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청와대에서 민정수석과 인사보좌관은 상호 보완 및 견제 관계로 설정돼 있다. 정무직과 공기업 임원 인사는 추천 창구를 인사보좌관으로 일원화하고 민정수석의 검증을 거쳐 3배수로 올라온 인사안을 놓고 최종적으로 대통령이 낙점한다. 정찬용(鄭燦龍·53) 인사보좌관은 참여정부의 인사시스템을 3심제에 비유했다. 인사보좌관이 1심, 문재인 민정수석이 2심, 노무현 대통령이 최종심이다.
1950년 전남 영암 출신인 정보좌관은 서울에서 대학(서울대 언어학과)을 마친 뒤 경남 거창에서 17년 동안 고교 교사와 YMCA 일을 했고 1997년 고향으로 돌아와 줄곧 광주YMCA에서 활동했다. 인사행정을 전공했거나 공무원 조직에서 일해본 경험이 전혀 없는 사람이다. 노무현 대통령이 새 청와대의 핵심 기능인 인사보좌관에 지방에서 비정부기구(NGO) 활동을 하던 사람을 임명한 이유는 무엇일까. 이 의문에 대한 해답을 풀어가보자.
그는 청와대 안팎에서 스스로를 ‘촌닭’이라고 칭하지만 그의 경력을 꼼꼼히 들여다보면 장터에 갑자기 끌려나온 촌닭은 아니다. 정부혁신위원장 김병준 국민대 교수는 “정보좌관은 YMCA 운동의 신화로 청와대에 들어가지 않았으면 YMCA 전국연맹 사무총장 후보 1순위자였다”고 말한다. YMCA 전국연맹 사무총장은 전국의 YMCA 조직을 이끄는 사실상 최고 지도자다. 현 이남주 부패방지위원장(장관급)도 연맹 사무총장을 하다 위원장이 됐다.
정보좌관 인터뷰는 청와대 춘추관 2층에서 이루어졌다. 지난 정부에서는 기자가 수석비서관 방에 찾아가 취재를 할 수 있었지만 제도가 바뀌어 면담 신청을 하면 비서관이 춘추관으로 나와 기자를 만난다. 춘추관 1층에는 청와대 출입기자들이 득실거리지만 보도지원과와 기자회견장 그리고 인터뷰 룸이 몇 개 있는 2층은 한가했다.
오십세주는 잘 안맞아
메인 인터뷰에 앞서 몸을 푸는 의미에서 약간 아첨기가 담긴 질문으로 시작했다.
―청와대 출입기자들한테 물어봤더니 청와대 장차관급 중에서 인기가 비교적 높은 편이라고 하더군요. 노대통령은 언론과 긴장관계를 유지하라고 거듭 강조했는데 기자들과 너무 사이 좋게 지내는 것 아닙니까.
“언론과 밀월관계는 곤란하지만 긴장 관계는 유지해야 하지 않습니까. 흉보고 싸우자는 이야기가 아니고 서로 건강한 비판과 토론을 하자는 뜻입니다.”
―공무원이 업무와 관련해 외부 인사를 만나면 판공비로 저녁도 내고 술도 마실 수 있는 것 아닙니까. 노대통령이 공무원들과 대화를 나누다가 양주는 안 되고 오십세주는 괜찮다는 이야기를 했는데 인재를 찾아다니다 보면 오십세주 비용이 만만치 않겠어요.
“예전에는 대통령이 통치자금을 조성해 참모들에게 나눠주었습니다. 노대통령은 그게 없대요. 제 월급으로는 식구들 먹여 살려야 할 것 아닙니까. 업무추진비가 조금 나오지만 아껴 써야 합니다. 인사 추천을 하려는 사람과 저녁을 먹으면 계산은 내 몫입니다. 그런 일과 관계없이 만나는 사람들 중에는 상대방이 내는 경우도 있지만….
만날 된장찌개만 먹을 수는 없습니다. 중국 요리나 양식을 먹기도 하고 한정식집에 가면 1인당 3만∼5만원짜리 밥상이 나옵니다. 불쑥 겁이 납니다. 5만원짜리 밥을 먹고 다녀야 하나, 이 돈 가지면 좋게 쓸 데가 많은데, 이런 생각이 듭니다. 황위원도 언론사에 있으니 이해하겠지만 돼지고기 구워 먹자고 하면 홀대받는다는 생각에 섭섭해하지 않겠습니까.”
―옛날 분위기에서는 섭섭했겠죠. 지금은 청와대 사정이 어떻다는 걸 이해하니까 비싼 밥 안 사도 됩니다.
“그렇습니다. 점심이나 저녁을 먹다가 술 한잔 하더라도 흥청망청하지 말라는 이야기를 하다가 오십세주 소리가 나왔겠지요. 오십세주를 한두 번 마셔봤는데 나한테는 잘 안 맞는 술입니다.”
1980년대 초 총칼로 권력을 잡은 신 군부는 낮에는 ‘사회 정의’를 부르짖으면서 밤에는 요정에서 사람들을 만나 돈 봉투를 주고받았다. 이 즈음 ‘정권교체가 뭐냐’는 질문에 요정 주인이 ‘계산하는 X은 같고 얻어먹는 X만 바뀌는 것’ 이라고 답했다는 조크가 있다. 끝까지 지켜봐야겠지만 낮과 밤의 태도를 관찰하는 것도 집권세력의 도덕성을 판별하는 기준이 될 수 있다.
―농담 하나 할까요. 시중의 입 소문으로 청와대 수석비서관 물망에 오르내리던 사람에게 확인을 했더니 ‘시켜주지도 않겠지만 시켜줘도 안 간다’고 하더군요. 정부의 정책을 설명하고 대통령의 뜻을 알리자면 밥도 먹고 운동도 해야 할 텐데 업무추진비로는 턱도 없을 테고 외부 지원에 의존하지 않을 수 없다는 거지요. 그러다 결국 교도소 담장 위를 걷는 신세가 된다는 겁니다. (웃음)
“나도 마찬가지입니다. 인사보좌관은 여러 가지 유혹에 노출되는 자리입니다. 부정한 대가를 제공하고 역량을 훨씬 뛰어넘는 직책을 요구하는 것이 바로 인사 청탁입니다. 그런데 청탁과 추천의 꼬리표가 분명하지 않아 문제이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