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세종증권 승인한 건 보완대책 충족시킨 때문. 로비는 없었다”
- “농협 ‘추상적’ 개혁은 없다. 지배구조 실질적으로 바꿀 것”
- “농협 개혁, 직원 대부분이 원하는데 일부 상층부 간부가 문제”
- “쌀 직불금 실제 농사짓는 농업인에게만 엄격히 조사해 지급”
- 농림부 직원 직불금 자진신고 291명…“부당수령자는 몇 명 안 될 것”
- ‘코스트다운’ 대작전…“한우 가격경쟁력 수입산 반드시 앞선다”
- “농수산식품 잠재력 일깨워 수출 신기원 이룬 장관으로 남고 싶다”
- 부실 수협 합병, 인력감축, 지배구조 개편…수협 강력 구조조정 태풍 불 듯
- “농어업 분야 사업 296개, 현장 실정 맞게 대폭 통폐합 효율화할 것”
정 전 장관에게서 바통을 넘겨받은 장태평(張太平 · 59) 장관은 마치 어지럽게 꼬여 있는 실타래를 한 올씩 풀어가듯 산적한 문제를 하나씩 해결했다. 복잡한 이해관계가 첨예하게 맞서는 일을 처리하면서도 큰소리 한번 내지 않았고, 헛말을 해 ‘입 도마’에 오른 적도 없었다. 30년 공직생활의 관록은 그를 ‘해결사’로 자리매김해줬다. 농식품부는 그를 중심으로 일사불란하게 움직였다. 농업에 수산, 식품업무까지 합쳐져 초 매머드급 부처가 됐지만, 요즘 농식품부는 일개 부서가 움직이는 듯 똘똘 뭉쳐 있다. 그는 취임 4개월 만에 농식품부의 듬직한 ‘큰형님’이 되어 있었다.
“로비설 전혀 근거 없다”
지난 12월12일 오후 4시 농식품부 집무실에서 만난 장 장관은 국회 예산특위에 다녀오는 길이었다. 그는 인터뷰 시간을 잡기 어려울 정도로 바빴다. 온유한 미소에 각진 곳이라곤 찾아보기 힘든 인상. 인터뷰는 농협의 세종증권 인수 문제부터 시작됐다. 최근 농식품부는 농협의 세종증권 인수 승인 과정에서 로비를 받았다는 의혹과 관련, 당시 실무진과 간부가 참고인 자격으로 검찰조사를 받은 바 있다. 당초 검찰은 2005년 가을 세종증권 인수를 반대했던 실무진이 2006년 1월 승인 쪽으로 방향을 튼 것에 주목했다. 하지만 최근 검찰은 농림부에 대한 로비의혹이 사실무근인 것으로 내부 결론을 내렸다. 그런데도 일부 언론에선 장 장관이 농림부 농정국장 출신이었음을 들어 그를 조사 대상으로 거론했다. 이야기가 거기에 이르자 장 장관의 어조가 갑자기 강해졌다.
“왜 그런 말이 언론에 나오는지 모르겠어요. 꼭 제가 (로비와) 관련이 있는 것처럼 보이잖습니까. 그건 잘못된 것입니다. 저는 오히려 그때 농협의 세종증권 인수를 반대하는 쪽에 있었다고 봐야죠. 더욱이 승인이 날 무렵에는 이미 저는 재정기획부로 옮겨 가 있었습니다.”
그랬다. 장 장관의 공직 이력을 살펴보면, 그가 재정경제부 부이사관에서 농림부 농정국장으로 옮긴 시점은 2004년 1월, 재경부로 다시 옮겨 간 시점은 2005년 9월이었다. 따라서 그는 농림부가 농협의 세종증권 인수를 승인한 시점인 2006년 1월에는 농림부에 있지 않았다. 장 장관에 대한 일부 언론의 보도는 잘못된 셈. 실제 검찰에선 그를 참고인 조사 대상에도 올려놓지 않았다.
▼ 당시 농림부 실무진이 농협의 세종증권 인수를 반대한 이유는 무엇입니까.
“농협이 당시 증권사를 인수하겠다며 여기저기 이야기하고 다니니까 그게 언론에 나오고 그랬지요. 국회에서도 말이 나왔습니다. 제가 알기로는 농협 측이 우리에게 먼저 (승인에 대한 사항을) 물어온 게 아닙니다. 세종증권 인수에 대한 소문이 나자 우리 실무진이 농협 사람들을 불러 그에 대해 물어본 거죠. 반대 입장을 통보한 것은 그해(2005년) 4~5월쯤인데 실무진은 당시 농협 상황으로선 세종증권 인수가 부당하다고 판단한 겁니다. 그해 10월쯤 ‘보완대책을 가져오라’고 한 거죠.
당시 농협의 세종증권 인수에는 여러 가지 어려운 문제가 있었습니다. 신용부분과 경제부분의 분리에 필요한 자본금도 부족했고, (증권사 인수를 위한) 구체적인 재원조달 방안도 없었으며, 수지균형을 맞춰 (인수한 증권사를) 중장기적으로 건실하게 운영될 수 있게 할 방안도 찾아야 했죠. 실무진 사이에선 농협의 방만한 자회사 운영에 대한 비판적 시각도 있었습니다. 그래서 농림부가 거기에 대한 해결책을 승인의 전제 조건으로 농협에 요구한 거예요. 지금도 문제가 되지만, 농협이 농민을 위한 일을 해야 하는데 자꾸 신용부분만 키우니 농림부에서 미리 브레이크를 건 거죠.”
▼ 그런데 승인 쪽으로 방향을 튼 것은 왜죠?
“그러다 그해(2005년) 12월 농협이 농림부가 요구한 보완대책을 가지고 들어온 겁니다. 승인을 해줄 수밖에요. 더도 덜도 없어요. 저는 농림부 실무진이 ‘승인을 받으려면 이것부터 해결하라’고 요구해서 문제를 해결한 건 잘했다고 생각해요. 농협의 세종증권 인수 승인과 관련된 농림부 로비설은 전혀 근거가 없습니다.”
“농협, 추상적 개혁은 없다”
12월4일 새벽 이명박 대통령은 서울 가락동 가락시장을 방문한 자리에서 “농협 간부라는 사람들이 농민들은 다 죽어가는데 정치 한다고 왔다갔다하면서 이권에나 개입하고 있다”며 농협에 대한 강력한 개혁을 요구했다. 이 대통령이 가리킨 인물은 바로 지난 10여 년간 농협의 ‘신(神)’으로 군림했던 정대근 전 농협회장(수감 중)과 그의 비자금을 관리했던 남경우 농협축산경제 대표(수감 중). 농협의 세종증권 인수과정에서 세종캐피탈로부터 50억원, 박연차 태광실업 회장으로부터 20억원을 받은 혐의를 받고 있는 정 전 회장은 9년 넘게 회장직에 머무르며 무소불위의 힘을 발휘했다.
그동안 농식품부는 농협에 대한 개혁작업을 몇 차례 시도했지만 번번이 무위로 끝났다. 그들은 이를 무력화하기 위해 갖은 방법을 동원했다. 최근 농식품부는 민간 전문가를 중심으로 농협개혁위원회(위원장 김완배 서울대 농업생명과학대 교수)를 만들고 개혁방안에 대한 논의를 하고 있다. 하지만 초기부터 위원회가 농협의 눈치를 보는 게 아닌가 하는 지적이 나오는 것도 현실. 김완배 위원장은 언론에 농협의 대규모 인력감축안과 기구감축에 대한 내용이 흘러나오자 “위원회가 인력 감축에 대해 이야기하는 것은 난센스다”라고 밝혔다.
▼ 대통령도 농협의 개혁을 강력하게 요구했는데요. 위원회가 제 역할을 할 수 있을까요?
“차관이 거기 공동위원장인데요. 가능하면 회의에 참석하지 말라고 했습니다. 순수 민간개혁위원회로 운영하고 싶어 그랬습니다. 이 개혁위원회는 정책 집행기구가 아니기 때문에 직접 구조조정이나 인력감축을 할 수는 없죠. 다만 제3자 입장에서 어떻게 하면 농협을 농민에게 돌려줄 수 있는가, 정말 제대로 된 협동조합을 만들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가를 고민하고 있습니다. 연말까지 개정안이 나오면 2월 임시국회에 제출하려고 합니다.”
“지배구조 실질적으로 바꾼다”
▼ 그럼 인위적 구조조정은 없다는 것인가요.
“농협이 자체적으로 쇄신해야 할 부분이 있을 거예요. 또 정부가 할 부분이 있으면 해야죠. 위원회가 계획을 세우면 집행은 정부와 농협이 하면 됩니다. 하나 말씀드릴 수 있는 건 이번엔 절대 추상적으로 (개혁을)하지 않을 거란 사실이죠.”
▼ 장관께서 농정국장 시절이던 2005년에도 농협법 개정이 있은 것으로 아는데, 그때 반발이 심했죠.
“제가 그때 담당 국장이었죠. 어려운 환경에서 그래도 상당히 잘 해낸 거라고 생각합니다. 다 아시겠지만 그때 수많은 기자가 보는 앞에서 정대근 전 회장에게 삿대질당하고 심한 욕설도 들었어요. 그런데도 저희는 법안을 거의 원안 그대로 통과시켰습니다. 이번 사건도 어떻게 보면 정대근 전 회장의 독특한 성격 때문에 그렇게 된 거라고 생각해요. 문제는 그 사람이 그렇게 할 수 있도록 만든 지배구조이지요. 농협 회장의 권한이 막강해요. 제대로 된 사람이 그 자리에 앉으면 오히려 더 잘할 수 있지만 조금만 잘못되면 일이 이렇게 흐트러질 수 있죠. 따라서 이런 지배구조를 바꿔야 합니다.
2005년에도 그렇고 이번에도 마찬가지지만, 우린 농협의 기능을 약화시키려 는 게 아니에요. 좀 더 강한 농협을 만들고, 농정 집행의 좋은 파트너가 돼보자는 거지요. 예를 들어 증권사를 인수한다 칩시다. 운용을 잘못해 적자가 나면 농민에게 갈 수익이 못 가죠. 그런 거는 제한을 하자는 겁니다. 그렇지만 농협이 농민을 위해 하는 활동에 대해선 지금보다 훨씬 더 잘할 수 있도록 바꾸자는 거거든요. 제가 보니까 농협의 일선 간부와 일반직원, 그리고 농민들은 모두 농협의 개혁을 원하고 있습니다. 농협의 일부 상위 간부진은 조직 논리에 조금 편향돼 있는 거 같아요. 그런 게 이번에 바꿔지리라고 봅니다.”
▼ 현 농협 회장도 대통령과 고교 선후배 사이입니다. 노조의 반대도 만만치 않을 것 같은데요. 잘 될까요?
“문제는 조직 이기주의인데요. 굉장히 팽배해져 있습니다. 서로 양보해야죠. 저는 이번 농협개혁을 둘러싸고 만나야 할 사람은 모두 만나 의견을 들으려 합니다. 노조가 반대하면 왜 반대하는지 토론해야죠. 무엇보다 회장이 지배하게 돼 있는 농협 구조가 실질적으로 바뀌어야 합니다.”
▼ 지난 2005년 농협개혁에서 회장을 비상임직으로 만들었는데도 지배구조는 실질적으로 바뀌지 않았는데요.
“회장을 비상임 명예직으로 바꿨지만, 제도만 바뀐 게 문제지요. 아쉬운 점은 회장 아래에 농민을 위해 최고 수익을 내고 정말 농민을 위할 수 있는 전문가를 영입한 경우가 거의 없다는 거예요. 안타까운 일이죠. 이기주의와 사심을 버린다면 농협개혁도 잘될 수 있다고 봅니다. 농협도 그렇지만 농업 전반에 대한 관심과 도움이 필요합니다. 농업이 다른 산업에 비해 낙후돼 있잖아요. 일방적인 ‘손자 사랑’ 방식이 아니라 주사가 필요할 땐 주사를 주고, 약이 필요할 땐 약도 주는 그런 사랑이 필요합니다.”
‘농업 DNA 가진, 준비된 장관’
장 장관은 이명박 정권의 장관 후보 중 국회의 인사검증을 별 지적 없이 통과한 거의 유일한 인물이다. 그는 소위 ‘강부자’도 아니고 ‘고소영’도 아니다. 1977년 행정고시에 합격한 그는 30여 년 관료생활 대부분을 재정경제부에서 보냈다. 그중 2년간 농림부 농정국장을 역임했고, 2006년 9월 재경부 정책홍보관리실장(관리관)을 마지막으로 관료생활을 마쳤다. 그리고 그해 10월 국가청렴위원회 사무처장으로 다시 기용됐다. 대부분의 재경부 퇴직 관료가 관련기관이나 회사로 자리를 옮기는 관행과는 사뭇 달랐다. 그는 오히려 공직자의 부패와 비리를 다루는 기관으로 자리를 옮겼다.
▼ 이력을 보니까 ‘강물은 바람 따라 길을 바꾸지 않는다’는 시집을 내셨는데요. 당시 반응이 뜨거웠다고 합니다. 언제 시를 쓰셨어요?
“제가 고등학교 시절 문예반을 했어요. 그때부터 관심 있었죠. 그 시집은 1966년부터 한 40여 년 그 끼적 거린 걸 모은 거예요. 국방대학교에 파견 나갔을 때 우리나라 재정구조에 대한 논문을 내려다 외부 사정 때문에 내지 못하고 대신 시집을 냈습니다.”
▼ 시와 공직생활이 잘 어울리지 않는 것 같은데요.
“그렇지 않아요. 시는 우리 주변에서 일어나는 각종 현상의 맥과 결을 잡아내서 짧은 언어로 옮기는 작업입니다. 공직자에게 꼭 필요한 덕목이죠. 옛 선비가 시를 좋아했던 것도 그 때문이 아닐까요. 제가 그때 시집을 낸 것도 이런 메시지를 던져보자는 취지였습니다. 약간 의도적이었죠. 공직자가 정책의 맥을 잘못 잡으면 많은 사회적 비용을 치러야 합니다. 숙련된 석공을 보세요. 바위를 깰 때 그 결을 찾아 한번에 깨잖아요. 결을 못 찾으면 하루 종일 고생합니다.”
▼ 재경부 경험이 청렴위에서 일하는 데 도움이 많이 됐겠습니다.
“정책의 맥 찾기도 시를 쓰는 작업과도 연관돼 있는데요. 제가 가서 보니까 부정부패나 비리가 결국 제도의 문제에서 생기더라고요. 허가받지 않아도 될 일을 받으라 하니 아쉬운 소리를 하게 되고, 비리가 생기고 하더군요. 특히 경제활동 쪽에 그런 게 많잖아요. 이런 걸 없애려면 제도를 그럴 소지가 없도록 바꿔야 해요. 정말 할 일이 많더군요. 영 엉뚱한 곳에 갔지만 보람도 있었고 열심히 일했습니다.”
▼ 농식품부와는 어떻게 인연을 맺게 됐습니까.
“제 공무원 인생에서 제일 열심히 했던 두 시기가 우연하게 전부 농정과 관계돼 있어요. 사무관 때 농수산 예산 업무를 2년 했는데 진짜 열심히 했어요. 윗분들의 눈에 띄어 신임도 받았죠. 농정전환 관련 세미나도 열고 했는데 벌써 24~25년 전 일이네요. 그러고는 2004년 농림부 농정국장으로 왔죠. 그때 알았죠. 제 속에 농업에 대한 DNA가 있다는 걸. 농협개혁 입안, 농정개혁, 정말 그때도 입술이 부르트도록 일했는데 피곤하지가 않았습니다. 농정국장을 마치고 (재경부)로 가면서 그 성과를 묶어 책도 냈습니다.”
그러고 보니 그의 이름도 농업과 무관치 않다. ‘태평성대’라고 할 때 태평(太平)과 한자가 똑같다. 과연 농식품부는 그 수장(首長)의 이름처럼 앞으로 태평성대할 수 있을까.
대통령께 야단맞은 사연
2008년 8월 장관에 부임한 그는 미국산 쇠고기 협상 청문회를 치르고 나자 멜라민 파동을 겪었고, 쉴 겨를도 없이 쌀 직불금 부당수령 문제가 터졌다. 2007년 감사원 감사 결과가 나온 후 바로 대처했어야 하는데, 곪은 상처가 그의 부임 후에 터진 것이다. 농식품부는 쌀 직불금 개선안을 담은 법안을 2008년 10월에 제출했지만 현재 새로운 개선책을 마련하는 중이다.
▼ 쌀 직불금 수령자 중 비료구입 실적이 없는 사람들을 1차로 걸렀는데, 이 중 실제 부당수령자를 가리기 위해 각 읍면동에 실경작 확인 심사위원회를 구성했다고 들었습니다. 지금 읍면동에는 그럴 인력이 사실상 없는데요. 또 서로 이해관계가 부딪치는 경우도 있고요. 앞으로 쌀 직불금 문제를 어떻게 풀어나갈 생각입니까.
“저도 여러 번 읍면동에 가봤는데 담당자가 어떤 곳은 한 사람, 많은 곳은 두 사람이었습니다. 그들이 또 그 일만 하는 게 아닙디다. 농업과 관련된 온갖 일을 다 하죠. 선진국에는 이런 직불금을 지급하는 국가조직이 따로 있는데 지방에까지 퍼져 있습니다. 하지만 우리의 현실을 무시할 순 없죠. 이런 일이 벌어진 가장 큰 이유는 지금껏 지급대상에 대한 명확한 기준이 없었다는 것입니다. 이번에 그 기준을 명확하게 바꿀 겁니다.
사실 지난번에 대통령께 야단맞았습니다. ‘지방에 5인 내지 10인의 실사 위원회를 만들어 부당수령자 심사를 하겠다’고 보고했더니 ‘그 심사가 정확하게 된다고 어떻게 보장하느냐, 아예 심사가 필요 없는 제도를 만들어봐라’라고 하시더군요. 감이 딱 오더군요. 앞으로 만들 제도는 심사도 필요 없는 아주 단순명료한 것이 될 겁니다. 2009년에는 좀 어렵겠지만 그 다음 연도부턴 가능할 겁니다. 그때부터 농식품부에서 농업인 등록을 받거든요. 등록된 농업인 중에, 실제로 농사를 짓는 농업인에게만 (직불금을) 준다면 심사고 뭐고 할 것도 없어요.”
▼ 농업인 등록제를 진작 하지 그러셨어요.
“오래전부터 추진하려던 건데요. 축산농가들이 지금 등록제를 하잖아요. 농업인 전체에 대해서도 그런 식으로 하자는 건데, 사실은 제가 농정국장 하던 시절, ‘직불금은 등록제를 해라’고 시켰거든요. 그런데 (아랫사람들이) 준비가 안 돼서 못한다고 그러더군요. 그래서 제가 ‘그걸 왜 못하나, 전산화가 불가능하더라도 간단한 이력이 쓰인 종이 한 장이라도 받아두라’ 그랬어요. 그 다음에 보완해나가면 된다고요. 그런데…. (제가 재경부로 가버렸으니 못했죠.)”
▼ 사실 이번 사건이 이렇게 커진 게 관료나 공직자, 지도층이 섞여 있어서 그런데, 혹 농식품부에도 부당수령자가 있나요.
“아직 실사가 끝나지 않아서 정확한 수를 말하긴 어렵습니다. 농식품부 직원이 산하기관 포함해서 모두 5251명인데요. 그중에 직불금을 받았다고 자진 신고한 사람이 291명이에요. 그중엔 실제 농촌에 살면서 업무 외 시간에 농사를 짓는 사람이 많아요. 알다시피 우리 부 산하기관이 농촌에 많잖아요. 정확한 실사가 끝나면 몇 사람 안 나올 겁니다. 그 사람들도, 전에 국회의원들도 그랬지만 나름대로 사정이 있을 거예요. 부모가 농사를 짓는데 대신 탄 것이라든지 하는. 아무튼 행정안전부 방침도 그렇고 우리도 증빙이 되지 않으면 일단 부정수급자로 정하고, 처벌도 엄격하게 하겠습니다. 새롭게 검토하는 법 개정 내용 중에는 부당수령 적발자에게 최고 2배까지 부당이득금을 징수하고 가산금을 부과하는 제재조치를 포함해 명단을 공개하는 방안도 들어 있습니다.”
“한우 쇠고기 가격 30% 낮춰야”
▼ 미국산 쇠고기의 안전성에 대해 어느 정도 확신하는지요. 정말 믿고 먹어도 됩니까?
“아, 그럼요. 현재 들어오는 미국산 쇠고기는 30개월 미만인데다 30개월 이상은 SRM(특정위험물질) 부위를 수입 금지했잖아요. 또 우리가 검역도 더 철저히 하니까 안심하고 드셔도 됩니다. 그런데 걱정되는 것은 미국산 쇠고기가 다른 수입산보다 시장점유 능력이 더 강하다는 겁니다. 그래서 전 한우 쇠고기의 시장을 넓히는 데 최선을 다할 생각입니다. 농가가 손해를 보지 않고 가격 경쟁력을 가지려면 유통과 생산에서 비용을 낮춰주면 됩니다. 가능해요.”
▼ 그게 어떻게 가능하죠.
“일단 한우 농가를 대단위화해서 규모화해야 하고요. 그렇지 않더라도 관리만 잘하면 생산 코스트를 내릴 수 있습니다. 같은 돈을 들이고도 어떤 농가의 송아지는 110만~120만원 하는데 다른 농가의 송아지는 180만~190만원 한단 말입니다. 현재 수입 쇠고기가 한우에 비해 평균 3배 정도 싼데요. 저는 한우가 (미국산보다) 2배 정도 비싸면 경쟁력이 있다고 봅니다. 그 정도 가격차는 한우 쇠고기의 맛으로 이겨낼 수 있습니다. 그렇게 되려면 한우 가격이 지금보다 30%쯤 떨어져야 경쟁력이 있습니다. 반은 유통에서, 반은 생산에서 줄이면 되죠. 충분히 가능해요. 지금 우리가 그 분석 작업을 하고 있습니다. ‘밸류체인’ 분석을 하면 돈이 쓸데없이 들어가는 부분이 보입니다. 그걸 줄이면 돼요. 분석을 통해 문제가 드러나면 그게 생산, 유통 어느 쪽이든 모두 해결할 생각입니다.”
▼ 특히 소비자 직판이 확대돼야 한다는 지적이 있습니다. 한우협회 직판 매장에 가면 실제 한우 쇠고기 값이 시중보다 싸고 맛도 있는데요.
“맞습니다. 유통에서 비용을 절반 이하로 줄이는 방법 중에 직거래 활성화도 있습니다. 정육점과 대형 할인마트, 백화점의 판매가격은 우리가 어쩔 수 없고요. 직거래를 활성화하면 자연히 그곳들의 가격도 떨어지겠죠. 한우 생산자단체가 직영 식육판매점을 설치하고 운영하는 데 필요한 자금을 2009년에만 1140억원을 융자 지원하려고요. 또 정부종합청사 인근 과천 경마장이 쉬는 일주일 중 4일간을 이용해 한우 쇠고기 종합 직거래장이 서게 만들려고 합니다. 유명한 한우 브랜드가 모두 와서 자기네들끼리 경쟁하도록 하는 거죠.
이런 ‘브랜드육 타운’을 전국 5군데에 만들고 거기에 80억원을 보조할 작정입니다. 사이버거래소도 만들 겁니다. 이제 소비자들은 길거리에서도 한우 쇠고기를 싸게 살 기회가 열릴 겁니다. 농축협이 냉동차를 활용해 전국을 돌아다니며 소비자와 직거래할 수 있도록 했거든요. 100대의 차량 구입에 50억원을 지원할 예정입니다. 법 개정으로 이젠 지방 농축협도 방문 판매를 할 수 있게 됩니다. 이렇게 하면 대형매장이나 백화점도 자극을 받겠죠. 틀림없이 가격이 떨어질 겁니다.”
▼ 이마트가 최근 미국산 쇠고기를 호주산으로 속여 팔다 적발됐는데요. 원산지 표시제에 문제가 있는 것 아닙니까.
“지난 7월8일부터 음식점 원산지 표시제를 확대했잖습니까. 식약청과 지방자치단체 등과 합동 단속도 열심히 하고 있는데요. 유통단계까지 발본색원하는 중입니다. 대형마트 건도 우리 농산물품질관리원의 일제단속에 걸린 거죠. 단속 실적을 발표하면 소비자의 걱정은 오히려 더 커지고 참 아이러니합니다. 어쨌든 원산지 허위 표시만큼은 가만히 놔두지 않겠다는 게 저의 의지입니다. 과학적인 분석방법을 동원하고 지능적이고 상습적인 위반사범에 대해서는 구속수사를 할 수 있도록 검찰과 사법부 등의 협조를 얻을 겁니다. 2009년 6월부터 쇠고기 이력추적제가 본격 시행되면 원산지표시제는 더욱 신뢰할 수 있게 됩니다. 소의 출생부터 도축, 가공, 판매까지 모든 정보가 기록되기 때문에 바로 추적이 가능합니다.”
“농식품 100억달러 수출, 꼭 이룬다”
장 장관은 글로벌 금융위기 상황에서 모든 수출이 급감하는 상황인데도 농식품의 수출 목표를 크게 늘렸다. 그는 평상시 직원들에게 “역대 장관 중 농수산식품 수출을 가장 크게 늘린 장관으로, 또 그 토대를 만든 장관으로 기억에 남고 싶다”고 강조했다고 한다. 앞으로 수십 년 후에는 우리나라가 농식품 수출만으로 먹고살 수 있게 하는 게 그의 또 다른 꿈이다.
▼ 2012년까지 농식품 수출 목표를 100억달러로 잡았습니다. 2008년 목표치도 늘렸고요. 가능할까요?
“최선을 다하면 가능하리라고 봅니다. 당초 수출목표 41억달러를 45억달러로 상향 조정했죠. 이미 금융경색을 풀기 위해 농식품 수출업체에 270억원을 긴급 지원토록 했고, 연말 해외 판촉전도 당초 22회에서 42회로 확대했습니다. 그게 큰 도움이 됩니다. 재외공관에도 ‘연말연시 우리 농식품 선물하기’캠페인에 협조해달라고 했죠.”
▼ 우리 농식품의 경쟁력이 얼마나 되는지요.
“그간 우리는 우리 농수산업의 잠재력을 과소평가했어요. 수세적인 태도로 수출농어업의 가능성을 충분히 활용하지 못한 측면이 있죠. 우리 농산물은 자연조건과 품질, 안전성 면에서 국제적으로 상당히 높은 수준에 올라가 있습니다. 영세한 공급기반을 수출 선도조직 중심으로 규모화하고 생산에서 수출에 이르는 전 과정에 R&D투자를 확대하면 2012년까지 100억달러 수출은 문제가 없습니다. 네덜란드는 국토 면적이 남한의 절반에 불과하고 그 65%가 바다보다 낮은 습지인데도 2007년에 500억유로를 수출했어요. 우리도 국가 전체 수출액이 1964년 1억달러에서 13년 만인 1977년에 100억 달러를 달성한 경험이 있습니다. 이제 잠자는 사자를 깨우기만 하면 됩니다.”
▼ 농식품 수출이 잘되려면 농식품산업의 경쟁력이 올라가야 하는데.
“저는 ‘강한 농식품산업’을 만드는 게 꿈입니다. 농식품산업을 국가경제에 기여하는 미래형 첨단산업으로 육성하는 거죠. 그러면 농식품산업이 고용과 수출산업, 녹색성장을 이끌어갈 수 있습니다. 지금 그 경쟁력을 올리기 위한 모든 전략을 검토하는 중이죠. 경영주체의 조직화와 법인화, 산업 간 연계, 진입장벽 제거, 할 수 있는 건 다 해봐야죠.”
▼ 언론 보도를 보니 화옹 간척지에 6000억원을 들여 유리온실 수출전문단지를 만든다는데요. 일각에서는 수요가 없는 무리한 사업이라는 지적도 있습니다.
“100억달러 수출 실현을 위한 한 방안으로 수출 공급 전문기지를 조성한다는 계획은 있지만 아직 구체적으로 정해진 건 없어요. 기존 수출원예단지와 시너지 효과가 있는지, 수출에 정말 도움이 되는지 종합적으로 검토해봐야죠. 하지만 수요는 있다고 봅니다. 세계 식품시장 규모가 2006년 기준으로 약 4조달러, 교역규모는 약 1조3000억달러로 추산되는데다 세계인구가 꾸준히 늘어날 것이기 때문이죠. 잠재시장은 큽니다.”
▼ 농업이 정부의 ‘저탄소 녹생성장’ 어젠다와도 잘 맞는 것 같습니다.
“전체 온실가스 배출량 중 농업에서 배출되는 것이 2.5% 정도이지만, 산림분야에서 6.3%가 흡수됩니다. 농림수산 분야가 기본적으로 친환경적인 산업이라는 의미지요. 앞으로 숲 가꾸기, 바다 숲 조성 등을 통해 농수산 분야의 이산화탄소 흡수율은 더욱 높아질 겁니다. 농림업이 친환경 산업인 건 누구나 잘 알 터이고. 미국 대통령 당선자 오바마도 말했듯 바이오매스가 참 중요합니다. 화석원료가 아닌 유기성 자원을 이용해 에너지를 생산하는 것이죠. 그린 바이오(Green Bio) 분야 또한 농어업분야가 주도적으로 개척해나가야 할 녹색성장 동력인데요, 비타민 강화 쌀, 다이어트 쌀 같은 건강식품이나 의료용 소재들이 그런 것들의 한 사례라 할 수 있죠.”
“수협도 강력한 구조조정 할 터”
2008년 2월 농식품부는 해양수산부가 해체되면서 수산영역을 흡수했다. 바다에서 나는 수산물과 수산식품, 그 위에 떠 있는 배, 이 모든 게 농식품부의 관할이 된 것이다. 노무현 전 대통령이 해양수산부 장관이던 시절부터 문제가 됐던 수협도 농식품부 관할로 들어왔다.
▼ 농협뿐만 아니라 수협도 문제가 많습니다. 부실이 심각한 것 같은데요.
“수협중앙회는 2001년에 공적자금 1조1581억원을 지원받아 정상화를 추진 중이었죠. 그런데 여러 가지 이유로 경영이 악화되기 시작해 그중에서도 완도군수협을 비롯한 7개 수협은 부실심화로 경영 여건이 심각한 수준입니다. 글로벌 금융위기로 인해 더 어려운 상황이 됐죠. 공적자금 받은 것도 부채로 분류돼 BIS 자기자본비율이 급락할 우려가 있어요. 그래서 지금 다각적인 대책을 강구하고 있습니다. 지도부문과 경제부문을 통합하고, 회장을 비상임화해 전문경영인체제를 도입하려 합니다. 농협처럼 수협도 중앙회 지배구조를 개편해야죠. 지금 수협법 개정을 추진 중에 있습니다. 인력감축 등 강도 높은 구조조정도 하고 있어요. 2010년까지 정부재정을 지원해 정상화하되, 정상화가 어려운 부실 수협은 합병 등 강력한 구조조정을 하려 합니다.”
▼ 지구 온난화로 명태가 동해안에서 잡히지 않습니다. 남부지역에선 사과 농사를 짓지 못하고요. 반면 난류성 어족인 오징어는 풍년입니다. 기후변화에 대한 대책이 있어야 할 것 같은데.
“지난 35년간 우리나라의 평균기온이 0.95℃ 상승한 여파입니다. 제주지역에서 망고, 파파야 같은 열대과일과 열대채소가 생산되니 말 다했죠. 기후변화에 대응해 범정부 차원의 기후변화대응 종합기본계획이 수립됐는데요, 우리는 보다 구체적인 농림수산 분야 적응방안을 마련할 계획입니다. 기후변화가 농업부문에 미치는 부정적 영향을 최소화하는 기술을 개발하고 보급해야죠. 수산분야는 현재 아열대성 어종의 출현에 대한 모니터링을 하고 있고, 변화 양상을 예측할 수 있는 기술을 개발하려고요.”
▼ 태안 기름 유출 사고 이후 해안 주민들이 무척 힘들어하고 있습니다. 장기적인 수산자원 확보에 빨간불이 켜졌는데요. 어떤 대책이 있습니까.
“직접 피해를 본 분들에 대한 보상을 우리 부처에서 해드릴 수 있는 권한은 없지만 피해조사가 정확하게 될 수 있도록 돕겠습니다. 그 외에 중장기적으로 수산업 지원 부분은 그쪽으로 예산을 우선 배정하려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해양의 환경과 해양 오염, 이런 거는 국토해양부와 환경부의 몫이지만 우리도 어류와 해조류 등 수산업과 관련된 쪽은 관련 조사를 하도록 하겠습니다.”
“사업 현장에 맞도록 전면 통폐합”
그러고 보니 농식품부는 바람 잘 날이 없게도 생겼다. 농산물, 수산물, 축산물, 임산물, 부처 관련 생산물이 모두 국민의 식탁이 마지막 목적지이고, 이는 곧 국민의 건강과 직결되어 있기 때문이다. 육지와 바다가 모두 그들의 관리 대상이다. 사고가 터졌다고 하면 무조건 대형사고가 될 수밖에 없고, 그 파장은 오래간다. 해마다 터지는 AI(조류인플루엔자)도 마찬가지다.
▼ 지난 한 해 많은 일을 겪으면서 직원들의 사기가 뚝 떨어진 것 같아요. 부처가 쪼개져 합쳐지면서 새롭게 들어온 직원들은 쭈뼛거릴 수밖에 없고요. 사기진작책이 있다면 말씀해주십시오.
“무슨 방법을 동원해서라도 우리 직원들 직장 분위기가 따뜻하고 마음 놓고 일할 수 있도록 그렇게 신경을 써야죠. 앞으로 담당부서 직원들과 가볍게 맥주를 마시는 ‘호프데이’ 그런 것도 하면서 스킨십을 쌓아갈 예정입니다. 제가 온 이후 워크숍도 두 번 했습니다. 그리고 일하는 만큼 보상을 줄 수 있는 시스템을 만들려고 고민하고 있습니다. 한편으론 그런 생각도 듭니다. 사실 자기가 하는 일에서 보람을 느끼는 게 가장 큰 보상이라고요. 무슨 일을 해도 빛나는 것도 없고 성과도 없고 그러면 좌절이 심하죠.”
▼ 농식품부가 벌이는 사업의 수가 너무 많아 효율이 떨어진다는 지적이 있습니다. 일은 많이 하는데 능률이 떨어지면 보람도 없을 텐데요.
“사업의 가짓수가 너무 많으면 일의 능률도 떨어지죠. 농어업분야 재정지원사업만 현재 296개에 달하니까요. 그간 각종 문제를 재정투·융자 위주로 해결하려는 과정에서 그렇게 된 것 같은데 이걸 통합해서 현장 여건에 탄력적으로 대응할 수 있도록 통폐합할 생각입니다. 그러면 정책의 효과도 극대화됩니다. 지금 부내에 TF팀을 설치했는데 곧 개선안이 나올 겁니다. 모든 사업을 원점에서 재검토한다는 게 제 생각입니다.”
마지막으로 장 장관에게 좀 엉뚱한 질문을 던졌다. “AI가 터질 때마다 살(殺)처분에 하위직 공무원이 동원되는데, 혹 장관님이 직접 들어갈 의향은 없으십니까”라고. 장 장관의 답변은 시원시원했다.
“아니 일할 사람이 없으면 저라도 가서 해야죠.”
장태평 장관(오른쪽)은 2007년 6월 공무원의 문학모임인
사민문학회 초대회장이 됐다.
2008년 10월 농식품부에 만들어진 쌀 직불금 부당신청신고센터.
2008년 10월에 농식품부 주관으로 열린 대한민국 축산물 브랜드 페스티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