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매불망 ‘트럼프 초청장’ 기다리는 재계

[재계 인사이드] 취임식 열리기 전까지 모른다

  • 김형민 아시아경제 기자 khm193@asiae.co.kr

    입력2025-01-13 09:00: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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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재계 4명, 정계 2명, 종교계 1명 총 7명 초청

    • 5대 그룹 총수들, 누구도 초청장 못 받아

    • ‘바이든 반도체특별법’ 반감 드러내온 트럼프

    • 정부, 마라라고 위치한 플로리다주에 총영사관 설립 검토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 당선인이 지난해 11월 14일(현지 시간) 플로리다주 팜비치의 마라라고 리조트에서 열린 ‘아메리카 퍼스트’ 정책 연구소 행사에서 연설하고 있다. [AP/뉴시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 당선인이 지난해 11월 14일(현지 시간) 플로리다주 팜비치의 마라라고 리조트에서 열린 ‘아메리카 퍼스트’ 정책 연구소 행사에서 연설하고 있다. [AP/뉴시스]

    류진 한국경제인협회 회장(한미재계회의 위원장, 왼쪽)과 에반 그린버그 미한재계회의 위원장(처브그룹 회장)이 20일 서울 여의도 FKI타워에서 열린 ‘한미재계회의 주최 네트워킹 리셉션’에 참석해 악수하고 있다. [한국경제인협회]

    류진 한국경제인협회 회장(한미재계회의 위원장, 왼쪽)과 에반 그린버그 미한재계회의 위원장(처브그룹 회장)이 20일 서울 여의도 FKI타워에서 열린 ‘한미재계회의 주최 네트워킹 리셉션’에 참석해 악수하고 있다. [한국경제인협회]

    당초 우려했던 것과 달리, 1월 20일 미국 워싱턴DC에 있는 국회의사당에서 성대하게 열릴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의 취임식에선 우리 재계 인사들이 다수 참석할 것으로 보인다.

    초청장을 받은 사실을 먼저 알린 류진 한국경제인협회 회장(풍산그룹 회장)과 우오현 SM그룹 회장에 정용진 신세계그룹 회장과 허영인 SPC그룹 회장이 합류했다. 정 회장은 취임식 당일 저녁에 있을 무도회에도 참석할 예정이다. 일부는 참석하겠다는 의사를 밝히고 미국행을 준비하고 있고 나머지 일부는 긍정적으로 검토하고 있는 것으로 전해진다.

    4명은 적지 않은 숫자다. 그간 “재계 인사 중 누군가는 취임식에 가서 트럼프 대통령과 그의 측근들에게 눈도장을 찍고 와야 한다”고 했던, 재계의 바람도 어느 정도 실현된 것으로 보인다. 이로써 트럼프 대통령의 취임식에 참석하는 우리 측 인사는 총 7명이 될 것으로 보인다. 정치권에선 국민의힘 소속 조정훈·김대식 의원이, 종교계에선 이영훈 여의도순복음교회 목사가 갈 예정이라고 밝혔다. 이외에 권성동 국민의힘 원내대표, 홍준표 대구시장 등이 초청 받았으나 권 원내대표의 경우 엄중한 정국 상황을 고려해 불참의 뜻을, 홍 시장은 참석의 뜻을 밝혔다.

    8년 전 1기 때도 탄핵 정국, 사뭇 다른 분위기

    이제 취임식 당일까지 남은 시간은 1주일. 추가 초청이 있을 가능성이 매우 희박해졌지만, 재계는 지금도 오매불망 트럼프 대통령과 그의 측근들로부터 취임식 초청장을 받기를 기다리고 있다. 이런 간절함은 어두운 그림자가 드리운 우리 경제 상황에서 비롯됐다고 봐야 할 것이다.

    지금 기업들이 겪는 어려움은 그야말로 첩첩산중이다. 끝을 알 수 없는 탄핵 정국에 놓인 정치권은 경제 현안을 등한시하고 있는 데다, 경제정책의 컨트롤타워 역할을 해야 할 대통령의 자리는 비어 있어 기업들은 세계시장에서 힘을 발휘하기 어렵다.

    관세를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단어”라고 말한 트럼프로 인해 우리 기업들이 맞게 될 리스크도 현재로선 두렵기까지 하다. 얼어붙은 내수시장과 고환율, 고금리, 고물가도 기업들을 흔드는 요인이다. 실제 기업들이 겪는 고통의 정도가 “이중고, 삼중고란 표현으로도 부족하다”는 이야기도 있다.

    이런 가운데 열리는 트럼프 대통령의 취임식을 재계는 어두운 터널 끝에 보이는 한 줄기 빛처럼 보는 분위기다. 트럼프와 그의 곁을 지키는 사람들의 생각을 확인하고 우리가 대처해야 할 방향을 모색할 수 있는 더할 나위 없는 기회로 여겨져서다.

    공교롭게도 8년 전인 2017년 1월 트럼프가 초임으로 미국 대통령직에 오를 당시, 그때도 우리나라는 탄핵 정국에 놓여 있었다. 국회는 2016년 12월 3일 이른바 ‘최순실 국정농단’ 사태의 책임을 이유로 박근혜 전 대통령에 대한 탄핵소추안을 발의했다. 이에 따라 박 전 대통령의 직무는 정지됐다. 그런 와중에 2017년 1월 20일 트럼프 대통령이 취임했다. 박 전 대통령은 두 달 뒤 헌법재판소의 결정으로 탄핵됐다.

    4명은 적지 않은 숫자지만, 재계에선 그때와 지금은 분위기가 사뭇 다르다는 평가가 나온다. 8년 전에는 지금보다는 좀 더 많은 규모의 정·재계 인사들이 공식 또는 비공식으로 트럼프 대통령 취임식에 초청됐던 것으로 전해진다. 기업인 중에선 김승연 한화그룹 회장이 미국 공화당의 ‘싱크탱크’라 불리는 헤리티지재단의 추천을 받아 취임식에 초청됐다.

    김 회장이 결국 건강상의 문제로 불참했지만, 초청을 받은 사실만으로도 재계는 큰 의의를 뒀다. 하지만 김 회장은 이번 취임식에 초청받지 못한 것으로 전해진다. 가능성이 줄곧 제기된 5대 그룹 총수들 역시도 초청장이 오지 않았다고 한다.

    정무적 판단 또는 전략적 행보 분석

    8년 전과 지금 분위기가 달라진 배경에 대해 재계에선 여러 해석이 나온다. 그 가운데 “달라진 이해관계와 트럼프의 정무적 판단이 영향을 미쳤을 것”이란 시각이 가장 설득력을 얻고 있다.

    미국의 현지 외신에 따르면, 트럼프는 전임인 바이든 행정부의 주요 경제정책을 달갑지 않아 한다. 그는 이런 생각을 공식석상에서 거침없이 표현하며 자신과 조 바이든 대통령과의 정책적 차별성을 만들려 했다. 취임식 초청 대상을 선별할 때도 이런 정무적 판단이 밑바탕에 깔려 있었을 가능성이 있다. 이에 따라 바이든 대통령 재임 시절 반도체, 전기차 보조금 등 지원 정책에서 적지 않은 수혜를 본 우리 기업들은 초청 대상에서 빠졌을 수 있다.

    “전략적인 행보일 것”이란 이야기도 함께 나온다. 취임식 미초청으로 우리 기업들의 애간장을 태운 뒤, 차후에 원하는 것을 주고 자신과 미국이 실익을 얻도록 하는 사전 단계일 수 있다는 것이다. 반도체 보조금에 대해 트럼프가 내놓은 저격성 발언은 이런 의심을 더욱 키웠다. 앞서 바이든 정부는 우리 삼성전자, SK하이닉스 등을 비롯한 전 세계 주요 반도체 기업들이 미국에 공장을 짓고 산업 육성, 일자리 확대를 유도하기 위해 반도체과학법(칩스법)에 따라 책정된 보조금을 지급했다.

    이 반도체 보조금에 대해 트럼프는 지난해 10월 팟캐스트 진행자 조 로건과 한 인터뷰에서 “정말 나쁘다”고 일갈했다. “우리는 부자 기업들이 돈을 빌려서 미국에 반도체 기업을 설립하도록 수십억 달러를 대는데, 그들은 어차피 우리한테 좋은 기업들은 주지 않을 것”이라고 지적했다. 이어 보조금보단 세금이 더 효과적 수단이 될 수 있다고 주장했다. 트럼프는 “매우 높은 관세를 부과해 그들이 와서 반도체 기업을 공짜로 설립하도록 하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관세 압박을 통해 미국에 공장을 짓도록 유도할 수 있다는 취지다.

    이 발언대로라면, 경우에 따라선 이미 미국 정부가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에 주기로 약속한 보조금과 관련해 트럼프 행정부가 제동을 걸고 세금 문제 등을 추가한 새로운 협상을 제시할 여지도 엿보인다. 우리 기업들로선 우려할 만한 사안이다. 기업들은 반도체 보조금을 트럼프가 집권한 이후에도 계속 지급받아야 하는데 이것이 불확실해진 것이다.

    반도체 보조금은 단번에, 일시로 지급되지 않는다. 공장에 설치되는 반도체 생산 공정이 단계별로 완공될 때마다 조금씩 지급된다. 구체적 지급 일정은 계약서에 명시돼 있다. 이미 사인한 계약은 반드시 따라야 하는 것이 도리겠지만, 트럼프의 등판으로 확신할 수 없게 됐다. 트럼프의 의중에 따라 보조금은 돌발 변수를 맞을 가능성이 있다.

    이를 비롯해, 트럼프는 강력한 말 한마디씩을 덧붙여 던졌다. 대부분 외국 기업을 견제하고 자국 기업에 힘을 싣는 쪽으로 무게가 실렸다. 그런 탓인지, 트럼프에 대한 미국 기업인들의 호응도는 매우 높아졌다. 그를 향해 열렬한 지지를 표명해 온 일론 머스크 테슬라 최고경영자(CEO)만 있는 게 아니다. 미국 빅테크 업계의 다른 거물들이 최근 트럼프 대통령 취임위원회에 거액을 후원해 눈길을 끌고 있다. 아마존의 창업자 제프 베이조스와 마크 저커버그 메타 CEO, 샘 올트먼 오픈AI CEO와 다라 코즈로샤히 우버 CEO, 팀 쿡 애플 CEO 모두 100만 달러(약 14억7000만 원)씩 기부했다.

    ‘제2의 백악관’ 마라라고서 트럼프 만난 정용진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 당선인과 면담한 것으로 알려진 정용진 신세계그룹 회장이 지난해 12월 22일 오후 인천국제공항을 통해 귀국하고 있다. [뉴시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 당선인과 면담한 것으로 알려진 정용진 신세계그룹 회장이 지난해 12월 22일 오후 인천국제공항을 통해 귀국하고 있다. [뉴시스]

    우리 재계가 위기를 벗어날 돌파구를 찾기 어려워하는 가운데, 트럼프 일가가 아끼는 ‘별장’인 미국 플로리다주 팜비치의 마라라고(Mar-a-Lago) 리조트에서 트럼프와 대면한 정용진 신세계그룹 회장의 발걸음은 충분히 의미 있어 보인다.

    정 회장은 트럼프 대통령의 장남, 트럼프 주니어의 초청으로 지난해 12월 16일부터 마라라고 리조트에서 5박6일간 머물다 귀국했다. 이때 리조트에 들른 트럼프와도 만나 인사를 나눴다. 그는 트럼프와 대화한 내용은 비밀에 부치면서 “(트럼프 주니어 등 측근이) 한국 상황에 관심을 보이면 대한민국은 저력 있는 나라이니 믿고 기다려달라, 빨리 정상을 찾을 것이라고 설명했다”고 밝혔다.

    우리 인사 중 유일하게 11월 20일 취임식 후에 열리는 무도회까지 참석하는 이가 정 회장뿐이란 점도 정 회장이 얼마나 트럼프 또는 그의 측근들 마음을 훔쳤는지를 짐작하게 한다. 무도회에 참석하려면 당선인 취임위원회나 공화당 측 핵심 인사의 초청을 받아야 하는 것으로 전해진다.

    마라라고에서 나눈 교감이 큰 몫을 했다는 사실을 부인하기 힘들다. 트럼프 일가는 1985년 미국의 유명 시리얼 회사인 포스트의 재단으로부터 마라라고를 매입한 이후 지금도 가장 아끼는 휴양용 저택으로 사용하고 있다. 최근엔 자신과 가까운 측근들과 비밀리에 회동하고 함께 앞일을 도모하는 장소로 활용돼 ‘제2의 백악관’으로도 불린다.

    제2의 백악관으로 불리는 미국 플로리다주 팜비치의 마라라고 리조트. [홈페이지]

    제2의 백악관으로 불리는 미국 플로리다주 팜비치의 마라라고 리조트. [홈페이지]

    ‌이런 곳에 정 회장이 초청돼 꽤 오랜 기간 머물다 온 사실은 꽤 남다르다. 이 일로 정 회장에 대해 민간 외교의 역할을 기대하는 목소리도 나왔다. 이와 관련해 정 회장은 “사업하는 입장에서 제가 맡은 위치에서 열심히 하려고 하고 있다”고 말했다.

    트럼프 대통령이 취임한 다음도 중요하다. 트럼프 대통령과의 접점을 넓혀가야 한다는 주장이 끊임없이 나오는 가운데 재계의 민간 외교 노력에만 기대기에는 한계가 있다. 하루빨리 정부가 안정화되고 미국과 소통해야 할 것으로 보인다.

    정부는 우선 트럼프 대통령의 성향에 맞춰 그가 아끼는 별장, 마라라고 리조트 인근에 근거지를 세우는 방안을 검토하기 시작했다는 소식이 있다. 외교부는 최근 마라라고가 있는 플로리다주에 총영사관을 설립하는 방안을 내부에서 살펴보는 것으로 알려졌다. 새롭게 세우려는 총영사관은 마라라고에서 약 100km 떨어진 마이애미가 유력한 것으로도 전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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