대로 말하고 싶지 않습니다.”

    “어쨌든 얼굴이라도 한번 보지 않고선 서울로 안 올라갈 겁니다. 인터뷰는 안 하더라도 차나 한잔 주시죠.”



    2월13일 오전 마산역 인근 식당에서 막 아침식사를 끝낸 기자와 강 의원이 전화로 주고받은 얘기의 요지는 대략 이랬다. 전날 저녁 비행기로 마산에 내려간 기자는 그의 아파트로 무작정 찾아갔다. 한동안 ‘잠복근무’를 하다가 밤 11시쯤 초인종을 눌렀다. 몇 번 누르자 안에서 인기척이 났다. 신분을 밝히자 “자다가 일어났다”며 “기자들은 안 만나니 돌아가라”는 약간 짜증 섞인 투의 남자 목소리가 들렸다. 그러곤 끝이었다. 문은 열리지 않았다. 초인종을 또 눌러보았지만 안에선 아예 대응하지 않았다.

    강 의원은 2월6일 서울고법에서 열린 세칭 안풍사건(안기부자금 횡령사건) 항소심 공판에서 “1996년 총선 때 신한국당이 사용한 940억원은 청와대에서 김영삼 당시 대통령으로부터 직접 건네받은 것”이라고 폭탄선언을 했다. 그의 변호인단 주장에 따르면 검찰 기소내용과는 달리 940억원은 안기부 예산이 아니라 김 전 대통령의 정치자금이거나 대선잔금 등 비자금일 가능성이 크다는 것.

    이에 대해 김 전 대통령은 극도의 불쾌감과 배신감을 주변에 표출하면서도 사실 여부에 대해선 가타부타 말이 없어 의문을 자아냈다. 대신 그의 측근들이 “강 의원 주장은 전혀 사실이 아니다”라고 반박했다.

    이로써 안풍사건의 진실게임은 새로운 국면에 접어들었다. 강 의원 주장대로 그 돈이 안기부 예산이 아니라면 신한국당의 후신인 한나라당은 ‘국고 도둑’이라는 오명을 벗을 수 있게 된다. 세인들은 그가 문민정부에서 YS의 정치적 양자로 불리며 집권당 사무총장을 지냈던 점에 주목하며 의리니 배신이니 음모니 하는 단어들을 입에 올렸다.

    그간 수집한 정보에 따르면 강 의원은 정치적 고향인 마산에 내려가 있는데 한 곳에 머무르지 않는 모양이었다. 수시로 그의 동태를 점검하고 있다는 모 언론사 마산 주재 기자는 강 의원이 집에 자주 들르지 않고 친구집이나 절에서 기거한다고 전해줬다. 그를 오랫동안 수행한 한 측근은 “여기저기 돌아다닌다. 많은 언론사에서 인터뷰 요청을 했지만 다 거절했다. 인터뷰는 꿈도 꾸지 말라”고 충고했다. 서울에 있는 그의 부인은 “여행중이니 만날 수 없을 것”이라고 했다.

    첫날 밤 문전박대를 당하고 하릴없이 물러났던 기자는 다음날 아침 일찍 다시 강 의원의 아파트를 찾아갔다. 그의 어머니는 아들과는 달리 문도 안 열어줄 만큼 모질지 않았다. 아들은 새벽 5시 반에 집을 나섰다고 했다. 게임이 끝났구나, 싶었다.

    평상시 이 집에서 혼자 지낸다는 그의 어머니는 아들이 어디를 돌아다니는지 도통 알 수 없다고 했다. 산이나 절에 자주 가는데 어딘지는 모르겠다고 했다. 명함을 건네고 집 전화번호를 받았다. 그러고 나서 두 시간쯤 후, 글머리에 언급한 대로 집에 돌아온 강 의원과 통화가 이뤄진 것이다.

    “DJ정권 출범 이후 표적사정 시작”

    강 의원은 통화 끝에 차나 한잔 달라는 요청을 뿌리치지 못하고 기자의 방문을 허용했다. 멜빵바지를 입은 그는 얼굴에 생기가 돌았다. 몸도 생각보다 날씬한 편이었다. 우습게도 그는 팔순의 노모를 ‘엄마’라고 불렀다. 이를 지적하자 “막내라서 그런다”고 했다. 새벽에 일어나 산에 갔다 왔다고 했다.

    “좋은 장소가 있거든요. 바닷가 주변에 경치 좋은 데가 많아요. 산중턱에 올라가면 일출이 그렇게 좋아요. (마산에) 한번씩 오면 거기 들러요.”

    ‘차나 한잔’으로 시작된 얘기는 두 시간 가량 이어졌다. 짐작은 했지만 강 의원은 재판부를 자극할 만한 얘기는 삼갔다. 사실관계를 캐물으면 탐탁지 않아 하면서도 때론 목소리를 높여 적극적으로 자신을 변호했다. 요지는 사사로운 의리에 매이지 않고 역사와 국민 앞에 진실을 밝혔다는 것. 그는 추궁하는 듯한, 또는 사건에 대한 의견이나 판단을 묻는 질문엔 거부감을 드러냈고 특히 YS 관련 질문엔 매우 민감하게 반응했다. 그 탓에 인터뷰는 몇 번 중단될 뻔했다.

    강 의원은 “산 전문가가 됐다”며 말문을 열었다.

    “이회창과 DJ가 (대선에서) 싸울 때부터 시작된 고난이 햇수로 7년째예요. 안기부자금 수사로 괴롭힘 당한 지는 만 3년이 지났고. 젊을 때는 건강은 신경 안 썼거든요. 그런데 (억울하게) 당하는 사람들은 화병이 생기잖아요. 정신적으로는 버틸 수 있었는데 육체적으로 한계에 부딪혔어요. 사건 터지고 한 6개월은 방황했습니다. 그후 자구책의 일환으로 산을 찾게 됐어요. 지금은 일주일에 한번씩 산에 가지 않으면 몸이 정상 컨디션이 안 돼요. 건강은 전보다 훨씬 좋아졌습니다.”

    과거 신한국당 사무총장을 지낼 때는 체중이 80㎏까지 나갔으나 지금은 69㎏이라고 했다. 허리 사이즈도 40인치까지 불어났었는데 지금은 34인치로 줄었다고 한다. 강 의원은 안풍사건을 DJ 정부 출범 직후부터 시작된 ‘박해’의 연장선으로 해석했다. 그로서는 그렇게 느끼거나 주장할 만도 하다. 1997년 대선 때 ‘DJ 비자금’을 폭로했던 장본인이 아니던가.

    “DJ 정권 출범하고 표적사정이 시작됐습니다. 마산·창원 지역 모든 사정기관이 총동원돼 내 주변을 뒤졌으니까. 서울에서도 마찬가지였고요. 수사의 종착역은 강삼재한테 얼마 줬는지였어요. 이 지역 기업인 수백 명이 불려가 조사를 받았습니다. 나한테 얼마 줬다는 얘기만 하면 살려주겠다고 그랬다는 거예요. IMF사태로 기업들이 망할 때인데 그런 수사를 벌였습니다.

    과거 나도 집권당에 있어봐 알지만, 원래 밑에 있는 사람들은 윗사람의 뜻을 잘 헤아려 일을 벌이거든요. 나는 지금도 DJ가 구원(舊怨)을 갖고 나를 죽이라고 지시했다고는 믿지 않아요. 밑에서 알아서 긴 거예요. 그 와중에 기업들 희생이 엄청났죠. 알다시피 나는 개인비리는 한 건도 없었어요. 개인적인 부정부패 혐의로 나를 잡으려다 미수에 그친 거예요. 그러자 마지막엔 안기부 자금 사건으로 걸고넘어진 겁니다.”

    “변호사들에겐 처음부터 얘기했다”

    강 의원은 지난해 9월 안풍사건 1심에서 특가법상 국고 손실죄로 법정구속 없이 징역 4년에 추징금 731억원을 선고받았다. 재판부는 공범으로 인정된 김기섭 전 안기부 운영차장에 대해서는 징역 5년에 자격정지 2년, 추징금 125억원을 선고하고 법정구속했다. 그 직후 강 의원은 의원직 사퇴와 정계은퇴를 선언했다. 하지만 사표가 수리되지 않아 의원직은 아직 유지하고 있다. 그는 정계은퇴 발표 당시의 심정을 이렇게 밝혔다.

    “검찰은 그렇다 쳐도 사법부는 올바른 판단을 하리라 기대했는데 결과가 그렇지 않아 충격을 받았습니다. 1심에서 유죄판결을 받고 나니 운명이라는 생각이 들더군요. 공직자로서 나의 운이 다했구나 싶었어요. 많은 사람이 (의원직 사퇴와 정계은퇴에) 반대했죠. 지역구가 확실하니 나중에 사면 받고나서 다시 출마해 당선되면 된다고. 그런데 막상 유죄판결을 받고나니 20년 동안 (나를) 키워준 지역구민들 대할 면목이 없더라구요. 다들 무죄를 확신했는데, 사람들 만나 일일이 변명하는 것도 지겹고 자존심도 상하고…. 깨끗한 모습을 보이고 싶었죠. 그래서 2심 재판에 들어가기도 전에 의원직 사퇴하고 정계은퇴를 선언한 겁니다. 쉬운 결정은 아니었죠.”

    -강 의원께서 인정할 건 인정하고 책임질 건 책임지는구나 싶었는데요.

    “같은 맥락이죠.”

    사실 강 의원의 폭탄선언은 1월13일 정인봉 변호사가 기자회견을 갖고 “YS가 강 의원에게 안풍 자금을 직접 준 것으로 추정된다. 강 의원은 ‘청와대에서 당무보고를 마친 뒤 아무 말 없이 주면 받아왔다’고 말했다”고 주장했을 때부터 예견된 것이었다.

    “변호사들한테는 사건의 대강을 얘기했죠. 그리고 주문을 했어요. 내가 유죄라도 좋으니 이러이러한 범위에서만 해달라, 어떤 사항은 건드리지 말아달라고. 팩트를 얘기하지 않고 변호해달라고는 부탁 못해요. 변호사들은 처음부터 이 사건의 대강을 인지하고 있었어요. 내가 각론은 얘기 안 했지만. 의도적으로 (언론에) 터뜨린 게 아니에요. 정계은퇴까지 한 놈이 그런 식으로 언론플레이해서 뭔 득을 보겠다고. 우리 내부에서는 공공연한 비밀이었어요. 우리 당을 출입하는 기자들 중 일부가 그 사실을 알고 따로 취재를 해왔고. 정인봉 변호사는 기자들이 대강의 팩트를 알고 물어오자 확인해줬을 뿐이에요. 그게 (신문) 1면 톱이 되면서 새로운 국면이 전개된 거죠. 그 다음에 남은 건 내가 그 사실을 인정하느냐 안 하느냐는 문제였어요. 고민을 많이 했죠.”

    -어쩔 수 없이 입을 열게 됐다는 건가요?

    “그런 건 아니고, 그 사건이 터지면서 저 자신을 가눌 수 없게 된 거죠.”

    -사람들이 궁금해 하는 게 YS와의 관계인데….

    “인간적 관계에 대해선 얘기 안 하겠어요.”

    강 의원의 표정이 굳어졌다. 잠시 입을 다물었다가 격앙된 목소리로 말을 이었다.

    “일부 언론에서 배신이니 인간적인 의리니 하면서 흥미 위주로 보도하는데, 그런 입질에 오르내리기 싫어 더더욱 인터뷰에 응하지 않았던 겁니다. 언론플레이로 비치고 싶지도 않고요. 내가 정치를 20년 동안 한 사람이고 5선 의원입니다. 이제는 국민과 역사를 바라볼 때죠. 3년을 참았어요. 그런데 언론에 그 사실(YS 관련 얘기)이 보도되는 바람에 제로베이스가 돼버렸어요. 그후 가장 바람직한 처신이 무언지 깊이 고민했습니다. 책임 있는 공인으로서 나 자신을 던지겠다고 결심했죠.

    삶을 포기하고 싶었던 적이 한두 번이 아니었습니다. 정몽헌 안상영 두 사람의 심정을 100% 이해해요. 내가 그 부분까지 갔었거든요. 3년을 버티고 정계은퇴까지 했잖아요. 그것도 예사로운 일이 아니에요. 배신 운운하는 사람들에게 만약 나 같은 일을 당했다면 어떻게 했을 건지 묻고 싶습니다. 판사가 재판할 때마다 내게 사실을 밝히라고 요구했는데 3년 동안 버텼습니다. 3년을. 그동안 내 자신을 버렸던 거예요. 단순히 인간적 관계로 말할 게 아닙니다. 배신? 그렇게 규정지을 수 있나요? 내가 뭐 때문에 3년을 버텼는데. 벌써 스물아홉 차례 재판했는데 왜 내가 얘기 못해요. 돌발적으로 신문에 보도되고 나서 예스냐 노냐 절박한 상태에서 고민 끝에 내린 결정입니다. 시민들 의견도 물어보고.”

    -사전에 말이죠?

    “그렇죠.”

    -반대하는 사람은 없었습니까.

    “없었어요. 당원 200명 정도를 만났어요. 후원회 멤버들에게도 물어보고 유지 어른들도 만나 상의하고. 다들 어떻게 진실을 안 밝히느냐, 뒷감당을 어떻게 할 거냐는 거예요. 놀랐어요. 내가 가진 부담과 인간적 고뇌를 다른 사람들은 헤아려주지 않더라구요. 나 개인의 문제가 아니라는 거죠. 마산의 명예가 더럽혀지고 있다는 거죠. 나를 사랑하고 키워준 시민들을 배반한 결과를 어떻게 책임질 거냐고.”

    “항의전화는 전혀 없었다”

    강 의원의 목소리가 높아지고 말도 빨라졌다. 손짓도 자주 나왔고 눈에도 힘이 들어갔다.

    “다른 사람들의 결론은 간단명료했어요. 고민할 사항이 아니라는 거예요. 그 전에는 그런 얘기들을 안 했거든요. 그런데 내가 1심에서 유죄판결을 받고 정계은퇴를 선언하자 여러 사람이 걱정하는 거예요. 2심에서 또 유죄판결이 나올 경우 마산시민들의 불명예를 감당할 수 없다는 거죠. 마산이 자존심이 센 동네예요. 저 이전엔 재선(의원)도 없었어요. 철딱서니없는 어린애를 키워 5선으로 만든, 그 자긍심이 대단해요. 그런데 국가 예산 떼먹어 선거를 치렀다고 하니 시민들 자존심이 여지없이 박살나 버린 겁니다. 묻는 순간 다 즉답을 해요. 선택의 여지가 없다고.”

    -법정에서 그 발언을 한 후 항의전화는 없었습니까.

    “전혀 없었어요.”

    -저쪽(YS쪽)에서도?

    “어느 누구도. 당시 청와대에 있던 사람들이나 나와 같이 일했던 사람들 중 누구로부터도 그런 전화를 받지 않았어요. 내가 비겁하게 처신한 적이 없다는 걸 알기 때문이죠.”

    -평소 신뢰가 있었다는 거죠?

    “그것도 그렇지만, 정황을 보라구요. 3년을 버티다가 정계은퇴까지 했잖아요. 그런 나를 나무랄 수는 없죠. 시대흐름도 그러하고요. 개발독재시대도 아니고 우리 국민이 내가 엄청난 고민 끝에 내린 결정이라는 걸 이해하는 거예요. 만나는 사람마다 그간 마음고생 많았다고, 왜 진작 진실을 얘기하지 않았냐고 해요. 의리 차원에서 나무라는 얘긴 없었어요.”

    안기부 계좌에 섞인 외부자금

    짐작한 대로 YS와의 인간적 관계가 몹시 맘에 걸리는가 보다. 그는 “진실을 밝히는 것과 인간적 관계는 상충되는 것이었다”며 심적 고통이 상당했음을 내비쳤다.

    “내가 한 사람을 모시는 비서가 아니고 20년 정치를 한 5선의 공인 아닙니까. 만약 진실이 가려진 상태에서 유죄로 결론나면 나를 좋아하고 지지했던 지역구민들은 어떻게 되고 내가 속한 집단은 뭐가 됩니까. 또 이 사건을 정략적으로 이용하는 세력도 있단 말이에요. 나는 진실을 얘기하고 싶었습니다.”

    -강 의원께서는 진실이라고 주장하지만 검찰이나 김기섭 전 안기부 운영차장 얘기는 다르지 않습니까.

    “그런 얘기는 안 할래요. 내가 말하는 걸 믿느냐 안 믿느냐가 중요하죠. 저 살기 위해 모시던 전직 대통령에게 바가지를 씌운다면 세상에서 가장 나쁜 놈 아니겠습니까.”

    -한 가지만 묻겠습니다. 검찰에 따르면 문제의 돈의 출처가 안기부 계좌에서 나온 국고수표라는 것 아닙니까. 그런데 강 의원께서는 그게 국고수표가 아니라고 주장하는 건가요?

    “나는 그것이 국고수표인지 아닌지 몰라요.”

    강삼재, ‘신동아’에 ‘安風’ 전모 밝히다

    1월16일 강삼재 의원이 ‘安風’사건과 관련, 기자들에 둘러싸인 채 서울고법에 출두하고 있다.

    -안기부 국고수표가 시중은행을 거쳐 일반수표로 바뀐 것 아닙니까.

    “그렇죠. 안기부 예산이 5000억원이라면, 5000억원만 수표로 입금됐어야죠. 그런데 문제는 당시 안기부 계좌에 입금된 게 5000억원뿐이었느냐, 아니면 플러스 알파가 있었느냐는 거예요. 이건 계좌를 확인해봐야죠. 그래야 다른 자금이 섞였는지 아닌지를 알 수 있죠. 검찰 논리는 당이 사용한 수표를 역추적하니 안기부 계좌에서 나온 것이더라, 그러니 안기부 예산이라는 거죠.

    그런데 과연 그 계좌에 안기부 자금만 있었느냐. 상식적으로 국가기관에서 예산 5000억원 중 1000억원을 밖으로 빼돌리면 지탱될 수 있습니까. 일반 기업체도 회장이 거액의 자금을 빼돌리면 회사가 휘청거릴 텐데. 그래서 우리 변호인들이 안기부 계좌추적을 요청했는데 법원이 받아들이지 않았죠. 국가안보에 영향을 미친다는 이유로. 그 상태에서 1심 판결이 난 거죠. 그런데 이번 2심 재판부는 안기부 계좌추적 요청을 수용했습니다. 예를 들어 연도 말이 되면 국가예산은 제로가 돼야죠. 그런데 1994년 말이나 1995년 말 안기부 계좌엔 잔액이 많아요.”

    -안기부 불용액은 반납하지 않잖아요?

    “그러니 연도 말 잔고에 1000억~2000억원씩 남아 있었죠. 그러나 과연 거기에 안기부 자금만 있었겠냐는 거예요. 다른 자금도 섞여 있었다는 거지. 예산이 5000억원인데, 연도 말에 2000억~3000억원이 남아 있었다면 그 돈이 과연 안기부 자금인지 정치자금인지…. 단순히 수표가 안기부 계좌에서 나왔다는 이유만으로 안기부 예산이라고 할 수는 없다는 거죠. 그래서 계좌 잔고 총액이 얼마였느냐가 중요해요. 그게 2심에서 공방을 벌이는 부분입니다.”

    변호인측에 따르면 1990년대 안기부 연간 예산은 평균 5200억원이므로 분기별 예산은 1300억원이다. 그 중 반 정도가 사용되지 않고 관리계좌에 입금돼 왔으며 여기에 예산에 포함되지 않는 이자와 불용액 800억원을 합하면 매 분기 약 1450억원이 남아 있어야 ‘정상’이라는 것이다. 따라서 이를 넘는 돈이 있다면 외부자금으로 봐야 한다는 것.

    “집권당 사무총장 파트너는 안기부장”

    그런데 변호인측 분석에 따르면, 1994~95년 매 분기 7개 시중금융기관에 분산돼 있던 안기부 관리계좌에는 최대 2695억원의 잔액이 있었고, 특히 1995년 3월 말 2447억원이던 잔액이 그해 6월 말 1625억원으로 갑자기 줄어드는 등 총선자금으로 쓰인 흔적이 나타났다는 것이다.

    “검찰은 내가 김기섭과 공모해 국고를 빼냈다고 하는데 김기섭이 1심 법정에서부터 줄기차게 증언해온 게 나를 만난 사실이 없다는 것 아닙니까. 그는 내 파트너가 아니었어요. 집권당 사무총장의 파트너는 안기부장이에요. 또 선거를 앞두고 있으니 국내정보 담당인 1차장을 만날 수는 있겠죠. 하지만 예산을 맡고 있는 운영차장은 만날 이유가 없죠. 김기섭은 안기부 돈의 전달경위에 대해선 밝힐 수 없다고 했습니다. 그런데 공소장엔 김기섭이 그 돈을 빼서 나한테 줬다고 돼 있어요. 김기섭은 나한테 준 사실을 부인했는데도.”

    -당에 전달했다는 것 아닙니까.

    “당에 전달했다는 건 이번에(항소심 재판에서) 처음 나온 얘기고요. 그전엔 수십 차례 물어볼 때마다 ‘강 총장한테 주지는 않았다’고 얘기해왔지요.”

    그는 “이번 재판의 핵심은 자금의 원천을 밝히는 게 아니라 김기섭과 내가 공모해 국고를 횡령했는지 아닌지를 판가름하는 것”이라며 “만약 더 밝혀야 할 것이 있다면 이 사건 재판이 끝난 다음 검찰이 다시 조사하면 될 것”이라고 말했다.

    “사실 돈의 연결고리가 발견되지 않았죠. 나는 누구한테 받았는지 얘기 안 했고 김기섭도 누구에게 줬는지 밝히지 않았어요. 그 상태에서 1심 재판부가 유죄라고 판단한 거죠. 그런데 공모라면 만나서 얘기를 했던지….”

    -김영삼 전 대통령은 전두환 노태우 두 전직 대통령을 구속까지 시키지 않았습니까. 기업들로부터 부정한 자금을 받았다고. 그런데 강 의원 주장이 사실이라면 국민은 정말 허탈하고 분노하지 않을 수 없지요.

    “그건 내가 뭐라 언급할 사항이 아닙니다. 지금 말씀드리는 건 내가 한 행동에 대해서만입니다. 다른 것에 대한 내 판단이나 인간적 관계에 대해서는 묻지 마십시오.”

    -변호인은 안기부 돈이 아니라고 주장하지만 강 의원께선 그렇게까지 주장하는 건 아니지요? 안기부 돈인지 아닌지 모르지만 대통령한테 직접 받았다는 거지요?

    “나는 회계전문가가 아닙니다. 다만 상식적으로 어떻게 대통령이 집권당 사무총장한테 안기부 예산을 뚝 떼서 선거에 쓰라고 건네줍니까. 지금도 상상이 안 됩니다. 내가 그 돈을 안기부장이나 운영차장이던 김기섭씨한테 받았어야 안기부 자금이 되는 것 아닙니까.”

    -그런데 진짜 궁금합니다. 김영삼 대통령에게 돈을 받을 때 혹시 어떤 돈인지 물어보지 않았습니까.

    “만약 회사에서 부장이 고생한다고 부하직원한테 50만원이나 100만원 주면 그 돈이 어디서 났냐고 물어봅니까. 자금 출처는 주는 사람의 프라이버시에 속한 문제고요. 일반 사회에서도 그럴진대 정치권에서야 말할 나위 없지요. 당 사무총장이 출마자들에게 돈 나눠주면 그냥 받아쓰지, 이거 청와대에서 받은 겁니까, 기업에서 받은 겁니까 하고 물어보는 사람 있습니까. 하물며 당 총재인 대통령이에요.”

    -돈에 대한 시각이 일반인과 다른 것 같습니다. 엄청난 액수의 돈인데, 선거를 치르는 당의 사무총장에게는….

    “그런 얘기라면 안 하겠습니다. 재판장이 알아서 판단하겠죠. 나는 신성한 법정에서 국민과 역사 앞에 진실을 얘기한 거니까.”

    -강 의원께서 안기부 돈이 아니라고 믿는 건 상식적 판단에서죠?

    “줄기차게 그렇게 얘기해온 거죠. 100% 증거를 갖고 하는 얘기는 아닙니다. 다만 상식적으로 상상이 안 되는 일이고, 또 여러 가지 정황도 있잖아요? 당시 (안기부 계좌에) 이상한 돈이 섞여 있었던 것 아닙니까.”

    -그 발언 후 저쪽(YS쪽)과의 관계는 어떻습니까.

    “그런 건 묻지 마세요. 괴로운 얘기는. 재판이 진행중인데 법정 밖에서 그런 얘기 할 필요 없죠. 이 사건의 진실을 밝히는 데는 감정이 들어갈 필요가 없는 거예요. 그간 기자들을 전혀 접촉하지 않은 데는 이런 이유도 있어요.”

    분위기가 어색해졌다.

    -절에 자주 가신다면서요?

    “원래 독실한 불교 집안입니다. 또 등산을 좋아하면 절에 자주 가게 돼요. 산에 절이 많잖아요.”

    -검찰에서 YS 관련 발언의 진위를 조사하겠다며 조만간 소환하겠다고 하던데요.

    “재판장 얘기 못 들었습니까. 절대 용납할 수 없다고. 말이 안 되죠. 1심 재판중이라면 또 몰라요. 1심에서 유죄판결이 나온 사건을 2심 재판중에 다시 조사하겠다니. 그럼 처음부터 단단히 조사해 기소했어야지. (검찰에서) 나는 조사 한번 안했어요.”

    “강 의원이 검찰에 안 나갔던 것 아니냐”고 지적하자 화난 사람처럼 목소리를 높였다.

    “그럼 나올 때까지 기다렸어야죠. 어떻게 조사 한번 안 하고 기소를 해요. 조사에 응하지 않으면 국회 회기가 끝날 때까지 기다리든지 어쨌든 시간을 갖고 기다렸어야죠. 지금 사건 내용이 달라졌다고 다시 조사할 거라면 기소는 왜 했습니까. 어차피 나는 검찰에서 기소한 내용대로 유죄판결을 받았잖아요. 조사할 게 있으면 법정에서 물어보든지.”

    DJ가 미리 규정한 사건

    -검찰 조사에 응하지 않은 건 검찰을 못 믿어서였나요?

    “당시엔 오늘 대통령이 이 사건에 대해 얘기하면 내일은 장관이, 다음날은 검찰총장이 얘기했어요. 사건의 성격을 미리 다 정해놓고 부르는데 어떻게 응해요. 간첩 잡는 안기부자금을 갖고 장난 친 놈이라고 규정해놓고 조사하는데 거기 내가 갈 이유가 뭐요. 언론에 일방적으로 내 혐의를 흘렸어요. 국가 예산 떼먹은 놈으로.”

    -안기부 돈이라고 주장하는 검찰 입장에서는 김기섭씨가 중요한 증인인 듯싶습니다. 다른 안기부 관계자들 증언도 있고. 강 의원께서는 억울하다고 주장하지만.

    “그러니 재판하는 거지. 재판결과가 어떻게 될지는 나도 몰라요. 재판부가 내 얘기가 맞는지 다른 사람들 얘기가 맞는지 잘 판단하겠지요. 정말 사법부가 올바른 판단을 내리기를 기도하는 심정으로 기다리고 있습니다.”

    그는 문민정부 시절 두 차례에 걸쳐 여당인 신한국당 사무총장을 지냈다. 1995년 8월부터 1997년 3월까지와 1997년 8월부터 11월까지. “그 전 사무총장들도 그런 식으로 대통령에게 돈을 받았냐”고 묻자 강 의원의 얼굴이 또다시 굳어졌다.

    “이 재판 끝날 때까지 개인적 의견은 말하지 않겠습니다. 재판장도 나한테 언론플레이하지 말라고 부탁했어요. 지금 나에게 가장 중요한 일은 재판에서 무죄를 인정받는 겁니다. 그리고 역사와 국민 앞에 진실을 밝히는 것입니다. 여기에 내 개인 감정은 개입될 수 없지요. 냉정하고 이성적으로 (재판에) 임하고 있어요. 내가 뭐라 얘기하면 어른께 누를 끼치게 됩니다. 내가 모셨던 그 어른, 지금도 존경하고 있어요. 정치적 스승이고, 열렬히 따랐었고, 지금도 그 마음 변한 게 없어요.”

    -김영삼 전 대통령은 강 의원의 주장에 대해 침묵하고 있는데요.

    “그 양반 얘기는 묻지 마세요. 법정 밖에서 어른과 관련된 얘기는 일절 하고 싶지 않아요. 인간적 관계마저 훼손될 수 있으니까. 그게 싫어서요. 또 김기섭이 뭐라 하든 재판부에 뭘 제출하든 관심 없어요. 진실은 하나입니다.”

    -사람들은 궁금할 수밖에 없지요. 김 전 대통령과 지금 어떤 관계인지.

    “가장 궁금한 게 바로 그거겠지요. 그 분과 갈등 관계로 비쳐지는 게 싫습니다. 이게 국가사인데, 조폭도 아니고 무슨 의리를 얘기합니까. 인간적 신의만 생각해 진실을 감추면 국민은 어떡하고 역사는 어떡합니까. 3년간 나는 식물인간이나 다름없었습니다. 자살도 몇 차례 생각했습니다. 의원직 사퇴하고 정계은퇴 선언하고 내 모든 것을 버렸어요.

    내가 (항소심) 재판에서 그 사실을 밝힌 건 어른께 잠시 누가 될지는 모르나 진실을 밝힘으로써 국민과 역사를 배반하지는 않겠다고 결심했기 때문입니다. 물론 개인적 욕심도 있었지요. 무죄판결을 받고 싶다는. 나를 키워준 사람들을 배신하고 욕되게 하고 싶지 않았거든요. 좁게는 마산시민들이지만 넓게는 국민이지요.”

    그는 다소 비감한 표정으로 “나에 대한 비난이 있다면 감수하겠다”고 말했다.

    “집권당 사무총장을 두 번 하고 부총재까지 지낸 5선의 중진의원입니다. 누구의 부하이기 전에 나도 책임 있는 정치인입니다. 그리고 이 사건의 실체적 진실과 기소 내용은 별개예요. 이 재판은 그 분과는 상관없습니다. 나와 김기섭의 문제일 뿐입니다. 다만 내가 그 분 관련 발언을 한 것이 재판부가 판단하는 데 참고가 되겠지요.”

    “출마 요구는 나를 두 번 죽이는 일”

    그는 “1심 재판에서 YS 관련 부분을 밝히지 않아도 무죄가 될 줄 확신했었다”고 털어놓았다. 김기섭씨와 만난 적도 없었기에 공모 혐의가 성립되지 않을 것으로 믿었다는 것이다. 또 그 돈이 안기부 자금이라는 언론 보도를 보고 오히려 나라 사정을 걱정했을 정도로 자신에게 국고 횡령 혐의가 씌워지리라곤 전혀 생각지 못했다고 덧붙였다.

    “1심에서 재판장이 계속 진실을 얘기하라고 했는데 정치적 신의 때문에 밝힐 수 없다고 말했지요. 진실을 얘기하지 않으면 본인한테 불리하다고까지 했는 데도 말하지 않았습니다. 그러자 재판부는 죄질이 나쁘다고 판단했어요. 판결할 때도 죄질이 나빠 중형을 선고한다고 했지요.”

    -정치에 대해 미련은 남지 않습니까.

    “없어요. 안 그러면 뭐 하러 정계은퇴를 선언했겠어요. 우리나라에서 5선 의원 되는 것 쉽지 않아요. 대단히 성공한 정치인은 아니지만 비교적 성공한 정치인은 된다는 거죠. 정치인은 그만둘 때 미련을 가지면 안 돼요. 무죄판결을 받으면 평범한 시민으로 살고 싶어요. 내 결백을 인정받고 싶은 마음도 있지만 그야말로 내가 무죄라고 확신하기에 무죄판결을 받고 싶은 거예요.”

    -주변에서 출마를 권한다면요?

    “당에선 제가 다시 출마하길 바라고 있어요. 모 관계자가 계속 권유했죠. 이번 총선에서 경남 지역이 어려워 보이거든요. 내가 포진하면 경남에서 (열린 우리당의 공세를 막는) 방패막이가 될 수도 있겠지요. 하지만 ‘나를 두 번 죽이지 말라’며 거절했습니다. 의원직만 버린 게 아니고 정계은퇴를 선언한 사람이라고. 다시 출마해 심판받는 일은 없을 거라고. 대신 도와주는 역할은 하겠다고 약속했어요. 내가 장난을 치려했다면 의원직 사퇴만 했겠지요. 아까 말한 대로 내 운명이려니 여겼어요. 나이 이제 쉰둘에 6선을 눈앞에 두고 은퇴하는 게 쉽지는 않지요. 하지만 정치인생을 어떻게 마무리할 건지 늘 고민하고 있었거든요. 이번 사건을 맞아 비록 해피엔딩은 아니지만 최선을 다하는 게 뭐냐, 고민을 많이 했지요. 주변 사람들이 놀라워했어요. 의원직 사퇴만 해도 신선한데 은퇴까지 하냐고. 하지만 내 속셈은 돌이킬 수 없는 길을 가겠다는 거였죠. 못을 박아버린 거죠.”

    -그럼 앞으로 뭘 하실 건데요.

    “꼭 정치를 해야 먹고 삽니까. 나도 남들처럼 평범하게 살 자신 있어요. 할 거 많아요. 가게를 하든 뭘 하든. 공인으로서 부담을 떨치게 된 게 행복합니다. 멋지게 은퇴하는 모습을 보임으로써 국민에게 좋은 평을 듣고 싶습니다.”

    그는 지난해 9월 의원직 사퇴서를 국회에 제출한 후 지금까지 급여 통장에 전혀 손대지 않았다고 한다.

    “그걸 가지고도 이래저래 말이 나오는 모양이에요. 의원 봉급이 들어오는 계좌에 한 3000만원 쌓였을 거예요. 아직 사표가 처리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개인비리가 아니라 공당의 사무총장으로 일하다 생긴 사건으로 그만둔다고 하니 사표를 안 받아주는 것 같습니다. 어쨌든 늦어도 5월말엔 법적으로 의원 신분에서 벗어나게 됩니다. 그때까지 쌓인 급여는 자선단체에 기부할 생각입니다. 지금은 신분이 어정쩡해요. 법적으로는 아직 의원이고 뭘 하고 싶어도 재판중이라 맘대로 움직일 수도 없고. 5월말 이후엔 내가 하고 싶은 일 하며, 그야말로 평범한 소시민으로 살아갈 겁니다.”

    강 의원은 요즘 등산 외에 독서와 여행을 즐긴다고 했다. 독서는, 특히 조정래씨의 작품을 많이 읽었다고 한다. ‘한강’ ‘아리랑’ ‘태백산맥’ 등. 여행은?

    “20년 동안 몸담았던 정치세계를 떠나려 하니 한편으로는 허탈하고 섭섭한 게 사실이에요. 몸의 리듬도 깨지고요. 그런데 생각하기 나름인 것 같습니다. 그만두고 나니, 평범한 사람이 되니 자유스러움이 그렇게 좋을 수가 없네요. 내가 코란도 지프를 몰고다니는데, 우리나라 군 단위급 고장에 내 발이 안 닿은 데가 없을 정도예요. 공직에 있으면서 외국엔 많이 가봤지만 정작 우리나라는 제대로 여행하지 못했거든요.

    지난 1년 동안 코란도 몰고 웬만한 데는 다 가봤어요. 북쪽의 철원 화천 양주, 서쪽으로 군산 정읍, 동해 쪽으로는 강릉 삼척 동해 울진 영덕까지 전국을 다섯 바퀴 정도 돌았어요. 눈만 감으면 어디 가면 어떤 산이 좋고 어떤 군에 가면 뭐가 좋고 이런 것들이 떠올라요.”

    얘기가 다 끝날 즈음 그의 어머니가 과일을 내왔다. 어느덧 점심때가 가까워졌다. 인터뷰 때문에 외출 시간을 늦췄던 강 의원은 기자와 함께 집을 나섰다. 가는 길이라며 자신의 차로 마산역까지 태워다줬다. 기자는 마산역에서 김해공항까지 가는 리무진버스를 탈 예정이었다. 차안에서 그가 말했다.

    “한번도 ‘어른’에 대해 언짢게 말하거나 그렇게 생각한 적이 없어요. 내 얼굴에 침 뱉기죠. 나중에 재판이 끝나면 모든 내막을 털어놓을 기회가 있을 겁니다.”



    인터뷰

    댓글 0
    닫기

    매거진동아

    • youtube
    • youtube
    • youtube

    에디터 추천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