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럼프 2기, 동맹국 압박 인선 갖췄으나
美·中 갈등 고조될수록, 韓日 손 놓긴 어려워
미국 경제적 우위 유지하려면 韓日 협력 필요
유일한 변수, 가까워진 北·美 관계
김정은-트럼프 단독 협상, 동맹 깨질 위험도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 [AP=뉴시스]
한국은 동맹국인 미국의 자국우선주의와 일방적 요구에 적절히 대응하며 국익을 챙겨야 한다. 가까우며 먼 나라인 일본도 마찬가지다. 일본은 한국과 같이 미국의 동맹국이며, 제조업 강국이자 무역 대국이다. 동시에 한국처럼 미국의 경쟁자인 중국과 인접해 있고, 북한의 핵 위협을 받고 있다. 미군이 주둔하는 것도 양국의 공통점이다.
한국과 일본이 공통으로 마주하게 될 도전은 미국의 방위비 분담 요구 강화 및 국방비 지출 확대에 대한 압박이다. 트럼프는 이미 선거 기간에도 “한국은 ‘머니머신(현금인출기)’”이라며 “나라면 한국이 주한미군 방위비분담금을 100억 달러는 내게 했을 것”이라 발언하기도 했다.
2026년 방위비 1조5192억 원, 트럼프 더 올릴 듯
트럼프는 아시아나 유럽의 동맹국들이 미국이 제공하는 안보 공공재에 기반을 두고 경제성장과 무역흑자를 누려왔다고 생각한다. 이제는 동맹국이 그 편익에 대한 정당한 비용을 지불해야 한다는 것.
미국의 국방 관련 예산 확대에 대한 압박과 함께 동맹으로서의 역할 분담 확대에 대한 요구는 계속될 가능성이 크다. 트럼프가 국방부 정책차관으로 지명한 엘브리지 콜비 전 국방부 전략 및 전력개발담당 부차관보는 동맹국과의 역할 분담을 중요시하는 인물이다.
미국 성조기로 안감을 만든 정장 재킷을 열어 보이고 있는 피터 헤그세스 미국 국방부 장관. [피터 헤그세스 인스타그램]
이미 한일 양국은 트럼프 시대를 대비해 방위비를 인상해 뒀다. 한국 정부는 방위비분담금 특별협정(SMA·Special Measure Agreement)이 만료되는 시점을 2년 가까이 남겨둔 상황에서 일찌감치 협상을 시작했다. 다행히도 2024년 10월 4일, 한국과 미국은 2026∼2030년 사이 지출할 주한미군 방위비분담금에 대한 합의를 도출했다. 2026년 총액은 2025년 대비 8.3% 증가한 1조5192억 원이다. 하지만 트럼프 2기 출범 이후에는 이야기가 달라질 수 있다. 트럼프 정부는 방위비를 두고 한국을 압박해 올 가능성이 있다.
일본 역시 2024년 10월 27일 중의원 선거 이후 집권 자민당이 소수 여당이 된 상황에서도 2025년 회계연도 국방 예산을 사상 최대인 8조7000억 엔(약 80조 원)으로 편성했다. 트럼프 2기 행정부로부터 국방비 증액 요구가 있을 것에 선제적으로 대비하려는 조치로 보인다.
미·중 갈등 더욱 고조, 한일 협력 필요할 것
2024년 12월 16일 미국 플로리다주 팜비치의 마라라고 리조트에서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 당선인이 손정의 일본 소프트뱅크 회장과 나란히 서 어깨동무를 했다. [AP=뉴시스]
외교 및 안보 라인 인사의 면면만 보더라도 트럼프 2기의 대외정책은 대(對)중국 견제에 중점이 실릴 것이 명확하다. 상기 언급한 헤그세스 국방부 장관 지명자는 물론, 국무부 장관으로 지명된 마코 루비오 상원의원, 백악관 국가안보보좌관에 내정된 마이크 왈츠 하원의원, 대통령 특임대사로 지명된 리처드 그리넬 전 주독일 미국대사와 같은 인물들은 모두 대중국 강경파 성향을 띠고 있다.
한국이나 일본도 중국과 마냥 사이가 좋지만은 않다. 남·동중국해상에서의 해상 안보, 대만해협 문제, 북핵 위협 등 외교·안보 문제로 오랜 기간 다퉈온 사이다. 그렇다고 미국처럼 견제나 압박 일변도의 전략을 취하기도 어렵다. 한일 모두 중국이 최대 교역 상대국이다. 중국과의 관계가 파탄에 이르면 손해가 크다. 이를 잘 아는 중국 역시 트럼프 당선 이후 부쩍 한국과 일본에 대해 유화적 제스처를 취하고 있다. 지난해 11월에는 중국이 한국과 일본 등 9개국을 대상으로 무비자 입국 정책 실시를 발표했다.
미국에도 한국과 일본은 모두 중국을 견제하는 데 핵심적 전략 요충지다. 한국은 미군이 주둔한 국가 중 가장 중국과 가깝다. 지정학적 이점 때문에라도 미국이 한국에 일방적으로 주한미군 철수를 요구할 가능성은 낮다. 이는 일본도 마찬가지다. 남·동중국해상의 해상 안보를 생각해도 미국이 일본에 과한 요구를 하기는 어렵다. 미·중 갈등이 고조될수록 미국은 한국과 일본의 협력이 필요한 상황이다. 대중 관계에 대해서는 한국, 일본과 미국이 다른 견해를 보일 가능성은 낮다.
지금 한미일 삼각 공조의 변수는 북한이다. 트럼프는 1기 당시 북한 김정은과 3번 만났고, 선거 기간에도 김정은과 개인적 친분에 대해 긍정적으로 표현하거나 “핵을 가진 북한과 잘 지내는 것은 좋은 일”이라는 취지의 발언을 여러 차례 한 바 있다.
한국과 일본이 가장 피하고 싶은 시나리오는 사전 이해나 동의를 구하지 않고 트럼프가 김정은과 단독으로 교섭을 진행하는 것. 나아가 북한이 지금까지 개발한 핵에 대해서는 동결하는 식의 군축 협상이 진행되는 것이다.
미국은 중국, 러시아, 이란, 북한 등 권위주의 국가 간 연대를 깨고 싶어 한다. 이 가운데 미국의 정책가들 사이에서 가장 약한 고리로 보는 것이 북한이다. 미국 싱크탱크 ‘실버라도 폴리시 액셀러레이터(Silverado Policy Accelerator)’의 대표인 드미트리 알페로비치와 존스홉킨스대 국제관계대학원(SAIS·School of Advanced International Studies)의 세르게이 라드첸코 교수는 2024년 12월 29일(현지 시간) 뉴욕타임스에 기고한 ‘트럼프와 김정은의 후반전, 세계를 뒤흔들 수 있다’는 기고문을 통해 “미국에 도전하려는 4개국이 연합하면 미국 외교정책의 가장 큰 위협이 될 것”이라며 “트럼프 행정부는 이 연합이 통합된 블록으로 굳어지기 전에 잠재적 ‘약한 고리(북한)’를 이용하기 위해 신속하게 행동해야 한다”고 제언했다.
한미일 공조의 변수는 북한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 당선인이 2019년 6월 30일 경기도 파주시 비무장지대 판문점 공동경비구역에서 월경해 북측에서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을 만나 얘기하고 있다. [동아DB]
하지만 북·미 협상이 재개돼 북한의 핵을 실질적으로 인정한다면 한미 동맹, 미일 동맹은 근간부터 흔들린다. 북한의 핵은 한국과 일본에 실질적 위협이다. 미국이 북한과 협상에 나선다면 동맹에 대한 방기(abandonment)가 된다. 동맹의 전제 조건이 깨지는 셈이다. 이렇게 되면 결국 한일 양국에서 자체 핵무장에 관한 논의가 촉발될 수 있다.
물론 북한의 핵 능력이 트럼프 1기 때에 비해서 더욱 고도화됐고, 러시아와의 관계가 강화되는 등 여러 중요한 변화가 있었다. 따라서 2018~2019년 상황이 그대로 재현되기는 힘들 것이라는 관측도 있다.
한국과 일본에 대한 미국의 통상 압박도 심화할 것으로 보인다. 트럼프는 “관세가 사전에서 가장 아름다운 단어”라고 할 만큼, 관세를 통한 무역 불균형 해소를 강하게 피력해 왔다. 동맹국이나 자유무역협정(FTA)을 체결한 나라들을 포함해 10~20%의 보편관세를 부과하겠다는 의지를 표명하고 있다.
격랑의 2025년, 능동적 외교로 리스크 분산해야
한국과 일본은 모두 대미 무역흑자 규모가 큰 국가들이다. 2023년 기준으로 대미 무역흑자국 1위는 중국, 2위는 멕시코, 3위는 베트남, 4위는 독일이었고, 일본이 5위였다. 6위인 캐나다, 7위인 아일랜드 다음으로 한국은 8위였다. 따라서 양국 모두 자동차 및 전자 산업과 같은 핵심 수출산업 분야에서 미국의 통상 압박을 받을 가능성이 크다.
한일 양국은 모두 65세 이상 인구가 20%를 넘는 초고령사회다. 인구 감소와 지방 소멸 등의 구조적 문제로 내수 진작이 쉽지 않은 상황에서 대미 무역마저 축소될 경우 입게 될 경제적 타격은 크다.
그러나 미국이 무턱대고 한국과 일본을 경제적으로 압박할 가능성은 낮다. 한국과 일본은 미국 경제 안보 전략에서도 필수 파트너다. 특히 인공지능(AI)과 우주 시대가 본격화함에 따라 반도체, 배터리, 로봇 등 첨단 산업에서 한일 양국의 역할은 미국의 경제적 우위를 유지하는 데 결정적이다.
트럼프 당선 이후 새삼 그 중요성이 부각되는 조선산업만 보더라도 미국에 한일 양국이 갖는 의미는 매우 크다. 미국 해군연구소(USNI·U.S. Naval Institute)의 분석에 따르면 전 세계 조선 시장에서 중국이 차지하는 비중이 46.59%인 데 비해 미국은 고작 0.13%에 불과하다. 대신 동맹국인 한국의 조선 능력은 전 세계의 29.24%, 일본은 17.25%에 이른다.
결국 트럼프 2기는 변화의 파도가 높게 몰아치는 가운데에도 기저에서 작동하는 지정학적·지경학적 동력에 의해 기존 흐름이 유지되는 측면도 있으리라고 예상된다. 한국은 대내외적으로 격랑이 몰아치는 2025년, 능동적 외교를 통해 미국으로부터의 변화에 예민하게 대응하면서도 일본은 물론 비슷한 처지에 놓인 국가들과 협력을 강화하면서 국익을 지키고 리스크를 분산하려 노력해야 한다.
신동아 2월호 표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