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드러운 카리스마 ‘원시기형’, ‘의회주의자’로 이재명과 차별화

[집중분석 | ‘이재명 대항마’ 金·洪·韓 그리고 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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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구자홍 기자

    jhkoo@donga.com

    입력2025-01-17 09:00: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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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계엄·탄핵 매끄럽게 정리…국민 눈에 들다

    • 계엄 상황에서 ‘절차’ 지키며 차분히 진행 ‘눈길’

    • 대선 호감도 33% 급부상…이 대표와 4%포인트 차

    • ‘친명’ 견제 뚫고 22대 전반기 의장 당선

    • 외조부 김한 선생은 독립운동가, 어머니는 실향민

    • 박정희·전두환 정권에 저항한 ‘민주화운동 1세대’

    • ‘주권자 국민’ ‘정치인 포부’ 일치해야 ‘별의 순간’ 열려

    2024년 12월 4일 새벽 1시 3분, 우원식 국회의장이 비상계엄 해제 결의안이 재석 190명 전원 찬성으로 가결됐음을 선포하고 있다. [뉴시스]

    2024년 12월 4일 새벽 1시 3분, 우원식 국회의장이 비상계엄 해제 결의안이 재석 190명 전원 찬성으로 가결됐음을 선포하고 있다. [뉴시스]

    2024년 12월 3일 10시 27분 윤석열 대통령이 비상계엄을 선포한 지 2시간이 지난 4일 0시 30분, 총기와 적외선 투시경으로 무장한 계엄군이 담을 넘어 국회 경내로 진입하기 시작했다. 국회의사당 한편에는 일부 계엄군이 망치로 유리창을 깨뜨리고 의사당 내부로 진입하기도 했다. 일촉즉발의 긴박한 상황 속에 0시 39분 우원식 국회의장이 비상계엄 해제 결의를 위한 ‘본회의 개의’를 선언했다.

    “의석을 정돈해 주시기 바랍니다. 성원이 되었으므로 제15차 본회의를 개의하겠습니다. 보고 사항은 회의록에 게재하도록 하겠습니다.”

    우 의장은 “국회는 헌법적 절차에 따라 (비상계엄에) 대응 조치하겠다”며 “국민 여러분께서는 국회를 믿고 차분히 상황을 주시해 달라”고 당부했다.

    2024년 12월 3일 밤 비상계엄 선포로 국회 출입문이 봉쇄되자 우원식 국회의장이 담을 넘어 국회 경내로 들어가고 있다. [국회의장실]

    2024년 12월 3일 밤 비상계엄 선포로 국회 출입문이 봉쇄되자 우원식 국회의장이 담을 넘어 국회 경내로 들어가고 있다. [국회의장실]

    “민주주의를 꼭 지키겠습니다”

    의사당 내 병력 투입 소식을 들은 일부 의원들이 “일단 회의를 진행하시지요” “빨리 (계엄 해제를 결의를) 진행하시지요”라고 우 의장을 재촉했다. 그러나 우 의장은 이렇게 말했다.

    “이런 일일수록 절차에 오류가 없어야 합니다. 아직 안건이 안 올라왔어요. (비상계엄해제 결의) 안건이 상정되어야 합니다. 절차를 잘 지켜서 (진행) 하겠습니다.”

    1시 1분 국회 사무처 관계자가 비상계엄 해제 결의안이 상정됐다고 보고하자, 우 의장이 다시 마이크를 잡았다.

    “의사 일정 제1항 비상계엄해제요구 결의안을 상정합니다. 제안 설명은 서면으로 대체하도록 하겠습니다. 그러면 의사 일정 제1항 비상계엄해제요구 결의안을 의결하도록 하겠습니다. 투표해 주시기 바랍니다.”

    의원들의 전자투표 결과가 국회 본회의장 모니터에 실시간으로 나타났다.

    “투표를 다 하셨습니까? 그러면 투표를 마치겠습니다.”

    국회 관계자로부터 투표 결과가 담긴 종이를 건네받은 우 의장이 다시 마이크를 잡았다.

    “투표 결과를 말씀드리겠습니다. 재석 190인 중 찬성 190인으로서 비상계엄해제요구 결의안은 가결되었음을 선포합니다.”

    이어 우 의장은 이렇게 덧붙였다.

    “국회의 의결에 따라 대통령은 즉시 비상계엄을 해제해야 합니다. 이제 비상계엄 선포는 무효입니다. (국회 경내에 들어와 있는) 군경(軍警)은 자기 자리로 돌아가시기 바랍니다. 국민 여러분께서는 안심하시기 바랍니다. 국회는 국민과 함께 민주주의를 꼭 지키겠습니다.”

    윤 대통령이 느닷없이 선포한 비상계엄은 국회 재석의원 190명 전원 찬성으로 2시간 36분 만에 이렇게 무효가 됐다.

    ‘아닌 밤중에 홍두깨’처럼 선포된 비상계엄은 5200만 국민의 밤잠을 설치게 만들었다. 그러나 국민대표자회의 국회가 차분하게 헌법과 법률에 따라 질서 정연하게 비상계엄 해제를 결의함으로써 민주공화국 대한민국의 헌정 질서는 곧바로 회복됐다. 계엄군이 투입된 급박한 상황에서도 냉정함과 침착함을 잃지 않고 차분하게 헌법과 법률에 따라 헌정 질서를 회복하는 데 주도적 구실을 한 이가 우 의장이다.

    실시간으로 전국에 생중계된 국회 계엄 해제 결의 상황을 지켜본 다수 국민은 ‘우원식 리더십’에 대해 높은 신뢰를 보냈다. 윤여준 전 환경부 장관은 “긴박한 상황에서도 차분하게 절차를 지켜가며 회의를 진행하는 (우원식) 국회의장한테 믿음이 가더라”며 “의장으로서 역할을 참 잘한다는 신뢰가 생겼다”고 말했다. 윤 전 장관은 “비상계엄 사태를 수습하면서도 제도를 효과적으로 정비하려면 무엇보다 합의 기구를 만드는 게 중요한데, 우 의장을 중심으로 여야 대표가 협의체를 구성하는 게 가장 좋은 방안”이라고 말했다.

    ‘대선후보 호감도’ 우원식 33%

    우 의장에 대한 신뢰와 믿음은 차기 대통령 적합도를 묻는 여론조사에서 ‘구체적 수치’로 확인되고 있다. 1월 6~8일 만 18세 이상 남녀 1000명을 대상으로 진행한 전국지표조사(NBS)에서 우 의장은 ‘대선후보 호감도’ 조사에서 33%를 기록했다. 이는 여야 차기 대선주자를 통틀어 호감도가 두 번째로 높은 수치다.

    ‘대선후보 호감도’ 조사에서 가장 높은 응답률을 기록한 이는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로 37%였다. 우 의장 다음으로 호감도가 높았던 차기 주자는 오세훈 서울시장(23%), 홍준표 대구시장(21%), 한동훈 전 국민의힘 대표(17%), 이준석 개혁신당 의원(13%) 순이었다. 호감도만 놓고 보면 우 의장이 이 대표를 위협할 만한 유력 정치인으로 급부상한 것으로 볼 수 있는 대목이다.

    그러나 ‘차기 대통령 적합도’ 조사에서는 이 대표가 31%로 압도적 1위를 기록했다. 오세훈 시장과 홍준표 시장이 각각 7%로 뒤를 이었고, 한동훈 전 대표 5%, 안철수 국민의힘 의원이 4%였다. 우 의장은 3%로 야권 인사 중에는 이 대표에 이어 두 번째로 높은 지지율을 기록했지만 지지율 격차는 컸다. 이어 김동연 경기지사 2%, 유승민 전 의원 2%, 이준석 의원 1%, 김경수 전 경남지사 1%였다. ‘차기 대통령 적합도’에서는 아직 강력한 이재명 독주 체제가 유지되는 셈이다.

    그러나 각종 사법 리스크에 노출돼 있는 이 대표에 대한 견고한 ‘비토층’이 존재한다는 점에서 윤 대통령에 대한 헌법재판소 탄핵 심판 결과 조기 대선이 현실화할 경우 대선 민심에 어떤 변화가 있을지 예단하기는 이르다.

    여론조사 전문기관 여론조사공정(주)이 데일리안 의뢰로 1월 6~7일 실시한 ‘차기 대통령 후보 중 절대 찍고 싶지 않은 사람’을 묻는 조사에서 이 대표는 42.1%로 비토층이 가장 많은 것으로 나타났다. 이어 홍 시장(16.8%), 오 시장(9.9%), 한 전 대표(9.2%) 순이었다. 우 의장은 1.9%였다.

    조사 기관과 설문 문항, 그리고 조사 시점이 다르기 때문에 단순 비교할 수는 없지만, 계엄과 탄핵 이후 실시된 각종 여론조사 결과를 종합해 보면 이 대표는 강력한 지지층도 있지만 그에 버금가는 더 강력한 비토층이 존재해 지지세 확장에 애를 먹을 수 있다는 것을 예상해 볼 수 있다. 그에 비해 우 의장은 강력한 지지층도, 비토층도 아직 없지만 비상계엄과 대통령 탄핵 국면에 ‘호감도’가 크게 상승해 국민이 눈여겨보기 시작했다는 것으로 요약할 수 있다.(여론조사와 관련한 자세한 사항은 중앙선거여론조사심의위원회 홈페이지 참조)

    불리한 여건 딛고 총선도, 의장 경선도 ‘통과’

    우 의장이 22대 총선에서 5선에 성공하고 22대 국회 전반기 국회의장에 오르는 과정도 순탄치 않았다. 21대 총선까지 우 의장은 줄곧 서울 노원구을 선거구에서 당선했다. 그러나 22대 총선을 앞두고 우 의장 선거구가 조정됐다. 노원구 갑·을·병 세 지역구가 갑·을 두 지역으로 통합된 것. 그 때문에 우 의장은 22대 총선을 앞두고 노원갑에서 재선한 고용진 전 의원과 당내 경선을 치렀다.

    선거구 조정 결과, 우 의장 지역구였던 하계1동·하계2동·중계본동·중계2,3동이 노원갑으로 통합돼 우 의장에게 불리했다. 우 의원 지역구를 나눠 노원구 3개 선거구를 2곳으로 조정했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우 의장은 당내 경선에서 뚝심을 발휘해 공천장을 거머쥐었고, 총선 본선에서는 오세훈 서울시장 비서실장을 지낸 현경병 전 의원(41.0%)과 맞붙어 낙승(우 의장 59.99%)했다.

    국회의장 경선은 더욱 치열했다. “명심이 당심이고, 당심이 민심이다”라며 친명계를 중심으로 추미애 의원을 국회의장으로 선출하려는 움직임이 거셌다. 당시 유행한 ‘미애로합의봐’가 대표적 친명계의 ‘추미애 국회의장 만들기’ 구호였다.

    그러나 우 의장은 우직하게 의원 한 사람 한 사람을 직접 만나 ‘22대 국회가 감당해야 할 역할과 기능’에 대한 자신의 소신을 밝히며 지지를 호소했다. 결과는 우원식 89표, 추미애 80표였다. 국회의장 후보로 선출된 그는 “국민에게 도움이 되는가, 그렇지 않은가. 국민에게 옳은가, 옳지 않은가를 기준으로 22대 국회 전반기를 잘 이끌어가겠다”고 포부를 밝혔다.

    22대 국회 개원사에는 ‘의회주의자’인 우 의장의 정치철학이 잘 담겨 있다.

    “국회는 삼권분립의 한 축이지만, 국민이 직접 구성한 기관이고 행정과 사법이 작동하는 근거인 법을 만드는 곳입니다. 국회가 입법으로 길을 만들면 그 길을 따라 실행하고 관리하는 역할을 행정부가, 길에서 이탈하지 않도록 강제하는 역할을 사법부가 합니다. 헌법이 ‘정부’와 ‘법원’에 앞서 ‘국회’를 먼저 명시한 것도 국회의 이런 특별한 권한과 책임 때문일 것입니다. 법을 만들고, 집행하고, 적용하는 삼권이 각자의 역할을 하면서도 조화롭게 융합해야 국민의 삶이 편안해집니다. 윤택하고 풍요로워집니다. 어느 하나가 과도한 권한을 행사하거나 권한이 집중되면 삼권분립이 무너지고, 국민의 권리가 침해당합니다.”

    박정희·전두환 퇴진 운동 벌인 ‘원조 학생운동권’

    연세대 76학번인 그는 대학 3학년 때인 1978년 박정희 정권 퇴진 운동을 벌이다 강제 징집됐고, 군 제대 후 복학한 뒤에는 12·12 군사반란과 5·18 비상계엄으로 광주민주화운동을 촉발한 전두환 정권 퇴진 운동을 벌이다 징역 3년형을 선고받기도 했다. 강제징집과 징역형 선고로 학업이 늦어진 그는 입학한 지 21년이 지난 1997년에야 뒤늦게 대학을 졸업했다.

    재야 활동을 한 그는 1987년 대선 때 김대중(DJ) 전 대통령이 창당한 평화민주당 민권부국장을 맡으며 정치권에 투신했다. 1995년 지방선거에서 서울 노원구을에서 시의원에 당선해 활동하기도 했다. 1998년 DJ 정부 출범 후에는 행정자치부 산하 제2건국운동본부 심의관, 환경관리공단 관리이사도 역임했다.
    국회 입성은 전대협 의장단 출신 86세대보다 늦었다. 2004년 17대 총선 때 처음 금배지를 달았고, 18대 총선에서 낙선한 그는 19대부터 22대까지 내리 4선을 기록하며 5선 고지를 밟았다.

    1970년대 학번으로 1980년대 일찌감치 노동운동과 재야에 투신한 우 의장에 대해 86세대 전대협 출신 정치인들은 선수(選數)와 상관없이 그를 ‘원시기형’이라 불렀다.

    정치 입문 이후에는 사무부총장, 원내대변인, 원내수석부대표, 최고위원, 원내대표 등 주요 당직을 두루 거쳤다. 19대 의원 시절이던 2013년 ‘을(乙)’을 ‘지’키는 민생정치를 하겠다며 ‘을지로위원회’를 만들어 초대 위원장을 지냈다. 우 의장은 국회 개원사에서 이렇게 말했다.

    “민생은 숫자가 아니라 현장입니다. 담장 안에서, 책상 앞에서 보는 민생이 아니라 현장에서 느끼는 민생에 국회의 역할이 있습니다. 현장이 국민이 사는 현실이고, 바로 그 자리, 민생 현장 어디도 국회가 필요하지 않은 곳은 없습니다.”

    을지로위원장을 역임하며 ‘민생 현장’을 찾아 직접 문제 해결에 나섰던 그는 국회의장이 돼서도 현장 밀착형 행보를 계속 이어왔다. 12·3 비상계엄 이틀 전인 12월 1일에도 경춘선숲길 방문자센터에서 ‘현장민원실’을 열고 민심을 청취했다. 비상계엄이 선포된 당일 오전에도 한국옵티칼하이테크 노동조합원을 면담하는 등 민생 행보를 이어갔다.

    을지로위원장 출신답게 우 의장은 22대 국회 개원사에서 “민생을 끌어안는 국회를 만들자”면서 “근본적으로 불공정한 경제구조를 개선하는 일을 병행하자”고 호소했다. 그는 “중소기업, 자영업자, 가맹점, 대리점, 플랫폼 입점업체, 취약 노동자 같은 경제주체들에게 대등한 교섭권을 부여해서 자신들이 겪는 문제를 스스로 해결할 수 있도록 ‘힘의 균형’을 만들자”며 “일하는 국민의 보편적 권리를 지키는 것이 민생을 살리는 길이고, 약자들의 무기가 돼야 하는 게 정치의 근본”이라고 강조했다.



    독립운동가의 외손자, 北에 두 누나 있는 실향민 가족

    우원식 국회의장의 외조부 김한 선생의 진술을 보도한 1923년 3월 15일자 동아일보. [동아DB]

    우원식 국회의장의 외조부 김한 선생의 진술을 보도한 1923년 3월 15일자 동아일보. [동아DB]

    우 의장의 가족사는 일제강점기 독립운동을 하고, 광복 후 남북분단과 6·25전쟁으로 이산가족의 아픔을 겪은 한국 근현대사의 축소판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의 외조부는 일제강점기 대한민국임시정부 사법부 비서국장을 지내고 의열단에 가입해 조선총독 암살을 계획하다 검거돼 5년간 옥살이를 한 독립운동가 김한(金翰) 선생이다. 1923년 3월 15일자 ‘동아일보’는 김상옥의 종로경찰서 폭탄 투척 사건으로 검거된 김한 선생이 일제의 심문에 어떻게 답변했는지 ‘피고 김한의 진술’이라는 제목의 기사에서 상세히 보도했다. 당시 보도 원문은 이렇다.

    “조선독립에 대하야는 엇더한 희망과 계획을 가젓는가.”

    “계획이란 말은 대단히 막연한 말이라 대답할 수 업고 희망으로는 조선이 나라로도 독립하여야 하겟고 각 개인으로도 개성(個性)을 독립하여야 할 것이니 이것은 텬디 자연의 리치이라 나더러 물어볼 필요도 업는 일이라.”

    김상옥 폭탄 투척 사건으로 기소된 사람은 모두 6명. 그 가운데 5명은 검사가 구형한 대로 또는 검사 구형보다 적게 언도됐다. 그러나 오직 김한 선생만은 검사가 구형한 5년보다 두 해를 더한 7년형이 언도됐다. 1923년 5월 27일자 동아일보는 이렇게 보도했다.

    “이번 사건에 대하야 피고 여섯 사람 중에 다른 피고들은 검사의 구형대로 혹은 검사의 구형보다 적게 언도가 잇셧스나 오직 피고 김한만은 검사의 구형보다 잇해를 더하야 칠년의 언도가 잇서서 근래 재판소 판결 중에 흔히 보지 못하든 긔록을 일우엇스며 일반 여론도 매우놉게 되야 검사의 구형보다 잇해를 더느리워 판결한 것은 매우 심하니 너무 혹독하니하야 말이 만핫스며 더욱히 방청객 중에는 법뎡을 나오면서 불평을 부르짓고 판사를 불공평하다하야 원망하는 사람까지 잇게 되엿더라.”

    김한 선생은 2005년 건국훈장 독립장이 추서됐다. 우 의장은 국회의장 후보로 선출된 직후 “저는 나라를 구하고자 했던 독립운동가의 결기를 가슴 속에 품고 민주주의를 수호하고자 했던 민주운동가의 정신으로 뚜벅뚜벅 민생 현장으로 걸어왔다”고 밝힌 바 있다.

    우 의장의 모친 김례정 여사는 북에 두 딸을 두고 온 실향민이다. 2010년 남북 이산가족 상봉 때 우 의장 모친은 우 의장 큰누나와 60년 만에 극적으로 상봉했다.

    2018년 2월 13일 우원식 당시 민주당 원내대표가 2010년 자신의 어머니가 최고령 이산가족으로 북에 두고 온 큰누이를 60년 만에 상봉하는 사진을 들어 보이고 있다. [뉴스1]

    2018년 2월 13일 우원식 당시 민주당 원내대표가 2010년 자신의 어머니가 최고령 이산가족으로 북에 두고 온 큰누이를 60년 만에 상봉하는 사진을 들어 보이고 있다. [뉴스1]

    ‌평창 동계올림픽 개최를 계기로 남북 화해 무드가 조성되던 2018년 2월, 당시 민주당 원내대표를 맡고 있던 우 의장은 원내대책회의에서 2010년 자신의 어머니가 최고령 이산가족으로 북에 두고 온 큰누이를 60년 만에 상봉하는 사진을 들어 보이며 “어렵게 시작된 남북대화가 북핵 문제 해결과 이산가족 상봉, 한반도 비핵화 논의를 위해 다 같이 노력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우 의장은 비상계엄 선포로 국회 정문이 폐쇄되자 국회 담장을 넘어 국회 본회의장으로 향했다. 계엄 해제 결의와 대통령 탄핵 국면에 우 의장이 맨 초록색 넥타이는 재야 대부 ‘김근태’ 선생의 유품이었다. 우 의장은 계엄 해제 결의 이후인 2024년 12월 4일 자신의 SNS에 이렇게 적었다.

    “오랜만에 김근태 형님의 유품인 연두색 넥타이를 맸다. 이 넥타이는 제가 큰 결정을 해야 할 때 꼭 매던 것이다. 넥타이를 맬 때마다 속으로 ‘김근태 형님 꼭 도와주세요, 용기를 주세요’라고 부탁과 다짐을 하곤 했다.”

    국민은 새 리더십으로 누구를 선택할까

    윤 대통령이 주도한 비상계엄 사태는 국민대표로서 국가와 국민을 위해 마땅히 해야 할 일을 묵묵히 해온 조용하고 온화한 성품의 우 의장을 주목하게 만들었다. 흐트러진 국정을 바로잡는 데 그가 앞으로 어떤 구실을 하게 될지 주목된다.

    ‘줄탁동기(啐啄同機)’는 알을 품은 어미 닭과 알 속 병아리가 껍데기를 깨고 나오기 위해 함께 힘을 모아 껍데기를 쪼을 때 새 생명이 탄생할 수 있음을 이르는 고사성어다. 정치권에서는 주권자 국민을 어미 닭, 새 정치를 펼쳐 보려는 정치인을 알 속 병아리에 비유하곤 한다. 즉 주권자 국민과 새 정치를 펼치려는 정치인의 비전이 결합해야 그 정치인에게 ‘별의 순간’이 열린다는 점에서다. 2002년 대선 때 오랫동안 지속돼 온 ‘이회창 대세론’을 하루아침에 무너뜨린 ‘노무현 열풍’이 한국 정치 물줄기를 바꾼 ‘줄탁동기’의 대표 사례로 여겨진다.

    대한민국 주권자 국민은 비상계엄과 탄핵 국면을 수습할 새 리더십으로 과연 누구를 선택할 것인가. ‘구관이 명관’이라며 일찌감치 대선주자로 부상해 자신의 정치적 입지를 확보해 온 기존 차기 주자 중에서 선택할 것인가, 아니면 다수 국민 요구에 부응할 수 있는 부드러운 카리스마를 갖춘 새 인물에게 기회를 줄 것인가. 대한민국 주권자 국민의 다음 선택이 주목된다.

    신동아 2월호 표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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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구자홍 기자

    구자홍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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