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년 2월호

“트럼프에 편승하면서 새로운 ‘안보 쇄빙’ 나서야”

[특집 | ‘글로벌 대격변’ 예고…트럼프 2.0 시대 개막!] 백승주 전쟁기념사업회장이 말하는 ‘한국 안보의 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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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지영 기자

    kjy@donga.com

    입력2025-01-20 09:00: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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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대한민국 안보, 시계 제로 아닌 ‘시력 저하’ 상태

    • 트럼프 정부 주한미군 철수 가능성에 대처해야

    • 북한 MZ세대, 노동당보다 장마당 좋아해

    • 우리 안보는 스스로 지켜야 한다는 결기

    • 한미 공조는 기본, 북핵 대응할 비대칭 무기 육성

    • 트럼프, 적절한 때 김정은과 직접 대화 나설 것

    백승주 전쟁기념사업회 회장은 “안보를 굳건히 하기 위해 정부, 기업, 공공기업, 국민이 함께 하는 총력외교가 절실하다”고 강조했다. [조영철 기자]

    백승주 전쟁기념사업회 회장은 “안보를 굳건히 하기 위해 정부, 기업, 공공기업, 국민이 함께 하는 총력외교가 절실하다”고 강조했다. [조영철 기자]

    4년이라는 시간이 흘렀지만 크게 변한 점은 없어 보인다. 백악관 재입성에 성공한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특유의 ‘예측 불허’ 국정 운영 기조를 2기 행정부에도 적용할 거란 전망이 쏟아진다. 이를 증명하듯 그는 취임식을 치르기 전부터 “보편적 관세 부과” “덴마크는 그린란드를 미국에 팔라” 같은 발언으로 전 세계를 긴장시켰다. 대한민국은 미국과 굳건한 동맹관계임을 자부하지만, 트럼프의 국정 운영이 본격적으로 시작되면 방위비분담금을 대폭 올리거나 주한미군을 철수할 수 있다는 얘기가 심심치 않게 나오고 있다.

    심지어 미국 상원의원들도 그가 앞으로 어떤 정책을 펼지 예측하기 힘들다고 말한다. 대한민국 안보가 시계 제로라는 얘기가 나오는 이유다. 한 치 앞을 알 수 없는 트럼프 2.0 시대에 일어날 한반도의 군사적 위협과 우리 안보를 굳건히 다지기 위한 대처 방법을 백승주 전쟁기념사업회 회장에게 물었다.

    ‘안보전문가’인 백 회장은 1961년 경북 구미에서 태어나 부산대 정치외교학과를 나왔다. 이어 경북대 대학원에서 정치학 석·박사 학위를 받았다. 1990년부터 23년간 한국국방연구원에서 안보 전문가로 활동하고 2013년부터 2년여간 국방부 차관을 지냈다. 국방부 차관에 예비역 중장급이나 관료 출신이 아닌 순수 민간인이 발탁된 사례는 그가 처음이다. 차관 재직 시절 정치 성향에 치우치지 않고 북한·안보 문제를 객관적으로 들여다보려고 노력한다는 평가를 받았다. 제20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경북 구미시갑 지역에 새누리당 후보로 출마해 당선했고, 윤석열 대선후보 캠프에서는 안보정책본부장, 국방안보특보단 수석부단장 등을 맡았다. 그와 1월 6일 서울 용산구 전쟁기념사업회 집무실에서 마주 앉았다. 다음은 그와의 일문일답.

    계엄령 선포 이후 북측 도발 징후 없어

    대한민국 안보 상황을 시계 제로(視界+zero)로 진단하는 사람이 많다. 안보전문가로서 같은 생각인가.

    “시야가 가려져 한 치 앞이 보이지 않는 시계 제로라는 진단에 동의하지 않는다. 시야를 가리는 장애물은 없는데, 바라다보는 우리 눈이 매우 침침한 상태다. 글로벌 차원, 동북아 및 한반도 차원에서 진행되는 현상을 통찰하는 시력이 약해져 있다. 우리 눈과 뇌신경이 국내 정치에 함몰돼 있어서다. 참으로 안타깝다. 대한민국호(號)가 미국 우선주의, 우크라이나 전쟁, 중동 전쟁, 미·중 갈등이 복합적으로 만든 난기류에 들어서고 있다. 이를 헤쳐나갈 노련한 사공들이 필요하다.”

    윤석열 대통령의 12·3 비상계엄 선포 이후 북한이 도발할 것을 걱정하는 이가 많다. 북한의 도발 움직임이 있나.

    “군사적 도발을 직접도발과 간접도발로 나눈다. 연평도, 천안함 도발은 직접도발이다. 핵개발, 미사일 실험은 중장기적 피해 유발을 준비하는 간접도발로 볼 수 있다. 지난해 12월 3일 계엄령 선포 이후 북측이 직접도발을 일으키거나 준비한 징후는 아직 없다. 다만 북측이 이전부터 진행한 오물 풍선 살포는 직접 도발로 볼 수 있고, 후속 직접도발로 연결될 가능성이 있다. 사이버공간을 이용해 국내 정치를 교란하는 직접적 정치 도발도 간단없이 지속되고 있다.”

    트럼프 대통령 당선이 남북 관계에 미칠 영향을 전망한다면?

    “취임 직후에 단기적으로 큰 영향은 없을 것이다. 그러나 김정은을 세 차례 만난 트럼프가 어떠한 한반도 정책을 펴고 남북에 어떤 태도를 취할지는 1월 20일 취임식 이후 전개될 한반도 정치, 남북 관계에 영향을 미칠 것이다. 트럼프는 외교적 성과를 위해 적절한 시기에 김정은과 직접 대화 카드를 사용할 것이다. 김정은은 1월 6일 초음속 중장거리 미사일 발사를 통해 직접 대화 기회를 만들려는 신호를 트럼프에게 보냈다. 북·미 직접 대화, 트럼프 정부의 코리아 패싱 논란 등이 남북 관계에 영향을 미칠 것이다. 남북 관계를 우리 정부가 주도하기 어려운 국면이다. 주한미군 철수, 코리아 패싱이 우려된다. 이러한 상황에 잘 대비해야 한다.”

    언제쯤 북·미 정상회담을 할 것으로 예측하나.

    “트럼프의 외교 스케줄이 중요하다. 한반도와 북핵 의제는 우크라이나-러시아 전쟁과 중동전쟁, 파나마운하와 그린란드 합병 의제에 밀려 후순위가 될 것이다. 우크라이나 종전, 중동 안정화 이후에 북·미 정상회담을 모색할 가능성이 높다. 미국 유권자가 열광하는 순서가 트럼프 외교 의제의 우선순위를 결정하게 될 것이다.”

    김정은 스스로 핵을 폐기할 가능성이 있다고 보나.

    “트럼프 1기 행정부가 세 차례 정상회담을 치르면서 김정은의 핵 의지를 조금도 꺾지 못했다. 종신 집권이 보장된 김정은이 체제 안전을 위해 개발한 핵무기를 4년짜리 트럼프 행정부의 환심을 사기 위해 폐기할 가능성은 없다. 핵 보유가 체제 유지 자체를 위험하게 한다는 생각을 김정은 스스로 하기 전에는 핵을 폐기하지 않을 것이다.”

    북한 MZ세대가 현 김정은 체제에 대한 반감이 크다는 얘기를 들었다. 어떤 상황인가?

    “북한 주민들이 예전에는 노동당 행사에 목숨 걸고 참가했다. 참가하지 않으면 식량 등 생필품을 얻을 수 없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지금은 MZ세대를 포함한 북한 주민에게 생필품을 구할 수 있는 장마당이 노동당보다 인기가 좋다고 한다. 노동당의 공급 능력 파산에 따른 사회의식의 변화로 볼 수 있다. 노동당이 인민에게 정치적으로 침투하고, 장악하는 가용력이 현저히 약화된 것이다. 이러한 상황에 대처하기 위해 북측은 지난해 6월 조국해방전쟁승리기념관에서 ‘당세포회의’를 개최한 바 있다. 러시아 파병도 노동당의 공급 기능 회복을 위한 조치로 본다.”

    미국 핵우산 약해지면 자체 핵무장 검토해야

    북한이 핵을 포기하지 않으면 우리는 어떻게 대처해야 하는가.

    “북측 스스로 핵을 폐기할 가능성은 없지만 핵 폐기를 위한 외교·군사적 노력을 계속해야 한다. 러시아 이탈로 큰 구멍이 나서 실효성이 없지만 유엔제재를 지속해야 한다. 아울러 북측에 대한 군사전략적 메시지(SC)를 강화해야 한다. 북측이 전술에 사용할 목적으로 핵무기를 만지는 순간 김정은 체제는 끝장날 것이라는 메시지를 일관되게 보내야 한다. 군사능력 또한 과시할 필요가 있다. 이를 위해 미국과 체결한 북핵대비협의체(Nuclear Consultative Group·NCG)를 지속적으로 발전시켜야 한다. 국내 상황 때문에 잠정 보류된 ‘NCG군사도상연습’을 신속히 재개, 지속적으로 발전시켜 나가야 한다.”

    우리도 핵을 보유해야 한다는 목소리도 나온다.

    “미국 핵우산에 대한 신뢰가 약해지면 당연히 자체 핵무장을 검토해야 한다. 최소한 핵무기 개발을 결심하고, 실제 생산하는 데 소요되는 시간(Lead Time)을 최소화하는 전략을 발전시켜야 한다. 이와 관련해 한미원자력협정 개정을 트럼프 정부에 요구할 필요가 있다. 미국의 외교위원장, 군사위원장이 전술핵무기 재반입에 전향적 입장을 밝힌 만큼, NCND(Neither Confirm Nor Deny·긍정도 부정도 아닌 태도)를 유지하면서 전술핵무기 재반입 문제도 검토해야 한다. 우리 안보는 궁극적으로 한미동맹이 지켜주는 것이 아니라 우리 스스로 지켜야 한다는 결기를 항상 갖고 있어야 한다.”

    트럼프 정부가 주한미군을 철수하거나 병력 규모를 축소할 가능성도 있다고 보나.

    “실현 여부를 떠나 트럼프 정부가 제안할 가능성이 매우 높다. 트럼프 정부의 피터 헤그세스 국방장관 내정자, 엘브리지 콜비 국방부 정책차관, 로저 리커 상원 군사위원장이 이와 관련한 주요한 의견을 낼 가능성이 많다. 콜비 차관이 관련 정책을 다듬을 것이다. 트럼프1기 행정부에서 차관보를 지낸 콜비는 2023년 ‘거부전략(Strategy of Denial)’이란 제목의 저서를 출판했다. 그는 이 책에서 ‘미국이 글로벌 차원에서 모든 군사 상황에 개입해 통제할 능력이 없다’고 인정하면서 ‘선택적으로 개입할 것’을 주장했다. 선택적 개입은 선택적 개입 거부를 의미한다. 한국이 선택적 개입 거부의 대상이 되지는 않을 것이다. 그러나 그는 주한미군이 북한 위협보다 중국 위협에 대비해야 한다고 분명하게 주장하고 있다. 한미 간 여러 안보 현안을 다루면서 주한미군 규모 조정을 제안할 가능성이 많다. 우리는 이에 대비해야 한다. 그의 할아버지 윌리엄 콜비가 닉슨 정부에서 주한미군 철수 논의를 진행할 때 CIA국장을 지낸 사실도 흥미롭게 봐야 한다.”

    트럼프 대통령이 방위비 분담에 대한 이전의 합의 내용을 무시하고 훨씬 큰 액수를 우리에게 요구할 것이란 관측이 많다.

    “일반적으로 쉽지 않다. 그러나 트럼프의 협상 전략을 고려할 때 충분히 예상할 수 있는 일이다. 트럼프는 대선 기간에 100억 달러 수준의 방위비분담금을 언급했다. 방위비분담금을 인상하기 위해 주한미군 규모 조정 등을 연계해 제안할 가능성이 있다. 의연하게 대처해야 한다. 미국이 추진하는 인도태평양전략에서 차지하는 한국의 위상을 고려한, 배짱 있는 협상 전략이 필요하다. 평택 험프리 미군기지가 해외 미군기지 중 가장 좋은 시설을 갖추고 있다. 한미동맹 없이 미국은 인도태평양전략을 구상해 추진하기도 어려울 것이다.”

    편승과 쇄빙 병행할 때

    현재 우리 군사력에 문제가 있나.

    “재래식 전력, 한·미의 북핵 억제 태세 등에서 심각한 문제는 없다. 가장 중요하면서도 검증이 어려운 부분은 우리 장병의 정신 전력이다. 이를 걱정하는 국민이 많다. 유명한 군사전문가는 전쟁 승패 게임체인저를 중심으로 4세대 전쟁을 구분했다. 1세대 전쟁은 병력 규모가, 2세대 전쟁은 화력의 크기가, 3세대 전쟁은 기동력이 승패를 좌우했다. 중국내전, 베트남내전, 탈레반 전쟁을 겪으면서 정신 전력이 전쟁의 종국적 승패를 결정지었다. 국군의 정신전력을 점검하고 강화하는 데 집중할 필요가 있다.”

    우리나라가 현재 북핵에 대응할 만한 무기를 갖추고 있나.

    “꿩 새끼를 키워서 꿩을 잡을 수 없다. 꿩을 잡으려면 매 새끼를 키워 사냥 기술을 훈련할 필요가 있다. 비대칭전략도 북핵 대응에 유효한 수단이 될 수 있다. 최근 북측은 평양상공에 출현한 무인기 때문에 군사적으로 긴장한 모습을 보였다. 방공망이 허술한 것이다. 역대 정부가 발전시켜 온 소형 핵무기의 파괴력과 맞먹는 미사일 전력과 북측의 취약한 방공망을 연계하면 솔루션이 나온다. 북핵에 대해 ‘미국 핵우산, 전술핵 재배치, 자체 핵무장’이라는 대칭적 대응 이외에 비대칭전력을 확충해 나갈 필요가 있다. 고가의 전투기, 전차를 ‘자살 드론’이 파괴하는 우크라이나 전장 속에서 비대칭전력의 위력을 점검하고, 교훈을 얻어야 한다.”

    그가 말한 자살 드론은 이슬람 수니파 무장단체 이슬람국가(IS)가 만든, 폭탄이 설치된 드론을 말한다. 이것이 진화해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에서 핵심 공격 수단으로 기능하면서 새로운 게임체인저로 떠올랐다. 자살 드론은 폭탄을 싣고 목표물로 돌진하는 자살 폭탄 기능부터, 숨어 있는 적군을 찾아내는 정찰 기능까지, 수행 임무가 갈수록 다양해지고 있다. 전장에서 적군을 공격하는 것은 기본이고, 민간인 주거지까지 진입해 인명 피해를 낳고 있다.

    트럼프 2.0 시대에 필요한 안보 전략은 무엇인가.

    “편승과 쇄빙을 동시에 진행해야 한다. 지금까지 강화해 온 한미동맹을 더욱 강화해야 한다. 트럼프가 만드는 새로운 질서에 협력하고 편승하는 전략이 우선적으로 필요하다. 그러나 글로벌·동북아·한반도 차원에서 진행되는 진영 외교와 함께 결빙을 해체하고 쇄빙하려는 노력도 병행해야 한다. 예를 들어 트럼프가 북·미 고위급 회담을 하려고 한다면 이를 지원해 주면서 남북 관계를 재정립하려는 노력을 같이해야 한다. 미·중 갈등을 이해하면서도, 중국과 관계를 개선하려는 노력도 같이 해가야 한다. 정부, 기업, 공공기업, 국민이 함께하는 총력 외교가 절실하다. 한국만이 할 수 있는 해빙 외교의 길을 모색해야 한다.”

    안보를 굳건히 하기 위해 어떤 외교적 스탠스가 필요한가.

    “통찰력을 앞세운 외교를 의연하고 당당하게 펼쳐야 한다. 사형 집행을 앞둔 안중근은 ‘동양평화론’을 집필했고, ‘인무원려, 난성대업(人無遠慮, 難宬大業)’이라는 외교적 스탠스를 남겼다. 어려운 상황이지만 통일과 북핵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중장기적 국가 목표를 세우고 외교 목표를 분명히 해야 한다.”

    인터뷰를 마치며 세간에 떠도는 얘기의 진위를 확인했다. 트럼프 2.0시대가 열리면 친북, 반미 성향 정치인, 유명인뿐 아니라 민간인이 미국에 발을 들일 수 없다는 풍문이 현실화할까.

    “미국은 불법 입국, 미국 안전을 위협하는 외국인 입국을 엄격히 통제한다. 그러나 표현의 자유 영역에서 이루어진 개별 행위에 대해선 관용적 조치를 취한다. 반미, 친북 사상만으로 통제하진 않으리라고 본다. 이러한 사상을 바탕으로 형사범죄, 예를 들면 미국 시설을 파괴하는 범죄를 벌인 적이 있으면 미국 입국은 어려울 것이다.”

    신동아 2월호 표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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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지영 기자

    김지영 기자

    방송, 영화, 연극, 뮤지컬 등 대중문화를 좋아하며 인물 인터뷰(INTER+VIEW)를 즐깁니다. 요즘은 팬덤 문화와 부동산, 유통 분야에도 특별한 관심을 갖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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