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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선일 피랍보도 직후 정부가 ‘파병입장 불변’ 강조한 까닭

북핵해법 백악관 승인, 미 국방부 대화채널 복원 위한 ‘풀 베팅’

김선일 피랍보도 직후 정부가 ‘파병입장 불변’ 강조한 까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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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김선일씨의 피랍사실이 알려지고 불과 몇 시간 뒤 청와대는 서둘러 ‘파병입장 불변’을 발표했다. 선뜻
  • 이해되지 않는 이 조치의 배경에는 주한미군 관련 논의를 둘러싸고 청와대 내부와 한미 양국 사이에서 빚어진 마찰, 3차 6자회담에서의 해법을 마련하기 위한 정부의 다급함이 숨어 있었다.
  • 5월말부터 7월초까지 외교안보라인에서는 무슨 일이 벌어졌나.
김선일 피랍보도 직후 정부가 ‘파병입장 불변’ 강조한 까닭
6월21일 새벽 2시30분. 외교부 장차관과 국가안전보장회의(NSC) 사무처 관계자들을 비롯한 안보 당국자들의 전화가 일제히 비명을 질렀다. 카타르 주재 한국대사관이 알자지라 관계자로부터 ‘한국인 피랍소식’을 방송 20분 전에 전달받고 이를 곧 본국에 타전한 직후였다.

외교부 본부와 NSC 상황실에는 비상이 걸렸고, 잠자리에서 뛰쳐나온 외교부 관계자들은 최영진 차관이 소집한 긴급대책회의를 통해 상황파악에 들어갔다. 국방부도 비상연락망을 가동해 관련 지휘관들을 소집하고 비상대책회의를 열었다. 동이 틀 무렵 NSC는 관련사실을 대통령에게 보고했고, 이어 오전 8시에는 권진호 국가안보보좌관 주재로 NSC 상임위원회가 열렸다.

관계부처 장관과 청와대 보좌관들이 참석한 상임위원회의 결론은 간결했다. “김선일씨의 무사 귀환을 위해 모든 노력을 기울여 나가고 있으며, 평화와 재건을 위한 이라크 파병 정신과 입장에는 변화가 없다.” 이어 국방부는 NSC 상임위의 결정을 바탕으로 예정대로 파병을 추진한다는 입장을 정리했다. 노무현 대통령 또한 이날 열린 수석비서관 및 보좌관회의에서 “파병을 해도 아랍권이나 이라크에 적대행위를 하는 것이 아니라 재건지원에 진력한다는 것이 우리의 입장”이라고 언급했다.

풀리지 않는 의문점

이날 정부의 한 고위관계자는 “파병방침을 번복한다는 것은 테러세력에 굴복한다는 것이며 파병에 대한 국가적 의지와 국민적 자존심의 문제이기 때문에 입장 변화는 없을 것”이라고 잘라 말했다. 정부가 흔들리는 모습을 보일 경우 추가테러가 발생할 수 있으므로 단호한 모습을 보여줄 필요가 있다는 것이었다. 피랍사건이 파병에 영향을 미치지는 않을 것이라는 정부 입장이 분명하게 확인되는 발언이었다.



그러나 사건이 알려진 지 10시간도 채 되지 않은 시점에서 우리 정부가 굳이 ‘파병입장 불변’을 강조한 까닭이 무엇이었는가 하는 점은 여전히 의문으로 남는다. 청와대 관계자들은 “공식발표문 내용은 재건지원이라는 파병의 정신에 변함이 없다는 뜻이었으며 이는 ‘파병취소 요구에 굴하지 않겠다’는 식의 공세적인 표현 대신 최대한 우회적으로 설명하기 위해 선택된 표현”이라고 설명하고 있지만, 납치단체가 ‘외교적 수사’에 담긴 뉘앙스를 적극적으로 배려할 리 없다는 점을 감안하면 설득력이 떨어지는 것이 사실이다.

오히려 납치단체가 24시간의 시한을 정해놓은 상황을 감안해, 최소한의 상황진전이 있을 때까지 그 부분에 대한 언급을 회피하거나 언론에 엠바고를 요청해 공란으로 비워둘 수 있지 않았을까 하는 의문이 자연스럽게 제기된다. 위험을 줄일 수 있는 보다 간접적인 표현은 불가능했을까 하는 물음도 이어진다. 과연 정부는 그런 생각을 하지 못한 것일까, 아니면 할 수 없었던 것일까.

“대미 외교라인의 친미주의적 외교활동 때문에 북핵문제 해결의 주도권을 상실했다. 숭미주의적 외교부내 기득권 세력인 북미국 간부들을 즉각 경질해야 한다.” 올해 초 이른바 ‘부적절한 발언’ 파문으로 외교부가 폭풍에 휘말렸을 무렵 신기남 당시 열린우리당 상임중앙위원이 한 말이다. 그 사이 당의 수장이 된 신기남 의장은 7월초 워싱턴을 방문해 이와는 전혀 다른 뉘앙스의 발언을 한다. “한국이 동맹을 중시하고 있다는 것은 이라크 파병만 봐도 알 수 있다. 한국 국민 다수의 진심은 추가파병하라는 것이다.”

불과 반년 사이에 달라진 신 의장의 ‘변신’에 대해 언론의 지적이 이어졌고, 신 의원의 홈페이지는 항의하는 네티즌의 글로 떠들썩했다. 열린우리당측은 “그러한 발언은 다분히 ‘미국용’”이며 “파병결정에는 말 못할 속사정이 있다”며 진화에 나섰지만 의문은 사그러들지 않았다. 신 의장의 이러한 발언은 어떤 의미를 담고 있는 걸까. 또 불과 6개월 사이에 신 의장의 ‘미국관련 발언’ 내용이 달라진 이유는 무엇일까.

누가 공론화 연기 제안했나

청와대와 여권에서 벌어진 이 같은 의문을 풀기 위해서는 사뭇 먼 길을 가야 한다. 먼저 살펴볼 것은 지난 6월14일 ‘동아일보’가 보도한 ‘주한미군 감축공개 한미공방 3대쟁점’ 기사다. 5월 중순 쟁점으로 떠오른 ‘주한미군 감축방안’에 대해 이미 지난해 9월부터 양국 사이에 논의가 있었는데, 이 방안의 공개를 연기하자고 제안한 측이 어디인가를 두고 한미 당국자들의 입장이 크게 엇갈리고 있다는 보도였다.

기사에 따르면 5월28일 ‘한국 정부의 고위당국자’가 비공식 브리핑을 통해 기자들에게 “미국이 난색을 표해 공론화가 미뤄졌다”고 설명한 사실이 알려지자, 미 행정부 관계자가 직접 ‘동아일보’에 전화를 걸어 “사실과 다르다”며 “오히려 한국측이 여러 경로를 통해 주한미군 감축협의 및 공론화를 2004년 4월 총선 이후로 연기해달라고 요청해온 것으로 안다”고 설명했다는 것이다.

이에 대해 브리핑을 진행한 한국 정부 고위당국자는 “비공식 브리핑 내용은 사실 그대로이며 당시 합의내용을 문서로 교환해 비망록도 갖고 있다”고 반박했다고 기사는 전하고 있다.

5월28일의 비공식 브리핑은 5월17일 백악관 NSC의 스티븐 해들리 부보좌관의 미 2사단 일부 이라크 차출 통보로 촉발된 주한미군 감축문제를 둘러싸고 “참여정부의 반미성향이 미군철수를 부른다”는 한나라당측의 공격이 거세지던 시점에 이뤄졌다.

이 브리핑을 진행한 ‘한국 정부의 고위당국자’는 NSC의 이종석 사무차장. 이 차장은 브리핑에서 “주한미군 재조정 문제는 국민의 정부 시절인 2002년 11월 피터 페이스 당시 미 국방차관이 이준 당시 국방장관을 방문했을 때 처음 거론된 것으로, 참여정부의 출범과는 무관하다. 이 문제를 협의하기 위해 ‘미래한미동맹정책구상회의(FOTA)’라는 테이블이 마련됐다”며 “구체적인 언급은 2003년 6월 FOTA에서 1만2000명 수준의 감축계획이 ‘개념수준’에서 언급됐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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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황일도 동아일보 신동아 기자 shamora@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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