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DJ는 “민주당후보로 당선된 노무현 대통령이 열린우리당을 창당한 것은 민심을 저버린 것”이라고도 했는데, 가뜩이나 호남이라는 ‘집토끼’를 잃은 여당으로선 친(親)DJ 노선을 따를 수밖에 없었다는 관측이 나온다. 대북송금 특검, 한나라당에 대한 노 대통령의 대연정 제안이라는 두 가지 ‘원죄’ 때문에 세 번째 실책에 대한 두려움이 앞섰을 법하다.
창당 주역인 정동영 전 의장조차 10월13일 “열린우리당의 창당은 시대정신을 담고 있었지만 결과적으로 실패했다”며 당에는 더 이상 연연하지 않는 모습을 보였으나, 햇볕정책에 대해서는 “대북 포용노선이 핵실험을 불러왔다는 것은 말도 안 된다”며 지지를 분명히 했다. 이어 열린우리당 소속 의원 77명은 같은 날 ‘대량살상무기 확산방지구상(PSI)’에 ‘확대 참여 반대’ 한다는 성명을 발표하며 당 지도부와 한목소리를 냈다.
다만 참여 의원의 숫자에 대해서는 뒷말이 따랐다. 당 소속 의원 141명의 절반 수준밖에 되지 않은 데 대해서는 ‘워낙 급하게 진행됐다’ ‘의원 개개인에게 취지가 제대로 전달되지 않았다’는 말들이 나돌았다. 그러나 근본적으로는 절반 정도의 의원이 ‘다른 판단’을 하고 있었을 가능성이 높다.
이 시점에서 열린우리당 비상대책위 상임위원을 맡고 있는 정장선(鄭長善·48) 의원의 발언은 의미심장하다. 그는 ‘신동아’와 한 인터뷰에서 “지금은 여러 계파로 느슨하게 흩어져 있으나, 막상 세어보면 이른바 중도세력이 열린우리당의 반 정도는 된다”고 단언했다.
고건 전 총리가 유력 대권후보로 떠오른 이후, 더 정확히 말하면 5·31 지방선거 이후 열린우리당에서는 ‘중도파’라는 말이 널리 회자됐다. 그전까지 주로 나돌던 ‘중도개혁세력’이나 ‘민주개혁세력’과는 비슷해 보이지만 차별화된 말로, 예전보다 약간 오른쪽에 방점이 찍힌 단어다. 굳이 나누자면 ‘보수’에 가까운 표현법이랄 수 있다.
북한의 핵실험에 대해 고 전 총리가 최근 “직접적 군사조치는 몰라도 유엔 등 국제사회가 PSI 참여를 결의할 경우 공조해야 한다. 또 정부는 이제까지의 안이하고 온정적인 대북정책을 원점에서 근본적으로 재검토해야 한다”라고 말한 바 있는데, 이는 현재 열린우리당 중도파의 생각과도 비슷하다.
‘개혁’ 사라지고 ‘중도’가 남다
열린우리당 중도파는 대선후보로서 경쟁력에 의문부호가 찍히는 정동영, 김근태계 의원들 중에서도 애초부터 계파색깔이 옅었던 관료 출신이나 비(非)호남 민주당 출신 의원이 많은 것으로 알려져 있다. ‘튀는 행동’이 없어 아직은 존재감이 미미하지만 연말 혹은 내년 초에 있을 정계개편을 앞두고 어떤 식으로든 역할을 할 것이란 전망이 많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