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8년 6월호

김정은 비핵화 방정식 | 신동아-부동이화Initiative 좌·우파 끝장토론

한반도 냉전체제 마침내 해체되나

“착각하지 말라. 10% 문턱 넘은 것일 뿐” vs “김정은 ‘서방 자본·인력’ +α로 원해”

  • | 송홍근 기자 carrot@donga.com

    입력2018-05-27 09:00:02

  • 글자크기 설정 닫기
    [홍중식 기자]

    [홍중식 기자]

    6월 12일 사상 첫 북·미 정상회담이 열린다. 북한 비핵화를 두고 샅바싸움이 거세다. 남북은 4월 27일 판문점 합의를 내놓았다.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과 시진핑(習近平) 중국 국가주석은 베이징(北京)과 다롄(大連)에서 두 차례나 만났다. 채널 고정!(Stay tuned)을 외친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야구의 예고 홈런(predicted homerun)을 연상케 하는 언사를 잇따라 내놓는다. 

    세교연구소 주최로 5일 4일 열린 신동아-부동이화Initiative 네 번째 토론 주제는 ‘남북 정상회담 평가와 북·미 정상회담 전망’이다. 이남주 세교연구소 소장(성공회대 교수)이 토론을 진행했다. 한국국방연구원 북한연구실장을 지낸 차두현 아산정책연구원 객원연구위원(경기도지사 외교정책특보)과 서보혁 참여연대 평화군축센터 소장(서울대 통일평화연구원 교수)이 각각 보수·진보 패널로 참여했다. 

    부동이화Initiative는 중도보수와 중도진보를 지향하는 싱크탱크들의 네트워크다. 부동이화(不同而和)는 화이부동(和而不同)을 비튼 표현이다. 화이부동이 화합하되 각자의 길을 걷는 것이라면 부동이화는 생각은 다르나 함께 걸어갈 길을 찾는다는 뜻이다. 두 패널은 각각 보수와 진보의 시각에서 현 상황을 진단하면서도 “안정적 분단을 통해 분단 평화 시대를 만들자”는 의견에 합일했다.

    “살벌한 대화가 우아한 침묵보다 낫다”

    이남주 | 부동이화Initiative는 단순히 차이만 확인하는 토론이 아닌 작아도 동의할 수 있는 부분을 발견해 보수와 진보의 대화가 생산적으로 진행되도록 촉진하며 한국 사회 담론 수준을 높이자는 취지에서 올해 초 기획된 프로그램이다. 남북 정상회담과 판문점 선언을 어떻게 평가하는지부터 얘기해보자. 

    차두현 | 나는 기본적으로 보수적 접근을 하는 사람이다. 부동이화Initiative의 제안을 받고 일정을 바꿔서라도 참석해야겠다고 생각했다. 한국 사회에 제일 부족한 게 톨레랑스(관용)다. 생각이 같은 사람들끼리만 모여서 대화한다. 다른 쪽 얘기? 듣지 않는다. 성향이 다른 이가 모여 난상토론하는 것은 의미가 상당하다. 



    남북 정상회담이 가진 상징성에 문제가 있다고 말하는 사람은 보수에서도 상대적 소수다. 정상회담의 가장 큰 의미는 ‘만났다는 것’이다. 양측 최고 정책 결정자가 돌파구를 찾으려 대화했다는 점에서 의의를 가진다. 가장 살벌한 대화가 우아한 침묵보다 낫다. 

    그럼에도 정상회담을 정치적으로 활용하는 듯한 모습은 불손하게 비칠 수 있다. 선거에서 유·불리를 따지면 이번 합의도 지속 가능성이 사라진다. 현재 ‘지고 있는’ 이들이 언젠가 ‘이겼을 때’ 또다시 부인되는 것이다. 이 같은 일이 반복돼선 안 된다. 

    서보혁 | 정부에서 처음엔 정상 합의문에 남북관계는 일부만 다뤄질 것이라고 밝혔으나 결과는 그렇지 않았다. 남북관계 전반에 대한 합의가 이뤄졌다. 그것은 의외다. 남과 북이 현 국면을 주도했다는 점도 강조하고 싶다. 

    판문점 선언을 통해 남북 간 신뢰를 구축해 비핵화·평화체제로 나아가는 동력을 확보했다. 노무현 대통령과 김정일 국방위원장이 2007년 합의한 10·4선언에 대해 평양이 가진 기대도 확인할 수 있었다. 판문점 합의 중 비핵화·평화체제 논의는 공동의 이해를 촉진하고 신뢰를 구축하는 기반이다. 

    평화체제와 비핵화를 별개로 나눈 게 아니라 평화체제를 형성하는 과정에서 비핵화가 이뤄지도록 한 것은 1·2차 정상회담과 구분되는 부분이다. CVID(Complete, Verifiable, Irreversible Dismantlement) 가운데 ‘완전한(Complete)’이 들어갔으며 ‘검증 가능한(Verifiable)’과 ‘돌이킬 수 없는(Irreversible)’은 미국과 협상 카드로 남겨뒀다.

    “文 대통령 지도력 주효”

    차두현 | 판문점 합의는 보수가 보기엔 불만족스러워도 북측의 전환된 태도를 이끌어냈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다. 무엇보다도 ‘경로 구속성’을 만들었다. 김정은의 이미지만 강화해준 게 아니냐는 비판이 있으나 다른 측면에서 보면 히키코모리(사회생활에 적응하지 못하고 집안에만 틀어박혀 사는 병적인 사람을 일컫는 용어)의 이미지를 전환하는 계기가 됐다. 히키코모리는 나쁜 짓 하는 데 양심의 가책이 없으나 밖으로 나오면 일탈할 때 부담을 가질 수밖에 없다. 나는 합의 내용보다 남·북·미가 쉽게 되돌아가기 어려운 경로 구속성이 만들어졌다는 데 방점을 찍는다. 

    *而和 : 온도차는 있으나 두 패널 모두 남북 정상회담의 의의와 결과를 긍정적으로 평가했다. 서보혁 소장은 비핵화·평화체제로 나아가는 동력을 확보했다는 점을 강조했으며 차두현 연구위원은 경로 구속성이 형성된 데 곁점을 찍었다.

    서보혁 | 문재인 대통령의 지도력이 주효했다고 본다. 12시간 동안 진행된 판문점 회담은 정상외교가 어떤 형식으로 이뤄져야 하는지 잘 보여준 교과서다. 정상회담의 형식 또한 평가받아 마땅하다. 적대 관계를 가진 나라들에 이번 정상회담이 바람직한 선례가 될 것이다. 국민이 실시간으로 지켜봤으며 처음부터 끝까지 전 세계에 공개됐다. 평양이 비핵화·평화체제에 대한 의지를 정상회담 중에는 나타냈으나 발표 시에는 직접 말하기보다 남측을 통해 밝힌 것은 아쉬움이 남는 대목이다. 

    차두현 | ‘메시아주의’를 지양해야 한다. 문을 열 때는 메시아주의가 생길 수도 있겠으나 그 후로는 상징보다 실질이 중요하다. 1972년 남북대화(7·4남북공동성명)가 잠시 진행되다 깨졌을 때 한국에서 유신이 일어났으며 북한에서는 주석제를 명시한 사회주의 헌법이 제정됐다. 저 사람이 나서면 뭔가 해결된다? 바람직하지 않은 생각이다. 

    문이 열렸다고 전체의 80%는 이뤄진 것으로 착각하지 말라. 10%의 문턱을 넘은 것일 뿐이다. 축제는 2~3일이면 족하다. 다음을 준비하지 않으면 실패한다. ‘모라토리엄→동결·불능화→데이터 및 핵심 물질 반출→물리적 해체→해체 여부에 대한 확인’으로 이어지는 매 순간 신뢰가 담보돼야 한다. 결코 쉽지 않은 길이다. 

    한국은 우리의 이익을 극대화하는 방향으로 갈 수밖에 없다. 축제를 즐길 때가 아니라 어떻게 가장 낮은 가격으로 핵을 포기시킬지 고민해야 한다. 

    *不同 : 진보 패널인 서보혁 소장은 문재인 대통령의 지도력에도 방점을 찍었으나 보수 패널인 차두현 연구위원은 메시아주의를 경계했다. 서보혁 소장은 평화체제 형성 과정을 상대적으로 낙관한 반면 차두현 연구위원은 문턱을 넘은 것일 뿐이라고 봤다.

    ‘리비아 모델’에 대한 오해

    이남주 | 판문점 합의를 실행하는 과정에서 다양한 문제가 발생할 수밖에 없다. 남북 정상이 약속한 협력 사업을 대북제재 국면에서 진행할 수 있는지를 두고도 논란이 인다. 남북 협력이 대북제재와 양립 가능한지, 대북제재는 어떤 상황에서 완화될 수 있는지 말해달라. 

    서보혁 | 판문점 합의 내용 중 현재 기준으로 이행할 게 뭔지, 북한이 가시적 비핵화 행동에 나섰을 때 할 게 뭔지 나눠봐야 한다. 풍계리 핵실험장 폐쇄 후 무엇을 진행하고 최종 관문에 돌입하면 무엇을 할지 지금부터 준비해야 한다. 

    이산가족 상봉을 비롯한 인도적 협력은 제재 국면에서도 진행할 수 있다. 납북자 및 국군포로 문제도 그렇다. 인도적 협력 과정에서 소요되는 비용을 남측이 부담하는 것도 미국을 비롯한 국제사회가 받아들일 것이다. 스포츠 교류, 접경지역 농업 교류 등도 곧바로 시작할 수 있다. 개성공단 및 금강산 관광 재개는 비핵화 행동에 구체적으로 돌입하지 않은 상황에선 시작하기 어렵다. 

    이남주 | 핵 폐기가 확인되기 전까지는 대가를 줄 수 없다는 게 미국의 태도다. 

    서보혁 | 1994년 제네바 합의 때처럼 북한이 구체적 행동에 들어가면 트럼프 대통령이 의회의 승인 없이 행정부가 독자적으로 풀 수 있는 제재는 해제해 모멘텀을 주는 작업이 필요하다. 그때의 북한과 지금의 북한은 다르다는 반론이 있겠으나 비핵화를 완료하려면 평양을 움직여야 한다. 완전하게 끝날 때까지 아무것도 안 해주겠다? 트럼프 행정부가 원하는 ‘원샷 딜’이 더 멀어진다. 트럼프의 득실을 따져보면 11월 중간선거 이전에 북핵 문제에서 가시적 성과가 나와야 한다. 

    차두현 | 한국 사회에서 리비아식 해법을 오해하는 측면이 있다. 카다피의 말로 탓에 그런 것 같다. 

    리비아 모델에서 선(先)비핵화 후(後)보상은 시간차가 짧았다. 행동한 후 1~2년을 기다린 게 아니다. 비핵화 조치와 제재 해제가 수개월 간격으로 이뤄졌다. 핵 프로그램을 초기 단계에서 접은 터라 폐기 과정도 비교적 쉬웠다. 핵 능력을 신고하고 검증받은 후 핵 물질을 반출하는 단계에서 유엔 제재가 풀렸다. 탄도미사일의 완전한 해체 시작 전에 제재를 거둔 것이다. 

    미국은 리비아와 맺은 수준의 딜을 북한에 요구할 가능성이 크다. 트럼프가 기분파라고 하는데 설사 그렇더라도 대통령이 제멋대로 풀 수 있는 제재가 많지 않다. 대북제재법을 수행하는 행정명령(executive order)을 풀고 난 후 의회에 설명해야 한다. 의회가 리비아 때보다 더욱 보수적인 조건을 제기할 수 있다.

    “가장 싼 가격에 핵 포기 얻어내야”

    이남주 | 북한이 특정한 비핵화 행동을 할 때마다 유엔 제재를 역진(逆進)해 푸는 방법은 어떤가. 

    차두현 | 일부를 풀고 일부는 놓아두자? 논리적으로 성립되지 않는다. 미국은 세컨더리 보이콧(제재 대상 국가와 거래하는 제3국을 제재하는 것)을 언급하면서 베이징에 으름장만 놓았을 뿐 실제로는 중국이 대북제재를 수행한 것이다. 유엔 제재의 역진은 북·중관계를 미뤄 볼 때 제재 해제라는 얘기가 나올 때 시작된다, 어느 제재는 풀고 어느 제재는 묶는다는 것은 공염불이라는 말이다. 미국은 의심 가는 시설을 다 찾아낸 것을 완전한 비핵화로 보지 않는다. 트럼프는 핵 물질의 해외 반출을 제재 해제 시점으로 생각할 것이다. 우리는 북한이 완전한 비핵화를 2년 내 하겠다고 밝힌 것으로 간주하고 행동하면 된다. 평양은 판문점 정상회담에서 시간구속성을 가진 항목은 합의하기를 꺼렸을 것이다. 합의 내용의 모호성을 역으로 이용해 시간구속성을 가진 것으로 간주하고 최저가로 핵 포기를 얻어내야 한다. 

    *不同 : 서보혁 소장은 트럼프 대통령이 제재 해제와 관련해 예상보다 유연하게 행동하리라고 내다본 반면 차두현 연구위원은 북한이 핵 물질을 해외로 반출해야 본격적인 제재 해제가 이뤄질 것이라고 예상했다.

    이남주 | 차두현 연구위원은 핵 물질 반출 이전까지는 남북 교류가 이뤄져선 안 된다고 보는 건가. 

    차두현 | 이산가족 상봉, 자카르타-팔렘방 아시아경기대회 단일팀 등 스포츠 교류, 연락사무소 개설, 인도적 지원, 사회·문화 교류는 제재 국면에서도 추진할 수 있다. 핵 물질이 북한에 남아 있으나 모라토리엄이 완성된 시점에는 어떻게 할까. 국제사회의 대북 제재에 동참하면서 비무장지대의 실제 비무장화, 서해 북방한계선(NLL) 일대의 평화수역화 등을 추진할 수 있다. 모라토리엄 이후에도 도로·철도 연결은 안 된다. 유엔 안보리 대북결의안 문구만 보면 ‘북한에 대한 투자를 금한다. 단, 공공 인프라 투자는 제외된다’고 돼 있으나 기존의 제재를 우회할 방법을 찾기 어렵다. 도로·철도 연결과 관련해 물자 일부 지원은 가능하나 한국의 인원과 기술이 들어가야 하는 데다 단순 노동자는 북한에 못 들어가므로 북한 노동자를 고용해 임금을 줘야 하는데 임금 자체가 벌크 캐시(대량 현금)에 해당할 수 있다. 북한이 핵 물질을 해외로 반출한 후에는 개성공단과 금강산 관광 재개도 가능하다.

    “빠른 속도 이행 北에 요구하자”

    이남주 | 북한 처지에서도 남북 간 인도적 교류와 사회·문화 협력이 시급하게 필요한 것은 아니다. 북한 당국이 경제 건설을 강조한다. 평양은 경제 발전을 뒷받침해주는 지원을 바랄 것이다. 

    차두현 | 남북 협력을 통해 평화를 주도하는 게 우리가 할 일인 것은 맞다. 비핵화 과정에서 중재가 아니라 주도를 하려면 생각을 다른 각도에서 해야 한다. 북한과 미국이 각각 패를 내놓으면 분위기가 살벌해질 것이다. 우리가 생각하는 패와 다르다는 얘기다. 따라서 북한에 각 단계를 압축해 시간을 앞으로 당기자고 요구해야 한다. 제재를 위반하면서 북한을 지원하면 운전석에서 쫓겨날 수 있다. 

    서보혁 | 빠른 속도로 비핵화 합의를 이뤄내고 이행도 빠른 속도로 하자고 북한에 제안해야 한다. 북한이 경제 발전을 원한다면 동상이몽(同床異夢)이더라도 남북이 같은 견해를 가질 수 있다. 무기, 시설, 물질 중 무기와 시설을 검증받겠다는 것은 확인됐다. 북한이 미국에 뭘 요구할지, 미국이 북한에 뭘 줄지가 남은 것이다. 북한은 안보 대 안보를 교환하면서 플러스 알파로 서방과 국제경제기구(세계은행, 국제통화기금 등)의 자본과 인력을 바랄 것이다. 또한 중국과 러시아가 북한의 산업 개발에 더욱 적극적으로 참여하기를 원할 것이다. 

    *而和 : 두 패널은 비핵화 과정을 압축해 빠른 속도로 완료하자고 북한에 요구하자는 데 동의했다.

    이남주 |
    비핵화로의 이행을 단축하는 과정에서 걸림돌은 무엇인가. 빠른 속도의 비핵화가 가능하긴 한가. 

    차두현 |
    리비아는 자체 핵 개발 인력과 기술이 없었다. 암시장에서 사온 핵물질만 내놓으면 그만이었다. 북한은 다르다. 핵 프로그램, 데이터, 인력이 엄청나게 많다. 일부를 빼고 줬는지 아닌지 검증하기 어려운 것이다. 우크라이나의 경우 핵 기술자들에게 이직과 관련한 직업 교육을 제공할 때 미국이 단계별로 지원했다. 인력은 직업 전환 교육 시간이 발생하기에 시간이 걸린다. 북한의 경우 무엇보다도 핵 실험 데이터를 내놓는 과정이 가장 큰 고비가 될 것이다.

    “제도뿐 아니라 의식·규범이 바뀌어야 평화 정착”

    서보혁 | 북핵 문제가 심각하기에 물리적인 최종적 비핵화까지는 시간이 꽤 걸린다. 비단길이 아니라 가시밭길이기에 속도를 높이고 연속성을 보장받으려면 민수(民需)나 북한 주민 생계와 관련된 제재를 일부 풀어줘야 한다. 

    차두현 | 제재 해제는 현실적으로 어렵다. 

    이남주 | 북한이 도달할 최종 목표는 나왔다. 핵 폐기다. 북한은 체제 보장과 경제 협력을 원한다. 북한의 행동에 따라 유엔 제재를 역진해 점진적으로 해제하는 방식이 있는데 차두현 연구위원은 현실적으로 실행이 불가능하다고 봤다. 지금부터는 종전 선언→평화협정→평화체제로 이어지는 과정에 대해 얘기해보자. 

    차두현 | 종전 선언은 쉽게 말해 ‘과거를 묻지 마세요’다. 종전 선언 이전에 벌어진 적대 행위에 책임을 묻지 않겠다는 것이다. 6·25전쟁은 오래전 일이니 과거를 묻기 어려울지 모른다. 북한이 부인하는 천안함은 제쳐놓더라도 연평도 포격은 어떻게 할 건가. 미국은 북한과의 관계 정상화 협의 과정에서 북한에 억류됐다 미국에 돌아와 사망한 오토 웜비어 등의 희생을 거론할 것이다. 우리 국민 중 북한에 의해 희생당한 사람이 있다. 문제 제기를 어떤 방식으로 할 것인지 고민해봐야 한다. 논란의 핵심인 주한미군 문제는 한미동맹의 존재 의의와 주한미군이 대응하는 대상을 북한으로 고정하지 않고 다른 곳으로 돌리는 것으로 해결할 수 있다고 본다. 

    서보혁 | 평화 구축은 두 갈래로 이뤄진다. 첫째, 제도를 바꾸는 것이다. 둘째, 의식이나 규범이 바뀌는 것이다. 첫째와 둘째가 함께 가지 않으면 언제든 역진(逆進)할 수 있다는 점을 먼저 강조하고 싶다. 종전 선언과 관련해 6·25전쟁은 접어두면 되나 천안함에 대해서는 올해 가을 남북 정상회담이 열리면 북한이 설사 유감을 표명하지 않더라도 김정은과 만난 자리에서 입장 표명을 요구할 필요가 있다고 본다. 남·북·미 3자의 종전 선언, 남·북·미·중 4자의 평화협정이 논리적으로는 맞는데 중국이 종전 선언 논의에는 빠졌다가 평화협정 논의에는 들어오는 게 어색하다. 종전 선언과 평화협정의 당사자가 일치하는 게 바람직하다고 생각한다. 평화협정에 당사자로 참여한 국가들이 국제경제기구가 평양에 들어갈 때 북한 사람들을 학습시키는 매니저 역할을 할 수 있을 것이다.

    평화협정 체결 시 주한미군 철수?

    신동아-부동이화Initiative 토론은 5월 4일 이남주(가운데) 세교연구소 소장의 사회로 차두현(왼쪽) 아산정책연구원 객원연구위원, 서보혁 참여연대 평화군축센터 소장이 진행했다. [홍중식 기자]

    신동아-부동이화Initiative 토론은 5월 4일 이남주(가운데) 세교연구소 소장의 사회로 차두현(왼쪽) 아산정책연구원 객원연구위원, 서보혁 참여연대 평화군축센터 소장이 진행했다. [홍중식 기자]

    이남주 | 종전 선언은 선례가 있긴 하나 일반적 프로세스는 아니다. 평화협정은 주한미군 지위 변경 등 복잡한 문제가 따라붙는다. 평화협정까지는 가야 핵 폐기가 완료될 텐데 종전 선언은 왜 하느냐는 지적이 나올 수 있다. 

    서보혁 | 평화협정을 맺기까지는 어려운 과정을 거쳐야 한다. 평화협정 이전에 평화 공존과 관련해 정치적 의미를 부여하는 게 종전 선언이다. 

    차두현 | 나도 종전 선언이 필요하다고 본다. 종전 선언에 담길 내용은 다른 나라들이 강화협정을 맺을 때 1조에 나오는 것이다. 정전 상태는 대부분 재(再)교전으로 결말이 난다. 승패가 갈리는 것이다. 65년 동안 무승부가 이어지는 시점에서 남북 간 긴장을 해소하려면 더는 상대를 향해 적대 행위를 하지 않으며 전쟁이 끝났다는 점을 선언하는 조치가 필요하다. 다만, 종전을 선언하고 3, 4년이 지났는데도 평화협정이 맺어지지 않으면 그것도 골치 아픈 일이다. 

    이남주 | 평화협정 체결 후 주한미군의 역할은 어떻게 될까. 

    차두현 | 한미동맹과 주한미군 문제는 의외로 쉽게 풀리리라고 본다. 한미상호보호조약은 북한만을 적으로 규정하지 않는다. 아시아 지역의 평화 공고화에 기여하는 게 한미동맹의 목표다. 주한미군은 남북, 북·미 간 문제가 아니라 미·중 간 문제다. 남북, 북·미 간에는 한미동맹과 주한미군의 존재 의미를 바꿔주면 되는데 미·중 합의가 이뤄질지 의문점으로 남는다. 

    서보혁 |
    중국도 자신들을 적으로 간주하지 않는 이상 주한미군을 존중까지는 아니되 인정한다. 중국 처지에서도 일본이 군사적으로 부상하는 것과 관련해 주한미군이 균형자(balancer) 노릇을 할 수 있다. 향후 철수, 감축, 성격 전환 등을 두고 ‘주한미군이 과연 필요하냐’는 논쟁이 벌어질 것이다. 기존의 이념적 논쟁이 아니라 수준이 한 단계 높은 건강한 논쟁이 이뤄지리라고 본다. 

    *而和 : 두 패널은 주한미군 주둔 문제는 북·미 협상 과정에서 큰 걸림돌이 되지 않으리라고 내다봤다. 다만 차두현 연구위원은 중국은 다른 생각을 할 수도 있다고 봤다. 

    이남주 | 북한은 핵무기 개발 명분으로 미국의 위협을 제기한다. 역지사지해서 보면 평양도 북·미 합의문이라는 종잇조각만 믿을 수는 없는 노릇이다. 

    차두현 | 체제 보장은 문서로 되는 게 아니라 신뢰의 문제다. 수교해도 전쟁할 수 있다. 미국과 중국이 국교가 없어 남중국해에서 저러는 게 아니다. 미국이라는 국가의 위신과 관련한 문제인 터라 함부로 말하기는 어려우나 불가침 약속도 가능하다고 본다. 완전한 비핵화의 경우에는 미국 의회가 움직일 소지가 있다. 지금은 사라진 북한 국방위원회가 2013년 한미연합 군사훈련 때 한미동맹이 그렇게 중요하면 한반도 밖에 나가서 훈련하라는 식의 주장을 펼친 적이 있다. 주한미군의 주둔 위치 변경 등 다양한 협상이 이뤄질 수 있다. 다만, 주한미군의 역할을 변경하는 조치가 이뤄졌다고 가정하자. 김정은 체제의 보장은 외부로부터의 위협이 사라졌다고 해서 확보되는 게 아니다. 한국도 1970~80년대 독재정권이 북한이라는 적을 이용해 정당성을 강화했다. 북한이 협상 테이블에 나온 것은 경제 발전을 이뤄 권력 기반을 강화하겠다는 것 아닌가. 체제 정당성 확보를 위해 국경 너머의 적을 강조할 필요성이 줄어들었다? 생각해볼 문제다.

    “검증에도 악마가 존재할 수 있다”

    서보혁 | 나는 북한이 비핵화와 관련해 진정성을 가졌다고 본다. 북한 내부의 정권 정통성은 그 사람들의 문제다. 안보 문제 해결은 필수 과정이지만 앞으로는 안보 대 안보나 안보 대 경제가 아니라 경제 중심으로 갈 것이다. 제재가 해제되고 미국, 일본과 관계 정상화가 이뤄지며, 한국과 서방·일본과 경제적으로 엮이는 과정 말이다. 물론 어느 수준까지 나아갈지는 북한이 선택할 문제다. 

    이남주 | 북한이 핵에 대한 모호성을 남겨둔 상태에서 협상을 마무리하려 할 것이라는 시각도 있다. 

    서보혁 | 북한이 말한 비핵지대화는 완전한 비핵화를 통해 핵 없는 한반도를 실현하겠다는 것으로 봐야 한다. 

    차두현 | 트럼프가 비확산 및 동결, ICBM 폐기 수준에서 북한과 합의하면 정치적으로 살아남지 못한다. 디테일에도 함정이 많다. 북한이 미군의 핵 투발 전략자산 철수를 요구할 경우 한반도에 전개된 제7공군 항공기가 다수 포함된다. 종전 선언에서 평화협정으로 가는 중간 단계에서 디테일 부분의 합의가 쉽지 않다. 

    *不同 : 진보 패널은 북한이 진정성을 가졌다고 봤으며 보수 패널과 비교할 때 비핵화 과정을 상대적으로 낙관했다. 보수 패널은 북·미 협상이 쉽지 않을 것으로 내다봤다.

    “안정적 분단 통해 ‘분단 평화 시대’ 만들자” 의견 합일

    이남주 | 검증에도 악마가 존재할 수 있다. 

    차두현 | 북한의 핵무장 현황은 동결만으로는 아무런 의미가 없다. 핵무기를 아무도 못 보는 데 숨겨놓을 수도 있다. 검증 과정에서 데이터, 인력을 다 꺼내놓는 게 중요하다. 핵무기를 숨겨놓더라도 핵 물질의 반감기를 고려할 때 업그레이드 없이 15년가량 지나면 사용할 수 없다. 

    서보혁 | 북한 체제가 변화하면 상황이 긍정적인 쪽으로 전개될 것이다. 

    차두현 | 과학자를 내놓을 수 없다면 데이터라도 내놓아야 한다. 물질과 데이터를 받아내는 게 핵심이다. 평화체제로 가면서도 4~5년간의 모니터링이 필요하다. 

    이남주 | 핵 폐기 그 후는. 

    차두현 | 나는 ‘안정적인 분단’을 강조하고 싶다. 급속한 통일이 아니라 우선 분단이 안정화돼 상호 의존성을 확대하는 게 중요하다. 

    서보혁 | ‘분단 평화 시대’를 만들어보자. 비핵화된 한반도에 평화체제를 꾸리는 게 먼저다. 준비되지 않은 통일은 또 다른 폭력을 일으킬 수 있다. 분단 평화 시대를 꾸린 후 두 개의 국가가 평화 공존하는 게 통일의 1단계다. 연합이든 연방이든 한 우산을 쓸지, 1국가 1체제 통일로 갈지는 평화 공존 이후의 일이다. ‘부동이화’라는 이 토론의 간판처럼 남북이 서로 다르다는 것을 인정하고 화합을 도모할 때 통일의 길이 열릴 것이다. 

    *而和 : ‘안정적인 분단’(차두현)과 ‘분단 평화 시대’(서보혁)는 같은 말이다. 두 패널은 ‘통일 추구’보다 ‘평화 공존’에 방점을 찍었다. 남북이 ‘평화 번영’ 하는 그날이 올까.

    ※부동이화Initiative 네 번째 토론을 주최한 세교연구소는 2006년 출판사 창비의 후원으로 결성됐다. 인문학과 사회과학, 문학 연구자, 시민사회 운동가가 학문적 협동 작업을 통해 한국 사회와 문학 이론, 동아시아에 관한 연구 활동을 수행하며 백영서 연세대 교수가 이사장을 맡고 있다. 




    댓글 0
    닫기

    매거진동아

    • youtube
    • youtube
    • youtube

    에디터 추천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