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년은 김정은 정권 '최악의 해' 될 것

[한반도 지오그래픽] 연초부터 극초음속 미사일 발사로 존재감 과시?

  • 조한범 통일연구원 석좌연구위원

    입력2025-01-16 09:00: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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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통일·민족 개념 삭제, 선대 유훈 부정하는 북한판 ‘파묘’

    • 러·우전쟁 참전, ‘신의 한 수’ 아닌 ‘장고 끝 악수’ 될 것

    • 북러 신조약, 北 배타적 전략자산으로 보는 中 레드라인 침범

    • 건강 이상설, 김주애 후계, 트럼프 ‘화염과 분노’…

    1월 6일 북한은 중장거리 극초음속 미사일을 발사해 트럼프 대통령 집권 2기 출범을 앞둔 연초부터 존재감을 과시했다. [뉴스1]

    1월 6일 북한은 중장거리 극초음속 미사일을 발사해 트럼프 대통령 집권 2기 출범을 앞둔 연초부터 존재감을 과시했다. [뉴스1]

    2024년 12월 31일 밤을 넘기며 북한은 신년맞이 경축 공연을 성대하게 개최했다.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은 딸 김주애와 함께 주석단에서 공연을 관람하고 함박웃음과 함께 새해를 맞았다. 1월 6일 북한은 중장거리 극초음속 미사일을 발사해 트럼프 대통령 집권 2기 출범을 앞둔 연초부터 존재감을 과시했다. 여러 정황상 2025년은 한반도가 김정은 정권 출범 후 가장 어려운 한 해가 될 가능성을 배제하기 어렵다.

    북한은 2024년 12월 23일부터 27일까지 노동당 제8기 제11차 전원회의를 개최해 한 해를 결산하고 2025년 국정 운영의 방향성을 제시했다. 김정은 위원장은 2024년이 “수도와 지방이 다 같이 변하고 흥하는 전면적 발전, 전면적 부흥의 중대한 변화를 눈앞의 현실로 체감케”한 한 해였으며, 살림집 건설을 포함해 “인민경제발전 12개 중요 고지들이 성공적으로 점령”됐다고 자평했다.

    통일 및 민족 개념 폐기, 이데올로기 혼돈

    그러나 북한 경제의 실상은 매우 다르다. 김 위원장은 경제 각 분야의 성장률을 제시하며 알곡 생산이 107% 증산됐다고 강조했지만, 농촌진흥청은 전년 대비 0.8% 감소한 추정치를 내놨다. 노동당 전원회의 기간 중 북한 내 식량 가격은 백미 9100원, 옥수수 4500원으로 비정상적으로 높은 수준을 유지했다.

    더 큰 문제는 환율이다. 2024년 1월 북한 환율은 1달러당 8400원이었지만 12월 노동당 전원회의 기간 중 2만7000원으로 3배 이상 급등했다. 위안화 환율 역시 같은 기간 1260원에서 3700원으로 급등했다. 환율 상승은 물가에 직접적으로 반영된다는 점에서 북한 주민의 생활 악화로 이어지고 있다.

    더 큰 문제는 2025년 북한 경제의 새로운 변화 조짐이 없으며 오히려 퇴행을 예고하고 있다는 점이다. 김 위원장은 결론에서 2025년 경제 운용에 있어 “경제 전반을 통일적으로 관리할 수 있는 체계와 방법, 계획화사업과 가격사업을 개선”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당면한 경제위기 상황 돌파를 위해 이미 실패가 명확하게 입증된 사회주의 계획경제와 시장에 대한 가격통제권을 다시 강화하겠다는 의미다. 이 경우 북한 경제를 지탱하고 북한 주민의 생계를 책임져 온 장마당 경제의 위축이 불가피하다. 2025년 북한 경제에 어두운 그림자가 드리우고 있다.

    김정은 위원장은 2023년 12월 노동당 중앙위원회 제8기 제9차 전원회의에서 남북 관계가 “적대적인 두 국가 관계, 전쟁 중에 있는 두 교전국 관계로 완전히 고착”됐다고 선언했다. 김 위원장은 2024년 1월 최고인민회의 제14기 제10차 회의 시정연설을 통해 ‘삼천리금수강산’ ‘8000만 겨레’와 같이 “북과 남을 동족으로 오도하는 잔재적인 낱말”들의 사용을 금지하고, 북한 역사에서 ‘통일, 화해, 동족’ 개념을 완전히 제거하라고 지시했다. 또한 한반도 전역이 아닌 북한 지역만을 영토, 영해, 영공으로 규정할 것도 지시했다. 노동당 전원회의와 최고인민회의를 통해 김정은 정권이 한반도 적대적 2국가론과 함께 평화통일과 한민족 개념의 폐기를 선언한 셈이다.

    이후 북한은 북한 애국가의 명칭을 변경하고 가사에서 ‘삼천리’라는 단어를 삭제했으며, 평양의 조국통일3대헌장 기념탑을 철거했다. 또한 통일전선부 등 대남기구를 정리했으며, 남북 간 합의 사항들을 폐기했다. 북한의 조선중앙TV의 일기예보는 한반도 전역이 아닌 북한만을 영토로 규정하고 관련 내용을 보도하고 있다.

    김정은 정권의 한반도 적대적 2국가론과 통일 및 민족 개념 폐기 선언은 체제 경쟁에서 실패한 현실을 반영한 정권 수호 차원의 방어적 ‘헤어질 결심’이라고 볼 수 있다. 반동사상문화배격법, 평양문화어보호법, 청년교양보장법 등은 모두 남한의 영향을 차단하기 위한 극약 처방이며, 결국 김정은 독재체제 유지를 위한 조치일 뿐이다. 문제는 김정은 정권의 ‘헤어질 결심’이 북한 주민이 동의하지 않은 일방적 조치라는 점이다.

    통일, 민족 개념의 삭제를 위해서는 북한의 역사, 김일성·김정일 혁명역사, 북한 교과서, 각종 상징물 및 용어 정리 등 제2 건국 수준의 광범위한 조치가 필요하다. 그러나 김 위원장의 ‘헤어질 결심’ 선포 이후 1년이 경과하고 있지만 노동신문과 조선중앙TV 등 북한 매체는 관련 보도와 프로그램을 단 한 차례도 내보내지 않았다. 통일과 민족을 지우기 위한 다양한 조치가 광범위하게 취해지고 있지만 어떤 주민 교양, 교육, 선전선동 사업도 실시된 바 없다.

    이유는 바로 북한 주민의 반발 가능성이다. 주체사상은 민족주의적 공산주의라고 할 수 있으며, 통일과 민족은 오랫동안 북한 주민의 정신세계를 지배해 왔다. 북한 이데올로기 구조에서 통일과 민족은 양대 핵심 기둥이며, 북한에서 ‘반통일 반민족 분자’라는 표현은 최대의 죄목에 해당한다. 김 위원장이 집권한 명분도 이른바 백두혈통이라는 점이며, ‘백두’의 개념에서 민족과 통일은 핵심이다. 김 위원장 스스로 정권과 북한 이데올로기의 정수에 해당하는 통일과 민족이라는 두 뿌리를 자른 것과 다르지 않다.

    통일과 민족 개념 삭제는 곧 김일성·김정일의 유훈을 부정하는 것이며, 북한판 파묘에 가깝다. 독재체제 유지를 위한 김정은 정권의 ‘헤어질 결심’은 이데올로기에 의존하는 북한 체제의 역린을 건드린 것과 다르지 않다. 통일, 민족 개념의 삭제를 지시한 김 위원장의 위험한 선택 앞에 북한 당국도 북한 주민도 기이한 침묵을 이어가고 있다. 그러나 장기간 북한의 일상과 주민들의 정신세계를 지배해 온 통일과 민족 개념의 부정이 초래할 후유증과 부작용이 언제까지고 수면 밑에 가라앉아 있지는 않을 것이다. 이데올로기에 의존해 온 북한 독재체제의 뿌리가 조용히 흔들리고 있다.

    파병군 대규모 사상, 김정은 정권에 치명상

    한미 당국과 우크라이나, 그리고 여러 보도를 종합해 보면 북한은 2024년 10월 상순 1개 사단 규모의 병력을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 쿠르스크 전선에 파병한 것으로 보인다. 파병 북한군의 규모에 대해 국정원은 1만1000여 명, 우크라이나는 1만2000여 명으로 파악하고 있다. 파병된 북한군은 12월부터 전투에 투입돼 러시아의 병력 문제를 어느 정도 해결해 주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북한군의 전투 참여 이후 러시아는 쿠르스크 전선에서 우세를 점하며 실지를 점차 회복하고 있다.

    문제는 북한군의 피해 규모다. 국정원에 따르면 12월 전투 참여 이후 1~2주일간 북한군의 전사자와 부상자는 각각 100여 명과 1000여 명에 달한다. 미국도 1000여 명의 북한군 사상자가 발생했다고 인정했다. 젤렌스키 우크라이나 대통령은 2024년 12월 23일 자신의 엑스(X, 옛 트위터)를 통해 북한군 사상자가 3000명을 넘었다고 밝혔으며, 올해 1월 5일 미국 팟캐스트 인터뷰에서는 “(북한군)1만2000명이 도착해서 오늘까지 3800명이 죽거나 다쳤다”고 주장했다. 전투 참여 한 달간 북한군 사상자가 파병 인원 전체의 10~30%에 달한다는 것은 비정상적으로 손실이 크다는 것을 의미한다.

    젤렌스키 대통령의 평가가 사실일 경우 러시아 파병 북한군은 조만간 전투 불능의 전멸 상태에 직면하게 될 것이다. 북한군의 빠른 소모는 곧 추가 파병의 가능성을 의미한다. 러·우전쟁이 대규모 소모전의 특성을 지니고 있다는 점에서 북한군의 추가 파병이 수만 명에 달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한국군의 베트남전 파병 규모도 연 32만 명에 달했다. 북한군의 추가 파병은 대규모 병력 손실로 이어질 것이며, 이는 북한이 러·우전쟁의 수렁에 빠질 수 있음을 의미한다.

    평양에는 이미 파병 및 인민군 사상자 발생 소식이 퍼지고 있으며, 해외에 나와 있는 북한인들은 관련 사실을 함구하고 있다. 김정은 정권은 파병 사실 공개 시기를 이미 실기한 것으로 볼 수 있다. 북한 주민도 모르게 준비도 안 된 북한군을 명분 없는 러·우전쟁에 몰아넣어 학살 수준의 대규모 희생이 발생했다는 사실이 전면 공개될 경우 김정은 정권이 치명상을 입을 개연성도 배제하기 어렵다.

    김정은 정권은 틈만 나면 러시아와의 동맹관계를 강조하고 있지만, 그들만의 생각일 뿐이다. 러시아와 우크라이나는 모두 소련에 뿌리를 두고 있으며, 북한 주민들에게는 차이가 없는 구 사회주의권 국가일 뿐이다. 러시아 추가 파병을 고민하고 있는 김정은 정권에 러·우전쟁 참전은 ‘신의 한 수’가 아닌 ‘장고 끝 악수’의 부메랑으로 돌아올 가능성이 있다.

    시진핑 이름조차 없는 노동신문 신년 보도

    2025년 1월 1일 북한 노동신문은 3면에 각국 정상이 김정은 위원장에게 보내온 연하장 관련 소식을 실었다. 특이한 점은 쿠바와 콩고의 연하장은 별도의 기사를 통해 각각 전문을 보도했지만 중국의 연하장은 다른 국가들과 묶어 간략히 보도했다는 점이다. 이와 관련 노동신문은 “중국공산당 중앙위원회 총서기인 중화인민공화국 국가주석과 부인, 베트남 사회주의공화국 국가주석, 몽골대통령” 등이 연하장을 보내왔다고 보도했다. 시진핑 주석의 이름조차 거명하지 않았으며, 이는 북·중 관계사에 전례가 없던 일로 중국으로서는 참기 어려운 수모라고 할 수 있다. 과거의 경우 노동신문은 시진핑 주석의 연하장을 1면에 전문을 보도했으며, 지난해 12월 푸틴 대통령의 축하 편지도 1면에 게재한 바 있다.

    2024년 북·중 관계는 곳곳에서 이상기류를 보였다. 지난해 4월 말 중국 공안 당국이 밀수 혐의에 연루된 북한 외교관 자택을 수색하고, 대량의 현금까지 압수한 것으로 알려졌다. 중국이 그동안 눈감아 줬던 관례에 비추어 이례적인 일로 받아들여졌다. 6월에 중국은 2018년 다롄에서 개최된 북·중 정상회담을 기념한 시진핑 주석과 김 위원장의 발자국 동판을 제거했으며, 주중 북한대사관 앞 게시판에 내걸렸던 북·중 정상회담 사진도 모두 사라졌다. 7월 북한이 전승절이라고 주장하는 정전협정기념일 행사에 마체고라 러시아 대사, 레바빙 베트남 대사 등 북한 주재 각국 대사들이 참석했지만 왕야쥔 중국 대사는 불참했다. 2023년의 경우 중국의 고위급인 리홍중 전인대상무위원회 부위원장(중국공산당 정치국원)이 참석한 바 있다. 이외에도 중국에 파견된 북한 노동자들의 강제 귀국설 등 북·중 관계의 불협화음은 2024년 내내 곳곳에서 불거져 나왔다.

    북·중 관계 이상은 최근 밀착하고 있는 북·러 관계와 관련이 있는 것으로 보인다. 2024년 6월 푸틴 러시아 대통령은 평양을 방문해 북·러 간 ‘포괄적인 전략적 동반자관계에 관한 조약(북·러 신조약)’을 체결했으며, 북한은 러시아에 대량의 무기 공급과 아울러 병력까지 파병했다. 북·러 관계가 전통적인 북·중 동맹관계를 넘어선 셈이다. 북·러 관계 밀착은 북한에 대한 중국의 영향력 약화를 의미하며, 특히 북·러 신조약에 따라 러시아는 유사시 북한에 군사적 개입까지 할 수 있는 권리를 확보했다. 북·러 신조약 체결은 북한을 배타적인 전략적 자산으로 인식하는 중국의 레드라인을 침범한 것과 다르지 않다고 볼 수 있다.

    중국은 2023년 기준 북한 대외 교역의 98.3%를 차지하고 있으며 대북제재 위반 사항임에도 불구하고 10만~20만 명의 북한 노동자의 자국 내 체류를 묵인하고 있다. 또한 중국은 압록강 하구 태평만댐의 송유관을 통해 북한의 생명줄인 원유를 공급하고 있다. 중국이 북한을 압박할 수단이 많다는 이야기다. 2025년 중국이 임계점을 넘은 북한의 일탈을 계속 방관할지는 미지수다.

    불확실한 미래

    여러 악재와 함께 김정은 위원장의 건강 이상 가능성은 상수라고 할 수 있다. 김주애 후계 구도의 조기 가시화도 봉건적 북한 정치 문화에서는 받아들이기 쉽지 않은 변수다. 트럼프 2기 출범은 김정은 정권에는 양날의 칼이다. 김정은 정권이 원하는 북핵 인정론을 반영한 핵군축 협상 가능성도 있지만 2017년을 달군 트럼프표 ‘화염과 분노’가 재연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기 때문이다. 올해 노동당 창건 80주년과 내년 제9차 노동당 대회를 앞둔 김정은의 야심만만한 계획이 기로에 서 있는 이유다.

    김정은 정권의 한반도 적대적 2국가론 전환과 통일과 민족 개념 포기 선언으로 한반도 평화통일의 권리와 주도권은 우리에게 넘어왔다. 세계 정세의 불확실성과 한반도 핵 위기의 심화, 그리고 김정은 정권의 위기 앞에 대한민국 국익 우선의 그랜드 디자인이 절실한 시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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