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숙려하지 않고 정책 내놓는 박근혜
- 아버지 사후 20년간 혼자 있었던 게 문제
- 보수 인사들도 돌아서는 게 보이지 않느냐
이화여대 총학생회장 출신으로 초선인 새정치민주연합 서영교 의원은 노무현 대통령 시절 청와대 춘추관장을 지냈다. ‘친노’로 불리기도 하는 그가 같은 여성의 처지에서 박 대통령의 실책을 비판했다.
“이제는 대통령 수첩에 있는 예비 명단도 바닥났을 터이니 시스템으로 가야 한다. 그런데 청와대의 인사 시스템도 믿기 어려운 것 같다. 비선 추천을 통해 자리를 채우려다 거듭 실패하고 있다”며 ‘문고리 권력’을 강력 비판했다.
그렇지만 ‘인물 고갈론’에 대해서는 경계했다. “아직 총리나 장관감이 여럿 있다”는 것이 그의 판단이다. 여권 내에서만 찾아봐도 김문수 전 경기도지사, 강창희 전 국회의장 등이 있다는 것이다. 그는 “청문회를 통과할 만한 총리 후보가 있는데도 박 대통령은 찾지 않는다. 인사청문회 자체는 문제가 없다”고 말했다.
벌써 레임덕 분위기
▼ 박근혜 정부 장·차관들을 대통령 눈치만 살피면서 출세만 하겠다는 사람으로 보는가.
“그런 것도 아니라는 게 더 한심하다는 이야기다. 일단 부름을 받았으니 그들은 ‘있으라고 할 때까지 있겠다’는 듯한 느낌을 준다. 새 정부가 출범해 1년 반 정도 지났으면 힘이 가장 왕성할 때인데 그 반대인 것은, ‘있으라고 할 때까지만 있겠다’고 생각한 이가 많기 때문이 아닌가 싶다. 벌써 레임덕 얘기가 나오는 것은 그 때문이다.”
▼ 박 대통령의 내공이 약하다고 보는가.
“아니다. 강하다고 본다. 그분은 선거에 강한 모습을 보였고, 최초로 여성 대통령이 됐다. 천막당사의 어려움을 극복하고 당을 살려낸 것을 보면 대단한 내공을 가진 분임에 틀림없다. 그러나 대통령후보가 되기 위해 사퇴하기 전까지 5선을 하면서 대표발의한 법안이 연간 한 건뿐이라는 것이 문제다.
국회의원이라면 그 정도의 내공으로도 할 수 있겠지만, 대통령처럼 국가를 이끌어갈 자리에 오를 사람은 사람을 볼 줄 알고, 부릴 줄 알고, 정책에도 정통해야 한다. 그분이 국회의원과 여당 대표를 할 때는 미처 살펴보지 못했던 부분이, 대통령을 하게 되니까 자연스럽게 검증되는 것이다.”
▼ 박 대통령은 퍼스트레이디 구실을 하며 국정 운영 경험을 쌓지 않았는가.
“그 부분만 보면 안 된다. 박정희 대통령이 돌아가시고 15대 국회의원이 될 때까지 그분은 근 20년을 혼자 있었다는 데 더 주목해야 한다. 아버지의 영향권 안에서 퍼스트레이디를 대신한 것보다 아버지가 돌아가시고 아버지에 대한 여론이 안 좋은 상태에서도 뚫고 나가며 스스로 문제를 해결하는 ‘자립’이 더 중요했다는 뜻이다. 활발하게 활동하며 사회를 경험해야 할 황금 같은 시기를 은둔하듯 보낸 것이 그의 사고 폭을 좁게 했는지도 모르겠다는 이야기다.
사실 박 대통령은 국회의원 시절 김정일을 만나기 전까지는 큰 중량감을 주지 못했다. 한 때 당에서 밀려나기도 했고, 스스로 탈당도 했으니 자기 계보는 물론이고 친한 사람조차 없어 보였다. 외로운 사람이었다. 그 때문에 대통령이 됐어도 국민과 어울리지 못하고 일방적으로 발표만 하는 식이다. 그러니 인사를 할 때마다 데려올 사람이 없는 상황에 직면한다.”
▼ 노무현 전 대통령은 정리되지 않은 말을 거침없이 쏟아낸 것이 문제였어도 공부하고 노력하는 모습은 보여줬다. 박 대통령에게서는 그런 모습이 보이지 않는다는 지적이 있다.
“노 전 대통령은 공부를 너무 많이 해서 비서진을 힘들게 했다. 학자들을 불러 이야기를 듣고 토론도 많이 했다. 그리고 자기 방식으로 나쁜 것을 고치고 복지정책을 만들겠다고 한 적이 많았는데, 그것이 문제를 일으켰다. 그에 비하면 박 대통령은 공부를 많이 한다는 생각이 들지 않는다. 대통령 취임 한 달 만에 그는 150여 개의 공약 가운데 무려 70개(47%)를 바꿨다. 내용을 후퇴시킨 것이 29개, 아예 삭제해버린 것이 41개였다. 그 때문에 대통령선거를 할 때 과연 공약을 가슴으로 이해하고 내놓았는지 의심이 든다. 표를 얻기 위해 고민 없이 공약을 내놓은 것이 아니었는지 생각한다.
노 전 대통령과 박 대통령에게 공통으로 필요했던 것은 ‘숙려(熟慮)’다. 숙려가 무엇인가? 그 정책에 숨어 있는 보이지 않는 맹점을 찾아내 대책을 세우고, 그 정책을 제대로 펼칠 조직을 만드는 기간이다. 숙려 기간 없이 펼친 정책은 강한 역풍에 직면한다. 세월호 참사 후 국가안전처를 만들겠다고 한 청와대의 발표가 대표적이다. 노 전 대통령은 시간이 없다고 생각해 서둘렀다. 박 대통령은 시간이 없다는 생각을 하지 않는 것 같은데도 숙려를 하지 못하고 있는 것 같다.”
▼ 두 대통령 가운데 누가 더 외로워 보이는가.
“노 대통령은 불쑥불쑥 의견을 밝혀서 그렇지 측근은 많았다. 총알을 대신 맞아주겠다고 한 사람도 있었다. 타깃이 노 대통령에게만 쏠려서 문제가 커졌던 것뿐이다. 그에 비한다면 박 대통령은 비난을 대신 맞아줄 측근이 거의 없는 것 같다. 김기춘 실장 외에는 이렇다 할 보좌진이 보이지 않는다. 그나마 방패 구실을 하던 이가 이정현 수석인데, 떠나고 말았다. 충신인데 밀려났다는 말이 있다.”
숙려(熟慮)하라
▼ 소통을 위해서는 대통합도 고려해야 한다. 노무현 대통령 시절 열린우리당은 야당인 한나라당에 연정(聯政)을 제의한 적이 있다.
“그때의 연정 제의는 야당을 끌어들여 지역주의를 없애자는 생각에서 한 것이었다. 장관 자리까지 제의하면서 야당에 들어오라고 했다. 노무현은 김대중의 후계자였지만 지역주의를 없애려 끊임없이 노력했다. 호남에서 민심이 이탈하기 시작한 것은 그 때문이었다. 기존의 적폐를 해소하자고 했다가 혼자만 다친 꼴이 되고 말았다. 박 대통령은 야당에 내놓거나 양보하는 상황이 아닌데도 흔들린다.”
▼ 박 대통령은 그동안의 선거에서 이겨왔기에 자기 노선을 고집하는 것으로 보인다.
“사람은 좀처럼 생각을 바꾸지 않는다. 고집 피우는 것도 마찬가지다. 박 대통령은 선거 때마다 많은 지지를 받아 이겨왔기에 생각이 더 유연하지 않은 것 같다. 당의 의견을 묻지 않고, 주무부처 장관과도 이야기하지 않는 것 같다. 국민이 요구 하는 것이 무엇인지 알기 위해 언론에 귀를 기울이지도 않는 것 같다. 그 결과가 세월호 참사 처리과정에서 드러나지 않았는가. 보수 인사들조차 박 대통령에 대해 마음을 닫는 쪽으로 돌아서고 있다.”
▼ 대통령이 국회와 어떤 식으로 소통해야 한다고 생각하는가.
“본인의 진정성이 문제다. 5선을 하는 동안 그분이 발의한 법안이 몇 건뿐이고 국회 출석률이 최하위 수준이었다는 사실을 나는 이해할 수 없다. 그렇게 하고도 계속 당선되고, 당 대표를 하고 대통령까지 됐으니 의원들을 만나서 대화하고, 의견에 귀 기울일 필요를 느끼지 못하는 것이 아닌가 싶다.”
아버지 그늘을 벗어나라
▼ 박 대통령이 부친의 후광을 업고 지역주의에 사로잡혀 있다는 얘긴가.
“그렇다. 지도자의 실력은 초심(初心)을 살려 국민에게 봉사하겠다는 의지를 다져가는 과정에서 쌓이는 법인데, 그럴 겨를이 없지 않았나 싶다.”
▼ 박 대통령이 아버지를 뛰어넘을 수 있다고 생각하는가.
“대통령이 된 이상 당연히 ‘박정희의 딸’이라는 인식을 넘어서야 제대로 정치할 수 있다. 하지만 ‘영애’로서 수업을 받았고, 퍼스트레이디를 대행한 한계를 벗어나긴 어려울 것이라는 느낌이 든다.”
▼ 요즘 박 대통령 표정이 쓸쓸해 보인다고 말하는 이들이 있다.
“대통령은 원래 외로운 자리인데, 박 대통령은 더 외로울 것이다. 주말에는 청와대에서 거의 혼자 지내는 것으로 안다. 경호가 철저해 사람을 만나는 것도 쉽지 않을 것이다. 그러면서도 매번 어려운 의사결정을 해야 하니 심적인 부담이 엄청날 것이다. 따라서 참모진과 내각이 잘 움직여줘야 한다.”
▼ 안보 분야를 평가한다면?
“안보 분야만큼은 절대 공백을 보여서는 안 된다. 북한이 올해 들어 90발 이상의 미사일을 발사했는데도 정부에서는 어떤 분석도 대응도 내놓지 못하고 있다. 이것이 정말 큰 문제다.”
▼ 야당의 협조가 부족한 것 아닌가.
“인사 문제를 거론할 때마다 외부 요인에 책임을 돌리는데, 결국은 박 대통령 자신의 문제라는 것을 인정해야 한다. 과거 국회에서는 으레 몸싸움이 벌어지곤 했으나 그것이 사라진 지도 3년 됐다. 발목잡기란 말을 듣지 않으려고 야당은 싸우면서도 협상을 피하지 않는다. 야당에 책임을 돌리는 것은 받아들이기 어렵다.”
▼ 박 대통령과 메르켈 독일 총리를 비교한다면?
“메르켈 총리는 동독 출신인 데다 여성이기에 정치적 기반이 약한 편이었다. 그래서 연정을 했다. 소수 정당에 문호를 열어 대화하면서 정책을 펼쳐나간다. 그 결과 독일은 정치 경제적으로 잘나가고 있다. 두 사람이 보여준 결과는 다르다. 박 대통령도 메르켈 총리처럼 정치 경제를 잘 이끌어 국민을 행복하게 해주길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