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4년 8월호

“해외송금 서비스 허용하고 동일인 대출한도 늘려야”

김정식 농협 상호금융 대표이사

  • 구자홍 기자 │jhkoo@donga.com

    입력2014-07-22 15:47: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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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지역 농·축협 중앙은행 구실
    • 건전성 확보로 연체비율 낮춰
    • 금융사기 집중감시, 대포통장 근절
    “해외송금 서비스 허용하고 동일인 대출한도 늘려야”
    ‘고리채’에 얽힌 에피소드는 한두 가지가 아니었다. 한두 푼 모은 돈을 얼마간이라도 늘여볼 양으로 ‘믿음직한 사람’을 주었던 것이 그만 고리채로 신고돼 ‘10년 공부가 하루아침에 허사’가 되었다는 어느 여상인의 애화가 있는가 하면, 자기가 준 돈을 고리채로 신고를 했다고 해서 도끼부림을 한 ‘샤이록’ 같은 인간도 있었다. 농민들은 ‘고리채’에 대한 처결도 입장과 사정에 따라서 각각 달리했으면 좋겠다는 이상론을 가지고 있었다. ‘샤이록’은 없애야겠지만 ‘애화의 주인공’은 살려야 하지 않겠느냐는 것이다. - 중략 - 대체적으로 ‘고리채의 정리’는 농촌부흥을 위해 절대적으로 필요한 조치임에는 틀림이 없다. 그러나 농민들의 개개인의 입장에서 본다면 어디까지나 ‘개인간의 대차관계’에 지나지 않으며 그 ‘대차관계’가 인류가 존속하는 한 계속되는 경제적 현상이다. - 중략 - 그렇다면 어떻게 해야 하나? 그것은 바로 농민이 필요한 돈은 정부에서 싸게 되도록 무이자로 대부해주는 ‘농민금고’를 설치하는 것이다. 이렇게 하지 않으면 필요에 따르는 개인간의 대차관계를 끊을 수가 없다고 농민들은 생각하고 있었다.

    - 동아일보, 1961년 11월 4일자 기사 중 일부

    1960년대, 우리 국민 다수를 차지한 농민에게 가장 큰 고통은 ‘고리채’ 문제였다. 이를 해결하려 도입한 것이 농협의 상호금융이다. 상호금융은 조합의 구성원인 조합원들로부터 예금을 받아 그 자금을 다른 조합원에게 싼 이자로 빌려줘 조합원 상호 간의 자금 융통을 돕는 금융기관이다.

    1969년 농협이 상호금융을 시작한 이후 농촌의 고리채 문제는 획기적으로 개선됐다. 그뿐 아니라 1980년대 이후에는 조합원 간 상호부조적 자금 융통 차원을 넘어 정부가 영농을 장려하기 위해 마련한 정책자금을 농가에 연결해주는 ‘파이프라인’ 구실을 했다. 2000년대 이후로는 농업인의 여유자금 운용 창구로 활용돼 농가소득 증대에도 기여한다는 평가를 받는다.

    농협 상호금융은 2012년 농협중앙회 사업 구조개편 때 대표이사 체제로 전환됐다. 지난해 6월부터 김정식 대표가 농협 상호금융을 이끌고 있다. 김 대표는 1975년 농협대학 졸업 이후 농협에서 40여 년을 근무해온 ‘정통 농협맨’. 7월 10일 오후 농협중앙회 본관 집무실에서 김 대표를 만났다.



    ▼ 농협의 금융기관 하면 가장 먼저 NH농협은행을 떠올리게 됩니다. 농협 상호금융은 어떤 일을 하는 곳입니까.

    “NH농협은행은 시중은행과 마찬가지로 전국적으로 영업을 하는 제1금융권입니다. 그에 비해 농협 상호금융은 제한된 지역에서 예금과 대출 등을 취급하는 지역 조합의 금융사업을 지원하는 기능을 합니다. 비유하자면 지역 농·축협의 중앙은행 구실을 한다고 보면 됩니다. 시중 은행이 예금 가운데 지급준비율만큼 한국은행에 맡겨놓는 것처럼, 지역 농·축협의 여유 자금을 농협 상호금융에 맡기면 상호금융은 그 자금을 운용해 낸 수익을 다시 지역 농·축협에 돌려주는 것이죠.”

    ▼ 전국적으로 지역 농·축협의 규모가 얼마나 됩니까.

    “1969년 7월, 농협이 상호금융을 처음 시작할 때는 150개 조합에서 시범 실시했습니다. 현재는 1157개 농·축협에서 4567개 지점을 통해 상호금융 업무를 취급합니다. 올해 6월 말 기준으로 예금 규모가 237조 원, 대출 규모는 162조 원에 달합니다.”

    ▼ 엄청난 규모로 성장했군요.

    “규모가 커진 만큼 농·축협의 금융사업을 지원하는 농협중앙회 상호금융본부의 역할도 갈수록 커지고 있습니다.”

    생즉사 사즉생(生卽死 死卽生)

    ▼ 상호금융 대표이사를 맡은 지난 1년간 가장 역점을 둔 분야는?

    “금융기관은 재무 건전성을 확보하는 것이 가장 중요합니다. 더욱이 농촌 지도사업과 농산물 유통사업 등 지역 농·축협이 본연의 임무를 제대로 수행하려면 일정 수준 이상의 손익 달성을 꼭 이뤄내야 하죠. 그래서 저는 대표이사 취임 이후 건전여신 위주로 대출이 이뤄지도록 지도하고, 연체율이 높은 농·축협을 집중적으로 관리했습니다. 그 결과 지난해 6월 말 3.78% 수준이던 연체채권 비중이 연말에는 3.02%까지 낮아졌습니다.”

    농협 상호금융 대표 취임 이후 ‘성장’과 ‘건전성 확보’란 두 마리 토끼를 잡기 위해 동분서주한 김정식 대표는 1년 만에 소기의 목적을 달성했다. 지난 1년 동안 농협 상호금융의 예수금과 대출금은 각각 11조 원과 12조 원으로 늘었고, 그 사이 연체비율은 시중은행 수준으로 낮아진 것. 나아가 농축협의 여유자금을 예치받아 운용하는 농협 상호금융은 지난해 자금 운용을 통해 목표 손익을 달성하고도 지역 농·축협에 1800억 원의 추가정산까지 실시했다. 농협 상호금융이 자금 운용을 잘해 추가 배당을 실시하면 지역 농·축협에 출자한 조합원에게는 그만큼 더 많은 이익이 돌아가게 된다.

    ▼ 농협에서 줄곧 근무해왔는데, 상호금융이란 금융 분야에서 성과를 낸 비결이 있나요.

    “농협에 근무하면 누구나 상호금융에 대한 지식과 경험을 쌓게 됩니다. 지점과 지부에 근무하던 과장, 차장 시절에도 경험했고, 지점장과 지부장을 지내는 동안 지역 농·축협의 경영과 상호금융 업무 특성도 파악할 수 있었습니다.”

    김 대표의 좌우명은 임진왜란 당시 충무공 이순신 장군이 부하들에게 독려했던 ‘생즉사 사즉생’이다. ‘살려고 하면 죽고, 죽기를 각오하고 노력하면 살 수 있다’는 좌우명은 김 대표가 업무에 임하는 자세와도 연결된다. 그는 직원들에게 “성공한 사람은 방법을 찾고, 실패한 사람은 핑계를 찾는다”는 얘기를 가장 많이 한다고 한다. ‘해내야 한다’는 절박한 심정으로 40년을 한결같이 농협인으로 살아온 그의 투철한 직업의식이 지금의 그를 있게 한 셈이다.

    ▼ 금융환경이 급변하고 경쟁이 갈수록 치열해집니다.

    “달라진 금융환경에 맞추려는 노력을 부단히 해야 합니다. 전국 농·축협의 리스크 관리 역량을 키우도록 적극 지원합니다. 시스템을 강화하고 제도를 개선하는 것은 물론, 담당자에 대한 교육도 한층 강화했습니다. 또한 지역 농·축협이 좀 더 내실 있게 운영될 수 있도록 경영컨설팅을 통해 재무 개선에 도움을 줍니다. 지난해 40여 곳을 대상으로 실시했고, 올해는 50여 곳을 목표로 컨설팅팀 3개조가 현장을 누빕니다.”

    지역 대표 금융기관

    ▼ 현장에도 자주 나갑니까.

    “지역 농·축협이 처한 현실을 제대로 파악하기 위해 일선 현장을 자주 방문합니다. 올해 들어 17개 시군의 36개 지역 농·축협을 방문해 얘기를 들었습니다. 한 곳을 방문할 때마다 숙제를 한 가지씩 안고 돌아옵니다. 현장에서 가져온 숙제를 온전히 풀어내려면 앞으로 더 열심히 뛰어야 할 것 같습니다.”

    ▼ 어떤 숙제가 가장 크게 다가옵니까.

    “최근 농촌지역에 다문화 가정이 크게 늘지 않았습니까. 그분들이 자국에 송금하는 데 큰 불편을 겪습니다. 다문화 가정이 거주하는 지역 농·축협에서는 현재 외화 환전업무만 허용돼 있습니다. 거주지와 가까운 읍면단위 농·축협에서 해외 송금을 하지 못해 다문화 가정 분들이 시간을 들여 시군에 있는 시중은행에 나가 송금해야 하는 번거로움을 감수했습니다. 이제는 지역 농·축협을 통한 송금서비스 허용이 필요한 시점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다른 하나는 동일인 대출한도를 차등 적용해달라는 현장의 목소리가 높습니다. 정부가 2012년 2월 제2금융권 가계부채 보완대책의 일환으로 자기자본 250억 원 이상은 50억, 250억 원 미만은 30억 원으로 대출한도를 제한했는데요, 그로 인해 대부분의 지역 농·축협이 자금 운용과 영업에 큰 어려움을 겪습니다. 30억 원 초과 대출은 가계부채와 관련 없는 기업 대출이 대부분입니다. 그런데도 대출한도에 묶여 농·축협은 물론 기업까지 대출이자를 감당해야 하는 이중고를 겪고 있습니다.”

    ▼ 왜 이중고를 겪는 겁니까.

    “대출해준 농·축협이 법에 따라 대출금을 환수하다보니 대출금을 갚지 못한 기업은 연체의 늪에 빠지게 되는 경우가 생깁니다. 전체적으로 동일인 대출한도를 늘릴 수 없다면, 자기자본 규모가 큰 대규모 농·축협만이라도 저축은행 수준인 100억 원까지 대출한도를 상향하는 것이 절실해 보입니다.”

    지난해 6월 농협 상호금융 대표이사에 취임한 김 대표는 지난 1년 동안 농·축협이 ‘지역 대표 금융기관’으로 우뚝 서도록 하는 데 앞장섰다. 지난 3월 말까지 판매한 ‘2014 행복가득사은예금’은 54만 계좌에 11조 원을 수신하는 큰 호응을 얻었고, 지난달에는 노년층 고객에게 우대금리를 지급하는 ‘참좋은 행복설계통장’을 출시했다. 이 상품은 부가서비스로 무료로 교통재해보험을 가입해주고, 안경을 구매할 때와 상조서비스 가입 때 할인 혜택도 누릴 수 있다. 김 대표는 전국적으로 1157개에 달하는 금융 조직을 효율적으로 지원하려 여·수신 상품 개발과 리스크관리, 자금운용 등 농·축협 지원에 꼭 필요한 부문을 중심으로 인력을 확충했다.

    ▼ 상품 개발과 리스크 관리도 중요하지만 무엇보다 수익을 내려면 자금 운용을 잘해야 할 텐데요. 자금 운용은 어떻게 합니까.

    “중국 등 해외 경기 변수가 크고, 국내 금융환경에 위험요소가 많아 자금 운용으로 수익성을 높이는 것이 쉽지 않은 상황입니다. 과거에는 국공채 등 채권 위주로 자금을 운용했는데, 금리가 낮아 수익성을 높이는 데 한계가 있습니다. 주식이나 수익증권 등 대체 투자를 신중히 검토합니다. 자금운용 전문가 등 투자인력을 늘려 금융시장 흐름에 따른 다양한 대응 시나리오도 준비합니다.”

    ▼ 저축은행 부실사태를 겪은 이후 예금자들의 불안이 커졌습니다.

    “농협은 예금 지급과 관련해 2중의 안전장치를 갖췄습니다. 풍부한 유동성도 확보했습니다. 첫 번째 안전장치는 ‘농업협동조합의 구조개선에 관한 법률’에 따라 설립된 ‘상호금융 예금자보호기금’입니다. 이 기금을 통해 시중은행과 동일하게 1인당 5000만 원까지 고객의 예·적금을 보호합니다. 현재 상호금융 예금자보호기금 적립금은 3조2000억 원에 달합니다. 적립률은 은행권 0.66%보다 월등히 높은 1.34% 수준에 달합니다. 또 다른 안전장치는 23조 원이 넘는 ‘상환준비 예치금’입니다. 시중 은행이 지급준비금을 적립하는 것처럼, 지역 농·축협에서 예수금의 10%를 농협중앙회 상호금융본부에서 운용하는 특별회계에 예치토록 합니다. 고객이 원하면 언제든 예금을 지급할 수 있도록 준비해놓는 것이죠. 이밖에도 지역 농·축협의 여유자금을 예치 받아 53조 원에 달하는 풍부한 유동성을 갖췄습니다.”

    금융사기 대응팀

    ▼ 보이스피싱과 같은 금융사기가 사회문제가 됐습니다.

    “농·축협을 찾는 농업인이나 고령 고객이 사기 전화에 쉽게 현혹되는 경우가 많습니다. 금융사기 피해자가 스스로 얘기하듯 ‘홀린 것처럼’ 사기꾼이 시키는 대로 행동한다고 하지 않습니까. 이를 예방하려면 고객과 접점인 창구에서의 대응이 중요합니다. 그래서 직원을 대상으로 금융사기에 대한 교육을 강화하고 고객에게는 금융사기 피해 예방 캠페인을 적극 펼칩니다. 또 상호금융본부에 금융사기대응팀을 운영해 금융사기 피해를 적극 차단합니다.”

    ▼ 금융사기대응팀이 어떻게 활동하나요.

    “금융사기 의심계좌를 지속적으로 모니터링하고, 금융사기 패턴을 보이는 즉시 지급정지 조치를 취합니다. 전산시스템 등 여러 방법으로 금융사기에 대응합니다. 너무 구체적으로 말씀드리면 사기꾼이 먼저 알고 피해갈 수 있으니까 여기까지만 말씀드리겠습니다.(웃음)”

    ▼ 성과가 있었습니까.

    “금융사기대응팀 활동으로 지난해 5월부터 1년간 3825건의 금융사기 피해를 막았습니다. 액수로는 161억 원에 달합니다.”

    ▼ 금융사기를 막으려면 사기 도구로 쓰이는 ‘대포통장’ 문제를 해결해야 할 텐데요.

    “농·축협은 전국 최다 점포망을 가진 데다 고령의 서민 고객이 많아 그동안 금융권에서 가장 많은 대포통장 발생 건수를 보여왔습니다. 지난해 말 기준으로 농·축협에서 개설된 대포통장 비율이 전체의 42.01%에 달했습니다. 그렇지만 통장 신규 개설 목적을 철저히 확인하고, 상시 모니터링으로 대포통장 의심계좌에 대해 즉각적인 지급정지 조치를 취하는 등 강력하게 대응한 결과, 지난달 신규 발생 대포통장 중 농·축협 통장 비율이 3.59%로 지난해 대비 38.42%나 급감했습니다. 특히 지난해 월평균 대포통장 발생건수가 733건이었는데 올 6월 한 달 동안에는 신규 발생 건수가 65건으로 91%의 감소율을 보였습니다. 대포통장을 근절하려 직원 교육은 물론 업무시스템을 개선하고 고객과 임직원에 대한 캠페인을 꾸준히 전개해온 성과로 볼 수 있습니다. 앞으로도 농·축협 고객이 금융범죄의 표적이 되는 것을 원천적으로 차단해 피해를 예방하도록 지속적인 노력을 기울이겠습니다.”

    김정식 대표는 농민 친화적인 서글서글한 외모와 달리 날카로운 매의 눈을 가졌다. “대포통장을 근절하고 금융사기 피해를 막아 농민과 서민의 소중한 자산을 지켜 농협이 더 큰 신뢰를 받도록 하겠다”는 그의 말에는 ‘자신이 뱉은 말을 반드시 실천하겠다’는 강한 의지가 묻어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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