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오극렬 조선노동당 중앙위 작전부장. 북한 군부의 막후실세로 지휘관 인사에 막강한 영향력을 발휘하는 것으로 전해지고 있다.(가운데), 김영춘 인민군 총참모장. 사실상 북한군 전체를 관할하는 최고군사집행기구의 수장이다.(오른쪽)
이론적으로 볼 때 김정일 유고가 체제 붕괴 등 급변사태로 발전할 가능성은 충분하다. 반면 ‘김정일 없는 북한’이 비교적 안정적으로 유지될 개연성 또한 마찬가지로 높다. ‘김정일 없는 북한’에서 누가, 어떤 기관이 권력을 대체할 것이며 100만 북한군을 안정적으로 통제할 것인지의 문제는 곧 북한의 비상시 대비체계의 정상적인 가동 여부와 밀접한 관련을 갖는다.
오늘날 북한의 김정일이 향유하는 ‘단일지도’ 통치권력은 크게 당 총비서, 국방위원장, 인민군 최고사령관이라는 세 가지 차원으로 나뉜다. 당 중앙위에서 선출하는 당 총비서는 북한을 당적(黨的)으로 통제하며, 최고인민회의에서 뽑는 국방위원장은 북한을 국가적으로 통제하고, 당 중앙군사위원회에서 결정하는 최고사령관은 북한을 군사적으로 통제하는 식이다.
북한의 통치체계는 ‘단일권력’인 이들 3자 간의 역할분담으로 구성된다고 할 수 있다. 다만 평시와 비상시에 따라 이들 3자간 역할관계의 비중이 달라진다. 평시 통치체계와 비상시 통치체계의 차이는 이 세 가지 역할의 상대적 비중이 다르다는 점에 있다. 예컨대 북한의 비상시 체계란 ‘일체 무력의 지휘통솔’ 권한을 가진 최고사령관의 역할을 당과 국방위원장이 지원하는 ‘최고사령관 중심체계’라고 할 수 있다. 반면 평시 체계란 당적인 통제와 국가적 통제를 담당하는 당 총비서와 국방위원장의 역할이 최고사령관의 군사적 통제보다 강조되는 당-국가 중심체계라고 할 수 있다.
북한에서 비상시기로 규정하는 경우로는 다음 두 가지를 상정할 수 있다. 우선 전쟁 등이 발발해 최고사령관이 비상시기임을 선포하고 이와 관련해 작전명령을 발동하는 경우다. 다른 하나는 비상사태를 규정하는 최고사령관 자신이 유고된 경우다.
‘전시’와 ‘평시’를 나누는 이유
북한에서 ‘비상시기’는 국가안보에 위협이 되는 사안이 발생했을 때 그 위협의 정도에 따라 최고사령관이 비상사태 관련 작전명령을 발동함으로써 성립한다. 물론 여기에는 교전상태를 의미하는 ‘전시’가 포함된다. 이에 대한 최고사령관 명령은 ‘노동신문’이나 ‘조선인민군’ 신문을 통해 공개될 수 있지만, 1994년 7월 김일성 주석 사망 직후와 같이 내부적으로만 행해질 뿐 공개되지 않는 경우도 있다.
이러한 최고사령관의 비상사태 작전명령에 따라 규정되는 북한의 비상시기는 다음의 다섯 단계로 구분된다. 5단계-전투경계태세 명령, 4단계-전투동원준비태세 명령, 3단계-전투동원태세 명령, 2단계-준(準)전시상태 명령, 1단계-전시상태 명령이다. 이 가운데 5단계 전투경계태세 명령은 인민무력부장이 예비군을 제외한 정규군만을 대상으로 발동한다. 1960년대 베트남전쟁 시기와 한국의 6·3한일회담반대운동 시기, 1968년 푸에블로호 납치, 그리고 1985년에 발령된 바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