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프랑스·독일서 탄핵된 대통령 없어
조사, 수사 순서 없는 국회의 탄핵 절차
줄탄핵에도 법적 책임 없는 야당
“위법은 아닌데 헌법위반은 있다”
대통령 탄핵 기준, 최고 수준으로 강화해야
![서울 종로구 헌법재판소. [뉴시스]](https://dimg.donga.com/a/700/0/90/5/ugc/CDB/SHINDONGA/Article/67/8e/fa/74/678efa742318d2738276.jpg)
서울 종로구 헌법재판소. [뉴시스]
급기야 윤석열 대통령과 정부 국무위원들에 대한 탄핵이 정부를 마비시키는 결과마저 야기하고 있다. 여소야대하에서 국회는 법률안 제·개정권, 해임건의권, 탄핵소추권, 예산삭감권 등 다양한 권한을 행사할 수 있다. 반면 대통령 측에는 법률안 거부권밖에 주어지지 않았다. 87년 체제가 한계에 다다랐음을 보여주는 결과다.
여타 선진국의 경우 한국과 다르다. 미국은 하원이 대통령을 탄핵소추하면 상원에서 결정한다. 미국의 탄핵제도는 정치적 성격이 매우 강한 반면 사법적 성격은 거의 없다. 상원에서 진행되는 심판은 법정 절차와 유사하며, 상원의원들이 판사 역할을 맡는다. 대법원장의 감독 아래 진행되지만, 대법원장이라도 대통령 탄핵 심판에서는 심판을 담당하지 않는다. 이 경우 상원에서 재적의원 3분의 2 이상의 찬성을 받아야만 공직에서 면직된다.
앤드루 존슨(1868), 빌 클린턴(1998), 도널드 트럼프(2021) 등 대통령 탄핵 사건이 다수 있었으나 미국 역사상 탄핵으로 면직된 대통령은 없다. 워터게이트 사건 때 리처드 닉슨 대통령은 상원의 탄핵 직전에 자진 사임해 탄핵을 피했다.
![재임 중 탄핵 사건에 휘말렸던 미국 역대 대통령. 앤드루 존슨, 리처드 닉슨, 빌 클린턴, 도널드 트럼프(왼쪽부터). 위키피디아](https://dimg.donga.com/a/700/0/90/5/ugc/CDB/SHINDONGA/Article/67/8e/fa/ed/678efaed1a5cd2738276.jpg)
재임 중 탄핵 사건에 휘말렸던 미국 역대 대통령. 앤드루 존슨, 리처드 닉슨, 빌 클린턴, 도널드 트럼프(왼쪽부터). 위키피디아
대통령 ‘불가침성’ 보장하는 프랑스
프랑스는 대통령 탄핵 사유와 절차가 매우 엄격하게 적용돼 사실상 임기 동안 탄핵이 불가능할 정도로 ‘불가침성’이 보장된다. 프랑스 대통령은 매우 심각한 불법을 저지른 경우 특별재판 절차에 의해 면직되지만, 헌법과 법률 위반 사유를 매우 엄격하고 제한적으로 해석·적용하기 때문에 역사상 탄핵된 대통령이 없다. 프랑스의 정치 시스템은 기본적으로 강력한 권한을 가진 대통령에 의해 정치적 안정성을 유지하는 데 주안점을 두는 이원집정부제로 운영되고 있다.
독일은 의원내각제 국가로 행정부 수반인 총리가 의회 다수파, 또는 다수 연합에 의해 선임된다. 대통령은 5년마다 연방총회를 구성한 후 간접선거를 통해 정하며 형식적 국가원수로서의 지위만 가진다. 독일 기본법(헌법) 제61조에 의하면 대통령의 기본법 위반 등 명백히 부적절한 행위가 있을 때 연방헌법재판소가 이 사건을 심리·결정한다.
독일은 총리에 대한 연방헌법재판소의 탄핵 절차는 별도로 규정하지 않고 있다. 총리는 의회의 신임을 잃었을 경우 사임하는 식으로 정치적 책임을 진다. 다만 총리 역시 헌법을 위반하면 연방헌법재판소에서 법적 책임을 심리할 수 있다. 대통령의 경우 헌법과 법률에 대해 중대한 위반 사유가 있는 경우 연방헌법재판소에서 탄핵 여부를 심리한다.
하지만 독일 대통령은 의례적 국가원수이고 실권이 없기 때문에 여야 상호 간에 정치적 탄핵의 필요성을 느끼지 못한다. 프랑스와 정반대로 대통령의 정치적 실권이 없어 특별한 헌법·법률 위반행위가 없는 한 야당이 탄핵하지 않으며, 실제로 대통령이 탄핵된 사례도 없다.
위헌·위법적 탄핵인가, 정치적 탄핵인가
헌법 제65조 제1항에 의하면 “대통령·국무총리·국무위원·행정각부의 장·헌법재판소 재판관·법관·중앙선거관리위원회 위원·감사원장·감사위원 기타 법률이 정한 공무원이 그 직무 집행에 있어서 헌법이나 법률을 위배한 때에는 국회는 탄핵의 소추를 의결할 수 있다”고 규정하고 있다. 제2항과 3항에는 각각 “제1항의 탄핵소추는 국회 재적의원 3분의 1 이상의 발의가 있어야 하며, 그 의결은 국회 재적의원 과반수의 찬성이 있어야 한다. 다만 대통령에 대한 탄핵소추는 국회 재적의원 과반수의 발의와 재적의원 3분의 2 이상의 찬성이 있어야 한다”라고 규정돼 있다.
국회의 탄핵 절차 가운데 가장 큰 문제는 별다른 조사나 수사, 특별검사 등의 순서가 없다는 것이다. 국회법상 탄핵소추는 법제사법위원회를 거쳐 본회의에 부의된다. 이후 대통령의 경우 재적의원 3분의 2 이상, 국무위원은 과반수의 찬성이 있으면 곧바로 헌법재판소로 넘길 수 있다.
한국 탄핵제도는 미국처럼 하원에서 소추할 때 매우 엄격한 조사위원회를 열어 집중적이고 심도 있게 위법·위헌 여부를 심리하거나, 프랑스처럼 특별위원회나 예심위원회 등 복잡한 절차를 거치지 않아 위법·위헌에 의한 탄핵인지, 정치적 탄핵인지가 불분명하다.
탄핵소추의 사유가 매우 추상적이고 기준이 낮다는 점도 문제다. 프랑스의 경우 “그 직무 수행과 양립할 수 없을 정도로 책무를 위반한 경우”라고 대통령 탄핵 사유를 정하고 있다. 반면 한국은 단순히 ‘위법·위헌’이라고만 규정하고 있어 어느 정도의 위법·위헌 사유가 있을 때 국회가 탄핵할 수 있는지가 불분명하고 기준도 낮다.
국회의 탄핵 절차가 헌법재판소 결정의 예비 단계에 불과한 것처럼 지나치게 간단하게 규정된 점도 부적절하다. 미국은 하원에 다양한 조사위원회 관련 절차를 두고 있다. 프랑스는 의회에서 탄핵이 결정되면 국민의회(하원), 상원 등에 의해 소집되고 하원의장이 주재하는 고등탄핵재판소의 엄격한 심판 절차를 거친다. 반면 한국은 단 한 번의 국회 본회의 의결로 모든 절차가 종료된다.
29번의 탄핵, 독이 된 직무 정지 조항
탄핵제도에서 가장 문제가 되는 지점은 국회의 의결 절차보다 헌법재판소의 결정 단계에 있다. 먼저 ‘무죄추정의 원칙’이라는 헌법상 대원칙이 배제된다. 미국이나 프랑스의 경우 무죄추정의 원칙이 인정돼 탄핵이 최종적으로 결정되기 전까지 대통령과 국무위원들은 직무가 정지되지 않는다. 반면, 한국은 헌법 제65조 제3항에서 “탄핵소추의 의결을 받은 자는 탄핵 심판이 있을 때까지 그 권한 행사가 정지된다”고 명시해 마치 무죄추정의 원칙이 배제되는 것처럼 규정하고 있다.
이 ‘직무 정지 조항’ 때문에 여소야대 국면에서 야당은 언제든지 위법·위헌 사유가 없거나 불명확하더라도 당해 당사자의 직무를 정지할 목적만으로 탄핵을 결정할 가능성이 높다. 최근 29번의 탄핵은 87년 체제에 내재된 문제가 드러난 것이다.
국회의 탄핵이 헌법재판소에 의해 기각되더라도 탄핵을 추진했던 국회, 특히 야당은 정치적 책임 이외에 아무런 법적 책임이 없다. 제1차 탄핵 사건(노무현) 당시 신한국당은 총선에서 열린우리당에 완패했지만 법적 책임은 지지 않았다. 제2차 탄핵 사건(박근혜)에서 탄핵을 추진했던 민주당 측 인사들은 오히려 탄핵 인용 후 문재인 정부에서 핵심 요직을 차지했다. 여소야대 국면에선 대통령 탄핵 동력이 시작될 수밖에 없는 셈이다.
헌법재판소의 탄핵 심판 기준 역시 지나치게 낮고 추상적이다. 일반적으로 헌법재판소의 탄핵 기준은 ‘위헌·위법한 행위와 중대한 사유’로 알려져 있다. 그런데 사실은 많이 다르다. 노무현 전 대통령 탄핵 때 적용된 기준은 박근혜 전 대통령 당시에는 엄격하게 적용되지 않았다. 박 전 대통령의 경우 주로 민간인 최서원(순실)에 의한 국정농단이 핵심 사유였다. 이때는 ‘국민의 신뢰 배신’ 등의 아주 느슨한 이른바 ‘헌법위반’ 사유만 적용해서 탄핵을 인용했다.
국회에서도 별다른 기준 없이 탄핵해서 헌법재판소에 넘겼는데 헌법재판소의 기준마저 전 세계에서 매우 낮다면 한국의 탄핵제도는 ‘세계에서 가장 쉬운 탄핵제도’라는 화약고를 끌어안고 사는 셈이다.
형사재판도 1심 판결에 최단 1년 걸려
![천재현 헌법재판소 공보관이 1월 6일 헌법재판소에서 정기 브리핑을 하고 있다. [뉴스1]](https://dimg.donga.com/a/700/0/90/5/ugc/CDB/SHINDONGA/Article/67/8e/fb/2d/678efb2d0facd2738276.jpg)
천재현 헌법재판소 공보관이 1월 6일 헌법재판소에서 정기 브리핑을 하고 있다. [뉴스1]
이는 헌법재판소의 내부 구조적 한계 때문이다. 헌법재판소에는 9명의 법관 자격을 가진 재판관 9명과 연구관 70여 명만 근무한다. 연구관들은 변호사 자격이 있거나 해외 대학에서 근무한 우수한 자원이다. 하지만 재판이나 수사를 할 능력도 인력도 없다. 따라서 위법·위헌의 확정은 일반 법원의 재판 결과를 보고 나서 하는 것이 원칙이다.
여기서 헌재의 탄핵 절차의 결정적 문제가 드러난다. 헌재는 일반법원의 위법·위헌 확정을 기다리지 않고 스스로 위법·위헌을 결정하겠다고 한다. 제2차 결정(박근혜)에서 국회 소추 사유 중 뇌물 등 몇 개의 사유를 배제한 것이나, 이번 결정(윤석열)의 핵심인 ‘내란죄’를 배제하고 심리하겠다는 것은 최대한 심리 기간을 단축하겠다는 의미다.
결국 헌법위반 여부만 남게 되는데 이는 일반 형사재판 원리처럼 복잡한 형사소송법상의 증거 수집, 증인심문 절차를 거치지 않겠다는 선언이나 마찬가지다. 헌법위반 여부만 살펴보겠다는 것은 반대로 말하면 “위법은 아닌데 헌법위반은 있다”는 위험한 결정을 할 수 있다는 의미이기 때문이다. 이는 현대 헌법에서 가장 금기시하는 죄형법정주의에 정면으로 위배된다.
현행 헌법상 탄핵을 당한 공직자는 반드시 중벌에 처해져 감옥에 가야 한다. 위법·위헌이 중대할 때 탄핵한다고 규정됐기 때문이다. 비록 정치적 문제로 탄핵됐지만 원인은 위법·위헌이기 때문에 파면과 함께 거의 장기간의 구금이 불가피하다. 헌법 스스로 전쟁에 가까운 여야의 극단적 대립을 조장하는 셈이다.
박근혜 전 대통령 탄핵 당시는 박 전 대통령 측에서 거의 사법절차에 대응하지 않았으며, 탄핵심판절차도 제대로 진행하지 못한 만큼 헌재나 국민이 이를 기준으로 삼으면 안 된다. 일반 형사범도 1심을 마치는 데 최단 수개월에서 2년까지 소요된다. 국정 최고책임자인 대통령에 대한 탄핵 심판은 더욱 신중하고 엄격하게 형사절차를 준수하면서 진행해야 한다.
미래의 대통령은 탄핵 위험에 더 노출될 것
헌재의 탄핵 심판 기준은 프랑스와 같이 매우 높게 설정돼야 한다. 현재 헌재에서는 일반 공무원에 대한 탄핵 재판과 대통령에 대한 탄핵 심판은 그 정치적·헌법적 무게감이 다르기 때문에 신속하게만 진행하려 하는데 이 경우 신속을 넘어 ‘졸속 재판’이 될 가능성이 높다.
탄핵 심판은 일반 징계 절차와는 다르다. 최종심으로서 분명히 헌법과 법률에 중대한 위반이 있을 때 선고되는 징계적 제재 및 형사처벌의 성격을 갖고 있다. 따라서 국민에 의해 선출된 대통령을 헌재에서 탄핵을 결정할 때는 매우 엄격하고 심도 있는 형사법적 측면에서 위헌·위법성과 중대성에 대한 사유가 있을 때만 가능하다고 해야 한다.
현행 헌법상의 권력구조와 소선거구제를 유지하게 되면 구조적으로 인구의 변화, 도시집중화 현상이 강화되는 미래에는 (특히 보수 성향의) 대통령은 정권 출범기부터 어려움에 직면할 공산이 크다. 특히 임기 중반 이후 총선에서 과반 확보에 실패할 경우 집권 후반기에는 지속적으로 탄핵의 위험에 노출될 수밖에 없다.
향후 심리 과정에서 헌재는 ‘형사절차에 따라’ ‘엄격하고 심도 있게’ ‘위헌·위법과 중대성’ 요건을 면밀하게 심사해 대통령에 대한 탄핵 심판 기준을 강화할 필요가 있다. 국민에 의해 직접 선출된 대통령을 헌법재판소가 파면할 때는 최고로 강화된 기준으로 국민들이 사건의 본질을 잘 이해할 수 있을 때까지 시일을 두고 심리해야 한다.
![신동아 2월호 표지](https://dimg.donga.com/ugc/CDB/SHINDONGA/Article/67/8e/fb/51/678efb5125f1d2738276.jpg)
신동아 2월호 표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