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7월11일 서울 잠실실내체육관에서 열린 한나라당 전당대회에서 새 지도부로 선출된 5명의 최고위원이 인사하고 있다.
일곱 번째 순서로 이재오 후보가 연단에 올랐다. 그는 넥타이를 풀고 소매를 걷어붙였다. 지방 합동연설회 때면 늘 해오던 그만의 연설 방식이었다. “그렇게 말을 잘한다니, 얼마나 잘하나 한번 들어보자.” 방청석을 가득 메운 대의원들의 수군거림도 들려왔다.
그의 경쟁자 강재섭 후보는 첫 번째 연사로 나와 이미 연설을 끝냈다. 전당대회 경선 결과는 으레 대의원들의 박수소리와 연호(連呼)의 강도로 예측 가능하다. 강 후보가 연설할 때 박수 소리는 꽤나 커 실내체육관을 울렸다. 전여옥, 강창희 후보를 지지하는 대의원들도 강 후보의 연설 대목에서 함께 박수를 쳤고 ‘강재섭’을 연호했다.
이재오 후보를 향한 박수 소리는 그에 비하면 절반 정도에 불과했다. 이 후보 이름을 연호하는 목소리는 ‘결사적’이었지만 넓은 곳에서 나오지 못했다. 팽팽한 긴장이 감돌았다. 드디어 이재오 후보가 사자후를 토해내기 시작했다.
그때였다. 빨간색 재킷 차림으로 연단 건너편에 대의원들과 섞여 앉아있던 박근혜 전 대표가 자리에서 일어났다. 순간 사진기자들의 플래시가 터졌다. 대의원들이 웅성대기 시작했다. 연설을 듣다 말고 일어나 박 전 대표에게 인사하는 대의원도 있었다.
박 전 대표는 수행원들과 함께 자리를 옮겨 연단 오른편 기표소 옆으로 향했다. 이재오 후보의 연설은 계속됐다. 하지만 흐름이 끊겨버렸다. 전당대회 이후 두고두고 시빗거리가 되는 박근혜 전 대표의 자리 이동 사건이다.
“한마디로 배신행위 아니냐”
이재오 후보는 전당대회 패배 이후 박 전 대표가 자신의 연설을 방해하기 위해 고의적으로 자리를 옮겼다고 주장한다. 배신했다고까지 했다. 전당대회에서 강재섭 후보에게 패배한 이재오 후보가 내뱉은 말이다.
“저쪽(박근혜 전 대표측)이 다 공작한 것이다. 박근혜-이명박 대리전 냄새를 풍겨 박심(朴心)을 자극했고 박 전 대표도 노골적으로 가담했다. 내가 전당대회장에서 연설할 때 박 대표가 자리를 뜬 것은 사실상 연설 방해 행위로밖에 안 보인다. 내가 원내대표를 할 때 그렇게 잘 모셨는데, 한마디로 배신행위 아니냐.”
하지만 박 전 대표측은 “말도 안 되는 소리”라며 손사래를 친다. 당시 박 전 대표를 수행했던 관계자의 얘기다. “전당대회 실무를 맡은 당직자들이 자리를 이동해달라고 요청해서 자리를 옮겼을 뿐이다. 이런 결과(강재섭 후보의 대표 당선)를 생각했다면 이재오 후보가 연설하는 데 자리를 옮겼겠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