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마이아이노트(www.myinote.com)’ 사이트가 화제다.
- 비즈니스맨은 물론이고 전·현직 고위관료, 대학교수 등 다양한 지식층 인사들이 이 사이트를 통해 천주욱 사장의 톡톡 튀는 글을 받아본다. 폭넓은 경험에서 길어 올린 통찰력, 탄탄한 실무능력에 바탕한 실속 있는 컨설팅 서비스를 얻고자 함이다.
신의주 특구는 북한의 자본주의 실험이라고 언론이 추켜세울 때 그는 “숙련된 노동자도 없고, 임금도 중국과 별 차이가 없고, 가치 있는 천연자원도 없는 신의주에 어떤 외국인이 투자하겠는가”라며 “내가 외국인 투자자라도 차라리 중국의 다롄(大連)과 단둥(丹東), 선양(瀋陽)에 투자하겠다”고 했다. 또한 양빈에 대해서는 “내가 경험한 중국 재벌들의 경영 스타일로 미뤄보면 그가 벌인 부동산개발 사업과 테마파크 사업은 거창하기만 할 뿐 사업성도 거의 없어 보인다. 양빈이 부실화가 우려되는 어우야그룹의 탈출구로서 신의주 개발에 뛰어든 듯하다”고 의혹을 제기했다.
결국 그의 예측대로 신의주 특구 실험은 실패로 돌아갔다. 양빈도 잠깐 동안 화려한 조명을 받았으나 곧 사기와 탈세 혐의 등으로 중국 공안당국에 체포됐다. 홍콩 중국 싱가포르 등 아시아 대륙 곳곳을 누비며 대기업 상사맨과 지역 주재원, 대표이사로 활동해온 천 사장에겐 신의주 특구의 허점이 너무도 선명하게 눈에 들어왔던 것이다.
오피니언 리더 5000명 회원 등록
최근 제일기획은 전국의 45∼64세 기성세대 1200명을 인터뷰하고 난 뒤 이들을 “와인처럼 은은하면서도 새로운 빛깔과 향기를 풍기는 세대”라며 ‘WINE(Well Integrated New Elder) 세대’라고 일컬었다. 천 사장은 비즈니스계의 와인 같은 인물이다. 그래서 그를 만나고 나면 ‘우리 사회에 이런 선배가 여럿 있어야 한다’는 생각이 든다. 그가 가진 지적자본이 한국 사회에 필요한 자산이라는 생각에서다.
만약 고위 관료들이 그가 운영하는 인터넷 사이트 ‘마이아이노트’를 주의깊게 읽는다면 향후 국가발전전략에 관한 중요한 아이디어를 얻을 것이다. 공항과 항만사업에 관심이 있는 사람이라면 세계 최고의 공항·항만 운영 노하우를 갖춘 곳의 풍부한 사례를 찾을 수 있을 것이다. 사회 일선에서 물러나 은퇴를 기다리는 사람이라면 제2의 인생을 어떻게 살아야 할지 힌트를 얻을 수 있을 것이다.
천 사장은 소리 없이 한국을 움직이고 감시하는 사람이다. 굳이 이름을 붙이자면 ‘재야의 고수’라고 할까. 그가 지난해 2월 작성한 ‘동북아 경제중심국가 문제 있다’는 글은 뜨거운 반향을 일으켰다. 당시 천 사장은 대통령직인수위원회를 향해 “소리 없이 실천해도 모자랄 국가 전략을 만천하에 공개해 중국의 경계심을 불러일으키고 있다”고 지적했다.
이 글을 읽어보면 천 사장의 재치를 엿볼 수 있는데, 그는 한국에 주재하는 중국대사가 본국에 보고하는 형식으로 글을 썼다. 내용도 중국사람이 직접 쓴 것처럼 섬뜩하리만큼 날카롭게 우리 정부의 실수를 지적하고 있다. 당장이라도 정책 방향을 바꿔야겠다는 생각이 들 정도다. 그의 글이 인수위에 알려졌는지 막상 노무현 정부 출범 당시에는 ‘동북아 경제중심국가 건설’에서 ‘국가’란 단어가 빠지고 ‘동북아 경제중심 건설’로 어젠더가 바뀌었다.
2000년 8월부터 운영해온 그의 사이트엔 오피니언 리더급 인사 5000여명이 회원으로 등록돼 있다. 전·현직 장관 등 고위 관료, 대학교수, 대기업 임원, 중소기업 사장 등 다양한 회원들이 매주 그가 쓴 2편의 글을 받아본다. 회원들의 ‘질’이 워낙 좋다 보니 회원들 간에 비난하거나 헐뜯는 글은 거의 눈에 띄지 않는다. 대부분 서로 얼굴 한번 본 적 없지만 천 사장의 글만 읽고도 그를 지방자치단체장에게 소개시켜주는 회원이 있는가 하면, 회사를 인수하면서 정밀한 자문을 구하는 회원들도 있다.
이 모든 것이 눈에 보이지 않는 신뢰감에서 비롯된 일들이다. 무엇이 그를 신뢰하게 만들었을까. 국내 최고 회사에서 일했던 커리어일까, 숱한 경험에서 길어 올린 통찰력 있는 글일까, 아니면 그에게 도움을 요청할 경우 자문 비용도 청구하지 않고 현장으로 달려가 도와주는 행적이 알려져서일까.
천주욱 사장은 1974년 삼성그룹에 입사해 삼성물산, 삼성석유화학, 삼성생명, 그룹 회장 비서실 등에서 17년간 근무했다. 삼성물산에 재직중이던 1980년대 후반, 국내 최초로 사내 벤처사업에 관여한 바 있고, 이를 계기로 한국인터넷기업협회 부회장도 역임했다. 1997년부터 2000년 8월까지 CJ그룹의 종합상사인 CJ코퍼레이션 대표이사를 지낸 3년을 제외하면 대부분 삼성에서 일했다. 그래선지 삼성에 대한 애정이 각별하다.
한국에서 삼성그룹의 영향력은 막강하다. 삼성전자라는 한 기업의 주식 시가총액만도 거래소 상장기업 시가총액의 21%를 차지한다. 삼성그룹이 실현한 이익을 제외하면 상장기업들의 총 이익 규모는 큰 폭으로 줄어든다. 이러다 보니 출판가에는 삼성 관련 책을 내면 기본적으로 3만권이 팔리고, 이건희 회장 관련 책을 내면 5만권이 팔린다는 말까지 나돈다. 삼성의 인기가 치솟자 헤드헌터들 사이에서 삼성 출신 임원들은 출신과 학벌에 상관없이 스카우트 제의를 받는다. 이에 대해 천 사장은 이렇게 분석한다.
“우선 삼성 계열사들의 실적이 좋잖아요. 삼성전자는 해마다 최고의 매출을 올리고 있고, 다른 계열사들도 마찬가지예요. ‘삼성 출신들은 배신을 하지 않는다’는 것도 인정받을 겁니다. 이익치(전 현대증권 회장)씨 같은 사람이 삼성에는 없잖아요.”
왜 삼성에는 배신자가 없는 것일까. 천 사장은 “삼성이라는 회사가 직원보다는 직원 가족들에게 잘 보여서 그런 것 같다”고 한다. 가령 삼성은 직원들에게 설이나 추석 선물을 보낼 때 직원의 배우자나 부모 등 가족에게 필요한 것을 골라주곤 했다. 천 사장이 삼성에 입사했던 1970년대 중반, 삼성물산은 설 연휴 전 직원에게 설탕 한 포대씩을 선물로 줬다. 당시만 해도 귀하기 그지 없던 설탕을 한 포대씩이나 받은 그는 기쁜 마음에 설탕을 어깨에 둘러메고 경남 마산의 고향집을 찾았다. 천 사장의 어머니는 그 설탕을 조금씩 나눠 이웃집에 돌렸고, 고맙다는 인사를 수도 없이 받았다고 한다. 이럴 때 자식과 자식의 회사에 대해 느끼는 부모의 뿌듯함이 어떨지 상상이 간다. 이처럼 집에서 인기를 얻는 회사라면 좀체 배신하기 힘들다는 얘기다.
지금은 ‘기술의 삼성’이라고 부르지만 삼성은 얼마 전까지만 해도 ‘관리의 삼성’으로 불렸다. 그만큼 삼성의 조직관리는 치밀하기로 소문이 났다. 그가 삼성에서 배운 조직관리 노하우는 어떤 것일까. 그는 대학이나 기업에서 강연할 때 이렇게 조언하곤 한다.
“인사관리의 요체는 ‘좋은 사람을 돈을 많이 주고 쓰는 것’이다. 특히 중소기업주들이 사람을 쓸 때 좋은 사람을 싼값에 쓰거나, 나쁜 사람을 비싸게 쓰는 경우를 많이 봤다. 사람관리에 실패하면 기업이 잘될 수 없다. 좋은 사람이란 회사에 대한 충성도가 높고 업무지식이 많으며 최선을 다해 일하는 자세를 갖춘 사람을 말한다.
그 다음으로는 오너의 역할이 중요하다. 이건희 삼성 회장은 한 달에 회사에 나오는 날이 며칠 안 된다. 그래도 조직이 조화롭게 작동된다. 상호 견제하고 경쟁하는 조직을 만들기 때문이다. 조직에 상응하는 힘을 주되, 한 조직에 과도한 힘이 실리지 않도록 조절하는 것이 오너의 역할이다. 삼성에는 ‘힘이 없는 조직은 만들지 말라’는 말이 있다. 힘있는 조직끼리 서로 견제하도록 하는 것이다. 삼성 감사팀은 감사 대상 부서에 학교 선배가 있어도 봐주는 법이 없다. 철저하게 뒷조사를 한다. 물론 과도하게 경쟁하다 보면 서로 헐뜯고 비난하는 쪽으로 흐를 수도 있다. 그러니까 좋은 사람을 비싸게 써야 한다. 사람이 나쁘면 서로 비난하게 된다.”
‘싱가포르學 박사’
천 사장은 이건희 회장의 리더십에 대한 글을 사이트에 종종 올린다. 그는 “이 회장이 세계적인 기업을 일구기까지 이병철 선대회장 시절 2인자로 묵묵히 일한 18년의 세월이 밑바탕이 됐다”고 말한다. 이병철 회장이 계열사 사장들을 불러다 호통치고, 해고하고, 반도체사업 등 신사업을 지시할 때 이건희 회장은 아무 말을 하지 않았다고 한다. 말은 안 하는 것이 더 어렵다.
그러면서 이 회장은 나름대로 공부를 했다. 궁금한 것이 있으면 참지 않고 물어보고 직접 실험도 했다. 독일에서 신차가 나왔다고 하면 독일로 달려가 차를 사서 아우토반으로 몰고 나갔다. 그저 차를 모는 데 만족하지 않고 엔진을 뜯어서 과거 엔진과 무엇이 다른지 연구했다. 엔진을 반으로 쪼개 구조가 달라진 게 없는지 살펴보는 열성 덕분에 자동차에 관한 한 누구 못지않은 전문가라는 소리를 듣기도 했다. 천 사장은 사업가로서 이 회장의 변화과정을 ‘준비→수성(守城)→축성(築城)→진출’ 등 4단계로 나눠 설명한다.
효율적인 운영으로 엄청난 부가가치를 창출하고 있는 싱가포르항 전경.
천 사장은 싱가포르에 대한 애정이 각별하다. 삼성물산 싱가포르 지사장으로 근무하면서 이 나라에 관심을 갖게 됐지만, 싱가포르는 그에게 단순한 호기심의 대상 정도가 아니다. 그는 싱가포르의 경쟁력을 한국 현실에 맞게 이식할 수 있는 방법이 무엇인지 연구하며, 기회가 있을 때마다 인구 400만의 작은 나라가 어떻게 세계를 상대로 경영하며 1인당 국민소득 3만달러를 넘어섰는지 대학과 기업, 공무원들에게 강연한다.
그는 1993년 싱가포르 지사장으로 근무할 때 이건희 회장이 싱가포르를 방문할 것이라는 통보를 받았다. 신경영을 선언한 지 얼마 되지 않은 때여서 천 사장은 무엇을 준비해야 할지 고민이었다. 게다가 이 회장은 싱가포르를 10일 동안이나 방문하기로 돼 있어 많은 것을 준비해야 했다.
그는 이를 계기로 싱가포르의 경쟁력을 연구하기 시작했다. 세계 최고의 공항과 항만을 갖춘 비결은 무엇인지, 싱가포르의 투자환경은 어떤지를 알아보았다. 공항공사 사장도 만났고, 항만청장도 만났다. 심지어 이 회장이 싱가포르 공항에서 내려 삼성물산 지사까지 차를 타고 오는 동안 보게 될 빌딩과 그 소유주, 그리고 교통과 부동산 환경까지 조사했다. 이러다 보니 아예 싱가포르 소개 책자를 만들게 됐고, 이런 지식이 쌓이면서 싱가포르에 관한 것이라면 모르는 것이 없는 전문가가 됐다. 그가 웹사이트를 만들겠다고 결심한 이유도 싱가포르에 관한 지식을 썩이기 싫어서였다.
한국이 싱가포르에서 배웠으면 하는 것 중에서도 가장 절실한 것은 공항공사와 항만공사의 수준이다. 싱가포르의 항만공사나 공항공사 사장은 장관보다 더 존경받는다. 전세계 공항과 항만 중에서 가장 이익을 많이 내는 곳이 싱가포르의 공항공사와 항만공사다. 동북아경제중심을 지향하는 한국은 공항과 항만사업에서 돈을 벌어야 한다. 그것이 일본과 중국의 틈바구니에서 살아남을 수 있는 방법 중 하나라는 게 천 사장의 지론이다. 이 때문에 그는 2002년 4월 강동석 당시 인천공항공사 사장이 옷을 벗으면 안 된다는 글을 쓰기도 했다. 다음은 그 글의 일부.
공항, 항만이 국가경쟁력 견인
“강 사장은 1994년 신공항건설공단 이사장으로 발탁돼 세계 유명 공항을 모두 견학했다. 세계 유명 공항의 건설과정과 공항운영의 문제점까지 알고 있는 인물이다. 인천공항을 세계적인 성공스토리로 만들어 이제 막 세계적인 공항 경영자 대열에 낄 수 있는 강 사장을 연임시킬 수는 없을까. 국제적으로 통할 만한 공항 경영자와 항만 경영자가 거의 없는 우리 현실에서 그나마 강 사장은 유일한 인물이다. 만약 그가 한전 사장으로 옮기지 않았으면 세계적인 공항 사장들이 인천공항의 운영 노하우를 배우려고 그를 찾았을 것이며, 타국 공항을 위탁 경영할 수도 있었을 것이다. 싱가포르 창이공항의 심기분 회장은 20년 동안 회장을 역임하면서 세계 각국의 공항 당국자들과 인맥을 쌓고 공항건설 및 공항경영의 노하우를 수출하고 있다.”
천 사장이 지금은 건설교통부 장관이 된 강동석 전 사장에게 애착을 보인 이유는 세계적인 공항 건설붐과 관련이 있다. 베트남, 브라질, 미국 등 곳곳에서 신공항이 지어지고 있다. 중국만 해도 30개 공항을 새로 짓는다는 계획을 발표했다. 공항 건설 노하우와 운영 노하우를 팔 수 있는 절호의 기회를 살리지 못하고 있다는 것이다. 천 사장은 “인천공항은 화물처리나 승객처리에서 세계 10위 안에 드는 공항”이라며 “지금까지 큰 사고가 없었다는 사실 자체가 노하우가 있다는 얘기다. 이걸 팔아야 한다”고 강조한다.
싱가포르는 공항 노하우를 세일즈하느라 정신이 없다. 싱가포르 공항공사는 미국의 벡텔그룹과 합작, 공항전문 건설업체를 세워 공항 건설 노하우를 쌓아가고 있다. 싱가포르 공항공사는 또 독자적으로 중국, 영국, 인도, 필리핀, 페루 등 세계 13개 공항과 서비스 용역 계약을 맺고 운영 노하우를 전수하고 있다.
“싱가포르 공항공사엔 ‘15분 경영’이란 말이 있습니다. 비행기가 착륙한 뒤 승객이 비행기에서 내려 입국 심사대를 지나 짐을 찾고 공항을 나와 택시를 잡을 때까지 걸리는 시간을 15분으로 맞추자는 겁니다. 공항을 이용하는 승객에게 가장 필요한 서비스를 목표로 정하고 거기에 공항의 모든 시설과 인력을 맞춘다는 발상입니다. 외형을 먼저 만들고 서비스를 맞추는 것과는 정반대의 건설 방식이죠. 이를 전문용어로 ‘리버스드 엔지니어링(Reversed Engineering)’이라고 합니다.”
싱가포르 항만공사의 경쟁력도 대단하다. 싱가포르 항만공사는 한국의 인천항을 비롯해 이탈리아, 벨기에, 아랍에미리트 등 전세계 15개 부두를 직접 운영하고 있다. 이렇게 하면 이점이 많다. 인천항을 출발해 홍콩, 싱가포르를 경유해 유럽으로 가는 배가 있다고 하자. 선주들은 항구에 정박할 때마다 항구별로 입·출국 심사를 받기 위해 서류를 준비해야 한다. 하지만 한 회사가 항구를 운영한다면 일일이 다른 서류를 낼 필요가 없다. 한 장이면 무사통과다. 이것이 400만 인구가 세계 경영을 하면서 1인당 국민소득 3만달러를 넘는 비결이라고 천 사장은 전한다.
윈-윈(win-win) 컨설팅
천 사장은 홈페이지를 운영하면서 얻은 것이 적지 않다. 2003년엔 홈페이지를 통해 1상자에 3만원짜리 고추장을 4만 상자나 팔았다. 웬 고추장이냐고 하겠지만 사정을 들어보면 한 사람의 지적자본이 어떻게 유동화될 수 있는지를 알 수 있다.
대전 대덕연구단지의 한 연구원이 그의 홈페이지를 방문하고 회원이 됐다. 이 연구원은 꾸준히 천 사장의 글을 받아 읽었고 그의 이름을 기억해뒀다. 이 연구원이 우연한 기회에 충북 제천시장과 만나 이런저런 얘기를 나누다가 시장으로부터 “제천시를 위해 경영컨설팅을 해줄 사람을 추천해달라”는 부탁을 받았다. 연구원은 즉석에서 천 사장을 추천했다. 물론 그때까지 연구원과 천 사장은 일면식도 없었다.
이런 연유로 천 사장은 제천시를 컨설팅하기 시작했고, 제천시 농협에서 판매하는 고추장을 눈여겨보게 됐다. 농협에서 생산하는 고추장은 제천호에서 말린 고추만 사용하는 무공해 식품이었다. 하지만 브랜드 개발, 이미지 관리, 효율적인 판매전략이 없어 품질에 비해 판매량이 미미했다.
천 사장은 고추장에 ‘하늘촌’이란 브랜드를 붙이고, 로고 색깔도 기존의 빨간색과는 차별화된 파란색으로 하는 등 마케팅 전략을 다시 수립했다. 가격도 다른 제품보다 비싸게 매기는 등 고급화 전략을 내세운 결과 시장에서 좋은 반응을 얻었다. 그는 자신의 인맥을 통해 고추장을 납품하기도 했고, 홈페이지를 통해 회원들에게 판매하기도 했다. 모 기업에선 지난해 추석 선물로 대량 주문을 했다.
그가 구축한 지적자본(홈페이지)이 회원(연구원)의 신뢰를 얻었고, 이런 신뢰를 바탕으로 새로운 영역(제천시 컨설팅)에 진출하게 된 것이다. 이 과정에서 돈이 오간 일은 없다. 제천시는 뛰어난 컨설턴트를 찾아낸 덕분에 컨설팅 비용도 거의 들이지 않고 시의 수입을 늘렸고, 천 사장은 판매대행을 통해 또 다른 수익원을 창출했다.
그는 때때로 무료 컨설팅도 해준다. 경기도에서 중소기업을 운영하는 사장이 그의 웹 사이트를 자주 방문했는데, 하루는 그에게 이메일을 보냈다. 어느 기업과 인수합병 계약을 진행하고 있는데, 계약서 내용을 훑어봐도 어느 부분이 독소조항인지 알 수 없다는 내용이었다. 이메일을 받자마자 천 사장은 “거기가 어딥니까? 직접 가겠습니다” 하고는 현장으로 달려갔다. 계약서를 들고와서 꼼꼼히 살펴보니 그 사장에게 불리한 내용이 있었고, 천 사장은 이 부분을 고쳐서 새 계약서를 보내줬다.
그는 “나이 60이 가까워 오니 이젠 무엇이 실수할 행동인지 보인다”며 활짝 웃었다. 이 모든 것이 그가 웹 사이트를 통해 할 수 있었던 일이다.
‘50대의 도전이 희망적인 이유’
경영 컨설팅을 하다 보면 보람 있는 일도 많다. 위성방송 안테나를 만드는 모 기업을 미국 장외 주식거래시장에 등록하게 해준 것이 그런 사례다. 이 회사는 기술은 있는데 경영실적이 좋지 않았다. 천 사장은 이 회사의 기술력을 세계 각지에 판매하고, 그것을 기반으로 세계적인 경영 노하우를 배울 수 있는 길이 무엇인지 찾은 끝에 미국 장외 주식거래시장에 등록돼 있는 미국 업체를 싼 값에 인수하도록 주선했다.
이 회사는 이를 통해 장외 주식시장에 등록하게 됐고, 미국에서 200만달러의 투자 유치와 2000만달러어치의 수주 실적을 올렸다. 뿐만 아니라 이 회사 사장은 미국 유수 IT 업체들의 CEO들을 수시로 만나 세계 IT의 흐름과 경영 노하우를 짚어낼 수 있었다. 천 사장은 지금도 이 같은 방법으로 미국 시장 진출을 추진하는 몇몇 기업을 컨설팅하고 있다.
천 사장이 2000년 홀연히 CJ코퍼레이션 대표이사를 그만둔 이유는 훌륭한 기업을 손수 일궈내고 싶어서였다.
“멋진 회사를 만들어보고 싶었어요. 지금도 그렇고요. 미래 시장을 열 아이템을 갖고 투명한 경영으로 신뢰받는 회사를 세우고 싶습니다. 삼성에서 근무할 때 신규 사업을 조사하는 업무를 담당한 적이 있어요. 일본과 미국 등 선진국을 돌면서 한국에서 뜰 만한 사업분야를 알아봤어요. 1980년대 후반에는 멀티플렉스 극장, 지금의 하이마트 같은 가전 전문 양판점, 할인점 등을 구상했어요. 지금은 이런 게 다 들어와 있죠. 그밖에 부동산 개발사업과 외국인 전용 서비스 아파트도 구상했습니다. 아직 한국에 도입되지 않은 사업도 여럿 있어요. 언젠가는 하게 되겠죠.”
그의 얘기를 듣다 보면 50대 후반에 이르면 무슨 일이든 잘할 수 있을 것이란 생각이 든다. 건강만 제대로 관리한다면 50대는 다른 세대보다 더 잘할 수 있는 일이 많을 것 같다. 그도 “50대는 경험을 활용해서 새로운 사업을 하는 것이 가능하다”고 말한다. 50대 후반이면 어떤 분야에 도전해도 해낼 수 있다는 자신감이 생기고, 휴먼 네트워크도 탄탄해진다는 것이다.
천 사장은 평소에 스스로를 회사의 조직원으로 생각하지 말고 사업체로 생각하는 훈련을 해야 이런 자신감이 생긴다고 말한다. 그는 “삼성처럼 큰 조직에서 근무하는 사람들은 그렇지 못한 경우가 많다”며 “조직적으로만 일을 했기 때문에 혼자서 뭔가를 한다는 것에 자신감이 없다”고 지적한다. 사물을 보는 방법을 바꿔야 한다는 것이다.
그는 자신감을 유지하기 새벽 5시30분이면 일어나 헬스클럽에서 뛴다. 30대 후반이면 자신에게 맞는 운동을 찾아서 해야 할 나이다. 어떤 운동이 맞는지는 자신이 잘 안다. 평생 이 운동을 친구로 삼아야 한다.
역사 공부로 비즈니스 감각 키워라
자신감을 얻는 또 하나의 비결은 다독(多讀)이다. 늦어도 30대부터는 그렇게 해야 한다. 그는 삼성에서 근무할 때 7시에 출근하고 11시에 퇴근했지만 책만큼은 꾸준히 읽었다. 특히 일본과 한국, 그리고 중국 근·현대사에 관한 책을 많이 읽었다.
천 사장이 삼성석유화학에 근무하던 시절 일본 미쓰이화학과 미국 아모코가 합작회사를 세웠다. 그는 이 일에 관여하면서 일본 사람들과 일하게 됐는데, 일본에 대해 아무것도 모른다는 게 너무나 창피했다. 일본 기술을 도입한다면서 일본의 최근 역사에 대해서도 몰랐기 때문이다. 그때부터 일본과 중국 역사를 공부했고, 관련 저서를 300권 쯤 독파하면서 이젠 웬만한 근·현대사는 머릿속에 들어 있는 정도가 됐다.
역사 공부는 비즈니스 감각을 익히는 데도 도움이 된다. 특히 사물을 철저하게 보는 습관이 생긴다. 흥미로운 것은 중국과 일본의 상류층과 교분을 맺으려면 역사를 잘 알아야 한다는 사실이다. 그가 CJ코퍼레이션의 중국사업을 담당했을 때 중국 공산당 서기에게 “1936년 12월12일은 중국 역사에서 매우 중요한 날이다. 중국 전역을 장악하려던 장제스(蔣介石)가 2인자이자 부하인 장쉐랑(張學良)에게 인질로 잡힌 날이기 때문이다. 한국에서도 1979년 12월12일 전두환 장군이 쿠데타를 일으켰다. 쿠데타를 일으키기엔 12월12일이 좋은가 보다”라며 역사적 사실을 빗대 농담을 건냈다. 그랬더니 그는 “어떻게 그런 역사를 다 아느냐”고 반기며 천 사장을 진심으로 각별하게 대했다고 한다.
세계뉴스 전문저널 만들어야
천 사장은 걷거나 운동할 때, 혹은 지방 출장길에도 문득 떠오르는 아이디어가 있으면 잊지 않고 메모해둔다. 세계 곳곳의 비즈니스 뉴스를 방송하는 전용 방송채널을 만들어야 한다는 생각도 그가 매일 새벽 서울 리베라호텔 헬스클럽 러닝머신을 뛰면서 생각해낸 아이디어다. 그는 달리면서 늘 TV 뉴스를 보는데, 그 시간에 세계가 어떻게 돌아가는지 알려 주는 뉴스가 없다는 것이 아쉬웠다. 정치인들이 사석에서 나눈 시시콜콜한 얘기며 사회 갈등을 부추기는 뉴스는 넘쳐나는데 생산적인 뉴스는 없었던 것이다.
“새벽에 운동하면서 빌 게이츠가 중국을 방문해서 무슨 말을 했는지, 러시아 블라디보스토크에 새로운 세금이 부과됐다는데 그게 자국 경제에 미치는 영향이 무엇인지 등등을 알려주는 뉴스를 들을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요. 외국에 나가보면 그 나라 언론들이 다루는 자국 기사는 30% 정도밖에 안 됩니다. 우리도 최소한 방송 채널 하나는 세계뉴스로 구성했으면 해요. 세계 각국의 조세, 법률, IT 기술의 변화 등을 그 나라 방송이나 신문을 통해 전해듣고 밤새 편집을 해서 다음날 새벽부터 뉴스로 내보내는 겁니다. 외국어 잘하는 대학생들 불러다 번역시키면 어렵지 않아요. 이런 뉴스를 자연스럽게 접한 비즈니스맨이라면 출장 갈 때 따로 지역 공부를 하지 않아도 돼요. 또 이렇게 되면 외국인들이 한국에 모입니다. 그러니 자연스럽게 동북아 경제중심이 되지 않겠어요?”
몇 년 전 홍콩과 싱가포르가 외국 방송사 유치 문제로 ‘경제전쟁’을 방불케 하는 경쟁을 벌였다. 결과적으로 홍콩이 스타TV와 CNN의 아시아 헤드쿼터를 유치했고, 싱가포르는 CNBC, HBO, 디스커버리 채널의 아시아 본부를 유치했다. 정보가 모이면 사람이 모인다. 한국은 이런 경쟁을 벌인 적이 없다.
천 사장처럼 지식과 연륜을 갖춘 사람들이 지금껏 쌓아온 삶의 지혜를 세상에 내놓아야 한다. 와인향을 풍기는 사람이 늘어나면 한국은 그만큼 풍요로운 사회가 될 것이다. 그가 지금 쏟아 내는 아이디어는 참신할 뿐만 아니라 실현 가능성이 높은 것들이다. 이런 안목을 활용하지 못한다면 우리는 선배들로부터 배움을 얻지 못하는 불행한 세대가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